ㅡ 선생은 전쟁 초기에 포로로 잡혔었지요?

ㅡ 1940년 6월, [프랑스 사람들]의 촬영 현장에서 촬영기사였던 알랭 두아리누(Alain Douarinou)와 함께 포로로 잡혔죠. 그 바로 직전, 우리가 보주 지방에 있을 때 군인수첩을 돌려받았는데 내 수첩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무기력함. 대단히 무기력함. 진급 불가.˝ 나는 두아리누와 함께 처음으로 도주를 시도했지만 다시 붙잡혔죠. 불행하게도 두아리누는 폴란드로 이송되었습니다.- P129

ㅡ 그런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ㅡ 세상이 변했습니다! 변화에 순응할 필요가 있었지요. 나는 참과 함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미학적 사진은 찍을 수 없게 되었군.˝ 나는 여전히 회화와 형식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런 요소들을 변화에 맞춰야 했습니다.- P131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그때가, 그러니까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친구는 의사이자 소설가였죠. 우리는 서로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얘기하니까 그 친구가 말하더군요. ˝자넨 일하는 게 아닐세. 자네는 격한 기쁨을 맛보는 걸세.˝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무척이나 감명 깊게 읽은 나한테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죠.-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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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율리시스》를 처음 읽었을 때가 그때였나요?

ㅡ 아닙니다. 그 책은 군 복무 시절 처음 읽었죠. 당시엔 신병이 부대에 배치되면 소위 받아쓰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설문 양식을 채우는 일이었지요. 나는 ‘교육 수준‘란에 ‘무‘ 라고 적었습니다. ‘장교가 되고 싶습니까?‘ 란 질문에는 ‘아니요‘ 라고 답했죠. 부대의 인상에 대해 묻는 항목도 있었습니다. 나는 조종사가 되고 싶었지만 대번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설문지에 이렇게 썼지요. ‘너무 재지 마라. 하늘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하사관들이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고 장교들은 나를 역겹다는 눈초리로 쳐다봤습니다. 대위가 신병 대열에 선 나를 보더니 나오라고 했습니다. 설문지를 내밀면서 물었습니다.
˝뭘 쓴 거지?˝
˝콕토요.˝
˝콕토, 뭐?˝
˝콕토가 1920년에 쓴 시입니다.˝
그 후 나는 군기교육대로 불려갔고 거기서 고생을 좀 했죠.(124p.)-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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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이제 선생은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으시겠죠.

ㅡ 나는 질문을 합니다. 내가 뭘 알겠습니까? 궁극적인 단 하나의 대답은 죽음입니다. 슬픈 일이 아니라 사실이지요. 중요한 것은 최대치를 얻으려면 매우 한정된 수단만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카메라 한 대와 렌즈 하나만 가지고 있습니다. 최대치를 얻으려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아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강도입니다.(111p.)-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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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사진을 찍을 때 요구되는 신경과민 상태가 데생할 때는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데생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작업이거든요. 빨리 진행하려면 매우 천천히 작업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P99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나의 문제는 내가 실제로 행한 것보다 너무 멀리 간다는 거죠.-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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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한텐 ˝태초에 기하학이 있었다˝입니다. 나는 모사하고, 늘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작은 판형의 책에서 회화 복제본의 비례를 계산하느라 시간을 보냅니다. 내가 현실에서 재차 마주치는 바로 그것, 모든 혼돈 속에는 질서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죠.-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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