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
브리기테 슈스터 지음, 김목인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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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스위스 베른에서 살며 고양이 사다리를 연구하고 탐구하고 사진 찍고 글 쓰고 책까지 만들어낸 브리기테 슈스터(타이포그래피를 전문으로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저자, 교육자, 사진가, 자신의 출판사인 '브리기테 슈스터 에디뙤르' 설립자라고 합니다)라는 사람의 생각과, 그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나의 손에 들어온 이 책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나도 좋다.


마침 알라딘에 리뷰가 하나도 없길래 '내가 한 번 써야겠다.' 했더니만 글쎄 내가 그렇게 마음 먹자마자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리뷰가, 그냥 리뷰도 아니고 뺄 것도 더할 것도 없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리뷰가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리뷰가 떡하니 내 눈 앞에 펼쳐지지 뭔가. 그것은 다름아닌 '옮긴이의 말'(김목인, 62~63p.)이다.


'옮긴이의 말'을 통째로 옮기기...는 뭣하고, 반만 옮겨 보겠다.

히힛.


(62p)옮긴이의 말.

[빈 사다리만으로도 많은 것을 보여주는 책]


책을 옮기며 가장 즐거운 순간은 역시 원서가 도착했을 때일 것 같다. 처음 PDF로 검토했던 이 책은 직접 보니 만듦새가 근사했고, 저자 슈스터 씨가 서명과 한정판 일련번호까지 보내와 더욱 소중했다. 섣불리 옮겼다가는 이 기분이 사라질까 싶어 며칠 조심히 넘겨보다 비로소 첫 장을 펼쳤다. 


  이 책의 신기한 점은 고양이 사다리만 가득 나오는데도 고양이를 많이 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다리의 그 '비어 있음' 때문에 발코니나 창틀, 담쟁이덩굴 등 주변의 많은 것들까지 보게 된다. 사진 속 사다리마다 고양이가 한 마리씩 앉아 있었다고 상상해보자. 과연 그 존재감 때문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긴 했을까?


  사다리 같은 연결 장치는 그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자연히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방향까지 바꾸며 길게 이어진 고양이 사다리에서 어린 시절 꼭 한 번 올라가 보던 비밀스런 계단들이나 만화 속 괴짜 과학자의 장치(알람시계가 울리면 억지로 일으켜 밥도 먹이고 옷까지 입히던 장치)가 떠올랐다.


  물론 고양이의 외출을 위한 장치이지만, 집사들 역시 이 사다리들을 설치하며 어린 시절의 본능을 살짝 즐기지 않았을까? 고양이처럼 기꺼이 벽을 타고 올라갈 의향도 있었던 시기의 본능 말이다.


*

핵심을 찌른다. 신기해서 다시 한 번 옮겨 본다. 


「이 책의 신기한 점은 고양이 사다리만 가득 나오는데도 고양이를 많이 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하하하하. 정말 그렇다. 과연 그렇다. 100장이 훨씬 넘는(두 쪽에 걸친 사진을 한 장으로 치고 세어본 결과 백 열 여섯 장) 사다리 사진에서 실제 고양이가 등장한 사진은 딱 한 장만 기억난다. 물론, 사다리가 없는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말 그대로 사다리만 잔뜩 봤는데도 온갖 고양이를 다 본 느낌이 든다.


사실, 「사다리의 그 '비어 있음' 때문에 발코니나 창틀, 담쟁이덩굴 등 주변의 많은 것들까지 보게 된다.」거나, 「사다리 같은 연결 장치는 그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자연히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는 말은 옮긴이가 적극적인 독자로서 좋게 해석한 것이고 실상은 다른 사정이 있다는 것도 본문에 나온다. 


「(18쪽) 고양이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고양이를 포착하기란 어렵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이 그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사진에 담긴 것은 대부분 고양이가 없는 여러 개의 고양이 사다리들뿐입니다. 이는 고양이들이 보통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짧은 순간에만 사다리를 이용한다는 것을 보여주죠. 이동 시간이 대부분 몇 초밖에 걸리지 않다 보니 웬만해선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양이 사다리 사진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남의 집 사진인데 그 많은 사진을 일일이 다 허락 받고 책에 실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답은 금방 나왔다. 


「(16쪽)과정 : 베른에서는 고양이 사다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외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저는 '거리 이미지의 자유'(strassenbildfreiheit)에 관한 법률로도 알려진 스위스의 '파노라마의 자유'(panoramafreiheit)에 관한 법률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법은 '공공의 공간들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진을 포함한 다른 매체들로 공공의 공간들을 재생산할 권리도 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저는 거리에서 건물들과 그 정면, 고양이 사다리들을 촬영했습니다. 공공 공간의 이미지를(상업적 목적을 포함해) 재생산할 수 있는 이렇나 권리 덕분에 이 프로젝트를 책으로 펴낼 수 있었습니다. 」



안되겠다.

이런식으로 하다가는 사진 빼고 글 부분을 다 옮기게 생겼다.

이쯤하고 꽁무니를 빼야지.

졸립기도 하다.

어느새 금요일 밤 아닌가.

아...

오늘 밤 꿈에서,

사다리 타고 자유롭게,

슝슝

날자.

슝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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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5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책 멋진데요 잘잘라님 리뷰만 읽었을때는 집안의 고양이 사다리를 설치 하는건 줄 알았는데 집집마다 저렇게 고양이들의 이동을 도와주는 사다리가 있고 이것을 설계하고 설치하는 사람이 있네요.
잘잘라님이 꿈속에서 사다리 타고 자유롭게 슝슝 날고 계실때
슬그머니 고양이 한마리 놓고 감 ㅋㅋ
   ∧_∧ 
  (´・ω・`)  
  ( つ つ
(( (⌒ __) ))
   し‘ っ

잘잘라 2021-03-06 09:25   좋아요 2 | URL
춤추는 🐱고양이 룰루랄라~!!

붕붕툐툐 2021-03-06 1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꿈에서 사다리 타고 놀고 계신가요? 잘잘라님이 이렇게 극찬하시니 읽고 싶은 책장에 살포시 담아갑니다~ 행복한 금욜밤, 긋나잇!!😪

잘잘라 2021-03-06 09:26   좋아요 2 | URL
붕붕툐툐님! 즐거운 주말이예요!
룰루랄라~~!!🎵🎵💕

바람돌이 2021-03-05 2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집집마다 소박한 사다리 하나씩이라니.... 따뜻한 사람들이 서러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서 사는 동네일듯요.

잘잘라 2021-03-06 09:28   좋아요 2 | URL
이 마을에 살면 고양이 안 길러도 사다리는 설치헐 것 같아요. 완전 부러움!!!
 
[eBook]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의 기억,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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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심심하다는 건, 죽을 맛이지.

살맛일 리가 없지.


심심하다.


할 일이 태산인데,

심심하다.


바빠 죽겠는데,

심심해 죽겠다.


바빠 죽겠는데 심심해서,

전자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빌렸다.


'할 일이 태산인데 도대체 왜, 그니까 어째서, 이렇게나 대책없이 심심하단 말인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으니 심심하지 않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러니 바쁠 때도 책을 읽을 수 밖에.

하하하하하.


기쁘다.

이제 심심하지 않으니까,

졸음이 온다.


일은 언제 하누.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 오는 것을 볼 수 있가 있었다.'

'죽자꾸나 뛴다.'


그렇구나. 

죽자꾸나, 이 글을 읽었으니 죽자꾸나 뛰어봐야지.

끼야아하하하하하하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서울 아이들은 소나기가 하늘에서 오는 줄 알겠지만 우리는 저만치 앞벌에서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노는 곳은 햇빛이 쨍쨍하건만 앞벌에 짙은 그림자가 짐과 동시에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성을 지르며 마을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 장막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자꾸나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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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1 0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잘잘라님 심정이 백번 이해되어서 웃고 갑니다. ^^

잘잘라 2021-03-01 07:51   좋아요 1 | URL
이 심정에 공감하여 하하하 웃는 바람돌이님 심정이 저 또한 백번 이해되어 하하하 웃으며 뜁니다. 삼일절에 비가 오네요. 풀들이 하하하 비를 맞으며 하하하 빗속에서 하하하 웃고 있습니다.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현대미술가 시리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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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말, 낯선 문장, 명랑한 그림으로 가득한 공간.

『다시, 그림이다』를 폈다.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시, 산다.

살아간다.

삶이다.

삶.

사람.



호크니 : 이곳이 바닷가 옆이라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넓고 멋진 공간이 펼쳐집니다. 밖으로 나가 해변을 따라 산책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집니다. 브리들링턴의 바닷가 옆에서 제 누나가 한 번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가끔 나는 공간이 신이라고 생각해."

대단히 멋진, 시적인 생각입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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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2-13 11: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간도 결국 공간이라 생각하며 한표 던집니다~

잘잘라 2021-02-13 11:46   좋아요 4 | URL
지금 우리 같은 공간에서 만났네요^^ 저는 초딩님한테 한표요~~

scott 2021-02-13 11:4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잘잘라님 호크니옹 아이퐁으로 스케치 하는거 작업과정 유툽에 영상있어요.^.^

잘잘라 2021-02-13 11:47   좋아요 4 | URL
언제나 좋은 정보, scott님 감사합니당~^0^~

페넬로페 2021-02-13 13: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3년전인가 호크니 전시회 다녀왔는데 넘 좋았어요^^
올해는 어떤 공간이라도 다닐 수 있음 좋겠어요**

잘잘라 2021-02-13 19:03   좋아요 1 | URL
3년 전이라도.. 부러워요.
다닐 수 있을 때 많이 다니게 하체운동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와 날씨가, 날씨가 완전 봄 날씨예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창문을 열고 있어요. 우와~~

JK 2021-02-17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잘라님 친구 신청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페넬로페님처럼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에 갔었는데 그림 크기와 디테일에 계속 놀라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쌓인 책들을 보고 나면(대체 언제...?) 호크니에 관해서도 더 알아보고 싶네요.

잘잘라 2021-02-17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JK님 반갑습니다. 친구 신청 받아주셔서 감사하구요. JK님이 그리신 귀요미 뱁새 보고 왔어요. 새들의 밥상이라는 책도 찜해놓구요. 고흐 책, 저도 다시 읽고 싶은데 도무지 찾을 길이 없어서 다시 주문하려구요.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한 관심, 고흐에 대한 관심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 기뻐요. 창밖에 바람 소리가 심상찮네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9p.)
제목 : 오늘

오늘 나는 낮게 날고 있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모든 야망의 주술을 잠재우고 있지.

세상은 갈 길을 가고 있어.
정원의 벌들은 조금 붕붕대고,
물고기는 뛰어오르고, 각다귀는 잡아먹히지.
기타 등등.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 쉬고 있어.
깃털처럼 조용히.
나는 거의 움직이지 않지맠 사실은 굉장히 멀리
여행하고 있지.

고요.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들 가운데 하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
*
2021. 2. 5. 금
사무소 이름 정한 날.🦒 기린s♡♡♡♡♡♡
[전원일기] 776회.

🥂🎵막글리히 하안자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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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잘 쓰는 법 - 짧은 문장으로 익히는 글쓰기의 기본
벌린 클링켄보그 지음, 박민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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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알게 되는 만큼 생각과 인식의 폭이 넓어질 것입니다.(9p.)"


생각과 인식의 폭이 넓어지길 원하나?

내가 원하는 게 그건가?

아닌데?

그럼 뭘 원하는데?


밥을 주랴? -땅을 주오.

집을 주랴? -땅을 주오.

옷을 주랴? -땅을 주오.


돈을 주랴? -돈을 주오. 어서 주오. 많이 주오!


밥을 짓겠소. 많이 지을 거요.

집을 짓겠소. 튼튼하게 지을 거요.

옷을 짓겠소. 아름답게 지을 거요.

죄를 짓겠소. 알게모르게 지을 거요.


돈을 주오.

시간을 주오.

힘을 주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숲과 하늘이 끝없는 곳에

집을 지어

밥을 지으며

살 테요.


오래 살 테요.

오래 살아 남을 테요.

오래 사는 동안

오래 사는 만큼

살고 갈 테요.



실험만이 있을 뿐입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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