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반대합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스티나 비르센 그림, 이유진 옮김 / 위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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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에 비해 무척 작고 얇고 가볍다. 
그러나 다른 어떤 책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평화와 강인함으로 충만하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그동안은 삐삐 롱스타킹 작가일 뿐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분을 따르고 싶고 알고 싶었지만, 이 연설문을 읽고 난 뒤에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과 같은 분이 되었다. 세종대왕은 나에게 한글을 주었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는 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었다. 잘 살고 싶다. 잘 살아내고 싶다. 


* 작가는 스웨덴 사람이다. 스웨덴은 스웨덴어를 쓴다고 한다. 이 연설은 스웨덴어로 했을까? 독일어로? 영어로? ...궁금하다.


** 책에 있는 번역가 이유진 프로필을 보면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의 문학작품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스웨덴어가 다른데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궁금하다. (그의 번역이 좋아서, 그가 번역한 책을 검색해보았다. 마침 인테리어 관련 서적이 있어, 옳다꾸나! 신난다.)


*** 이 책에는 특이하게도 가격 표시가 없다. 알라딘에는 정가 13,000원, 판매가 11,700원이지만 책 자체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가격 표시가 없다. ...궁금하지 않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뜻으로, 일부러 그런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기쁘다. 




1978년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 수상 연설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친애하는 여러분!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은 광휘를 내뿜고 있습니다. 이런 상을 받게 되니 너무나 큰 영광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지난 수년간 많은 현명한 남성과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인류의 미래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영원한 평화에 대한 희망을 피력해왔습니다. - P25

이미 말로 나온 것 이상으로, 저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요?

평화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이 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어쩌면 도달 수 없음이 명백한 하나의 목표로만 존재해왔을 것입니다. - P26

우리 인류가 이 행성에서 살아온 동안 우리는 폭력과 전쟁에 빠져 있었고, 그나마 존재하는 취약한 평화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세상은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새로운 전쟁의 공포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위협에 직면해 과거의 어떤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평화와 군비 축소에 힘쓰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는 희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기는 너무 힘듭니다. 정치인들은 거창하게 무리를 지어 정상 회담에 모여서는 열띠게 군비 축소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나라가 떠맡는 군비 축소일 뿐입니다. 우리 나라가 아니라 당신네 나라가 군비 축소를 해야해! 어느 나라도 먼저 나서고 싶어 하지 않고, 아무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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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18 16: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가손 너무 귀엽~😍

잘잘라 2021-06-18 16:59   좋아요 1 | URL
귀여운 건 못 참아요. 😁
(그래서 귀여운 건 무섭기도.. 😱)

mini74 2021-06-18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린드그렌 선생님이 이런 글도 쓰셨군요. 삐삐시리즈 정말 좋아하는데. 나의 린드그렌선생님이란 동화책도 아이랑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

잘잘라 2021-06-18 20:51   좋아요 1 | URL
이 연설문 외우고싶어요. 읽을때마다 힘이 나요.
삐삐 드라마도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
mini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나를 부르는 숲 - 개역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까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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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킬로미터는 꽤 먼 길이고, 2킬로미터는 상당한 길이며, 10킬로미터는 엄청난 길이며, 50킬로미터는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당신이나 당신의 얼마 안 되는 동료 등산가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지구 넓이에 대한 그런 계측은 당신만의 작은 비밀이다.(112p.)


그래서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 보다 다리가 튼튼한 사람 말을 듣고 싶다. 물론 머리도 좋고 다리도 튼튼한 사람도 있지만, 드물다. 머리만 좋은 사람은 대개 다른 사람의 발로 걸으려 들기 때문에 튼튼한 다리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다리만 튼튼한 사람은, 각성하고 머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머리가 좋아지기 어려운데, 그 '각성'의 기회라는 것이 대개는 가까운 사람의 배신, 농락, 무관심 등과 같이 오기 마련이라, 분노와 억울함에 치를 떨다가 각성의 기회마저 날려버리는 수가 많기 때문에 역시나, '머리도 좋은 사람'이 되기가 어렵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서야 조금 머리가 좋아지고 있는 내가, 약해진 다리뼈를 위해 걷고, 먹고, 돈벌이하면서 살아간다.


"그저 걸으려는 의지뿐이다.(112p.)"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킬로미터는 꽤 먼 길이고, 2킬로미터는 상당한 길이며, 10킬로미터는 엄청난 길이며, 50킬로미터는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당신이나 당신의 얼마 안 되는 동료 등산가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지구 넓이에 대한 그런 계측은 당신만의 작은 비밀이다. - P112

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고 필요한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 당신은 마음의 격렬한 동요를 거쳐 더 이상 어떤 자극이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탐험가이자 식물학자였던 윌리엄 바트럼이 표현한 대로 "투쟁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가 된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뿐이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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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6-14 1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이란 책을 오디오로 들은 적이 있어요.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였던 것 같아요. 재담을 섞어 쓴 재밌는 여행기로 들어서 장바구니에 담아 뒀죠.
저는 제 몸 중에서 다리가 가장 튼튼해요. 걷기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 듯. 다리 빼면 다른 곳은 약해요. ㅋㅋ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잘라 2021-06-14 19:34   좋아요 2 | URL
페크님, 오오~ 다리 부심 부럽습니다!
나를 부르는 숲, 진짜 좋아요. 발칙한 유럽산책도 읽어볼께요.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1-06-14 16: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제 10킬로 걸어봤습니다.
어제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하여 거의 아무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발로 거리를 잰 10킬로는 보통 거리가 아님에 깊이 공감합니다. ^^

잘잘라 2021-06-14 19:45   좋아요 3 | URL
북다님 10킬로!!! 와우, ‘엄청난 길이‘를 걸으셨네요.
북다님 항상 건강하세요~!!

서니데이 2021-06-14 17: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저자의 책 저도 몇 권 있어요.
재미있는 책이 많았어요.
잘잘라님 좋은하루되세요^^

잘잘라 2021-06-14 19:47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
서니데이님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새파랑 2021-06-14 1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글 보니 다리가 튼튼한 사람이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는 더 의지가 갈거 같아요~!

잘잘라 2021-06-14 19:57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은 어쩐지 다리도 튼튼하고 머리도 좋은 사람일 것 같아요.
아무튼 새파랑님!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붕붕툐툐 2021-06-15 00:20   좋아요 2 | URL
맞아요~ 새파랑님은 많이 읽으시고 또 많이 걸으시니 양쪽 다 가지신 분!!

붕붕툐툐 2021-06-15 0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리 근육 많은 사람이 젤로 부럽다요!(하지만 운동은 하지 않죠, 후훗~)

잘잘라 2021-06-15 07:06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 다리 근육 부자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누구나 하고 싶어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스터즈 터클 지음, 노승영 옮김 / 이매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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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해 여름을 에번즈빌의 공장에서 일했어요. 공장 일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 일이 그해 여름으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잠깐이었지만 공장에서 일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어요. 돈이야 많이 벌지. 하지만 분위기가 갑갑해. 공기나 이런저런 것들 있잖아요. 나는 공장은 이상한 냄새가 나서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이상한 냄새가 나요. 들에서는 그런 냄새가 안 나지.『』(72p.)


*

곤드레 나물을 사다가 된장찌개를 끓였다. 냄새가 좋다. 찌개 냄새가 좋기도 하지만 실은 내가 만든 음식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는 사실에 더 뿌듯한 건지도 모른다. 기쁘기로야 엄마가 끓여주는 찌개 냄새가 최고고!


들에서 나는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 특정하긴 어렵다. 들에서는 계절마다, 때마다, 날씨마다 다른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공장 근처에 있는 들이라면 공장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가 날아올 수도 있고... ... ...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냄새가 문제라면, 일단 눈에 보이게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한다. 숫자로, 그래프로, 글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사람으로..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오늘도 시간이 문제다.



이상한 냄새가 나요. 들에서는 그런 냄새가 안 나지.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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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31 11: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때 알바했던 공장이 돈을 너무 적게 줘서 싫던데 에번즈빌은 돈을 많이 줬나봐요. ㅎㅎ
갑자기 곤드레나물밥이 먹고싶네요. ㅎㅎ

잘잘라 2021-05-31 13:22   좋아요 3 | URL
곤드레나물밥 드셨나요? 점심에 못드셨다면 저녁에 꼭 드시기를 바랍니다. ^^ 바람돌이님~~ 강원도에 가서 점심에 막국수, 저녁에 곤드레밥, 아침에 또 곤드레밥 먹고 오고 싶어요.ㅎㅎㅎ(생각만해도 흐믓~~)

scott 2021-05-31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곤드레!
파스타하고도 어울리는 뎅ㅎㅎ
잘잘라님의 시간
⌛⌛⌛⌛
무한으로 늘려놓고 가여 ㅎㅎ
건강 잘챙기기 ✧٩(๑❛ω❛๑)

잘잘라 2021-05-31 18:22   좋아요 3 | URL
아~ 파스타!!! 어남선생 류수영 배우가 알려준 버터,우유 파스타에다가 트러플오일인가 그거 대신 곤드레 넣어서 한번 먹어봐야겠습니당~~!! ㅎㅎ
scott님이 늘려주신 시간 덕분에 오랜만에 느긋하게 저녁밥 챙겨먹으러 갑니다. 감사합니당~~😄❤👍

붕붕툐툐 2021-05-31 21: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들냄새는 알 듯 말듯하지만, 된장찌개향은 확실히 알지용~ 구수한 향이 여기까지! 너무 좋네용~👍

잘잘라 2021-06-01 00:31   좋아요 2 | URL
결정했어요! 낼 아침에도 된장찌개로~~!! ^^ 붕붕툐툐님 편안한 밤 보내세요~~❤❤❤
 
- 누구나 하고 싶어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스터즈 터클 지음, 노승영 옮김 / 이매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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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다가오더니 신문배달 하겠냐고 묻더군요. 대단한 것처럼 말했어요. 주당 7달러에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어요. 그 사람은 허풍쟁이였어요. 전 사람 말 안 믿어요. 고객 말도 안 믿어요. 돈을 안 줄 때가 있으니까요.


신문 인쇄소 사람들한테도 열 받아요. 57부를 받게 돼 있다고 해보세요. 그사람들은 47부를 보내거나 67부를 보내요. 일요일 아침에는 뒤죽박죽이 돼요. 클리프는 열 부나 열한 부가 남고 저는 열 부나 열한 부가 모자라죠. 항상 그래요. 인쇄업자들은 신경도 안 써요.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고요. 반쯤은 졸고 있거나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내 일을 하는데 왜 저 사람들은 저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저도 저 사람들 못지 않게 이 일이 싫어요.


일요일 아침 세 시, 제 기상 시간이에요. 늦게까지 일하면 피곤해요. 하지만 어두운 건 상관 없어요. 물론 가끔가다 부딪히는 일은 있지만요. 개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심장마비 걸릴 수도 있어요. 독일산 셰퍼드 두 마리를 기르는 여자가 있어요. 엄청나게 큰 놈이죠. 키가 1미터도 더 돼요. 한 놈은 저를 안 물어요. 그냥 쫓아와서 달려드며 짖어대죠. 그리고는 가버려요. 다른 놈은, 처음에는 있는 줄도 몰랐어요. 물리고서야 알았죠. 덤불에서 튀어 나왔어요. (짖는 소리 흉내) 돌아보니까 저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거예요. (다리의 상처를 가리키며) 여기를 물었어요. 피도 조금 났어요. 저는 무섭게 노려봤어요.


그자식은 옆집 마당으로 가더니 제가 오지 못하게 막아 섰어요. 하지만 저는 걸어가서 신문을 주고 왔어요. 그 놈 머리에 한방 날리거나 죽여버릴려고 했어요. 뭐라도 하려고 했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었거든요. 저는 아주머니를 불렀어요. 아주머니는 자기 개가 예방주사를 다 맞았다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를 물었다고? 믿을 수 없어." 제가 말햇죠. "아주머니, 진짜 물었다고요." 아주머니 딸이 합세해서 저를 심문하기 시작했어요. "개가 무슨 색이었지?" "얼마나 컸는데?" "우리 마당에서 우리 개가 그런 게 확실해?" 그리고는 개가 개집 안에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어요.


먼저, 제가 예방주사를 맞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치료비를 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병원에 가지 않았어요. 피가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말해줬어요. 내가 그 개와 다시 마주치게 되는 날엔 다른 사람한테 신문 배달 받으라고 그랬어요. 그 개는 요즘 우리에 갇혀 있어요. 저만 보면 으르렁거리죠. 그러면 저도 노려봐줘요.


......


고객 중에는 싫은 사람도 많아요. 신문을 제 자리에 정확히 갖다 놓지 않으면 욕을 퍼붓거든요. 어떤 사람은 15분 동안이나 욕을 해댔어요. 그 욕은 입에 담기도 싫어요. 팔짝팔짝 뛰면서 온갖 욕을 했다고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신문 가게 따위 수도 없이 많다고 그랬어요. 아무 데나 들러서 신문을 살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저한테 배달을 시키는 건 편리하기 때문이라나요.


저는 엄청 화가 났어요. 너무 미웠어요. 제가 하는 일이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니까요. 그래도 입 꾹 다물고 있었어요. 보급소에서 저한테 화가 나면 배달 일을 잃게 되잖아요. 이 사람은 저한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피해를 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입 다물고 있었죠.


생각 있는 고객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고객도 많아요. 신문배달 시키면서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뻐기는 사람도 많아요. 신문값은 가게에서 사는 것이나 똑같은데 말이죠. 저한테 뭔가 시켜먹으려고 할 때면 이렇게 협박해요. (듣기 싫은 콧소리로) "안 그러면 신문 끊을 거야."


진짜 참을 수 없는 건요, 수금하러 갔는데 온갖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에요. "오늘 딸을 만나러 갈 거란다. 그래, 갈 거야. 우리 딸은 스물두 살이란다." "이것 봐. 아들이 모두 집에 돌아왔어. 이 군복 보이지?" 반 시간이나 그렇게 서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두 세 명 있어요. 항상 저한테 말을 걸어요. 두 시간이나 그 사람들 수다를 듣고 나서야 돈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음, 잘은 모르겠지만 외로워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근데 아들딸이 있는데 왜 저한테 대고 그러는 걸까요?


젊은 고객들은 자기들도 배달을 해본 적이 있어서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사람들이 얼마나 못됐는지도요. 젊은 고객들은 더 잘 해줘요. 팁도 더 많이 주죠. 하루 종일 떠드는 일도 없어요. 신문값 주고 한 번 웃어주는 것으로 끝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콜라 같은 걸 주기도 해요.


나이 든 사람들은 저를 무서워해요. 대부분 그래요. 처음 서너 주 동안은(잠시 생각) 아주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자기들을 때리고 돈을 뺏어갈까 겁을 내요. 문틈으로 신문값을 내미는 거예요. 이제는 저를 잘 아니까 집안에 들어오라고 해서 반 시간이나 수다를 떨죠. 아직도 한두 명은 저를 무서워해요. 왜 그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저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끔 열 받아서 집에 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심통이 난 정도예요. 애들이 신문함에서 남들 신문을 훔쳐가기도 해요. 그러면 제 수입이 줄어들어요. 신문 한 부 한 부가 다 돈이건든요. 보급소는 책임이 없어요. 다 제가 물어야 해요. 누군가 신문을 훔쳐갔다고 해도 안 믿어줘요.


신문을 배달하면서 사람들이 아주 못됐다는 것이나 사람들한테 물건 살 돈이 없다는 걸 알게 돼서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데, 저는 이해가 안 되요. 오히려 더 나쁜 사람이 되겠죠. 신문값 안 주는 사람들을 싫어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자기한테 큰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도 좋아할 수가 없어요. 그래요. 나름대로 성격에 영향을 미치긴 하죠.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에요. 신문배달하면 성격이 달라진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장차 대통령이 될 소년에 대한 이야기, 신문배달 경험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신문배달이 가르쳐준 건 돈이랑 이런 헛소리를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거예요. 뭘 가르쳐줬는지 아세요? 고객들을 미워하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인쇄업자도요. 물론 개도요. 『일』56~59p.


일하는 사람 133명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긴 책. 『일』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나온 건 2007년이지만 미국에서는 1974년에 나왔다고 하니 자연스레 나이를 따져보게 된다. 2021-1974=47. 신문배달원 테리 피켄즈는 인터뷰 당시 열네 살. 그럼 지금 환갑을 갓 넘긴 나이... 살아있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신문배달이 가르쳐준 것을 어떻게 했을까? 어떤 일을 할까? 또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노려보며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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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G 1호 나란 무엇인가?
김대식 외 지음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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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빌딩 대신 책을 넣어도 말이 되고

음식을 넣어도 되고

말을 넣어도 되고

사람을 넣어도 되고

시간을 넣어도 되고

하루를 넣어도,

순간을 넣어도,

일을 넣어도 되고,

다 될 것 같다.

오늘은 '만남'이라는 말을 넣었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을 만나러 나간다.

오늘이 나를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낼런지는 지나고 볼 일이고!

교활하게, 속마음을 감추고, 웃는 낯으로 

만날 계획인데,

어떻게,

?

히읏.



책을 읽는(었)다고 사람마다 훌륭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지혜도 얻(을 수도 있)지만 교활함도 배우고, 사유의 깊이를 더하기도 하지만 오독하여 사고를 망치기도 한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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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23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 그은 문장에 공감합니다~!오독 조심 ㅋ

잘잘라 2021-03-23 22:46   좋아요 1 | URL
‘오독‘이라는 낱말을 소리내서 읽으면 뭔가 오독오독 씹어먹는 느낌 나요. ㅎㅎㅎ

새파랑 2021-03-23 23:01   좋아요 1 | URL
아하~오독이랑 오독오독이랑 그런 연관이 있군요 ㅎㅎ (이게 오독인가 봅니다 ㅋ) 하루 마무리 즐겁게 하시길 바랍니다^^

잘잘라 2021-03-23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두요^^ 😄❤❤❤

scott 2021-03-23 2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이 문구 넘 좋아서 잘라감 ㅋㅋ 잘잘라님 굿🌰

잘잘라 2021-03-23 23:56   좋아요 1 | URL
ㅎㅎ 굿🌰 굿 굿 👍 scott님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