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1 - 남겨진 것과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기억록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1
김시덕 지음 / 북트리거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정하고도 세심한 현대 유적 답사기. 낡은 간판, 먼지 낀 창틀, 허물어져 가는 옛 집에서도 그곳의 내력을 읽어내고 작은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먹을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음식으로 보는 생활사 책을 많이 읽었다. 음식 관련 역사서를 너무 많이 읽어 비슷비슷한 내용만 반복해서 읽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제목의 '경성'이라는 단어에 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일제 강점기 당시 경성(지금의 서울)에서 이름난 맛집 열 곳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읽어가는 책이다.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소설들, 당시 경성의 모습을 찍은 사진, 신문 기사, 관련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한 곳을 제외하고는 사라진 맛집들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각 맛집 메뉴의 가격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한 장에 한 곳씩 열 곳의 맛집을 소개하고 있는데, 각 장의 첫머리에 메뉴판 모양으로 그 맛집의 대표 메뉴 가격을 정리했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만으로 메뉴 가격을 알 수 없을 때는 일본에 있는 본점의 메뉴 가격이나 비슷한 메뉴를 파는 식당의 메뉴 가격을 참고해 메뉴 가격을 적었다. 그런데 역사책을 읽다 뭔가의 가격이 나오면, 그래서 지금 화폐 단위로 따지면 얼마 정도인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1전은 지금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약 500원, 1원은 100전이니 약 5만 원. 흉년이냐 풍년이냐, 당시 일제의 경제 정책이 어땠느냐에 따라 물가가 변동했으니 일제 강점기 내내 이 정도 가치였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 음식 가격이 어땠는지 대략적으로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일제 강점기 대중적인 화양절충(일식과 양식을 절충한 퓨전 요리) 음식점에서 카레라이스, 돈가스, 고로케의 가격은 20~30전이었는데, 환산해 보면 1만 원에서 1만 5천 원 정도이니, 지금의 대중 음식점에서 파는 일본식 카레라이스나 돈가스의 가격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비싸다. 조선 최초의 서양 요리점인 청목당에서 팔던 음료수와 디저트의 가격은 지금의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오늘날 프랜차이즈 카페, 음료수 전문점에서 파는 것과 가격이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싸다(커피, 홍차, 코코아 15전=약 7500원, 소다수 20원=약 1만 원, 사이다, 시트론-30원=약 1만 5천 원, 케이크, 과자 등의 디저트=20원=약 1만 원 정도). 지금보다 좀 더 비싼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낯선 외국 음식이기에 더 가격을 높게 책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시 사람들이 외식에 돈을 얼마나 써야 했는지 이런 식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우리와 비슷한 모습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들도 흥미롭다. 2000년대에 과일 디저트 전문점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캔모아'라는 브랜드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미 '가네보 프루츠팔러'라는 과일 디저트 전문점이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칸막이를 쳐 더 은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한 박스형 좌석도 이미 있었다. 이런 핫 플레이스에는 손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메신저들이 있었으니, '인간 카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번 메시지를 보내는 데 가까운 거리는 10~20원, 답장을 받아오는 경우는 15~30전이었다고 하니, 메시지 한 번 보내고 답장을 받는 데 5000원에서 1만 5천 원 정도 드는 셈이다. SNS의 고마움을 느낀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어두운 시대에도 사람 사는 것은 비슷했구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현대와 닮은 듯 보이는 경성의 생활상 뒤에 식민지로서의 그늘이 있었다. 저자는 이것을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 청목당은 애초에 일본인이 창립한 식당 체인이었고, 주 고객이 일본인이었기에 2층 커피숍과 3층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일본인만 뽑았다. 조선인 손님들은 이곳에서 음식을 일본어로 주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30년대 중반과 1940년대에 경성 인구는 크게 증가했고 조선과 일본 전체를 통틀어 봐도 경성은 도쿄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그에 따라 조선인 손님의 비중이 늘어났는데도 일본인이 운영하는 백화점들은 일본인이 사용하는 상품을 파는 점포들과 일식당으로 백화점을 채우고 한식을 팔지 않는 등, 일본인 고객 중심의 영업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1932년에야 경성에 조선인이 세운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세워졌고, 화신백화점 안의 한식당은 그 이듬해에 개장했다. 경성 시내 백화점 중 한식을 파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식민지의 그늘은 단순히 외식을 하고 쇼핑을 할 때 불편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진건의 소설 『적도』에서 등장인물 명화가 독립운동가인 옛 연인을 일본요리옥에서 만나면서 일본요리옥은 취체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취체는 신분 확인, 소지품 검사 등 경찰이 집행하는 엄격한 통제 조치다. 고급 일본요리옥의 주 고객은 당연히 일본인이었을 테니, 취체의 주된 대상은 조선인이었을 것이다. 내 나라인 조선 땅에 살면서도 일본인보다 훨씬 더 심한 감시와 통제의 대상, 2등 국민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즐겨 찾았던 가네보 프루츠팔러, 청목당, 미쓰코시 백화점 식당 같은 유명한 음식점은 일본 기업이 운영하니 사실상 일본 제국의 배를 채워주는 곳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그런 곳에 가야 되는데, 내가 당시 사람이라면, 그런 음식점에 갈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이었다면 불매할 수 있었을까? 머리로는 그곳에 가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친구들, 지인들과 함께 그곳을 종종 찾는 모순에 자괴감을 느꼈을 것 같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일상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일제 강점기의 생활상에 숨겨진 어두움을 실감할 수 있다.

저자가 주어진 자료들, 단서들로 맛집 자체뿐만 아니라 그곳과 관련된 시대상을 꼼꼼히 재구성해 이런 상상들을 펼쳐갈 수 있다. 특히 당시의 소설은 신문 기사보다 사람들의 일상을 더 자연스럽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가 맛집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즐기고 이야기를 나눴던 풍경들까지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소설들은 대부분 독자들에게는 낯설고 접하기 어려운 소설들인데, 거기서 경성의 맛집들이 언급되거나 묘사되는 부분들을 찾고 모아야 하니 자료 수집만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 앞에 책에서 소개되는 맛집 열 곳을 모두 그려 넣은 지도를, 각 장 앞에는 그 맛집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넣고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표 메뉴의 가격을 메뉴판 모양으로 표시했다. 당시 그 음식점과 인근 풍경을 찍은 사진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담은 소설의 삽화 등 시각 자료도 풍부하다. 오래 전의 자료이다 보니 화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집필에서나 편집에서나 여러모로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것이 보인다. 460여 페이지로 내용도 꽤 풍성해 즐길 거리가 많다. 음식 관련 생활사 책들이 꽤 많은데, 그런 책들 중에서도 이 책은 좋은 읽을거리가 되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맛집 자체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그 맛집에 드나들던 사람들, 맛집이 번영하게 된 원인, 맛집 음식의 종류와 가격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촘촘이 재구성하니, 책을 쓰는 데 수고가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화폐 단위가 지금 화폐 단위로 얼마쯤인지 밝히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규방의 미친 여자들 - 여성 잔혹사에 맞선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 열전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읽다 포기한 일본 고전 소설 『겐지 이야기』를 다시 읽고 있다. 옛날 어느 천황의 아들인 주인공 겐지가 벌이는 연애 행각을 그린 소설인데, 여성 캐릭터 각각의 개성을 잘 살렸다지만 작가나 현대 일본어로 옮긴 번역자나 (둘 다 여성임에도) 여성 캐릭터들을 진열장에 놓인 예쁜 인형들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느끼한 것을 먹고 나면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마시고 싶어지는 것처럼, 도무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니, 인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 고전 소설 속 여성 영웅들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이야기에서나 영웅은 시련을 겪지만, 고전 소설 속 여성 영웅들은 남성 영웅들에게는 없는 제약을 하나 더 받게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바로 가부장제에서의 성차별이다. 이들은 함께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보다 능력이 뛰어나도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에 묶이거나, 가족에게 학대당하고, 심지어 가족에게 버려지거나 살해당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우리 신화나 고전 소설 속에서 가부장제의 억압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파헤쳐 보고, 그 허울과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예를 들어, <사씨남정기>는 남성 저자가 당대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려고 쓴 소설이고, 여주인공은 가부장제의 이상적인 여성상 그 자체다.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런 완벽한 여성도 남편의 애정에 따라 운명이 뒤바뀌는 모습을 통해 가부장제의 이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인지 드러난다.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소설들에서도 여주인공의 남편은 '착한' 첩이나 후처를 얻어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여주인공이 겪는 고난을 방조한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은 처벌받기는커녕 여주인공이 얻은 성과를 누리며 편안히 여생을 보낸다. 이렇게 작가가 당대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이 오히려 그 시대의 한계를 보여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법 체계도 바뀌었지만, 가부장제 아래에서의 편견과 성차별은 시대를 뛰어넘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에서도 이야기에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고전 소설 속 여성들이 겪는 수난사를 보여주고, 그 원인이 되는 가부장제의 문제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가둬둔 규방 문을 박차고 담장을 뛰어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여성 영웅들의 서사들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이들은 남장을 하고 성별을 감추어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룬다. 이들도 여성임이 드러나면 남성인 줄 알았을 때 자신을 존중했던 사람들에게 곧바로 무시당하고, '여자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혼인을 강요당한다. 혼인을 하고 나서는 남편이 자기 권위를 내세우거나 첩을 들이는 것까지 봐야 한다.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여전히 그들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군주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군주 개인의 시혜적인 행동일 뿐 그들을 둘러싼 현실을 변하지 않는다. 그런 현실과 타협하는 여성 영웅들도 있지만, 그들이 당시 여성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래도 여주인공들이 기껏 큰 업적을 쌓고 높은 자리에 올라도, 여자의 도리를 지켜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혼인하게 되는 이야기, 혼인하고 나서 남편이나 남편의 첩, 시댁 식구들과 갈등하며 마음 고생하는 이야기는 지겹다고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책 마지막에 그런 틀을 깨고 한 걸음 더 나아간 소설을 소개한다. 바로 <방한림전>이다. 주인공 방관주의 부모는 딸의 총명함을 보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안타까워, 친척들에게도 방관주가 딸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아들로 키운다. 그런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방관주는 계속 남자로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방관주는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해 일찍부터 관직을 얻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 하지만 남자 행세를 하면서 아내를 얻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테니 걱정하는데, 병부상서의 딸 영혜빙이 방관주가 여자라는 것을 알아채고 부부로 행세하면서 평생지기로 살아가자고 제안한다. 둘은 금슬 좋게 지내면서 총명한 아이를 입양하고, 그 아이도 훌륭한 인재로 키워낸다. '음양의 도리를 어겼다'는 이유로 방관주가 서른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방관주가 전생에 남성 신이었는데 방자하다는 이유로 '여자로 태어나는 벌'을 받은 것이라는 데서 당시의 가치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성 부부가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자녀를 입양해 이상적인 가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생활 동반자법도 아직 통과되지 못한 현대 대한민국을 뛰어넘는 진보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여성 서사들이 여성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 아직도 어머니나 연인, 냉장고 속의 피해자에 그치는 여성 캐릭터들이 많으며, 현실에서 살아남고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에게 여성 영웅들은 용기와 희망을 주고 역할 모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우리 신화와 고전 소설 속에서 꺼낸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우리가 현실 너머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데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규방의 미친 여자들 - 여성 잔혹사에 맞선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 열전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화홍련전> 속 주인공 자매와 계모의 갈등을 재산 분배의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금방울전>을 현대의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과 비교해 보는 등 색다르고 신선한 시각이 돋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