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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 생명 과학 기술의 최전선, 합성 생물학, 크리스퍼, 그리고 줄기 세포
송기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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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인간 유전체(게놈 genome, 한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 전체)의 모든 정보를 읽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23년 만에 완료되었다. 인류는 이제 자신의 유전 정보를 모두 알 수 있는 '포스트 게놈(게놈 프로젝트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쉽게 얻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유전 정보를 모두 읽어내고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이제는 역으로 유전 정보를 조립해 인간이 원하는 대로 생명을 설계하고 편집하고 창조하려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런 연구들을 통틀어 '합성생물학'이라고 한다.    


크레이그 벤터 박사의 연구팀이 2016년 3월에 만들어낸 합성 생명체 Syn 3.0. 인간이 합성한 유전체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010년 미국의 생명과학자 크레이그 벤터는 한 세균의 유전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한 다른 세균의 유전체로 교체했고, 인간이 교체하고 합성한 유전체로도 세균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2017년 8월에는 인간의 배아에서 유전체를 성공적으로 교정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을 먹어도 안전한지는 궁금해하면서, 그 밖의 생명과학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생명과학은 앞으로의 인류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명과학자 송기원 교수가 생명과학이 최근 어떻게 진행되고 발전되고 있는지, 이런 상황 속에서 고민할 문제는 무엇인지 소개하기 위해 쓴 책이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다.


​  이 책의 저자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을 몇 달 전에 읽었었는데, 같은 저자가 같은 주제의 내용을 쓴 책이다 보니 이 책과 겹치는 내용이 있다. 겹치는 부분은 복습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가 2017년 3월에 출간된 책이니 그때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 반면, 이 책은 그 이후의 상황과 이슈들까지 다루고 있다. 또 다른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책이 나오면서 이 책의 시의성 또한 떨어지겠지만, 2018년을 전후해서 생명과학 분야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 그리고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에서 소개됐던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회문 구조(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구조) 염기 서열 집합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유전자를 편집하려면 필요한 부분만 잘라내는 유전자가위가 필요하다. 2012년 세균이 자기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크리스퍼라는 유전자 사이에 저장해 두고 있다가, 다음에 같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저장된 정보를 통해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 염기서열을 인식해 잘라버린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원리를 응용한 크리스퍼 가위는 기존의 유전자가위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전의 유전자가위들과 크리스퍼 가위의 특징을 비교하고, 크리스퍼 가위 기술을 활용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말라리아모기에게 불임 유전자나 말라리아 전달을 차단하는 유전자를 이식하는 연구, 인간 배아의 유전체를 편집하는 연구 등 크리스퍼 가위를 활용해 동식물이나 인간의 유전체를 인간의 의도대로 편집하고 교정하려는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  그러나 이 책은 크리스퍼 가위의 단점과 합성생물학의 문제 또한 이야기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다른 유전자가위에 비하면 정확한 편이지만 엉뚱한 부분까지 같이 잘라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리고 인간의 세포는 매 순간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고 있기 때문에, 성인의 세포를 가지고 유전자 교정 시술을 할 경우 시간이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수정란이나 배아 세포였을 때 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해야 수정란이나 배아 세포에서 만들어진 모든 세포의 유전자를 영구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 



박사와 고양이, 생쥐 캐릭터가 합성생물학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일러스트. 한 챕터당 하나 꼴로 실려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자연의 간섭을 피할 수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말라리아 모기 불임 유전자 연구는 자연의 힘에 부딪치게 되었다. 처음 4세대까지는 불임 효과가 나타났지만, 세대가 지나갈수록 불임 효과를 상쇄시키는 또 다른 변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학 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발달해도 자연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고 유전자를 변형시킨 생물이 생태계로 유출되었을 때 기존의 생물과 전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인간 유전체를 모두 분석했다 해도, 어떤 유전자를 편집했을 때 의도했던 효과 외에 또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지금의 기술로서는 예상할 수 없다. 


​  이렇게 이 책은 최근의 생명과학, 특히 합성생물학의 명암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대학교 때 교수님의 강의보다 명쾌한 필기 노트로 동기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었다던 송기원 교수는 이 책에서도 최대한 쉽고 명쾌하게 최근의 생명과학 연구와 그 원리들을 설명한다. 송기원 교수를 캐릭터화한 것으로 보이는 박사 캐릭터와 고양이 캐릭터, 생쥐 캐릭터가 그림을 통해 합성생물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일러스트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처음에는 이 책이 그런 일러스트들로 이루어진 책인 줄 알았다. 막상 책을 읽어보니 텍스트가 주이고 일러스트는 한 챕터당 하나씩만 나오지만, 합성생물학의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캐릭터들이 귀여워 과학책의 딱딱한 느낌을 덜어준다. 


​  이 책을 통해 지금의 생명과학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연구자들도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생명과학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책뿐만 아니라 더 많은 생명과학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생명과학이 영향을 미치는 날은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르고,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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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 아폴로 8
제프리 클루거 지음, 제효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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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의 회색 대지 위로 푸른 지구가 떠올라 있다. 이 사진은 50년 전, 인류 최초로 달에서 지구가 떠오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지구돋이Earthrise'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달에 처음 발을 내딛었던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가 아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이전, 인류 최초로 달의 궤도에 들어갔던 아폴로 8호의 우주비행사 윌리엄 앤더스William Anders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폴로 11호가 달에 처음 착륙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아폴로 8호가 달 착륙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폴로 8호는 달의 궤도를 돌면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데 필요한 과제들을 수행했다. 아폴로 8호의 선원이자 아폴로 13호의 선장이었던 짐 러블Jim Lovell과 함께 아폴로 13를 썼던 과학 에디터 제프리 클루거Jeffrey Kluger가 아폴로 8호의 도전을 그린 책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 아폴로 8』이.

 

  냉전의 시대였던 1960년대에 미국과 소련은 우주 개발 계획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1970년까지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케네디가 1963년에 갑자기 암살되어 린든 존슨 Lyndon Johnson 정부로 교체된 뒤에도, 미 항공우주국NASA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숨가쁘게 달렸다.

 

  1970년까지 남은 시간은 촉박한데 달로 사람을 보내는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1969년 안에 인간을 달로 보내야 한다는 과중한 목표 때문에 우주선 생산 과정의 전 단계에서 규칙이 무시되고 안전보다 속도가 우선시됐다. 그 결과가 아폴로 1호의 비극이었다. 1967127, 우주로 날아가기도 전에 지구에서 시험을 하던 도중 화재 사고가 일어나 아폴로 1호의 비행사 3명이 사망했다. 사망 사고가 발생한 데다 우주선을 달에 쏘아보낼 새턴 V 로켓의 상태는 못 미더웠다. 게다가 소련에서는 유인 우주선 존드Zond를 개발하고 있으니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NASA에서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달 탐사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지구 궤도를 선회하는 데까지만 성공한 상태에서 아폴로 8호가 맡은 임무는 막중했다. 지구를 벗어나 달로 비행하고, 달 궤도에 진입하고, 달의 궤도에서 벗어나 지구로 돌아오는 임무는 아직까지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시도였다. 우주선의 속도를 적절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달과 충돌하거나 다시 지구로 내던져질 수도 있다. 아폴로 8호는 달의 궤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위험은 남아 있었다. 너비가 3475킬로미터나 되는 달의 뒤편을 비행할 때는 지구와의 통신이 두절된다. 일이 잘못된다면 달에서 지구로 영원히 답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공전하는 동안 자전도 한 번 하게 되므로, 지구에서는 항상 달의 같은 면만 보게 된다.



달의 뒷면. 다른 천체와 부딪쳐서 만들어진 크레이터로 가득하다. 아폴로 8호의 우주비행사들은 인류 최초로 이 모습을 보았다.


  아폴로 8호가 달의 뒷면으로 진입하느라 지구와의 교신이 끊긴 지 35분 52초만에 아폴로 8호 비행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폴로 8호의 비행사 프랭크 보먼, 짐 러블, 윌리엄 앤더스는 달의 궤도를 비행하면서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을 본 사람이 된 것이다.(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는 같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항상 달의 앞면밖에 볼 수 없다.) 거대한 달의 뒷면에 유성과 부딪힌 흔적들이 길쭉하게 펼쳐져 있었다. 비행사들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달의 지형들을 생중계했고, 달 위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10억 명의 사람들이 지구에서 이 경이로운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책은 아폴로 8호가 탄생하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달의 궤도를 비행하면서 아폴로 8호가 한 일들, 아폴로 8호 미션 이후의 상황까지, 아폴로 8호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인류가 달에 발을 딛게 하기 위해 길을 닦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곁을 묵묵히 지켰던 사람들, 그들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배경까지 짜임새 있게 엮어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실제 인물의 인터뷰와 아폴로 8호의 교신 기록을 재구성한 것일 정도로, 이 책은 사실을 충실히 고증했다.사실을 충실히 고증하면서도 사람들이 아폴로 8호의 비행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느꼈던 온갖 감정과 드라마들을 소설처럼 흥미롭게 그려낸다. 아폴로 8호의 비행에 적용되었던 과학적 원리들도 대중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했다. 

  아폴로 8호의 비행사 프랭크 보먼, 짐 러블, 윌리엄 앤더스는 인류 최초로 달의 궤도를 비행하고 달의 뒷면을 보았지만, 정작 달에는 발을 딛지 못했다. 그들은 닐 암스트롱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모험을 했고, 인류가 달에 착륙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 책을 통해 아폴로 8호를 알게 되고 기억하게 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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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우주생각 - 오지랖 우주덕후의 24시간 천문학 수다
지웅배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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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주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할 때마다, NASA 우주정거장에서 보내주는 실시간 방송을 본다. 언제 접속해도 보이는 것은 우주정거장과 지구, 까만 우주 공간뿐이다.(운 좋을 때는 유영하는 우주인도 보이긴 하지만.) 하지만 방송을 볼 때마다 내가 우주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화면 속에서는 파란 바다와 하얀 구름만 보이는 지구 어딘가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지구는 우주 공간에 덩그라니 놓여 있으니까. 지구가 떠 있는 광활한 우주 공간은 나를 두렵게 하면서도 매혹시킨다. 

  우주에 매혹되다 보니 과학책들 중에서도 천문학 책에 더 눈길이 간다. 하지만 뼛속까지 문과인 나는 천문학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천문학 책을 읽는다. 그렇게 읽은 천문학 책 중에서 『하루종일 우주생각』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책이었다. 

  이 책은 하루의 일상에 빗대어 우주를 설명한다.아침, 낮, 저녁, 밤이라는 네 개의 시간대 안에 오전 6시 30분 '깊고도 달콤한 침대 위의 블랙홀'부터 밤 12시 30분 '늦은 밤 TV 잡음 속 우주의 소리'까지 16개의 하루 일과와 엮은 우주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예를 들자면, 아침 7시에 커피를 끓이는 일과는 이렇게 우주와 연결된다. "물이 다 식고 컵 전체에 커피 가루가 골고루 스며들 때까지,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물의 흐름을 따라 커피 가루도 함께 움직인다. 온도가 높으면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아지면서 위로 올라가려 하고, 온도가 낮으면 밀도가 무거워지면서 아래로 내려가려는 흐름, 이 두 가지 흐름이 함께 나타나면서 작은 커피잔 속에는 인상적인 대류 사이클이 그려진다. 마치 지금 이 시간에도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밝은 태양처럼. 태양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별들은 그 표면에서 거대한 대류 사이클을 그려내면서, 중심에 가라앉은 물질이 표면 위로 올라가며 골고루 섞이고 있다." 이렇게 친근한 일상에 빗대니 천문학적 지식이 더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저자가 일상 이야기와 우주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루 종일, 24시간 동안 우주에 푹 빠져 있는 '우주덕후'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모닝 커피에서 별들의 핵융합을 떠올리고, 퇴근길 꽉 막힌 도로에서 은하 속 별들이 꽉 차 있는 나선팔을 떠올리는 모습에서 그가 우주와 천문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블랙홀이 강한 중력으로 주변의 가스와 별을 집어삼키는 것을 '과격한 먹방'이라고 하고, 변광성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것을 변광성의 비트, 우주가 천문학자들에게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라고 하는 등 요즘의 유행어도 자연스럽게 섞어 쓰는 문체가 재기발랄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상 속의 우주를 보면서, 일상 또한 우주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수명이 다한 별이 폭발해서 사라진 뒤 남은 찌꺼기는 계속 우주에 남아, 별과 행성뿐 아니라 우주의 모든 것을 만드는 데 재활용된다. 우리 몸과 모닝 커피 속에도 별이 남긴 다양한 화학성분들이 남아 있다. 안방에 놓인 TV도 우주 빅뱅(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이 남긴 에너지의 파장을 미세하게나마 감지한다. 모든 방송이 끝난 후 TV에서 들리는 잡음의 파도 속에는 빅뱅의 여운이 아주 일부 섞여 있다. 우주는 보이지 않게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거대한 우주의 작은 천체 조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언제라도 나를 까마득하게 먼 곳으로 집어삼킬 것 같았던 우주가 늘 나를 감싸고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던 우주가 조금은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 책의 가장 큰 목표가 그 동안 너무나 당연해서 느끼지 못했던 '우리가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 속에 포근하게 안긴 채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만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저자는 그 목표를 충분히 이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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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생명 이야기 아우름 1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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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이자 세계적인 동물학자.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자는 통섭(統攝)이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사람. 최재천 교수의 이런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중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저자답게 그의 글은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따뜻했다. 존댓말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듯한 문체도 따뜻하지만, 무엇보다 세상 모든 생명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는 제목처럼, 생물들은 경쟁과 적자생존뿐만 아니라 공생 관계를 통해서도 살아남는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현화식물(꽃을 피우는 식물)과 곤충은 꿀을 주고 꽃가루를 다른 개체의 꽃에 전달해주는 공생 관계를 통해 지금의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생물이 되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하나의 생명체, 하나의 DNA에서 나온 것이니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을 비롯해 6천여 종의 생물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침팬지와 유전적으로 99퍼센트 일치하는 존재, 다른 동물들과 같은 동물이며 생태계라는 네트워크 안에서 다른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다른 생명체들을 무참하게 없애고, 그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경쟁이 아닌 공생의 세상을 꿈꾼다. 

  공생의 세상은 다른 생물과 인간의 관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도 공생의 세상을 꿈꾼다. 그는 남보다 더 빨리 움켜쥐려 노력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들은 움켜쥐기 전에 나누어줄 줄 아는 '공감의 세대'라고 말한다. 자신이 꿈꾸는 공생의 세상을 젊은 세대들이 열어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경쟁사회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죽기살기로 노력하는 젊은이들에게 공생은 멀기만 한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아름다운 방황 끝에는 아름다운 삶이 있습니다.', '방황은 청춘의 특권'이라는 그의 말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만큼이나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다.  특히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붙잡느냐, 더 늦기 전에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다른 일을 해야 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나로서는 "이제껏 한 번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매일같이 하면서 굶어죽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에 과감하게 뛰어드십시오."라는 그의 말에 "정말 그럴까요?"라고 되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가 아름다운 말만 늘어놓고 젊은이들의 실질적인 고통은 외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요즘 애들은 노력을 안 한다"고 말하지 않고, "요즘 애들은 남에게 나눌 줄 알고 함께 살아갈 줄 안다."고 말하는 어른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학자들을 지원하면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참신하고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얻어내는 미시간 명예교우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했었다. 젊은 학자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학자가 아닌 젊은이라도 그는 뒤에서 든든하게 지지해 줄 것이다. 

  이제 최재천 교수의 책을 한 권 읽었지만 그가 많은 독자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먼저 모든 생명, 그 생명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이 많은 그가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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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라고 오해하지 말고 차별하지 말고 - 기생충에게 마음을 열면 보이는 것들 아우름 25
서민 지음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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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인 경우 기대감은 더 커진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기생충과 가까웠던 적이 없는 나로서는 『기생충이라고 오해하지 말고 차별하지 말고』 에서 기생충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배우게 될 거라고 기대했다.

  책의 목차 페이지를 펼친 순간 기대감은 반토막났다. 목차 중 절반이 기생충 이야기가 아닌 저자 자신의 삶 이야기였으니까. 그래도 '어린 시절 못생긴 외모 때문에 고생했던 자신처럼 외모로 탄압받는 기생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생충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목표이며, 기생충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 꿈이다.'라는 저자 소개에서부터 저자의 유머 감각과 기생충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졌다. 그래서 계속 책을 읽기로 했다. 

  기생충 이야기를 하고 있는 1부에서는 기대했던 대로 기생충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이 있었다. 광절열두조충이라는 기생충은 인간의 창자 속에 5미터가 넘는 몸을 숨기고 기생한다는 것, 주혈흡충은 평생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데다 수컷이 암컷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도 시켜준다는 것,  톡수포자충은 영화 <연가시>처럼  사람도 조종해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비율이 높다는 것 등. 회순이(회충), 광절이(광절열두조충) 같은 이름으로 기생충들을 부르면서 기생충의 행동을 의인화해서 이야기해, 독자들이 기생충을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기생충들의 특징을 더 쉽게 이해하게 한다. 

  그런데 때로는 기생충의 이야기를 빌려 사람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까지 느껴질 때가 있다. 어미 기생충은 알만 사람 몸에 낳고 자식의 삶에 간섭하지 않으니 이 땅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가 기생충을 부러워하는 일이 없게 하자, 회충은 먹고 자는 것, 짝짓기만 해결되면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우리는 지금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자 등등. 기생충과 인간사를 연결하는 발상이 참신하고 전달하려는 메시지 자체도 옳은 말이긴 하지만, '기생충의 이야기를 너무 인간사에 끼워맞추고 교훈을 이끌어내려 해서 작위적으로 느껴졌다'는 평도 있었다. 작가의 의인화 덕분에 더 재미있게 기생충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일리가 있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글쓰기 비법과 저자 자신의 삶 이야기를 하는 2부에서는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어떻게 기생충을 연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2부의 글들에서도 저자의 유머 감각은 여전하고 글쓰기 비법은 꽤 유용하다. 하지만 아예 글쓰기에 대한 책을 따로 내서 그 책에서 글쓰기 비법을 이야기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기생충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개인사에 대해서는 '이것까지 내가 굳이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덕분에 기생충이 조금은 더 친숙하게 느껴지게 됐고, 기생충에 대한 재미있는 지식들도 얻었다. 하지만 200페이지도 않는 분량의 반만 기생충 이야기이니 감질나지 않을 수 없다. 서민 교수님, 저는 기생충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습니다. 기생충에 대해 쓴 책이 몇 권 더 있으니 그 책들을 더 읽어보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이 책 안에서 기생충 이야기를 더 하실 수는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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