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학교에 페미니즘을
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 마티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에 페미니즘을. 이 말을 듣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는 이미 성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고, 오히려 여학생에게 유리한 공간인데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냐고. 페미니즘 교육은 교사가 마땅히 지켜야 할 중립과 공평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냐고.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모임인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저서 학교에 페미니즘을』에서 이런 반문들에 대답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정말 남학생에게 불리할까


  한국 공교육의 교육과정에는 양성평등이라는 교육 목표가 들어 있다심지어 학교가 여학생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남학생 출석번호는 1번부터 시작하고여학생 출석번호는 남학생들의 번호 뒤에서부터 시작한다교과서 속 엄마는 늘 앞치마를 입고 집안일을 하고 있고아이들은 앙 기모띠(기모치 이이(기분 좋아)라는 일반적인 일본어 문장에서 유래한 표현이지만일본 포르노를 음지에서 소비하던 대중이 포르노 언어로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다이러한 맥락을 알고 있는 여성에게는 성적 수치감을 일으키는 표현으로언어적 성희롱에 해당한다.)’ 같은 혐오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그리고 학교는 남의 눈치를 살피고 조용히 앉아 참을성 있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학생들에게 유리한데여성은 어릴 때부터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 묵묵히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타인의 기분을 살필 것을 남성보다 더 강력하게 요구 받는다이런데 학교가 양성 평등이 이루어진 공간여학생에게 더 유리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페미니즘 교육은 남학생을 차별하고 남학생의 기를 꺾는 교육이 아니다여자다운 것과 남자다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고성별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자기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교육이다체육을 잘 하지 못하거나 다른 남학생들보다 섬세한 남학생은 교사들이나 부모에게서 남자답지 못한 아이유별난 아이로 취급받기 일쑤다. ‘남자답기’ 위해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남자가 이 정도도 못 참느냐는 타박도 들어야 한다페미니즘 교육은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사회에서 흔히 남자답다고여자답다고 생각하는 용모와 언행에서 벗어나더라도 비웃음을 당하지 않고, 자기답게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페미니즘 교육은 중립과 공평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까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익만을 위한 사상으로페미니즘 교육은 여성만을 위한 교육으로 오해 받는다페미니즘이 남성을 혐오하는 사상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까지 있다그러나 페미니즘 교육은 남성을 혐오하고 배척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다른 상대를 존중하도록 하는 교육이다억압 받는 소수자인 여성의 관점에서 인권을 바라보는 페미니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과 연대한다페미니즘 교육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위한 교육이다
 
  한편에서는 페미니즘 교육이 교육의 정치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페미니즘 교육은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그러나 여러 명이 모인 집단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다학급의 규칙을 정하고 지키고 집행하는 일교사와 학생들이 의견을 조율해 가는 일도 정치에 속한다오히려 학교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배우고 실습할 수 있는 곳이다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서로 조율해 가는 것이 정치이고 민주주의이지모두가 중립만을 지키는 것이 정치민주주의는 아니다.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교사들만 읽으면 되는 책일까


 그런데 이런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나는 교사도 부모도 아니고앞으로도 교사나 부모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그런데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교사나 부모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대할 일은 생긴다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이 아이들이 자라나 세상을 이끌 것이다내 눈 앞에서 아이들이 성 차별적이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말과 행동을 할 때성별에 대한 편견에 갇힌 모습을 보일 때 나는 그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그 아이들을 그대로 놔둔다면 지금의 성 차별과 소수자 혐오는 대대손손 계속될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교사나 부모가 아닌 사람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남자답게또는 여자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나는 나답게 살고 싶지만 세상은 여자답게 살라고 요구한다여자는 젊고 예쁘고 날씬해야 하고그렇지 못한 여자는 일상생활에서, TV와 인터넷 방송에서 조롱거리가 된다아버지는 엄마와 나만 집안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엄마조차 외출했을 때는 딸인 내가 아버지 밥을 차려드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꿈을 꾸고 나서 남자답게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지 실감했다내 지인 중 한 명의 성별이 갑자기 바뀌어 버리는 꿈이었다꿈속이지만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성별이 바뀌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하지만 결국에는 성별이 바뀌어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꿈에서 깬 뒤 생각해 보았다내 성별만 바뀌고 다른 점들은 그대로라면 나는 많이 달라질까그렇게 많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나는 남성적인 사람도 아니고여성적인 사람도 아니고 그저 나일 뿐이니까
 
  남자답게또는 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때 우리답게 살 수 있다는 것성별에 관계없이 상대방의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은 폭력이라는 것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조차 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라는 것 등초등성평등연구회가 아이들에게 전해 주려는 메시지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성 차별과 소수자 혐오가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지금이 우리들에게도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때다. 아이들도우리 자신도 남자다운, 또는 여자다운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답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교사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참고 기사:  여자 컬링팀 애칭으로 ‘앙 기모띠’ 권하는 사회(http://slownews.kr/683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위기에 내몰린 개인의 생존법은 무엇인가?
브래드 에반스.줄리언 리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이라는 제목과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전쟁, 테러...계속되는 재앙과 재난 속 안전과 안보를 책임지지 못하는 국가 통제 시스템의 진실'이라는 홍보문구를 보면, 국가 안보 시스템의 허점을 파헤치고 비판하는 책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국가보다는 전 세계 국가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 이전의 자유주의가 낡은 옛 관습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한 반면, 신자유주의는 인간이 자신의 지성으로 옛 습관, 관습, 제도, 신념을 새로운 현실 조건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위험을 겪고 나서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역량, 즉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고 독려하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기만적인 일인지를 밝히고 있다.(그래서 원제도 '회복력 있는 삶 Resilient Life'다.) 


  과거에 국가 권력은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명목으로 국민들의 삶에 개입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위험은 주로 지구 전체의 위험, 특히 생태계적인 위험이다. 인류는 지구 생태계의 일부지만, 산업 발전을 위해 지구를 이용하면서 환경을 파괴시키고 자원을 고갈시켰다. 인류 스스로 전 지구적 위험을 일으킨 것이다. 위험 자체는 완전히 제거할 수 없고, 우리 모두는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주장이다. 그러니 개개인이 위험을 겪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위험을 겪고 나서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지구상의 생물종들이 위기를 넘기고 진화했듯이, 우리가 위기를 통해 오히려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저 위험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삶을 거부한다. 그러한 삶은 불안에 사로잡혀 그저 살아남는 것 이상의 삶, 더 나은 삶을 꿈꾸지 못한다. 위험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위험에 적응하고 대처하는 삶만을 살다보면 우리는 불안과 고통에 우리 자신을 소진시켜 버린다. 저자들은 미래를 우리에게 올 재앙으로만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삶과 세상을 꿈꾸자고 주장한다. 팍팍한 현재와 막막한 미래에 한탄하고 있지만 않고, 신자유주의와 국가 권력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저항하는 것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본다. 이성으로 신자유주의 통치의 허점을 알아채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상상력으로 세상이 정한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변화시킨다. 저자들은 회복력에 의존하는 삶 이상의 삶이 있음을 믿는다.


  정치철학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이 책은 정치적이기보다 철학적으로 느껴진다. 사회과학 서적인데도 시적인 표현들이 많이 사용되고, 대안은 다소 원론적이고 이상적이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은 다소 동어반복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상상력으로 신자유주의나 국가 권력이 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삶 너머를 바라보자는 이야기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정신승리에 그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나는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작은 억압 하나도 이길 힘이 없는데 상상이 무슨 힘이 있을까. 그래도 지금의 고통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지금의 삶을 저당잡히지 않고,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싶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더 나아지고, 세상이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지아 쿠피 - 폭력의 역사를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인
파지아 쿠피 지음, 나선숙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아프가니스탄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은 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들(『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산이 울렸다』)과 애니메이션 <브레드위너>, 수많은 뉴스와 르포들을 통해서. 이 책도 그렇게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이야기 중 하나다. 하지만 탈레반의 횡포를 주로 다루었던 다른 이야기들과 달리, 탈레반이 물러간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새롭게 만들려는 모습을 다루었다는 점, 그런 혁신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정치인 파우지아 코피(Fawzia Koofi, 책에서는 '파지아 코피'로 표기되지만 실제 발음은 파우지아 코피다.)가 저널리스트 나딘 구리 Nadene Ghouri의 도움을 받아 쓴 자서전이다. 탈레반의 여성 억압, 부르카를 쓰고 다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생각하면 아프가니스탄에 여성 정치인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탈레반이 물러난 이후 세워진 정부에서 여성이 정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상원과 하원에 여성 의원 할당제를 도입했다. 파우지아는 여성 의원 할당제의 혜택이 아니라 압도적인 득표 결과로 하원의원이 되었다. 

  파우지아는 어떻게 아프가니스탄 여성으로서 정치의 길을 걷게 되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파우지아의 삶과 아프가니스탄의 근현대사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보아야 한다. 파우지아의 할아버지는 지역 사회의 지도자로서, 아버지는 지역 사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파우지아네 가문은 대대로 정치인 가문이었고 공익을 위해 힘쓰는 것이 가문의 전통이자 명예였다. 그러나 파우지아가 세 살이었던 1978년, 그녀의 아버지는 친소련 성향의 중앙 정부와 그에 대항하던 무장조직 무자헤딘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려다 무자헤딘 세력에게 살해당했다. 이 때부터 파우지아의 삶은 아프가니스탄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와 얽히며 험난해진다.

 파우지아의 오빠들 또한 행정관료나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우지아와 남편까지 오빠의 정적들에게서 위협을 받았다. 남편은 매형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여러 번 감옥에 끌려가는 바람에 건강을 해쳤다. 파우지아는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입학했지만,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공부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탈레반이 집권하고 나서 여성 교육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파우지아는 주변의 여성들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강간을 당해도 간통죄로 공개처형을 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런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우지아와 남편은 탈레반의 손이 아직 미치지 못하는 북부 지역으로 떠났다.

 탈레반에 저항하는 무자헤딘 세력이 지배하는 북부 지역에서 파우지아는 다시 자유를 찾았다. 그곳에서 파우지아는 학교를 세우고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한 사람으로서 독립하게 된다. 그리고 구호기관을 위해 의료 조사를 하고, 유니세프의 아동 보호국에 취업하면서 전쟁으로 집과 재산, 가족을 잃은 주민들과 아이들을 돕게 된다. 이때부터 파우지아는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게 된다. 탈레반이 몰락한 이후 민주정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파우지아는 여성단체와 유니세프에서 일하면서 얻은 인맥과 경험, 정치인 가문의 전통에 힘입어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정치인 중 한 명이 된다.

 파우지아의 삶에서 우리는 역사가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개인이 그러한 역사의 영향 속에서도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지를 볼 수 있다. 계속되는 내전과 탈레반의 억압으로 파우지아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의사의 길을 포기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녀는 한 사람으로서 독립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는 데서 더 나아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는데도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렇게 파우지아는 일방적으로 역사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삶에서 벗어나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그녀조차도 아프가니스탄과 이슬람의 전통과 인식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파우지아는 자신에게는 따뜻한 말 한 마디 한 적 없고 그저 시집 가면 끝인 딸들 중 하나로만 여겼던 아버지, 지역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국왕에게 목숨 걸고 간언하면서 집에서는 밥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아내를 때리던 아버지를 여전히 존경하고 롤모델로 여긴다. 아버지는 하루도 쉴 새 없이 가문과 지역을 위해 일해야 했으니 중압감이 컸을 것이고, 아내를 때리는 것이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여겨졌으며 집안 대소사를 맡길 정도로 어머니를 신뢰하고 사랑했다고 파우지아는 아버지를 옹호한다. 그러나 아무리 중압감이 크더라도 아내를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으로 삼은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아내를 진정으로 한 인격체로 존중했다면 밥이 잘 안 됐다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심하게 폭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부르카를 쓰든지 말든지 개인의 선택이고, 부르카도 전통의 하나이므로 쓰는 것 또한 존중 받아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녀가 한 번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왜 여성만 히잡이나 부르카로 자신의 모습을 가려야 하는지, 성폭력 문제의 원인이 과연 여성이 단정한 옷차림을 하지 않아서인지. 히잡이나 부르카 자체가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모순에 대해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녀 또한 정치인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파우지아는 이 책에서 족벌정치를 비판하지만 그녀 자신도 아버지와 가문의 후광을 입었고, 정치 가문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물론 파우지아가 족벌정치를 펼치는 정치인들과 달리 자신과 자기 가문의 이익을 사사로이 챙기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러한 족벌 정치와 차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여성 하원의원 말랄라이 조야가 지나치게 과격한 언행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것을 보고 정치적으로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평했는데, 조야야말로 진정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대표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성이 정치를 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그녀를 위협하는 데도 아프가니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는 그녀의 용기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에 평화와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없다고 보지만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이 평화롭고 부강한 국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도 뛰고 있다.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그녀는 지금도 살아 있고, 2014년에 다시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활발히 정치 활동과 인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와 아프가니스탄이 어떠한 길을 걸을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걷기no책읽기yes 2021-10-06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몰랐는데 바스티안님의 글을 보니 관심이 생기네요.

바스티안 2021-10-16 12:30   좋아요 0 | URL
제 글 때문에 이 책을 알게 되셨다니 기쁘네요. 이 서평을 다시 읽어보니 지금 상황에 읽기 좋은 책일 것 같아요.
 
권력과 교회 대한민국 권력 비판 3부작
김진호 외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한국 전체 인구의 19.7퍼센트가 개신교인이다그런데 지금의 20대 국회의원 중 25퍼센트가 개신교인이고그 이전의 19대 국회에서는 개신교인 의원이 41.5퍼센트나 되었다. 2005년 한국 사회의 파워엘리트 3만여 명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그 중 개신교 신자가 40.5퍼센트였다그리고 역대 한국의 대통령 12명 중 개신교 장로 출신의 대통령이 세 명이나 된다개신교가 하나의 권력으로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가 권력을 가지고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긍정적인 일일까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그래서 민중신학 연구자인 김진호는 신학자 강남순한국학자 박노자역사학자 한홍구문학 평론가 김응교와 권력과 교회라는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권력과 교회는 그들의 대담을 정리한 책이다

  한국 개신교의 큰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권력의 세습 문제다그러나 2018년 1뉴스엔조이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 교회 중 아들이나 사위에게 목사직을 물려주는 혈통 세습이 일어난 교회는 0.45퍼센트에 불과하다김진호와 강남순은 근본적인 문제가 혈통 세습이 아닌교회의 권력이 성직자에게 집중되어 있고권력 구도에서 일반 신자와 여성외국인 등의 소수자는 배제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일반 신자들이 교회에 의견을 제시하고 비판할 수 없는 통로가 없다여성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교회는 그것을 기성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여성혐오와 동성애 혐오를 부추긴다개신교계의 반대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교회의 폐쇄적이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강남순은 말한다

  한편 박노자는 대형 개신교 교회들이 거대한 인맥 네트워크가 되었음을 지적한다연줄로 움직이는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인들에게는 혈연지연학연뿐 아니라 교연이라는 연줄이 더해진다교회 네트워크는 개신교인들이 사회적 엘리트로 올라설 수 있게 하는 든든한 사회적 자본이 된다신자들은 심리 치료뿐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까지 제공하는 대형교회를 선택하고교회 안에서도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경제적 자산이 비슷한 신자들끼리 뭉치게 된다끼리끼리 뭉치게 되면서 외부인들에 대한 배타성도 강해진다박노자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런 한국 교회 공동체의 배타성이다반이슬람 정서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럽의 개신교인들과 달리한국 교회 공동체는 이민자무슬림성소수자에 대한 증오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한국 근현대사를 통해 한국 개신교에서 비이성과 광기가 권력 문제와 어떻게 얽혀있는지 살펴본다. 20세기 초반 들어 이성의 힘을 믿는 사회주의자들이 종교의 비과학성을 비판하자 개신교 측에서도 사회주의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게다가 개신교는 북한의 상공업 발달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기에한국전쟁 당시 북한 사회주의자들의 탄압으로 재산을 잃고 월남한 사람 중 개신교인의 비중이 컸다미군정은 이들을 반공주의 청년 단체 서북청년단으로 끌어들였고이들은 북한을 사회주의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정치적종교적 사명감으로 민간인 학살까지 자행했다그 이후 주류 개신교는 반공 기조와 독재 정권의 권력에 동조하는 행보를 보였다그러나 한홍구는 극우 성격을 띤 대형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 좌파의 행보 또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개신교 안에서 반지성주의가 너무 강하고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학의 영역에 깊이 개입하는 문학비평가 김응교는 권력추구형 성직주의건물 중심의 성장주의와 세습승리주의로 포장된 비겁한 낙관주의를 비판한다권력을 추구하기보다 거룩한 삶을 추구했던 종교개혁가들과 달리한국 주류 개신교의 목사들은 권력에 아첨하며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국정농단 세력과 태극기 부대와 결합해 사회를 부패시켰다예수는 눈에 보이는 큰 교회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한국 교회는 건물로서의 교회 성장만 중시한다몇몇 대형교회는 대형 쇼핑몰과 맞먹는 규모의 교회 건물을 세우고 그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목사직을 세습하기까지 한다그리고 비겁한 낙관주의자들은 자기성찰 없이 권력에 아첨한다

  이들의 개신교 비판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세상의 잣대를 기준으로 한 일방적 비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그러나 교회 또한 사회 안에 있고신자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이다게다가 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처럼 교회 밖 사회의 구성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개신교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까지 막아버리는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물론 종교와 사회를 함께 사유할 필요가 있다이 책의 저자들은 단순히 개신교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개신교가 어떤 영성을 보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강남순은 예수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모든 종류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과 환대라고 보고 있다그녀는 제도화되고 절대화된 종교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사랑과 연대의 메시지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김응교는 한국 개신교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의 내용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가져오고 왜곡해 사람들을 세뇌하는 것을 비판한다그는 교회가 타자를 괴물로 만들고 응징하는 증오의 신앙을 넘어 권력을 비판하고 자기 자신을 철저히 쇄신할 수 있는 사회적 영성을 실천하기를 바란다이러한 시도조차 성경의 진리와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근본주의자들도 있겠지만사회적 영성은 사회와 교회가 공존하고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 개신교인이 신자로서의 자신의 역할과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구원은 세상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스포일러 포함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서가 앞에 두 청년이 있다한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고 있고다른 청년은 서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도서관 풍경이다그러나 이 도서관은 한 달에 600여 차례의 폭격이 쏟아지는 도시 한복판에 있다.


폐허가 된 다라야 시내


 이 도서관이 있는 도시 다라야는 8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의 중심에 있다시리아 내전은 2011년 시리아의 민주화 운동과 그 밖의 국내외 정세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시작되었다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 50여 년째, 2대에 걸친 아사드 일가의 독재가 계속되어 왔던 시리아에도 찾아왔다다라야 시민들이 독재에 저항하는 비폭력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아사드 정부는 다라야를 봉쇄하고 매일 쉴 새 없이 폭격을 퍼부었다다라야의 시민들은 식량과 의약품도 보급 받지 못한 채 매 순간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었다.


다라야의 젊은이들이 세운 지하 비밀 도서관의 모습


  많은 시민들이 견디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그러나 이 모든 진실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도시에 남은 젊은이들이 있었다폭격이 시작된 지 1년쯤 지난 2013년 말그들은 무너진 폐허에서 찾아낸 책들로 지하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했다책을 안전하게 둘 수 있는 지하공간을 찾아 서가와 소파발전기를 들여놓았다폐허 속에서 1 5천여 권의 책을 모으고종류별로 분류하고목록을 작성해 서가에 꽂아 정리했다다라야 사람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폭격을 헤치고 지하 비밀 도서관을 찾았다.

  그 뒤 2015년에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델핀 미누이는 페이스북에 올라 온 사진을 통해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독재 정권의 폭력에 맞서 도서관을 지은 청년들의 이야기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녀는 2016 8월까지 스카이프(Skype, 국제 인터넷 전화 서비스)로 다라야의 청년들과 대화했고그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지하 비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다라야 사람들


  세상 한구석에 고립된 다라야의 젊은이들에게 책은 밖을 향해 열린 문이었다그들은 다라야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지만온 세상이 책 안에 있었다그들은 배우기 위해미치지 않기 위해정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책을 읽었다책장 사이에서 미지의 세상을 탐험할 때 책은 견고한 성벽이자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전쟁을 멈추지는 못했지만 전쟁으로 받은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그들은 정부의 검열을 거친 책을 읽어야 했고토론의 장도 가지지 못했다오히려 전쟁으로 사방이 막힌 뒤 그들은 지하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강의를 열고 토론을 펼치게 되었다책은 수많은 사상과 해방을 위한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다시리아의 작가 무스타파 칼리파가 12년 동안의 수용소 생활을 그린 책껍질은 아사드 정권의 잔혹함을 고발하면서 강제로 갇힌 상황을 견뎌내는 법을 알려주었다팔레스타인의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이스라엘에게 억압당하는 현실을 그린 시들은 마치 그들 자신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이제는 식상해진 자기계발서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도 위기 상황 속에서 자아를 지키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책은 그들에게 저항의 수단이자 해방의 통로가 되었다.


폐허가 된 다라야 도서관


  그러나 도서관 밖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아사드 정부는 점점 더 맹렬하게 다라야를 공격했고외부에서 구호품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버렸다다라야 청년들이 기대한 것과 달리 유엔과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다라야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아니주지 않았다결국 2016 8정전협정이 이루어지고 다라야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으로 강제이주되었다그리고 지하 도서관은 지금까지도 폐허로 남아 있다

  책이 패배한 것일까그들의 저항은 실패한 것일까그러나 책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책의 힘을 믿고 책이 심어준 것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파괴할 수 없다지하 도서관은 폐허가 되었지만 도서관을 세운 젊은이들은 살아남아 더 나은 삶더 나은 시리아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작가는 그들에게 약속했었다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이 세상에 나와 그 도서관에 있는 다른 책들과 나란히 놓이게 될 거라고그 약속은 반만 지켜졌다시리아가 자유로워지는 날다라야에 다시 도서관이 세워지고 이 책이 그곳의 서가에 꽂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세상의 야만 앞에서도 여전히 책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다

P. S. 1. 
 https://edition.cnn.com/videos/world/2016/10/06/daraya-syria-secret-underground-library-orig.cnn/video/playlists/atv-syria-civil-war/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다룬 CNN 뉴스의 영상 링크. 지하 도서관의 모습과 친구들에게 '사서'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도서관을 사랑했던 소년 암자드, 전쟁터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지만 정부군에게 희생된 청년 오마르의 모습이 나온다. 오마르는 이 책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암자드도 적은 분량이지만 등장한다. 

P. S. 2. 

지하 도서관에서 다라야의 젊은이들이 함께 보았던 단편영화 <2+2=5>(원제 Two & Two). 이란 출신 영국 감독 바바크 안바리 Babak Anvari 의 작품이다.(책에는 바바크 아미리 Babak Amiri 로 잘못 나와 있다.) 2+2=5라는 잘못된 답을 강요하는 수학 교사에게 저항하는 영화 속 학생들에게 다라야의 젊은이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