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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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다 보니 디지털 미디어가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에 회의적이게 되었다몇 년째 위층 주인집의 층간소음에 시달려 온 나는세입자가 피해자일 경우 층간소음에 대응하기가 더 어렵기에 세입자를 층간소음에서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내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단 15명이었다작년 10월에는 나를 포함해 20만 명이 넘는 소비자들이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에 동의했지만올해 진행된 도서정가제 관련 민관 합의에는 그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엠네스티 같은 국제 NGO 단체에서 이메일로 서명 운동의 링크를 보내줄 때마다 꼬박꼬박 참여하지만너무 먼 곳의 일이라 과연 이게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 일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실망이 거듭되다 보니 내가 뭔가를 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점점 줄어들었다. “세상의 변화는 당신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이 책의 홍보 문구도 와 닿지 않았다나 같이 이름도 없고 다른 사람을 끌어 모을 매력이나 재주도 없는 사람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블로그에 글을 올려도 좋아요’ 한두 개나 받을 뿐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이야기한다세상의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미국의 다섯 살 어린이 캐서린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고통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아프리카에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막아줄 모기장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캐서린과 가족들은 피자 상자와 인형망사를 이용해 모기장으로 보호 받는 아프리카 가족 이야기를 다룬 인형극을 공연하면서 기부금을 모았다이 이야기가 주요 언론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 나가면서 모기장 보내기 운동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세네갈 가구의 80퍼센트가 모기장을 갖게 되고 말라리아 발병 건수가 1년 만에 41퍼센트 줄어드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평범한 다섯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문제 해결은 요원하지만 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개한다지금 이란의 이슬람 정권은 최고 지도자나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긴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고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사람들의 발언을 엄격하게 검열하고 있다그럼에도 이란 국민들은 시위를 하다 정부군의 총탄에 죽어간 사람의 모습을 유튜브에 올리고여러 나라의 음악가들은 <아자디-이란의 자유를 위한 노래 모음>이라는 앨범을 만들어 웹사이트에 올리는 등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중국 공산당 정부는 구글유튜브페이스북위키피디아트위터를 만리방화벽으로 막고 200만 명이 넘는 정규직 인터넷 경찰들이 인터넷을 검열하게 하고 있다심지어 네티즌들이 시진핑 주석을 곰돌이 푸 캐릭터에 비유했다는 이유로 자국 내 온라인 사이트들에서 푸 이미지를 모두 삭제해 버리기까지 했다그럼에도 중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소셜미디어에서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북한의 김씨 정권은 70년이 넘도록 집권하면서 주민들의 삶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지만주민들이 북한 외부 세계를 알 수 있도록 캐나다 댈하우지 대학에서는 외부 세계의 모습이 담긴 USB를 물병에 쌀과 함께 넣어 황해에 띄워 보내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이 세 나라의 억압적인 정권이 무너지고 국민들이 자유를 찾는 것은 아직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하지만 이 세 나라에서 자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저자는 지금의 변화로 인해 자유와 진실을 막는 장벽이 언젠가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의 힘을 믿지만 그것의 위험성 또한 잊지 않는다인터넷 세상에 공짜가 있다면 바로 당신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섬뜩하게 다가온다우리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온라인 쇼핑을 하고 SNS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거대 디지털 미디어 기업에 우리의 성별나이주소전화번호주민등록번호개인적인 취향 같은 개인정보를 거리낌 없이 노출한다저자는 실제로 수백만수천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노출된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디지털 매체의 강점이 악용된다면 인권 증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정부와 거대 디지털 미디어 기업범죄 조직테러 집단이 인터넷을 이용해 빅 브라더처럼 수백만수천만 명을 감시할 수 있는 요즘우리 모두가 기본권인 사생활권을 보호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그럼에도 개인에게 모든 사람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가장 많이 주어진 시대가 지금이라고 그는 믿는다.


  디지털 미디어를 악용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거대한 세력이 있지만우리 또한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그들에게 맞설 수 있다그리고 내가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지금은 조회수도 낮고 별 호응도 없어도우연히 그 글을 읽은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지금 당장 변화를 체감할 수 없는데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기는 쉽지 않지만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조금씩 한다면 그 노력들이 쌓여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더 큰 성과로 돌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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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생각한다
이학범 지음 / 크레파스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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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애완동물이라는 말이 반려동물이라는 말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애완동물()’희롱하다, 장난하다, 놀이하다, 장난감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 동물을 놀잇감이나 장난감 정도로 치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반려동물반려이라는 뜻이기에 동물이 사람의 동반자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여기에서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점점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동물들의 삶의 질은 사람들의 인식만큼이나 나아졌을까? 반려동물을 생각한다는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들, 개 농장에서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전시되는 동물들, 실험동물들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전반의 복지와 권리에 대해 생각하는 책이다.


  사람에 대한 복지나 인권을 챙기는 것도 힘든데 동물의 복지나 동물권까지 챙기는 건 사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동물의 복지와 동물권을 추구한다고 사람에 대한 복지나 인권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다른 사회적인 약자들처럼 동물들 또한 사람보다 약자이기에 그들의 권리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나 코끼리처럼 사람보다 체격이 크고 강한 동물들도 사람들의 도구로 목숨을 잃거나 동물원에 갇히거나 관광 수단으로 이용되니, 약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람과 동물 모두 같은 환경 아래서 살아가며 생태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에, 사람과 동물, 환경의 건강을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저자는 우리가 동물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정부의 관련 부서와 동물 보호 단체들이 작성한 구체적인 통계와 동물보호법 시행 사례들을 통해 우리나라에서의 동물 보호, 동물 복지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그와 관련된 법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와 한계가 있었고 어떻게 개선해 가면 좋을지 또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수의사들과 동물 보호 단체들이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해 함께 행동했고, 정부에서도 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꾸준히 동물보호법을 개선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대부분의 법령이 반려동물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개에 대한 것이고, 그 외의 반려동물들에 대한 법령, 규정은 미비하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예를 들자면, 고양이를 키우는 내 입장에서는 개와 달리 아직 고양이는 동물 등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고양이를 잃어버린다면 다시 찾기가, 동물 등록된 개를 찾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반려동물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해야 하는지, 각각의 동물 종에 대해서까지 세세하게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지 논란이 있겠지만 개가 아닌 반려동물들도 좀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규정으로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이 책은 정부가 동물보호법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가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우리 곁의 동물들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밖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 반려견의 목줄을 제대로 매지 않는 사람은, 반려견과 다른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게 방치하면서, 반려견에 대한 막연한 혐오와 공포까지 심어준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 주는 안내견은 어느 곳에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안내견이 지하철에 탔다고 항의하는 사람이나 승차를 거부하는 버스 운전사도 있다. 이런 사람들뿐 아니라 내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를 그저 귀여운 인형, 위로를 주는 대상 정도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충분히 놀아주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과연 제공해 주었는지. 잔인하게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관심이 없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무지로 인해서 동물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다만 반려동물의 털이나 바이러스로 인해 아이가 병이 들까 반려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이와 개, 고양이를 함께 키우면 알레르기와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이 오히려 반으로 줄어든다는 미국 조지아 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면 했다. 연구팀의 통계와 결론만 이야기하고 그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이야기해 주지 않아, 아이 때문에 반려동물을 버리려는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이 아쉽지만, 반려동물부터 길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동물원의 동물들, 실험동물들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동물들의 현실을 돌아보고, 그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다. 구체적인 사실들과 수치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딱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사실을 파악해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고 있다. 책 표지와 본문 곳곳에 그려진 귀여운 동물 일러스트들이 이런 딱딱함을 상쇄하고 있기도 하고. 반려동물을 기르거나 동물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꼼꼼히 읽으면서 동물을 어떻게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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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로 산다는 것
김학원.정은숙.강주헌 외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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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편집자가 되고 싶은데 어느 쪽으로도 길이 막혀 있는 것 같다. 주변에 조언을 구할 지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으니 마냥 붙잡고 물어볼 수만은 없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사정도 있어 편집과 관련된 강의를 듣는 것도 쉽지 않다. 혼자 이것저것 찾아보긴 하는데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이런 내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준 책이 있다. 그 책이 여섯 명의 출판계 사람들이 한 꼭지씩 맡아 쓴 책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편집자를 꿈꿔왔지만, 편집자가 되면 어떤 책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내게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의 이 말이 지침이 되었다. "앞으로의 출판에서는 우선 자신의 운동장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편집자로 일하다 보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때가 오면 자신의 분야와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김학원 대표는 말한다. 그런데 어느 출판사나 인문서를 만든다고 하면서 인문서 안에서도 어떤 분야를 전문으로 할 것인지, 그 분야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전문성도 없고 차별성도 없고 비전도 없다고 한다. 


  나는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했고 역사와 미술사를 전문으로 하는 편집자가 되고 싶다. 역사책, 미술사 책 편집의 전문가가 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김학원 대표는 역사 전문 출판사를 만들 때 역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단행본을 냈던 저자 수십 명을 만났다고 한다. 『역사비평』, 『역사산책』  같은 역사학 학술지에 발표된 글들을 참고해서 역사 분야의 주요 저자들, 핵심 학자들과 몇 개월 동안 계속 회의를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편집자가 10년 넘게 학계나 주변의 다양한 필자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역사책의 방향, 역사 대중화의 방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쌓아간다면, 그 자체로 역사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그런 편집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 당장 너무 어려운 일로 보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최근 나온 학술지 한 권씩이라도 읽어보고 나를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들이 쓰신 논문과 책들을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씩 보였다. 


  미술사 책을 만들려면 어떤 것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어떤 것들을 유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의 글에서 배웠다. 나를 가르쳐 주셨던 미술사 교수님들 중 한 분이 "요새는 사람들이 작품 자체보다 작품의 배경지식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한탄하셨고, 나도 교양 미술사 책이나 국내 유명 전시들의 도슨트 해설이 작품 자체보다는 배경지식에 더 치중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미술 작품 자체에 집중하는 미술사 책을 만들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민영 대표는 독자들에게는 화가들의 에피소드, 저자 자신의 에피소드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하는 통로가 되며, 교양 미술사 책에는 독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예능감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앞에서 김학원 대표가 말했듯이 대중서, 교양서에서도 깊이가 있고 기본이 탄탄해야 하지만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양념 또한 필요하다. 이 둘의 균형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들어가는 작품 도판 이미지의 저작권 문제와 화질 문제, 도판의 배치 등에 대한 실용적인 팁들도 많았다. 딱 내가 알고 싶었던 분야에 대한 특강을 들은 느낌이라 반갑고 기뻤다. 


  전문성 못지않게 편집자에게 중요한 것은 '팔리는 책'을 만드는 것, 즉 책의 상품성이다. 내게는 베스트셀러여도 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편집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그런 내게 "책 또한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상품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강주헌 번역가의 말은 따끔한 일침이었다. 좋은 책을 쓰는 저자에게 출판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독자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책을 찾아내는 것이 기획자의 책임이고 의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막연히 '좋은 원고면 좋은 책이 되고 독자들도 알아주겠지'라고만 생각한 건 아닌가 반성했다. 팔리는 책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급자(편집자)가 생각하는 좋은 책과 수요자(독자)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간극을 좁히고, 수요자에게 책의 존재를 잘 전달해야 한다, 내가 가진 비교우위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이 경쟁력 확보의 시작이라는 이홍 리더스북 대표의 이야기가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물론 큰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내 몫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편집자로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길이라고 느껴졌다. 편집자로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하고 노력해야 할 것은 너무 많다. 평소에도 나 자신을 계속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게 숨이 막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한다 해도 출판계의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노는 거 좋아하고 어려운 걸 견뎌내지 못하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저 내게 스승이 되어준 이 책 속의 가르침들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며 실천해 갈 수밖에 없다. 좋은 편집자라는 길고도 막막한 길에서 이 책은 좋은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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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선택 - 생사의 순간,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법
사브리나 코헨-해턴 지음, 김희정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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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선택은 영국의 현직 소방관이자 심리학자인 저자가 20년간의 현장 경험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생사를 가르는 위급한 순간에 소방관들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소방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저자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소방관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어느 때보다도 삶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지금,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책이 필요했다. “이 방법은 어떤 분야에서든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문구처럼 내 삶, 내 분야에서도 저자의 방법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작은 힌트 하나라도 얻고 싶었다.


 한 터널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15분 후에 두 번째 폭발물이 터져 터널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죽거나 중상을 입을 것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터널 안에는 소방관 20명과 구급대원 6, 최소 30명의 구조 대상이 있다. 이 정보를 믿고 구조대원들을 철수시킬 것인가, 아직 터널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끝까지 구조하게 둘 것인가. 이건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소방관들은 언제라도 이렇게 어느 쪽도 쉽사리 택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나는 지금 네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 나는 언제든 네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하는 사람, 자신의 뜻에 조금만 어긋나도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면서 내가 창조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게 하는 사람과 일하고 있다. 내가 이 일을 이렇게 처리하면 비난을 받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불손하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해고당하지 않을까, 자꾸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소방관의 의사결정에 비하면 내 의사결정은 아주 가벼운 문제다. 그러나 나와 내 가족의 생계가 달렸다는 점에서 내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버거운 문제다.


 저자가 소방관들에게 제시한 방법은 결정 제어 프로세스. 사람들은 소방대 지휘관이 보고받은 정보들을 치밀하게 분석한 뒤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연구를 통해 소방대 지휘관들이 내리는 결정의 80퍼센트가 직관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빠른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분석적인 결정을 내리면 시간을 낭비하게 되지만, 직관적인 결정을 하다 보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할 수 있다. ‘결정 제어 프로세스는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 결정으로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결정으로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이라 예측하는가?’, ‘이 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이 일로 초래될 수 있는 위험을 얼마나 능가하는가라는 질문을 머릿속에서 재빨리 검토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의사결정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상황을 더 분석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내 분야의 업무를 할 때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여기에 내게는 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팁 하나 더. 우려를 내려놓고 행동하되, 큰 그림을 생각할 것. 잘못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걱정하다 보면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마비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결정을 아예 내리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떠넘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한 걱정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기보다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생각이 너무 많고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는 내게 특히 유용한 팁이다.


 일이 잘못될 수 있다는 걱정은 스트레스를 불러오는데, 저자는 스트레스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악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생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소방관들에 견주는 것 자체가 죄송한 일이지만, 나 또한 나 자신을 계속 의심하고 검열하게 만드는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저자가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 삶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 부분을 읽자마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나쁜 것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다. 내가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 방법을 사용해야겠다.


 이렇게 내게 필요한 팁들을 얻는 것에 더 정신이 쏠린 것이 저자를 비롯한 소방관분들에게 죄송스럽다. 소방관들이 몸과 마음을 다치거나 심지어 죽는 것도 각오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구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더 나은 방법들을 찾아내고 익히는 데 온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심지어 이 글에서도 마지막에 짧게만 언급해 버렸다. 위급한 상황에서 내가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길, 내 분야의 일이나 사소한 친절로라도 그분들에게 보탬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써서 삶의 지혜를 알려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저자와 그녀의 수많은 동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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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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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집 주인네 손주들이 층간소음을 내서 내가 항의했더니집 주인이 오히려 우리 가족한테 나가라고 했다는 얘기 기억해?

H: 그래서 내가 돈 있는 사람들이 지배하고돈 없는 사람들이 죄인인 게 자본주의 사회라고 얘기했었지.

B: 지금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네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H: 어떤 책인데 그런 생각이 들어?

B: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서 낳고 있는 폐해를 고발하고 있는 책이야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질서는 식인 제도와 다름이 없다고 얘기해.

H: 식인 제도자본주의는 사람을 갈아내면서 돌아가는 체제니 틀린 말은 아니네.


핸드폰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자재 중 하나인 콜탄을 채취하는 12세 콩고 소년 무기샤. 콩고 동부에서는 무기샤 같은 아동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콜탄 광산에서 위험한 채굴 작업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 출처: https://ejatlas.org/conflict/congo-coltan-in-the-kivu-region-dr-of-congo


B: 그래우리가 쓰는 스마트폰 있잖아스마트폰에는 콜탄이라는 광물이 들어가그런데 이 콜탄이 많이 채굴되는 곳이 콩고의 키부 지역이야키부의 콜탄 광산 중에는 너무 좁아서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갱도들이 있대그런데 콜탄 광맥은 지하에 있고낙석 사고가 종종 일어나서 어린아이들이 콜탄을 캐다가 생매장된대그런데도 아이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광산에 가서 일을 해야 돼.

H: 너무 끔찍한 일이다우리는 그애들의 희생 덕분에 스마트폰을 쓰는 거네.

B: 더 끔찍한 건 그 아이들이 죽고 다치면서 캐낸 콜탄으로 만든 스마트폰의 수명이 몇 년도 되지 않는 거야나만 해도 스마트폰을 4년 동안 썼는데잔 고장도 많고 용량도 꽉 차서 더 쓸 수 없게 됐어그런데 4년이면 꽤 오래 쓴 축에 속해이 책에서는 스마트폰의 수명이 왜 그렇게 짧은지 설명해제조사에서 애초에 최대한 빨리 교환하고 싶은 마음이 나도록 만든 거라고그렇게 사람들이 금방 새 물건을 살 수 있도록 고의로 상품의 수명을 단축하는 걸 계획적 구식화라고 한대.

H: 우리가 계속 소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구나계획적 구식화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광고투성이잖아이걸 사야 한다저걸 사야 한다면서.


청바지를 만들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들. 청바지 한 벌의 가격 7만 원에서 그 옷을 만든 방글라데시 봉제공에게 돌아가는 몫은 3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https://madventures.me/2014/11/20/tight-denim-jeans/


B: 어찌나 광고가 많은지 숨이 막힐 때도 있어그런데 그렇게 광고를 해서 대량으로 파는 물건들은 제3세계 노동자들의 임금을 후려치면서 만들어진 거거든우리가 입고 있는 옷쓰고 있는 스마트폰 가격에서 그 노동자들에게 가는 건 정말 얼마 되지 않아청바지 한 벌의 가격이 7만 원일 때그 옷을 만든 방글라데시 봉제공에게 돌아가는 돈은 3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정말 충격을 받았어.

H: 적을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그 정도로 적을 줄은 몰랐어.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 석면.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은 석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사진 출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438988


B: 우리는 그런 물건들을 사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공모자가 되는 건데한편으로는 피해자가 되기도 해. 내가 집주인에게 당했던 일처럼 더 가진 사람들에게 당하는 부당한 일도 있고,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우리가 다니는 회사가 우리를 부당하게 대우할 수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환경 오염도 있지. 우리가 어렸을 때에 비해 봄가을이 많이 짧아진 거 느껴지지 않아?

H: 그렇게 오래 전의 일도 아닌데 느껴져. 기상 이변이 심해졌다는 게 실감이 나긴 해.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땐 이렇게 미세먼지를 걱정하지도 않았던 거 같고.

B: 자본주의자들이 지구 곳곳을 파괴하면서 환경오염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우리는 일주일 중 5하루 중 8시간 이상을 사무실에서 보내잖아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직원들은 늘 석면 같은 독성 물질에 노출되어 있대그리고 우리가 마트에서 사 오는 식재료들에는 살충제제초제항생제가 잔뜩 들어 있고그런데도 농화학업계 대기업들은 로비를 벌여서 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제초제의 사용 기간을 연장해 주는 법안을 통과시켜.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프랑스 민중들. 절대권력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당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H: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런 자본주의의 폐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된다고 얘기해?

B: 자본주의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H: 그게 가능해이 세상에서 자본주의가 손을 안 뻗은 데가 어디 있다고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생각이야.

B: 이 책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듣던 손녀도 그렇게 얘기해.(이 책은 저자가 자기 손녀에게 자본주의가 어떤 것이고어떤 폐해를 낳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는 형식이거든.) 차라리 자본주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거나 자본주의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얘기해자본주의를 완전히과격하게 파괴해야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고노예 제도 폐지나 여성 해방사회 보장 제도도 한때는 현실성 없는 유토피아로 치부됐었다고.

H: 그런데 당장 돈도 힘도 없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B: 지금 당장 주인집의 층간소음 문제도 해결 못하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무기력해지긴 해그래도 우리가 이런 세상을 언제까지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성적으로 거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해이런 세상이 옳지 않다고 깨닫고 투쟁한 사람이 이 세상에는 수억 명이 된다고.

H: 깨어 있는 건 좋은데그럼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나서 어떤 사회경제 체제를 대신 세우려고?

B: 이 책은 구체적인 대안이 아직 없다고 솔직히 얘기해하지만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민중들에게 왕정과 봉건 제도를 무너뜨리고 나서 뭘 할 건지 물었다면 확실히 대답하지 못했을 거라고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낡은 봉건 제도를 무너뜨리고 수억 명의 사람들을 해방시켰다고.

H: 좀 대책 없는 얘기로 들리긴 해일단 질러보자는 얘기지 어떤 방향조차 제시하지 않잖아.

B: 당장 자본주의의 폐해를 바로잡을 구체적인 체제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잖아우선 시작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여성 해방도사회 보장 제도도 아주 오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져 왔고지금도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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