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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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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고통』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는 미국의 예술 비평가 수전 손택의 책이다. 『타인의 고통』처럼 이 책도 사진에 관한 생각들을 담은 책인데, 『타인의 고통』(2003)보다 26년 전에 쓴(1977년) 책이다. 디지털 사진과 포토샵이 나오기 전에 쓴 책이고 거의 40여 년 전에 쓴 책이라 디지털 사진에 대한 논의는 없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내세웠던 주장이 『타인의 고통』에서 뒤집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 속 사진에 대한 손택의 비평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진의 특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1887)의 도판. 이 작품의 실물은 반 고흐가 썼던 물감의 특성 때문에 점점 색이 바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도판이 작품 실물보다 반 고흐의 색채를 더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손택은 사진 덕분에 우리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이미지를 소모한다 이야기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가 널리 보급된 데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요즘은, 손택이 이 글을 썼던 40여 년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미지가 소모되고 있을 것이다. 사진이 얼마나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지 오히려 현실이 그 현실을 찍은 사진에 충실한지 검토될 정도다. 에펠탑이나 만리장성 같은 유명 관광지에 갔을 때, 그곳을 찍은 사진과 비교하면서 사진과 똑같은지 아닌지 비교해 보는 것,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 실물이 사진과 같은지 비교해 보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실물이 사진과 같지 않다며 감동을 느끼기는커녕 실망하기까지 한다. 또한 이제는 물감이 바랜 명화의 실물보다는, 예전의 생생한 색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명화의 도판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이미지가 오히려 현실을 압도해 버리는 것이다. 사진 이미지에 압도되는 현실을 손택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면 저녁놀조차 진부해져 보이는 법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저녁놀은 사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스테판 기자르드가 찍은 이스터 섬의 풍경. 우리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직접 접하지 못하는 현실들 대신 그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SNS에서 우리가 가 보지 않은 멋진 여행지와 우리가 키우지 않는 귀여운 애완동물들,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멋지고 예쁜 연예인들의 사진을 다운받고 소장할 수 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접하지 못한 현실 대신 그 이미지들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된 소유일 뿐이라고 손택은 말한다. 현실은 사진에 담겨 일종의 스펙터클(볼거리)이 되어버렸다. 이런 사진 이미지들, 볼거리들의 홍수 속에서 살다 보면, 정작 그 이미지들이 나타내는 현실을 봤을 때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지가 현실을 소모해 버리는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한 장면. 손택은 이미지로만 이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지가 아닌 현실로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은 실제로 고통당하고 있다고 27년 뒤의 저서『타인의 고통』에서 주장한다.


  손택은 30여 년 뒤에 쓴 『타인의 고통』에서 현실은 위신을 잃어버렸고, 재현만이 남게 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과장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사진, 이미지가 현실을 소모하고 압도한다고 말했던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그 이유는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는 현상은 지구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테러나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볼거리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테러와 전쟁을 현실로 겪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등 우리가 가는 곳마다 구매를 촉진하거나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이미지가 넘쳐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구매를 촉진하고 계급, 인종, 성의 갈등이 빚은 고통을 마비시키는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미지에 기반한 문화를 필요로 한다는 손택의 주장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또 자본주의 사회가 카메라를 통해 자원 개발, 생산성 증가, 질서 유지, 전쟁을 위한 정보를 무한정 수집하기에, 손택은 카메라를 잠재적인 통제의 도구로 본다. 카메라는 대중에게 스펙터클(구경거리)을 제공해 주면서 통치자들에게 감시 대상을 포착해 줌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오히려 디지털 카메라와 이미지 처리,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이런 현상은 손탁이 이 책을 썼던 40여 년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특히 "다양한 이미지와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자유가 자유 자체와 동일시될 것이다."라는 문장은 소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느라 자신이 통제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어딜 가도 넘쳐나는 사진과 이미지들에 지칠 때가 있다. 손택의 표현처럼 지금의 나 자신도 "경험을 일종의 이미지, 일종의 기념품"과 맞바꾸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택은 이후에 『타인의 고통』에서 현실이 이미지에 압도되는 것은 안전한 곳에서 사진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일부 지역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이 책과 『타인의 고통』 은 현실은 사진 이미지 밖에 있고, 사진 이미지에 매몰되어 현실을 잊지 말라는 관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손택이 이 책을 쓴 지 40여 년이 되었는데도 우리가 사진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 또는 거기에 담긴 현실을 소비하는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40여 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너무 일상적이어서 지나쳐 버렸던 사진과 이미지의 소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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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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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한 살짜리 아이의 시신을 들고 울부짖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아버지.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런 사진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미지를 보고 연민을 느끼는 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수전 손택은 말한다.


  2천여 년 전에 쓰인 책인 플라톤의 국가론』에는, 처형된 범죄자들의 시신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과 시신에 대한 혐오감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시신을 보고 마는 아테네 시민이 등장한다. 또한 기독교 미술은 수백 년 동안 수난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나 지옥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이렇게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욕망이었다. 사진 기술의 발달로 훨씬 더 쉽게 이미지를 대량생산하고 널리 유포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는, 폭력적이고 잔혹한 이미지, 타인의 고통을 담고 있는 이미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가 일종의 스펙터클(볼거리)로 소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미국의 미술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이 책 『타인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런 우리의 반응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지구의 다른 한 쪽에서는 전쟁과 테러 같은 고통을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우리는 사진 이미지로만 접하게 된다. 전쟁, 빈곤, 대량 학살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의 배경은 보통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이런 사진들은 전쟁, 테러, 빈곤 같은 비극은 우리와는 먼 가난한 나라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우리는 자신이 그런 비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한 곳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관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물론 이런 이미지들이 없으면 우리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연민을 자아내고 그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지는 우리에게 최초의 자극을 줄 뿐이고, 연민과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손택은 말한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 자체는 선한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다. 하지만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금방 시들해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연민만을 베푸는 데 그치지 말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연민의 감정을 일으킨다. 하지만 타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지 밖에 있다. 이미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을 합리화하는 권력자들에게 눈길을 돌려보자고, 그 합리화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깨닫고 꼼꼼히 검토해 보자고 권유하는 것 이상을 해낼 수는 없다고 손택은 말한다. 이미지는 그것을 본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행동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손택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 밖의 현실이라고, 현실을 지키기 위한 실천은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손택이 이 책을 쓴 지 10년도 더 넘은 지금도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봐서 앞서 본 이미지는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세상 속에서, 이미지에서 배제된 현실, 이미지로는 다 알 수 없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그 현실을 지켜야 한다는 손택의 주장은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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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마지막 70일
바우터르 반 데르 베인.페터르 크나프 지음, 유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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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난뱅이, 우울증 환자, 알콜 중독자, 사회 부적응자, 인정받지 못했던 천재. 이 책은 지금까지도 반 고흐에게 붙는 수식어들을 부정하며 시작한다. 그는 미치광이도, 사회부적응자도 아니며,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고 그의 그림 역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를에서 살던 시절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우체부 룰랭이 한 달 월급으로 135프랑을 받을 때 그는 동생 테오에게서 200프랑을 생활비로 받았다. 아내와 세 아이를 둔 가장보다 더 많은 생활비를 혼자 사용하며 여유로운 환경에서 작업했던 것이다. 테오를 통해 그의 그림을 접한 몇몇 사람들은 이전의 미술과는 다른 그의 신선한 그림에 감탄했고, 『메르퀴르 드 프랑스』 지에는 그의 그림에 찬사를 보내는 비평이 실렸다. 또한 반 고흐는 자신의 그림에 믿음이 생긴 뒤로는 오히려 그림을 파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의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진정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생전에 단 한 점의 작품이 아니라 모든 작품을 팔았다. 화상인 동생 테오에게. 

  동생에게서 생활비를 넉넉히 받아서 생활이 여유로웠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마음은 무거웠을 것이다. 먹여살릴 처자식이 있는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데 생활비가 부족하든 넉넉하든 마음이 가벼울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동생에게 보낸 그의 편지들에서 죽을 때까지 그가 자신의 그림이 팔릴 수 있을지,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해했던 모습을 보았다. 또 동생에게 모든 작품을 판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작품을 인정 받고 판매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들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 고흐에 대한 편견들을 걷어내고 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저자들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오로지 증명된 사실들만을 다룬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를 비롯한 가족들, 친지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그가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 오베르에서 생애 마지막 70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촘촘하게 복원한다. 저자들은 이전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반 고흐의 네덜란드어로 쓴 편지까지 새롭게 소개한다. 날짜를 적지 않은 편지들을 내용에 따라 순서대로 정리하고 그 편지를 쓴 날짜를 추정했다. 70일 동안 그가 그린 그림들도 모두 이 책에 도판으로 실었는데, 그림에 표현된 자연 풍경의 모습을 분석해 그 그림이 그려진 날짜를 추정하는 수고까지 해냈다. 



반 고흐가 오베르에서 그린 <별 하나가 빛나는 하얀 집(1890)>(위)과 생레미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1889)>. 저자들은 반 고흐가 알퐁스 도데, 월트 휘트먼, 빅토르 위고가 쓴 글들 중에서 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글을 읽으며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밤 하늘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지게 표현됐다며 정작 빈센트와 테오 형제는 생레미의 <별이 빛나는 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저자들은 오베르의 별이 생레미의 별들보다 생기 있지만 동시에 정적이며 한층 더 평온하게 빛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 실린 편지들 속에서는 오베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의욕적으로 작업을 시작해, 끊임없이 그림에 대해 고민하고 그림을 그렸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과로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중압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테오와 건강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더 이상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은 그가 가난하거나 미치광이이거나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았다고 여겨 자살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요소들이 그의 죽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반 고흐가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불안해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의견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의견이다. 하지만 마지막 70일 동안의 그의 행동과 생각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꼼꼼하게 복원하려는 시도는 성공적이다. 또한 마지막 70일 동안 그린 모든 작품의 도판을 싣고, 작품 하나 하나마다 사용된 기법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 작품의 배경 지식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덕분에 그의 마지막 70일 동안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살펴볼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를 평생 경제적으로 지원해준 동생 테오 반 고흐(왼쪽)와 그의 아내 요안나 반 고흐, 조카 빈센트(오른쪽).


  이 책의 또 한 가지 장점은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이후의 동생 테오와 제수 요안나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준다는 점이다.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세 달 후인 1890년 10월, 테오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이성을 잃었다.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세 달 뒤인 1891년 1월 세상을 떠난다. 테오의 주치의가 남긴 의료 기록도 이 책에 함께 실었다. 감정적인 묘사는 전혀 없는 진찰 기록이지만, 이성을 잃고 자신의 아내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읽는 사람을 슬프게 한다. 

1890년 11월 28일, 이등실에 입원.
1891년 1월 25일, 84번 환자 사망.
테오도러스 반 고흐.
원인: 유전, 만성질환, 과로, 슬픔.

  테오의 사망 일시와 사인을 적은 이 짧은 기록 중, 사인 중 하나가 '슬픔'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더 슬프게 한다. 


소녀였을 때 나는 완벽하게 행복한 1년을 보내는 것이 같은 양의 행복을 평생에 걸쳐 나누어 느끼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곤 했다. 이제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내 몫의 행복을 만끽한 이상 이제 책임만이 남아 있다.
  테오가 세상을 떠난 뒤, 어린 아들 빈센트(큰아버지 빈센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과 단 둘이 남겨진 아내 요안나. 요안나는 테오와 함께 보냈던 날들이 완벽하게 행복한 날들이었고 이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면서, 평생 동안 반 고흐의 그림들을 지킨다. 요안나는 반 고흐의 그림들을 활발하게 사람들에게 선보였고, 반 고흐의 편지들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그리고 자비를 들여 반 고흐가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정리한 책을 출간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반 고흐의 그림을 만지는 것을 내버려 둘 정도로 그림에 무지했었던 그녀였지만, 그녀의 노력 덕분에 사람들은 반 고흐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반 고흐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그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우리는 빈센트와 테오, 그리고 남겨진 요안나의 더 생생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까지 많이 알려진 빈센트와 테오의 편지 외에도 테오가 오베르의 시골 의사 가셰 박사에게 형을 부탁하는 편지, 아내 요안나에게 보낸 러브레터, 입원 당시 테오의 진료 기록, 요안나가 빈센트를 칭찬했던 평론가 알베르 오리에에게 보낸 편지까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기록들, 잘 알려지지 않은 오베르에서의 빈센트의 작품들까지 만날 수 있다. 반 고흐 관련 책들을 많이 읽어서 이제 반 고흐에 대한 웬만한 사실들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새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알아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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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 개정판
민길호 지음 / 학고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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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다 모르는 아이에게 "얘, 너 그렇게 쉬엄쉬엄 달리면 오히려 살이 더 쪄."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했다. 날씬하지도 못하고, 그애에게 상관 말라고 대꾸도 못한 내 자신이 창피했다. 잘난 데가 하나도 없고 소심하기만 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게다가 그때 학교에는 내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거의 없었다. 


기분 전환을 하러 자주 들르던 동네 서점에 갔다. 그 때 눈에 띈 책이 이 책이었다. 고흐 관련 다른 책들과 달리 반 고흐의 자서전 형식으로 쓴 책이었다. 물론 반 고흐 자신이 쓴 자서전이 아니라 한국인 작가가 반 고흐 자신이 서술하는 방식으로 쓴 평전이었다. 반 고흐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어서 책에 빠져들어서 읽었다. 그러면서 반 고흐도 나처럼 자신이 못나게 느껴져서 힘들고, 외로웠구나, 하고 생각했다. 반 고흐와는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먼 나라의 아이가 반 고흐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반 고흐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반 고흐의 이야기가 듣고 싶고 그의 그림이 보고 싶을 때는 이 책을 펼쳤다. 반 고흐에 대한 다른 책들도 읽어보면서 이 책의 저자가 자기 상상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반 고흐에 대한 나름대로의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반 고흐의 삶을 촘촘히 재구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록들 사이의 비어 있는 부분은 "반 고흐라면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을 것이다"라는 가정으로 채워지지만, 저자가 반 고흐가 되어 그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헤아리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 유리잔에 꽂힌 활짝 핀 아몬드꽃 가지, 1888. 


봄기운을 담뿍 머금고 활기차게 뻗은 가지에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맺은 아몬드꽃. 저를 보며 희망의 손짓을 하는 듯, 활짝 핀 꽃송이들은 저의 미래를 약속하는 천사의 미소 같습니다.

푸른색으로 그 꽃이 담긴 유리잔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희망을 뜻하는 노란색이 잔을 받치고 있습니다. 또 저의 영혼의 움직임은 한 줄의 빨간색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제 저는 자유인입니다. 철창에 갇힌 새가 아닙니다. 

맘껏 날개를 펴고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렵니다. 어떠한 고통이 오더라도 제가 가고 싶은 그곳을 향하여 두 날개가 다 찢어져 바람에 날리는 그때까지 쉬지 않고 날아갈 겁니다.

서명은 왼쪽 윗부분에 했습니다. 빨간색으로 빈센트(Vincent)라고 썼습니다. 제 영혼의 약속입니다.

 저자는 반 고흐의 작품을 묘사할 때 미술적 기법에 대한 설명이나 단순한 작품 감상에 그치지 않고 그림을 그려나가듯이 그림을 이야기한다. 작가 자신이 반 고흐가 되어 그림을 그려가는 거니까. 사실은 저자의 목소리지만 반 고흐가 직접 자신의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묘사는 이 부분이다. 단순한 작품 묘사가 아니라 반 고흐의 설렘과 희망을 느낄 수 있고, 그 설렘과 희망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서. 


머리가 크고 나서 더 이성적으로 이 책을 보게 되면서, 이 책의 근본적인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반 고흐 자신이 이야기하는 반 고흐'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반 고흐'인 것이다. 반 고흐 자신이 남긴 기록들과 그에 대한 연구 결과를 충실히 반영했지만 결국은 작가 자신의 추측과 주관적인 의견으로 만들어낸 반 고흐의 모습이다. 지금 다시 보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부분들과 지나치게 반 고흐의 기독교 신앙을 강조한 부분들도 적지 않다. 거기에 거부감을 느끼고, 저자가 보여주는 반 고흐의 모습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 고흐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은 제3자인 저자가 반 고흐의 삶을 설명하는 형식보다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그래서 어린 나도 반 고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기분이 되어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반 고흐의 모습이 실제 반 고흐의 모습과 완벽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반 고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과 달리 감정적인 거리를 어느 정도 두고 보니 허점도 군데군데 보이지만, 반 고흐를 사랑하게 만든 책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아직도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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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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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인간의 가장 진한 체취를 담아내게 된다. 특히 미술은 사진이 없던 시대에서부터 인간사를 기록해 왔고, 사진이 발명된 이후에도 사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사를 기록해 왔다. 그래서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미술 작품에 담긴 격변의 역사도 함께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인간의 삶과 욕망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중세 후기부터 사람들이 인간성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던 1, 2차 세계대전까지의 역사를, 그 시대를 표현하는 미술 작품들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랭부르 형제, <베리 공작의 기도서> 중 5월. 귀족들이 사냥하러 떠나는 장면이다.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하는 작품은 중세 후기인 15세기의 네덜란드 출신 화가들인 랭부르 형제(Limbourg, Herman,PaulJohan)의 <베리 공작의 기도서>이다. 기도서는 달력과 함께 시간과 계절에 어울리는 기도문과 화려한 채색 삽화를 담은 책으로,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당대 사람들의 세시풍속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베리 공작의 기도서>는 종교의 영향 아래 엄격하고 금욕적이었던 중세 초기 미술과는 달리 세속적 취향, 세속적인 삶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림 속 맛있는 음식과 세련되고 화려한 옷, 즐거운 파티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귀족들과 농사를 지으면서 평화롭게 만족하며 사는 농민들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꿈꾸던 삶의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뜨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증표인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베누아의 성모>, 1478.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 누구보다도 자신들의 욕망을 치열하게 추구해 왔던 메디치 가문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후원해 문화적 발전을 이끌어냈다.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메디치 가의 후원을 기반으로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거대한 돔을 건축하는 데 성공한다. 돔을 건설하면서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을 발견해,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 자연을 재현한다는 미술의 과제에 시작점을 마련했다. 또 그의 후배인 파올로 토스카넬리는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에서 태양의 운동을 관측하는 실험을 했다. 인간이 자연을 호기심과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자연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는 이성과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성과 과학에 눈을 뜬 당대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베누아의 성모>를 든다. 그림 속 아기 예수는 자신이 들고 있는 꽃을 유심히 바라본다. 신인 예수가 자신의 피조물을 호기심을 품고 바라볼 리 없다. 그림 속 아기 예수는 자연을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


 세상 모든 것을 의문을 품고 바라보는 이성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사는 세상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신이 내렸다는 절대적인 왕권에도, 몇몇 상류 계급만이 부를 독점하는 현실에도 서서히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런 의문을 품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고, 그들의 사상을 바탕으로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는 더 큰 혼란이 일어났고, 혁명 세력 내부에는 분열이 생겼다. 혁명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들이 다시 권력을 잡고 혁명이 바꾸어 놓은 것들을 원상복구했다, 다시 혁명으로 쫓겨나고, 다시 보수 세력이 집권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수없이 회의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민주주의이다. 19세기 독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자유와 평등을 열망하는 인간의 초상이다. 이 그림 속 남자는 1817년 자유주의적 이상을 품고 결성된 독일의 대학생 단체 '부르셴샤프트'의 단복을 입고 있다. 당시는 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를 비롯한 보수 세력의 억압으로 자유주의 운동이 전 유럽에서 후퇴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부르셴샤프트의 자유주의적 이상은 독일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자욱한 안개 바다 앞에 두려움 없이 홀로 서 있는 청년의 모습은 현실 질서에 저항하며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케테 콜비츠,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1938.


 그러나 인간의 이성과 그를 통한 진보를 믿었던 사람들은 20세기에 들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발달한 과학 문명을 통해 부강해진 나라들은 팽창하며 서로 충돌했다. 이성에 근거한 과학 문명은 처절한 전쟁을 불러오게 되었다. 전쟁이 사회의 모든 모순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열광했던 예술가들조차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성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이성에 기반한 서구 문화 전반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 자신과 전쟁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아들과 손자를 전쟁으로 잃었던 독일의 예술가 케테 콜비츠는 조각 작품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를 통해 한 인간 어머니, 아들의 죽음에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느끼는 지상의 여인을 보여준다. 이런 예술가들이 있기에 인간은 역사와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중세부터 현대까지 그 시대가 낳은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볼 수 있다.종교의 영향 아래에서 살다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뜨고, 권력자들의 억압 아래에서 살다 스스로의 권리와 자유를 찾아가고, 때로는 인간이 저지른 잔혹한 행동에 회의를 느껴온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추구하고,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면서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는 현대의 사람들을. 지금은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이 책은 그런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싸우고 피 흘리면서 지금 우리의 삶을 만들었다. 그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담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만들어온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것이 이 책의 의의가 아닐까.

 

*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판들의 화질이다. 미술사 책이라기에는 도판의 화질이 아주 좋지는 않아, 작품의 디테일이 뭉개져서 보일 때가 있다.(특히 베네치오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예배>의 경우가 심하다.) 작품을 더 자세히 살펴보려면 구글에서 다시 작품 이미지 검색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서인 <민음 한국사> 시리즈의 도판들이 오히려 더 화질이 좋다. 미술사 책이니만큼 도판의 화질에 대해 더 신경 써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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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5-10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판의 화질‘부분은 절대 공감이요.^^ 그래서 저는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도판들을 참고하곤 해요.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바스티안 2018-05-10 17:44   좋아요 0 | URL
제가 미술사책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도판의 화질이에요. 저는 구글에서 화질 좋은 도판들을 검색해 봐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정말 도판들 화질이 좋더라고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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