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미술관 -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
김태권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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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크룩생크의 풍자화 <뉴 유니언 클럽>(1819). 클럽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흑인들의 모습을 통해, 흑인들의 인권이 신장되면 흑인과 백인이 맞먹게 될 것이라는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몸의 왼쪽 절반은 하얀색, 오른쪽 절반은 검은색인 흑백 혼혈 아기의 모습은 끔찍한 혐오표현이다. 이 그림을 통해 고민하게 된다. 혐오표현과 풍자의 정확한 경계선은 어디일까?(p. 174-176.)


  인권 문제를 다룬 미술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책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구상만 한 게 아니라 기획안도 만들었었는데, 지난 달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 책 또한 미술 작품을 통해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니, 내가 기획안을 만들기 이전부터 기획된 책이었다. 운 나쁘게도 기본 컨셉트가 겹쳐 내 기획안 하나가 날아갔지만, 내 기획안이 책이 되었다면 이 책과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미리보기로 몇 페이지를 봤을 때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이 책을 사게 되었다.

  내 기획안이 프란시스코 고야, 에드가 드가, 페르난도 보테로 등 각 화가별로 챕터를 나눈 반면, 이 책은 여성혐오 문제, 장애인 인권, 이주민의 인권, 성소수자의 인권 등 각 이슈별로 챕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미술'에 방점을 두었다면 이 책은 '인권'에 방점을 둔 셈이다. 아무래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책이니 그랬을 것이다.(기획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하고, 집필은 김태권 작가가 했다.)  인권 안에서의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기에는 이 책의 구성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의 저자가 미술사학자가 아니라 만화가 김태권 작가라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김태권 작가는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한겨레, 2009)라는 미술사 만화를 출간한 적이 있지만 미술사 전공자는 아니고, 이 책도 만화가 아니다. 이 책은 그가 처음으로 만화가 아닌 줄글 형태로 쓴 책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문장 중에는 줄글보다는 만화 지문에 가까운 짧은 호흡의 문장들이나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꽤 야해 보인다.", "크룩생크(헤르미온느의 고양이가 아니라 19세기 영국의 캐리커처 작가)를 만난다면, (영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치고) 어떻게 그를 설득해야 할까?" 등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듯 장난스러운 부분들도 많다. 김태권 작가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허술하거나 진지하지 못한 건 아니다. 김태권 작가는 머리말에서부터 자신 또한 인권 문제에 있어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는 여러 모로 잠재적 가해자다. 남성이고 중산층이고 비장애인이며 이성애자다.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니 국적 때문에 차별을 겪을 일도 없다. 이런 내가 조심하는 마음 없이 산다면, 여성이나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나 북한이탈주민 앞에서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내 언행도 주위 사람의 언행도 불편하다. 하나하나 고민하고 검토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p. 6.) 그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 , 『십자군 이야기』  속 무거운 주제와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만화 사이의 균형 감각을 줄글에서도 발휘한다. "왜 여성인권이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자기가 피해자라고 느끼는 남성들이 나타날까. 피해는 원래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해서 그럴까. 여성이 희생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피해가 자기한테 떠넘겨진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p. 209.) 그는 장난스러운 듯하면서도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한다.

  3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인데다, 각각의 주제만 하더라도 깊이 파고들면 책 한 권은 쓸 수 있는 주제인데 한 챕터만으로 다루다 보니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한다. 특히 하나의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인권 이슈들에 대해 그는 문제 제기만 한다. 혐오표현과 풍자의 정확한 경계선은 어디일까? 히잡을 쓰자는 사람은 여성혐오에 빠진 근본주의자인가, 아니면 인종주의에 저항하는 무슬림 당사자인가? 히잡을 벗기려는 사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여성주의자인가? 아니면 이슬라모포비아에 찌든 인종주의자인가? 이러한 그의 '치고 빠지기'가 못마땅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문제 제기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다했다. 정답이 없는 인권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서로 다른 답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합의점을 찾아내고 선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미술 작품들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인권 이슈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저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싶을 뿐인데 눈앞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미술 작품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 자신이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권리들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기울인다면 우리가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상처를 주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작가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누구나 인권 문제에 있어서 잠재적 가해자다. 깊이 있는 분석까지 들어가지 못한다 해도, 이 책은 "불편함의 아주 작은 불씨'를 남겼다. 나는 기획안 하나를 잃은 대신 좋은 책 한 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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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 개정판 다빈치 art 12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 다빈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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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친구 H군

  잘 지내고 있어? 직접 만난 지는 오래됐지만, 가끔씩이라도 메시지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아. 같이 이야기하면서 너한테 배우는 게 많아. 

  얼마 전에는 이중섭의 편지집을 읽었어. 화가의 글만큼 그 사람의 작품 세계를 솔직히 말해주는 글도 없을 거야. 고흐는 글로 그림을 그리듯이 주변 풍경과 앞으로 그릴 작품들을 묘사하는 편지를 썼어. 고갱은 원시적인 열대 지방에 대한 판타지를 자기 글에도 반영했고. 샤갈의 글은 자기 그림들처럼 환상적이고 한 편의 시 같아.


이중섭, <춤추는 가족>.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도 이중섭의 편지에서 작품 이야기를 기대했어. 그런데 자기 아내와 아이들 이야기가 80퍼센트더라. 당신은 귀엽고 소중하다, 당신은 나의 천사다, 나만의 훌륭한 아내다 이런 말이 얼마나 많이 반복되는지 나중에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어. 하지만 아내가 생활고 때문에 일본의 친정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많이 외로웠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돼. 아내와 아이들은 바다 건너 일본에 있고, 6.25 전쟁 때문에 어머니, 형과도 헤어지고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살고. 이중섭을 살게 했던 건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림이었던 것 같아. 사실 그림을 그리게 하는 원동력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어. 


이중섭, <돌아오지 않는 강>, 1956. 제목에서부터 이중섭의 절망감이 배어 있다.


  이중섭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들에서 굳세게 마음먹고 희망을 가지자, 나는 꼭 훌륭한 작품을 그릴 거라고 끊임없이 말해. 그런데 불안감 때문에 스스로 다짐하려고 더 자주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싶어. '사흘에 한 번 편지를 보내 달라고 했는데 왜 안 보내는 거요? 당신만 힘든 줄 아시오?' , '내가 그쪽(일본)으로 가든지 당신과 아이들이 이쪽(한국)으로 오든지 하지 않으면 헤어질 각오를 해야 할 거요.' 불안감을 못 견디고 이렇게 화를 내는 부분에서 무서웠어. 물론 다음 편지에서 바로 사과하긴 하지만. 1952년부터 1955년까지 쉴 새 없이 편지를 썼던 이중섭은 1956년부터 갑자기 편지를 쓰지 않았대. 이 책에 같이 실린 친구 구상의 글에서는, 이중섭이 "나는 세상을 속였어! 그림을 그린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다니며 훗날 무엇이 될 것처럼 말이야."라고 말하면서 자책했대. 자신이 세상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조차 욕심이라고. 그렇게 이중섭은 모든 생명력을 잃고 그 해 세상을 떠났어. 

        이중섭, <도원>, 1954. 춥고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의 그림은 밝고 따뜻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죽고 나서도 자기 그림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 가족들과는 떨어져 지내고, 돈 문제는 도무지 해결이 안 되고 편히 지낼 집 한 칸 없는 삶이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그림들을 그려냈거든.  고흐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넘버 중에 '그림만은 남아서 다정하게 말을 걸 거야.'라는 가사가 나와. 그 가사처럼 이중섭의 그림들은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 돈이 없어 병든 친구에게 복숭아를 사 주지 못하지만 대신 복숭아 그림을 그려주었던 따뜻한 마음이 그림 속에 배어 있어서일 거야. 이 책을 곁에 두고 가끔씩 이중섭의 그림들을 들여다 보고 싶어.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네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잘 지내.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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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화학자 1 - 이성과 감성으로 과학과 예술을 통섭하다, 개정증보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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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섭(統攝)은 '서로 다른 것을 한 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학문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말한다. 그런 통섭이 이루어지는 책을 만들고 싶어 참고할 만한 책들을 찾아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미술사와 과학의 만남이라니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미술사 전공자이자 과학알못인 내게 이 책이 어떻게 다가올지도 궁금해졌다. 나는 미술사 전공자로서도, 과학알못으로서도 이 책에 만족했을까?


(위)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아래)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우선 미술사 전공자로서는 만족하지 못했다. 교양 서적에 전공 서적 수준을 바랐다가 실망한 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책이 교양 서적으로서 미술사 지식들을 잘 정리했고 재미있게 전달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교양 서적들에도 나온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책 내용 중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이 책에서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1889)이 아를의 노란 집에서 그린 작품이라고 했는데, <별이 빛나는 밤>은 반 고흐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그림이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그림으로 여겨지는'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이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소개했는데, 최근의 미술사 연구를 통해 반 고흐가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이후에도 작품 몇 개를 더 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화가의 생몰년도가 잘못 표기된 것도 몇 개 보인다. 책 내용을 좀 더 꼼꼼하게 교열했어야 했다.


(위) 렘브란트, <야경>, 1642.

(아래) 피에로 디 코시모, <프로크리스의 죽음>, 1486~1510년경.


그럼 과학알못으로서는 만족했을까. 과학알못으로서도 만족하지 못했다. 책의 내용 중 렘브란트의 <야경>이 그려졌을 당시보다 훨씬 어두워져 밤 풍경으로 오해받게 된 이유는 흥미로웠다. 18세기에 그림 보존을 위해 덧칠한 갈색 바니시(Varnish, 물감에 섞거나 그림 표면에 발라 윤기를 내고 내구성을 높이는 마감재. '니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와 납을 포함한 안료와 황을 포함한 안료가 만나면 검게 변색된다는 특징 때문에 그림이 원래 모습보다 훨씬 더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부터 시작된 연금술이 화학에 어떤 기여를 했고,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디 코시모의 그림 <프로크리스의 죽음>에 어떤 연금술적 상징들이 숨어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이렇게 미술사와 화학이 제대로 만나는 챕터들은 흥미로웠지만, 기존의 교양 미술사 책에 나오는 내용에 과학 이야기는 아주 조금만 곁들여진 챕터들도 많았다. 전반적으로도 미술사와 과학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사에 과학이 조금 곁들여진 정도다. 


 그리고 과학알못으로서 좀 더 알기 쉽게 설명되었으면 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불포화지방산은 지방산 사슬 중에 불포화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 액체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표화기가 가교결합을 하며 굳어져 단단한 도막을 형성하는데, 바로 이 점을 그림물감에 이용한 것이다."

"기하이성질체에는 시스-트랜스 구조가 있다. 탄소에 각기 다른 네 개의 치환기가 결합되어 있을 때 그 탄소를 비대칭 탄소라고 하며, 비대칭탄소가 있어야 광학이성질체가 존재한다."


 불포화기? 가교결합? 시스-트랜스 구조? 치환기?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내가 정말 과학에 무지해서 모르는 것이긴 하지만, 이런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있어야 했고, 과학 원리에 대한 설명도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좀 더 자세해야 했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의 목차. 목차에도 해당 챕터의 대표 이미지들을 넣었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lgchem.com/2014/12/book-recommend/


『미술관에 간 화학자』는 즐겁게 읽으면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이고, 목차에 텍스트만 넣지 않고 해당 챕터의 대표 이미지들을 넣는 등 책의 만듦새에도 공을 들인 책이다. 하지만 미술과 과학의 동등한 1 대 1 만남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미술사에 과학을 조금 곁들인 정도로 느껴진다. 과학 원리에 대한 설명도 아주 친절하지는 않다. 그래서 미술과 과학의 통섭을 이루었다고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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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그림 - 그림 속 속살에 매혹되다
유경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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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부터 도발적이다. ‘나쁜 그림이라는 제목부터 그림 속 속살에 매혹되다라는 문구, 벌거벗은 여인이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그림 *<고디바 부인>과 표지의 나머지 공간을 가득 채운 다홍색까지. 표지를 지나 서문 앞에서 저자는 영화배우 메이 웨스트의 말을 빌려 선언한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아무 데나 간다. 웨스트가 말하는 아무 데 원하는 곳 어디나라는 뜻일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나쁜 여자들이 주체적이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존재였다는 것을 나쁜 그림들 속 나쁜 여자를 통해 말하려고 한다.


외젠 들라크루아, <분노하는 메데이아>, 1836-1838. 

 얼핏 보기에는 자식들을 지키려는 모습 같다. 하지만 그림 속 메데이아는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는 것에 대한 복수로, 아이들을 죽이려고 한다. 그것이 대를 잇는 것을 중시하는 가부장제에서 남편에 대한 가장 큰 복수였다.


 이 책에는 수많은 화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다루었던 전설신화역사 속 여인들이 등장한다남성들을 유혹해서 죽음으로 몰아넣는 여인부터 자기 자식들까지 죽이면서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하는 여인자신을 사랑하는 시인을 정신적물질적으로 파멸시켰지만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었던 창녀까지사람들에게는 악녀로 불리지만 자기 욕망에 충실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펼쳐놓는다. 자신이 벌거벗고 도시를 돌아다니면 백성들의 세금을 낮춰주겠다는 남편의 말을 실행한 고디바 부인강간당한 뒤 명예를 위해 자결했던 루크레티아처럼 나쁜 여자로 분류되지 않는 여인들도 등장한다그녀들 역시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자신이 뜻한 바를 행한다는 데서 주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저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그려진 여성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그림 속에서 그녀들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분석 등을 통해 그녀들을 악녀그림으로 그려지고 욕망의 대상이 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살아 있는 한 인간욕망의 주체였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귀스타브 쿠르베, <잠>, 1866. 여성 동성애를 암시하는 이 그림은 에로틱한 그림을 선호했던 오스만 제국의 대사 칼릴 베이를 위해 그려진 것이다. 여성들끼리의 에로틱한 장면을 그린 그림들은 남성들 사이에서 더 인기 있었다. 여성들끼리의 에로틱한 장면도 관음증적인 에로티시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p. 96-97)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통해 우리가 그림 속 그녀들이 한 인간이자 욕망의 주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해도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그림이 남성의 판타지가 반영된 그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쁜 그림’ 속 나쁜 여자들 또한 남성들의 판타지가 투영된 대상으로 소비되어 왔다우리 또한 그녀들을 소비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이 책에 실린 그림 속 여성들도 스스로 욕망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욕망의 대상으로 보인다. 


(위) 쉬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 1909. 

(아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1614-1620.


  이 책에 실린 많은 그림 중 여성이 그린 그림은 단 두 점이다. 프랑스의 화가 쉬잔 발라동이 자신과 연하의 연인을 누드로 그린 <아담과 이브>(1909), 17세기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1614-1620)가 그 두 점의 그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여성 화가가 누드화를 그리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대에 대한 도발임을 설명한 것은 좋았다그러나 <유딧과 홀로페르네스>를 그저 여성이 남성의 목을 자르는 그림의 예시로만 든 것은 아쉽다젠틸레스키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유딧에게 죽임당하는 홀로페르네스로 그려자신의 분노를 예술로 승화했다이 책에 여성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스스로 표현한 그림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양서적이고 분량의 제한이 있다 보니 아주 깊이 있는 분석까지 이르지 못하지만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속 여인들의 이야기는 흥미롭다그리고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그려지는 여성이 그리는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으니그려진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그러나 다음에는 여성 자신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 또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고디바 부인: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시의 영주 레오프릭 3세의 부인으로, 남편의 과도한 세금 징수와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하소연을 듣고 남편에게 세금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세금을 내리지 않는다면 나체로 말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겠다."고 했고, 남편은 그 말대로 하라고 했다. 고디바 부인은 자신의 말을 실천했고, 그녀를 위해 백성들은 문과 창문을 닫고 그녀를 보지 않았다. 남편은 약속대로 세금을 내리고 선정을 베풀었다. 코벤트리 시에는 그녀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유딧은 고대 이스라엘의 여인으로, 성경 외경인 <유딧서>에 등장한다. 그녀는 이스라엘을 침략한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뒤, 그가 잠에 빠진 틈을 타 그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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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 - 르네쌍스 명화에 숨겨진 살인사건
베른트 뢰크 지음, 최용찬 옮김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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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채찍질>, 1460-1465년경(추정), 우르비노 마르케 국립미술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 <채찍질>은 독특한 그림이다.  제목은 <채찍질(당하는 예수)>이지만 정작 그림의 주인공인 예수는 그림 뒤쪽에 작게 그려져 있고, 오른쪽의 세 사람이 더 눈에 띄게 크게 그려져 있다. 왼쪽 빌라도의 법정 안에서 일어나는 예수의 채찍질 장면과 오른쪽의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하나의 장면인지 별개의 장면인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오른쪽의 세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독일의 역사학자 베른트 뢰크는 오른쪽 인물들 중에서도 가운데의 금발 청년이 이탈리아의 산악도시 우르비노의 공작 오단토니오 다 몬테펠트로이고, 이 그림이 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단토니오는 젊은 나이에 권력 다툼으로 인해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오단토니오가 살해되자 그의 뒤를 이어 우르비노의 공작이 된 이복형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였다. 뢰크는 당대 최고의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채찍질>을 통해 페데리코의 살인을 고발한다고 주장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1472-1474년경,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는 이름만 들으면 생소한 인물이지만, 프란체스카가 그린 초상화 덕분에 얼굴은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우르비노의 군주 귀단토니오 다 몬테펠트로의 서자이지만,  당대의 기록들을 검토한 결과 귀단토니오의 서녀가 낳은 외손자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후사가 없어서 조급해진 귀단토니오는 서출인데다 외손자인 페데리코를 후계자로 삼았지만, 페데리코가 태어난 지 5년 뒤에 친아들, 그것도 적자인 오단토니오가 태어났다. 게다가 오단토니오의 외가는 이탈리아의 명문가인 콜론나 가문이었으니 페데리코는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1443년 귀단토니오가 세상을 떠나자 페데리코가 아닌 열여섯 살짜리 오단토니오가 다음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7월 오단토니오는 자객들에게 살해당했고, 오단토니오가 살해당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페데리코가 우르비노를 장악하고 우르비노의 군주가 되었다. 살인사건의 공모자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그 중 한 명은 페데리코 밑에서 승승장구하기까지 했다. 누가 범인인지는 뻔한 일이었다.


  저자는 다양한 가설과 사료, 도상들을 검토하면서 <채찍질>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나간다. 오른쪽의 세 인물 중 왼쪽 인물이 걸친 붉은색 외투와 노란색 장화는 서양 회화 속 유다의 도상에서 자주 보이는 복장이다. 그림 속 유다와 빌라도는 기독교의 전설을 모은 책 『황금전설』에서 이복형제를 시기해 죽이는 인물로 나온다. 페데리코가 그랬듯이. 그 밖에도 그림 속에는 죽은 오단토니오를 이상화하고 페데리코의 악행을 고발하는 상징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런 상징들을 찾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살인자인 페데리코와 오단토니오의 죽음으로 인해 그에게 원한을 품은 라이벌들의 싸움뿐만 아니라, 화가 프란체스카가 그림에 반영한 세계관과 사상까지 살펴본다. 


  번역자는 역자 후기에서 이 책이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 역사소설 『장미의 이름』처럼 흥미진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추리 역사소설의 스릴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시작부터 범인을 미리 밝히고,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간다기보다는, 살인사건과 관련된 역사와 세계관을 설명해 간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들과 역사인데다, 저자가 찾아내는 세세하고도 방대한 단서들을 한 줄에 꿰어 정리하기 쉽지 않다. 창비 특유의 된소리를 살리는 외래어 표기법(ex) 오단토니오→오단또니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도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꼼꼼히 읽어보면 <채찍질>이라는 그림 하나에 담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다채로운 시대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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