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그림 - 그림 속 속살에 매혹되다
유경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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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부터 도발적이다. ‘나쁜 그림이라는 제목부터 그림 속 속살에 매혹되다라는 문구, 벌거벗은 여인이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그림 *<고디바 부인>과 표지의 나머지 공간을 가득 채운 다홍색까지. 표지를 지나 서문 앞에서 저자는 영화배우 메이 웨스트의 말을 빌려 선언한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아무 데나 간다. 웨스트가 말하는 아무 데 원하는 곳 어디나라는 뜻일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나쁜 여자들이 주체적이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존재였다는 것을 나쁜 그림들 속 나쁜 여자를 통해 말하려고 한다.


외젠 들라크루아, <분노하는 메데이아>, 1836-1838. 

 얼핏 보기에는 자식들을 지키려는 모습 같다. 하지만 그림 속 메데이아는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는 것에 대한 복수로, 아이들을 죽이려고 한다. 그것이 대를 잇는 것을 중시하는 가부장제에서 남편에 대한 가장 큰 복수였다.


 이 책에는 수많은 화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다루었던 전설신화역사 속 여인들이 등장한다남성들을 유혹해서 죽음으로 몰아넣는 여인부터 자기 자식들까지 죽이면서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하는 여인자신을 사랑하는 시인을 정신적물질적으로 파멸시켰지만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었던 창녀까지사람들에게는 악녀로 불리지만 자기 욕망에 충실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펼쳐놓는다. 자신이 벌거벗고 도시를 돌아다니면 백성들의 세금을 낮춰주겠다는 남편의 말을 실행한 고디바 부인강간당한 뒤 명예를 위해 자결했던 루크레티아처럼 나쁜 여자로 분류되지 않는 여인들도 등장한다그녀들 역시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자신이 뜻한 바를 행한다는 데서 주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저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그려진 여성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그림 속에서 그녀들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분석 등을 통해 그녀들을 악녀그림으로 그려지고 욕망의 대상이 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살아 있는 한 인간욕망의 주체였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귀스타브 쿠르베, <잠>, 1866. 여성 동성애를 암시하는 이 그림은 에로틱한 그림을 선호했던 오스만 제국의 대사 칼릴 베이를 위해 그려진 것이다. 여성들끼리의 에로틱한 장면을 그린 그림들은 남성들 사이에서 더 인기 있었다. 여성들끼리의 에로틱한 장면도 관음증적인 에로티시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p. 96-97)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통해 우리가 그림 속 그녀들이 한 인간이자 욕망의 주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해도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그림이 남성의 판타지가 반영된 그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쁜 그림’ 속 나쁜 여자들 또한 남성들의 판타지가 투영된 대상으로 소비되어 왔다우리 또한 그녀들을 소비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이 책에 실린 그림 속 여성들도 스스로 욕망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욕망의 대상으로 보인다. 


(위) 쉬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 1909. 

(아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1614-1620.


  이 책에 실린 많은 그림 중 여성이 그린 그림은 단 두 점이다. 프랑스의 화가 쉬잔 발라동이 자신과 연하의 연인을 누드로 그린 <아담과 이브>(1909), 17세기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1614-1620)가 그 두 점의 그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여성 화가가 누드화를 그리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대에 대한 도발임을 설명한 것은 좋았다그러나 <유딧과 홀로페르네스>를 그저 여성이 남성의 목을 자르는 그림의 예시로만 든 것은 아쉽다젠틸레스키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유딧에게 죽임당하는 홀로페르네스로 그려자신의 분노를 예술로 승화했다이 책에 여성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스스로 표현한 그림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양서적이고 분량의 제한이 있다 보니 아주 깊이 있는 분석까지 이르지 못하지만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속 여인들의 이야기는 흥미롭다그리고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그려지는 여성이 그리는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으니그려진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그러나 다음에는 여성 자신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 또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고디바 부인: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시의 영주 레오프릭 3세의 부인으로, 남편의 과도한 세금 징수와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하소연을 듣고 남편에게 세금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세금을 내리지 않는다면 나체로 말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겠다."고 했고, 남편은 그 말대로 하라고 했다. 고디바 부인은 자신의 말을 실천했고, 그녀를 위해 백성들은 문과 창문을 닫고 그녀를 보지 않았다. 남편은 약속대로 세금을 내리고 선정을 베풀었다. 코벤트리 시에는 그녀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유딧은 고대 이스라엘의 여인으로, 성경 외경인 <유딧서>에 등장한다. 그녀는 이스라엘을 침략한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뒤, 그가 잠에 빠진 틈을 타 그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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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 - 르네쌍스 명화에 숨겨진 살인사건
베른트 뢰크 지음, 최용찬 옮김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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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채찍질>, 1460-1465년경(추정), 우르비노 마르케 국립미술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 <채찍질>은 독특한 그림이다.  제목은 <채찍질(당하는 예수)>이지만 정작 그림의 주인공인 예수는 그림 뒤쪽에 작게 그려져 있고, 오른쪽의 세 사람이 더 눈에 띄게 크게 그려져 있다. 왼쪽 빌라도의 법정 안에서 일어나는 예수의 채찍질 장면과 오른쪽의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하나의 장면인지 별개의 장면인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오른쪽의 세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독일의 역사학자 베른트 뢰크는 오른쪽 인물들 중에서도 가운데의 금발 청년이 이탈리아의 산악도시 우르비노의 공작 오단토니오 다 몬테펠트로이고, 이 그림이 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단토니오는 젊은 나이에 권력 다툼으로 인해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오단토니오가 살해되자 그의 뒤를 이어 우르비노의 공작이 된 이복형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였다. 뢰크는 당대 최고의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채찍질>을 통해 페데리코의 살인을 고발한다고 주장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1472-1474년경,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는 이름만 들으면 생소한 인물이지만, 프란체스카가 그린 초상화 덕분에 얼굴은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우르비노의 군주 귀단토니오 다 몬테펠트로의 서자이지만,  당대의 기록들을 검토한 결과 귀단토니오의 서녀가 낳은 외손자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후사가 없어서 조급해진 귀단토니오는 서출인데다 외손자인 페데리코를 후계자로 삼았지만, 페데리코가 태어난 지 5년 뒤에 친아들, 그것도 적자인 오단토니오가 태어났다. 게다가 오단토니오의 외가는 이탈리아의 명문가인 콜론나 가문이었으니 페데리코는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1443년 귀단토니오가 세상을 떠나자 페데리코가 아닌 열여섯 살짜리 오단토니오가 다음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7월 오단토니오는 자객들에게 살해당했고, 오단토니오가 살해당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페데리코가 우르비노를 장악하고 우르비노의 군주가 되었다. 살인사건의 공모자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그 중 한 명은 페데리코 밑에서 승승장구하기까지 했다. 누가 범인인지는 뻔한 일이었다.


  저자는 다양한 가설과 사료, 도상들을 검토하면서 <채찍질>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나간다. 오른쪽의 세 인물 중 왼쪽 인물이 걸친 붉은색 외투와 노란색 장화는 서양 회화 속 유다의 도상에서 자주 보이는 복장이다. 그림 속 유다와 빌라도는 기독교의 전설을 모은 책 『황금전설』에서 이복형제를 시기해 죽이는 인물로 나온다. 페데리코가 그랬듯이. 그 밖에도 그림 속에는 죽은 오단토니오를 이상화하고 페데리코의 악행을 고발하는 상징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런 상징들을 찾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살인자인 페데리코와 오단토니오의 죽음으로 인해 그에게 원한을 품은 라이벌들의 싸움뿐만 아니라, 화가 프란체스카가 그림에 반영한 세계관과 사상까지 살펴본다. 


  번역자는 역자 후기에서 이 책이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 역사소설 『장미의 이름』처럼 흥미진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추리 역사소설의 스릴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시작부터 범인을 미리 밝히고,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간다기보다는, 살인사건과 관련된 역사와 세계관을 설명해 간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들과 역사인데다, 저자가 찾아내는 세세하고도 방대한 단서들을 한 줄에 꿰어 정리하기 쉽지 않다. 창비 특유의 된소리를 살리는 외래어 표기법(ex) 오단토니오→오단또니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도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꼼꼼히 읽어보면 <채찍질>이라는 그림 하나에 담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다채로운 시대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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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란 어떤 그림인가
조용진, 배재영 지음 / 열화당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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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미술사를 공부했지만 시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미술사나 동양미술사에 대한 기본 지식도 갖추어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미술사와 중국미술사 강의도 들었지만 몇 년이 지나니 잊어버린 게 많아,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에 대해 기본 지식을 다시 쌓고 싶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이 책 『동양화란 어떤 그림인가』였다.


(위) 박수근, <소와 유동(遊童)>, 1962, 캔버스에 유채. (아래) 박래현, <작품 8>, 화선지에 채색.


  이 책은 동양화에 대한 백문백답을 통해 동양화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전달한다. 저자들은 우선 '한국화가 어떤 그림인가'를 정의한다. 토속적인 소재를 다루었지만 서양 회화의 재료인 캔버스와 유화 물감을 사용한 박수근의 작품과, 서양의 추상화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한국화 재료인 화선지를 사용한 박래현의 작품 중 어느 것이 한국화일까? 한국인이 한국 고유의 정서에 따라 그렸다면 재료의 종류와 상관 없이 한국화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저자들은 한국화의 전통 양식 특성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회화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작품을 한국화로 본다고 말한다. 저자들의 분류에 따르면 박수근의 작품은 서양화, 박래현의 작품은 한국화이다.

  또한 '동양화'는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조선미술전람회>의 전통 회화 부문을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조선화로 부르기 꺼림칙했기 때문에 만들어냈던 신조어라는 것을 밝힌다. 60년이 지난 1982년부터 '한국화'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지만, 아직 한국적 그림 양식이 자리잡히지는 못했다는 것도 짚고 넘어간다. 이 책은 한국화뿐만 아니라 한국화에 영향을 준 중국 미술, 동양 미술 중 독특한 자기 영역을 지니고 있는 일본 미술도 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동양화'란 어떤 그림인가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위) 책의 아랫변보다 윗변이 더 길게 그려진 책거리 그림. 원근법에 맞지 않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마인데르트 호베마,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 1689. 정확한 원근법을 따라 그려졌다.


  이 책에서는 서양화와의 대비를 통해 동양화의 특성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시각이 서양 미술 쪽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동양화는 동양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멀리 있는 사람이 더 크게 그려져 있는 등 서양화의 원근법에는 어긋나게 그려진 동양화는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 사물을 관찰하고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는 화가가 생각한 것이나 아는 것, 관념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화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자식이 많은 것을 상징하는 석류 등 상징성을 지닌 소재들을 조합해 뜻을 전달하기 때문에 읽는 그림이라고 한다. 서양화에도 시간을 상징하는 낫을 든 노인, 허영을 상징하는 거울처럼 상징적인 도상들로 이루어진 알레고리화가 있다. 그리고 구도나 색감, 데생력 등 미적인 요소로 동양화를 감상하는 것이 그림 속 상징들을 통해 그림을 읽는 전통적인 안목이 크게 훼손된 것이라고 하는데, 동양화도 '미'술에 속하는데 미적인 요소로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소 이분법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동양화가 서양화와 퓨전을 이루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 문화적 흐름에 적응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양화와 서양화가 서로 개성 없이 같아진다면 이 얼마나 재미없는 일이겠는가."라는 저자의 말에서 동양화만의 개성과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동양화에 대해 미술사적 지식만 알고 싶은 사람으로써는 문방사우 장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종이, 붓, 먹, 벼루부터 표구용 풀까지 어떤 재질로, 어떤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보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하나 하나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동양화를 직접 그릴 생각도 없는데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동양화를 직접 그리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실용적인 부분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동양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그 밖에도 먹으로만 그리면 수묵화이고 색을 사용하면 채색화인가, 민화에는 왜 낙관이 없을까, 동양화의 여백은 다 그리고 난 나머지로서의 여백인가 등 흥미로운 질문들이 독자들을 동양화에 대한 기본지식으로 이끈다. 다채로운 동양화들의 도판들은 읽는 재미에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림과 함께 읽는 동양화의 기본 지식 백과사전 역할을 충실히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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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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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1503.


 르네상스 미술사 강의를 들을 때 교수님은 우리에게 매주마다 그림 하나씩을 지정해 주시고, 그 그림을 자기 눈에 보이는 그대로 설명하라는 과제를 내 주셨다.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과제 주제로 나왔을 때, 나는 그림 속 여인은 초록색, 갈색 등 여러 가지 색 옷을 입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수님은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이 상복이라는 학자들의 해석대로 보지 않고,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본 것을 칭찬해 주셨다. 교수님은 아무리 권위 있는 학자의 작품 해석이라도 그대로 믿지 말고, 스스로 작품을 보고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 또한 기존의 권위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번역된 제목이나 원제 '보는 방식들(Ways of Seeing)'이나 미술 작품을 보는 하나의 표준 방식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들도 공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John Berger)가 40여 년 전인 1972년 BBC TV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이 책은, 미술 작품을 신성시하고 예술은 어떤 다른 것과도 구별되는 특별한 영역으로 보는 기존의 시각에 도전한다.

  버거는 1장에서부터 이전의 미술사학자들이 미술 작품에 대해 늘어놓았던 미사여구를 걷어내려고 한다. 그는 소득이 낮을수록 미술관을 교회 같은 신성한 장소로 생각하게 된다는 통계 결과를 제시하면서, 작품이 감동적이고 신비스러워진 것은 비싼 가격 덕분이라고 말한다. 복제 기술의 발달로 어디서나 작품의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미술 작품의 진품은 부자들의 것으로 인식되고, 불평등을 고상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고 지적한다. 미술 작품이 지닌 권위 덕분에 미술 작품 진품을 가질 수 있는 계층의 사람들은 자기 권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진품 자체의 가치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진품에 남은 화가의 흔적이, 화가가 그 그림을 그렸던 순간과 우리가 그 그림을 보는 순간을 이어준다고 이야기한다. 미술 작품 진품은 그 작품이 그려졌던 당시의 역사적 순간을 간직해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위) 한스 폰 아헨(1552-1615), <바쿠스, 케레스, 큐피드> (아래) 현대의 향수 광고


  그는 또한 미술 작품들뿐 아니라 사진, 광고 등 현대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들까지 시야를 넓힌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응시의 대상이 되는지 포착한다. 남성이 다른 사람에게 행사하는 능력으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여성은 자신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성 자신조차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버거는 벌거벗은(naked) 몸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누드(nude)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전시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한스 폰 아헨의 작품 <바쿠스, 케레스, 큐피드>에서 케레스는 연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연인이 아닌 그림 밖의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그 관객은 자신이야말로 그녀의 진짜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즉 그림의 소유주이다. 현대의 광고 이미지 속 여성도 이미지 밖의 관객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이와 같이 누드 이미지에서 관객은 보통 남자이고 응시의 대상이 되는 이미지 속 인물은 보통 여자이다. 버거는 이런 불평등한 관계가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의식을 형성한다고 말했는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그가 말한 모습 그대로다.


(위)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아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패러디한 배달 앱 광고


  버거는 또한 다른 회화 형식과 달리 그림 속 대상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해 내는 유화의 특성 덕분에 유화는 자신이 지닌 재산을 과시하는 형식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지 속 대상의 물질적인 특성을 생생히 전달한다는 공통점으로 유화와 광고를 연결시킨다. 물론 광고는 종종 사람들에게 익숙한 명화 작품의 언어를 빌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을 각인시킨다. 하지만 단순히 유화 작품의 언어를 빌리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이미지 속 물건들을 얻은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광고는 유화와 연결된다. 유화가 자신의 현재 상태를 과시한다면, 광고는 광고 속 물건을 얻으면 더 나아질 미래의 상태를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화가 현재 시제로 그려져 있다면, 광고 이미지는 언제나 미래 시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버거는 이전의 미술사 논의에서 배제되었던 젠더 문제, 경제적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하며 다른 방식으로 미술 작품을 보자고 제안한다. 그는 서구 유화의 전통을 현대 소비 사회의 광고와 연결짓는 등, 미술 작품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이미지들을 포함한 시각 문화를 살펴본다. 미술사, 미학이라는 범주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 속 다양한 시각적 체험과 요소들을 살펴보는 시각 문화 연구가 시작된 지 이미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권위를 지닌 기존의 해석과 미술 작품이 지닌 권위에서 벗어나 새롭게 보는 방식의 단초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는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이다. 

* 이 책의 도판은 모두 흑백으로 되어 있다. 열화당 쪽에서는 컬러 도판으로 교체할 수 있었지만 이곳저곳에서 컬러 도판을 가져오다 보면 도판들의 톤이 통일되지 않고 들쭉날쭉해져서 흑백 도판으로 통일하는 쪽을 택했다고 답변했다. 인쇄 기술을 사용해 도판들의 톤을 서로 비슷하게 조절할 수도 있지만, 모두 흑백 도판을 쓰는 쪽이 더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도판들의 톤이 서로 맞도록 조절하면서 컬러 도판을 싣는 쪽을 더 좋아하지만,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독자들 각자의 생각과 취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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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 피카소의 전쟁 -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거장의 반전 메시지
레셀 마틴 지음, 이종인 옮김 / 무우수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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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국립 소피아 왕비 미술관, 마드리드.


저 오래된 비극을 묘사하는 흑백 캔버스 위에서 피카소는 인간의 암울한 운명을 알리는 편지를 쓴다그 운명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한다우리는 그 운명에 맞서기 위해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모두 모아 영원의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한다마치 숭고한 작별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초현실주의 시인 미셸 레리스(Michel Leiris)는 <게르니카>에 대해 이렇게 썼다. <게르니카>가 그려진 지 8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로서는 시인이 느꼈던 절박함과 비통함을 느끼기 어렵다나치군이 스페인의 게르니카 마을을 공습했고피카소는 그에 분노해 게르니카를 그렸다이 단편적인 사실만으로는 이 그림에 대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이 책 게르니카피카소의 전쟁은 <게르니카한 작품에 집중하면서, <게르니카>가 그려지게 된 이야기와 <게르니카>라는 그림이 겪어온 이야기들을 풀어낸다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시인이 <게르니카>를 통해 느꼈던 비통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게르니카 사건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36년 2스페인 총선에서 인민전선은 승리를 거두고 공화 정부를 세웠다민주적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무정부주의자들의 연합 세력인 인민전선은 스페인이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하지만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파시스트 세력은 스페인을 인민전선의 손에서 빼앗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프랑코는 스페인을 차지하기 위해 외세인 독일의 나치 세력과 협력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나치 군은 프랑코의 반군을 도와 스페인의 여러 지역을 인민전선의 공화국 정부에게서 빼앗았고게르니카가 있는 바스크 지역도 반군에게 포위되었다바스크 사람들은 포위되었지만 반군에게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고프랑코는 그런 바스크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게르니카에 공습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1937년 4월 26프랑코의 사주를 받은 나치 공군은 7천여 명이 사는 산골 마을 게르니카를 폭격했다


폐허가 된 게르니카와 주민들의 시신


  평화로웠던 마을은 불길에 휩싸였고사람들은 폭격이나 나치 공군이 난사하는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시신들이 폭발의 충격으로 지붕으로 날아가거나 벽에 달라붙었다대피소에 숨은 사람들은 숨죽여 이 모든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렸고살아남은 사람들은 실종된 가족을 찾아다니며 울부짖었다며칠 되지 않아 피카소가 머물고 있는 파리의 언론들도 이 참혹한 사건을 보도했다그럼에도 프랑코 측은 범인은 자신들이 아니라 인민전선의 공산주의자들이라며 뻔뻔스럽게 발뺌했다마침 얼마 뒤 파리에서 개최되는 세계박람회의 스페인관에 들어갈 벽화를 제작하려 했던 피카소는 그 벽화 속에 게르니카의 비극을 담기로 했다피카소는 인민전선의 공화국을 지지하고 있었고스페인을 파시스트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자국 국민의 생명도 가볍게 여기는 프랑코를 증오했다.

 

 <게르니카>에는 잔혹한 나치 군의 모습비행기폭탄폭격을 당하는 집들 대신 황소와 말전구 등 알 수 없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나치와 프랑코의 만행을 직접적으로 가리키지도참상을 사실적으로 전하지도 않았다며 <게르니카>를 이해하지 못했다지금도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이 작품이 게르니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피카소가 그리려 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이 아닌사람들이 겪은 폭력과 고통죽음 그 자체였다특히 투우장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인 황소와 말은 이 그림 속에서 투우장 안에 예정되어 있는 죽음처럼 스페인 내전 안에 예정된 끔찍한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그리고 <게르니카>가 주는 시각적 충격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잔인함으로 인해 죽어가는 존재들의 절망과 고통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게르니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조차 그림을 볼 때 "자신이 푸줏간의 고기처럼 토막쳐지는 기분이 든다."고 말할 정도였다


  피카소는 <게르니카>로 얻은 수익을 스페인 구호 모금에 내는 등 공화국을 돕기 위해 애썼지만결국 스페인은 1939년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부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다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공화국 정부에 팔았기 때문에프랑코가 지배하는 스페인으로 <게르니카>를 돌려보내는 것을 거부했다프랑코의 독재는 수십 년 동안 이어졌고, 1943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보내진 <게르니카>는 수십 년 동안 스페인에 돌아오지 못했다


당신은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합니까화가라면 눈만으로음악가라면 귀로시인이라면 마음의 모든 방의 운율로권투선수라면 근육으로만뭐 이런 것들을 가지고 벌어먹는 멍청이라고 생각합니까아닙니다그것은 아닙니다예술가라면 마땅히 정치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그가 속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가슴 아픈 일정열적인 일기쁘고 즐거운 일을 늘 의식하면서 그런 일들의 이미지에 따라 자신을 형성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다른 사람의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니 그게 될 법이나 한 말입니까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져다 준 저 풍성한 생활로부터 초연히 이탈해 구름 위의 존재처럼 노닐 수 있단 말입니까아닙니다그림은 그런 게 아닙니다아파트의 거실을 장식하기 위한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그림은 투쟁의 수단입니다."

 1945년 인터뷰에서 했던 이 말과 같이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통해 불의와 맞섰다피카소는 프랑코보다 2년 앞서 세상을 떠났고프랑코가 197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프랑코의 독재 정부는 건재했다그러나 프랑코가 후계자로 지목했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프랑코의 꼭두각시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민주주의를 지지했다프랑코의 뒤를 이어 철권 정치를 계속하려던 프랑코의 심복 블랑코 총리는 바스크 지하 단체 조직원에게 살해당했다드디어 프랑코의 독재 정치가 끝난 것이다그리고 6년 뒤, <게르니카>는 그려진 지 44년만에 처음으로 스페인에 돌아오게 되었다. <게르니카>는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했다하지만 독재 정권보다도 오래 살아 남아 독재 정권의 악행을 지금까지도 증언하고 있다. <게르니카>를 통해 피카소는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이다이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피카소와 게르니카가 겪어 온 이야기들을 읽으며독자들은 게르니카라는 그림 하나에 얼마나 많은 슬픔과 피눈물이 담겨 있는지 조금이나마 실감하게 될 것이다이 모든 일들을 지켜 본 사람들만큼 깊은 감정과 의미를 느끼지 못하더라도그것은 책 속의 한 스페인 사람의 말처럼 더 좋은 일일 수 있다.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서 <게르니카>가 거대한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배열해 놓은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으니"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게르니카>를 통해 인간의 잔혹성을 기억하고 이런 일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절대 사라질 것 같지 않는 불의는 언젠가 사라지고무력해 보이는 예술은 언제까지나 살아남아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것도.


P. S. 이 책은 <게르니카>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 제작 과정, 전시 당시의 비평과 대중들의 반응들까지 꼼꼼하게 전달하지만, 아쉽게도 <게르니카> 외의 다른 도판이나 사진 자료는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특히 <게르니카>를 위해 어떤 모습의 습작들을 그렸는지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그 습작들의 도판 하나 없다. 이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이었다. 그래서 책에서는 설명되었지만 도판이 실리지 않은 <게르니카>의 습작들의 도판 몇 점을 여기에 함께 올린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를 위한 습작, 1937년 5월 2일.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를 위한 습작, 이 습작 또한 1937년 5월 2일에 그려졌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를 위한 습작, 1937년 5월 8일


도판 출처:  Rachel Wischnitzer, "Picasso's "Guernica", A Matter of Metaphor", Artibus et Historiae, Vol. 6, No. 12 (1985), pp. 15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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