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주 기법을 충분히 이용하던 피카소는
1912년경 피카소와 브라크는 콜라주collage와 파피에 콜레papiers colles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콜라주는 풀로 붙인다는 뜻이며 파피에 콜레는 종이를 풀로 붙여 장식적이 되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1913년 브라크가 이비뇽의 한 상점에서 본 나뭇결무늬의 벽지 조각을 정물화 속에 붙여 최초로 사용했다.
존 골딩은 브라크의 <기타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Guitar>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작품에 사용된 파피에 콜레 조각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그것은 평면적으로 채색된 회화적 형태이다. 둘째, 회화 속에서 색채나 질감의 유사성을 통해, 또는 실마리나 암시를 덧붙여 어떤 대상을 묘사하거나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종이조각 그 자체로 존재하는데 바로 이 점 때문에 다른 입체주의 콜라주와 연결된다. 다시 말해 그림 속에 통합되고 견고하고 촉각적인 외계 물질로 인식되며 물질적 현존성이 강조된다.”
피카소는 즉시 이 기법을 채택했으며 현대 미술의 여러 진보적 화파들도 이를 사용했다.
콜라주와 파피에 콜레 기법은 브라크와 피카소 그림의 기본이 되는 현실주의를 강조함과 동시에 회화 기법에서 유래한 환영적 요소나 감각적 매력을 극단적으로 배제하려는 것이 주요한 동기가 되었다.
콜라주 기법은 이를 계승한 일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활용되었으며 거기에서 제기된 새로운 미학적 문제와 가능성은 그 후 몇 년 동안 계속 탐구되었다.
파피에 콜레는 장식적 목적이 아닌 구성상의 본질적 요소로서 사용되었다.
그 사용법은 현실주의적인 것으로, 그것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나타냄과 동시에 화면 속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평면으로 존재했다.
피카소와 같은 나라 화가 후앙 그리스Juan Jose Vittoriano Gonzalez Gris(1887~1927)는 피카소와 브라크보다도 계통적·논리적 입체주의에 몰두했다.
그는 화면의 분석·이동의 기법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좀 더 합리적으로 설계한 기본 계획에 따라 구축해 나갔다.
종합적 입체주의로 알려진 입체주의의 두 번째 단계는 거의 그리스에 의존하고 있다.
분석적 입체주의 시기의 그리스는 하나의 대상이 갖는 다양한 시각적 인상을 모두 일정한 기하적 면의 도형으로 환원시켜 결합했다.
그러나 종합적 입체주의 단계에서는 그리려는 대상을 나타내는 어떤 상징을 이용하여 그것을 재창조했다.
이런 상징은 이전의 시각적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험의 세부 사항이 그대로 그림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화가의 시각적 기억 속에서 결합·융해되어 실제 보이는 사물과는 다른 변형된 상태로 표현된다.
결국 그림은 자연과 평행을 이루며 그 상징적 요소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리스의 작품에는 왜곡의 요소가 없다.
그의 그림 형태는 실제 사물의 형태와 유사하지만 결코 그것을 베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콜라주 기법을 충분히 이용하던 피카소는 1913년 고부조적인 구성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의 회화와 밀접하게 결합되었으며 입체주의 회화의 삼차원 단계로 불리운다.
이런 시도는 앙리 로랑스Henri Laurens(1885~1954)와 자크 립시츠Jacques Lipcjtz(1891~1973)에게 이어졌으며 또 많은 입체주의 조각의 기초가 되었다.
뒤샹 비용Pierre-Maurice-Raymond Duchamp-Villon(1876~1918), 알렉산더 아키펭코Alexander Archipenko(1887~1964) 등이 입체주의와 관련된 조각을 제작했고 브랑쿠시도 어느 한도 내에서는 이에 포함된다.
한편 야수주의 예술가들과 입체주의 예술가들이 서로 대립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폴리네르는 1906~08년의 야수주의 작품이 입체주의의 서막을 장식한 것으로 보는 관용적 태도를 취했다.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예술가들 모두 인상주의 예술가들의 감각주의를 밀어내려고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더 진실 되고 심원하게 실재에 다가간다는 자신들의 뜻을 선언하면서 자연의 외관으로부터 생긴 감정의 의존하기를 거부했다.
이런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 문명에 대한 거부와 역사상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깊은 불신이었다.
리오넬로 벤투리Lionello Venturi는 『미술 비평사 History of Art Criticism』에서 폴 고갱의 타히티 체류와 랭보Rimbaud의 아프리카 탐험으로 예증된 선례를 따라서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예술가들은 비역사적인 문명으로 회귀함으로써 역사를 회피하려고 했으며, 그 결과 시각적 표현에 있어서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모두 저통 투시법과 조소적 형체를 거부하고 대신 색면으로 이루어지는 회화, 즉 색채가 지닌 절대적인 가치와 표현의 직접성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기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