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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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자연을 소재로한 이야기는 많다. 그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종종 숲에서 잃어버린 무언갈 되찾기도 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 한없이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런데 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인간의 깨우침을 위한 도구가 아닌 진짜 나무 이야기말이다.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는 세대의 세대를 거듭하며 땅 속 깊이 연결된 9명의 등장인물을 실제 역사적 배경에 바탕한 거대하고도 독창적인 서사의 탄생이다. 이것은 사라져가는 원시림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가지를 흔들고 낮은 주파수로 말을 거는 나무와의 연대를 다룬 이야기다. 여기서 우린 잠시 무리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익숙하다고 믿는 것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눈을 감고 떠올려보라. 혜안이 필요한 때이다.




"그 사람들은 모든 답을 알아. 더 이상 어떤 것도 그들에게 해를 입힐 수 없지." p.54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뿌리는 인물들을 연결시킨다. 한 세기가 넘도록 기록된 밤나무의 초상은 호엘가의 유산이다. 과거 전국에 몰아친 병충해에도 굳건했던 나무는 이제 사그라졌고 곧 사라질 집에 홀로 남은 '니컬러스'는 나무의 초상을 그림으로 옮길 뿐이다. 중국계 미국인인 '미미 마'에게는 아버지의 유산인 아라한 두루마리와 뽕나무가 세공 된 옥반지가 있고, 한때는 자신의 탄생목인 단풍나무를 사랑했지만 일찍이 인류의 유해성을 깨달은 '애덤 어피치'와 반얀나무에 목숨을 빚진 '더글러스 파블리첵'은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묘목을 심는 일에 매진하고, 외출 금지를 걱정하며 마지막 풍경을 감상하던 '닐리 메타'는 나무에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청각과 언어 장애를 가진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는 나무의 소통을 발견한 최초의 과학자로, 감전사에서 되살아난 '올리비아 밴더그리프'는 죽음 너머의 존재에게서 계시를 듣게 되면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책임감이 강한 '레이 브링크먼'과 자유를 갈망하며 도피기제를 보이는 '도러시 카잘리'는 자꾸만 어긋나는 그들의 관계처럼 무언갈 심기로 했던 기념일 약속을 묻어버린 채 기억하지 못한다.




순수를 떠나온 이들은 군중 속에 섞여 나무를 잊는다. 하지만 나무와 함께 자라온 이들에겐 아주 작은 기폭제로도 그들의 감각을 일깨울 수 있다. 가령 휴식처를 빼앗겼다는 사소한 분노 혹은 원대한 계시, 아니면 그저 이끌리듯 흘러들어온 이들이 생명보호군(LDF)으로 모여든다. 비폭력을 외치는 생명보호군들은 나무에 자신의 몸을 묶고 투쟁한다. 그러나 이건 선과 악의 대결처럼 보이지 않는다. 분명 거대 자본과의 싸움이지만 권력을 쥔 이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무를 베다 장애를 얻은 벌목꾼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방해말라고 고함을 내지르는 장면은 무어라 선뜻 말을 하기 어렵다. 있는 힘을 다해 거세게 몸부림치지만 뭍에 있는 기득권자들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으니 힘 없는 자들끼리의 아우성이다. 상황은 점차 아비규환으로 변해가고 급기야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폭력성은 언제나 인간의 것이고 나무는 늘 그렇듯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그들은 우리 도처에 있다. 원형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모든 형태로 존재한다. 자각하지 못해도 우리는 그들에 많은 빚을 지며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이테가 없다는 것. "우리는 십억 년 동안 지구가 모은 유대를 현금화하고 그것을 각종 사치품에 날리며" 더욱 깊은 망각에 빠진다.




반면 전면에 나선 LDF들과 달리 각자의 자리에서 몸통을 키우고 수관을 뻗어나간 이들이 있다. 여성 과학자로서 겪는 차별을 감내하고 대중의 멸시 속에서 연구를 멈추지 않던 패트리샤는 비밀의 숲을 출판하면서 세상에 충격을 안긴다. 닐리는 나무에게서 어떠한 계시를 듣고 게임 지배를 만들고 거듭 새로운 버젼을 출시하며 사람들을 열광시키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수록 그의 욕망은 되려 공허해질 뿐이다.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고 만들었던 코드는 이제 현실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논 것과 다를바 없다. 그의 신탁나무조차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다. 바로 그때 패트리샤의 책이 닐리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지구를 통째로 옮기려는 그의 원대한 장기 프로젝트는 '플레이어'가 아닌 '학습자'라 명명하며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반면 나무와 연관없어 보이던 브링크먼 부부는 레이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많은 변화가 생긴다. 레이의 침상에서 보이는 잊힌 그들의 정원엔 한때 전멸했던 미국밤나무가 어느덧 생명을 드리우고 도러시는 그 경이로움에 하나 하나 배워나가며 훼손하려는 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그들의 정원엔 위대한 유산이 생겨난다.




"스무 번의 봄은 순식간이다. 가장 더운 것으로 측정된 해가 왔다가 지나간다. 그리고 또 다른 해. 그리고 열 번이 더 지나가고, 거의 모든 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다. 해수면이 상승한다. 한 해의 시간조차 무너진다.스무 번의 봄, 그리고 마지막 봄은 첫 해보다 2주 빨리 시작된다." p.527




또 한 번의 나무를 심기 가장 좋은 시기가 지나갔다. 자신만의 나무로 숲의 이름을 짓고 뜨겁게 저항했던 이들은 흩어졌다. 그러나 늘 그렇듯 역사는 반복된다. 사람들은 또 다시 불을 지르고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다. 그리고 외딴 곳에서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파수꾼, 사라지는 숲에 고통에 차 소리치는 더그전나무, 사람들을 일깨우고자 스스로 훌륭한 이야기가 된 단풍나무, 나무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치유하는 뽕나무, 그리고 노란 잎을 흔들며 어딘가에서 강인하게 자라났을 메이든헤어. 죽어가는 세상을 공포 속에 바라보는 성모를 목격한 패트리샤는 결코 독이 든 성배를 마시지 못했다. 작중 무수히 반복되는 죽음과 좌절. 인류는 나무의 세계에 막 도착한 '불법체류자'다. 터를 잃고 공항에서 살아가는 참새가 아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리처드 파워스는 숲이 모든 것을 자연의 일부로 포용하며 장애와 여성, 인종, 이민자를 아우르는 상생하는 삶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준다. 이야기를 읽으며 보게 된 무수한 나무의 모습은 나를 또 한 명의 학습자로, 마음에 종자가 내려앉은 듯 어딘지 뻐근한 기분을 느낀다.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는 인간을 두고 신이 비웃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한낱 작고 무지한 이들이 숲을 구하겠다고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진다. 신을 살리겠다는 인간의 오만. 그러니까 이 대장정에는 사실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셈이다. 나무들의 접촉은 구조 요청이 아닌 유전자의 4분의 1을 공유한 조상이 내미는 구원의 손길이었고 곧 멸종될 종은 나무가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 장(章)이 바뀔 때마다 화자와 시공간이 모호한 이야기가 짧게 등장한다. 나무에 관해선 문맹인 감옥에 갖힌 남자의 모습은 애덤과 더글러스를 연상시키고 지친 모습으로 소나무에 기댄 여자는 미미의 마지막 등장과 겹친다. 얼마나 무수한 종자가 반복됐을까. "신호가 말한다. 좋은 답은 무에서부터 재창조할 가치가 있어, 다시, 그리고 또 다시." 아주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다시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들의 후손이 뿌리내릴 때까지 다시, 또 다시.




"그들이 그녀에게 말한다. 희망을 갖거나 절망하거나 예측하거나 깜짝 놀란 모습을 보이지 마. 절대로 굴복하지 말고, 나뉘고, 증식하고, 변화하고, 결합하고, 행하고, 참아. 기나긴 인생 전체에서 해왔던 것처럼. 불이 필요한 종자들이 있어. 얼어붙어야만 하는 종자들도 있고. 삼켜서 위산에 부식된 다음 분변으로 나와야만 하는 종자도 있지. 싹이 트기 위해서는 부숴서 열어야만 하는 종자도 있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어디든지 갈 수 있어." p.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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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년 :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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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림인데 사진 자료라도 본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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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문학동네시인선 100 기념 티저 시집 문학동네 시인선 100
황유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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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의 모래처럼 소화되지 못한 시구절이 마구 새어나간다

시에서 산문으로 이어지는

단어의 나열에서 짐작해보는 심상은

찰나의 파착의 순간으로

계절의 낙하처럼



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시인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버거운

밀려드는 감정의 홍수

겹겹의 소음

다 듣지도 못했는데 끝나버린



나에게 시라하면

열심히 활자를 두드리고

또 갸웃거리는

골똘히 흐르다

마음에 안착하는 단 한 구절



그것은 비냄새 머금은 심상

높은 습도 탓에 사방에 퍼진 서글픔

당신의 아름다움이 멈출 수 없는 글이 될까봐
물기 속에 묻어둔 그 마음



비가 왔다 낮잠을 자고 꿈에서 누군가와 싸웠다

짐승의 털이라도 가진다면 웅덩이에 몸이라도 던지겠지만

젖은 베개를 털어 말리고 눅눅한 옷가지에 볼을 부비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만 편지를 세탁기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




죽은 공처럼 누가 날 발로 차주었으면

들어가지 마시요 끝말이 틀린 경고문 안에서 우리는 튀어오르고

골대가 없는 농구장에서 던지는 연습을 했다 공을 주면 살아서

받아내려고 멈추지 않았다 누구의 공인지도 모른 채

죽으면 안 되니까, 산 것을 가만두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죽음이었다


오병량 - 편지의 공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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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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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돌아온다 했던가. 여기 자신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긴시간 공을 들이는 치밀한 사이코패스가 있다. 연쇄살인범 '케인'의 진짜 범행현장은 법정이다. 주인공 '에디 플린'은 그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던 분야에서 손을 털고 변호사가 된 독특한 이력의 인물이다. 천재 연쇄살인범과 사기꾼 출신 변호사의 두뇌싸움을 다룬 법정 스릴러인 스티브 캐버나의 <열세 번째 배심원>는 국내에 소개되는 그의 첫번째 소설이다. 헐리우드 인기 배우 '로버트 솔로몬'이 아내와 경호원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고 모든 혐의를 부인하지만 증거는 그가 유죄임을 가르킨다. 게다가 희생자의 입속에서 발견된 나비모양의 1달러 지페엔 12년 전 사망한 범죄자의 DNA가 발견된다. 여러모로 꺼침칙한 이 사건을 에디는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나는 훈련된 심리학자가 아니었다. 나는 범죄학자도, 범죄 분석가도, FBI도, 경찰도 아니었다. 이 분야에서 내가 가진 기술들은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를 알고 있었다. p.364



법정에서 유죄와 무죄를 가르기 위해 에디가 벌이는 언쟁은 '아트 프라이어'와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실은 배심원석에 앉은 범인과의 대결이다. 케인이 꾸린 배심원단은 로버트 솔로몬에게 유죄를 선고할 것이다. 하지만 에디는 승패를 이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알고 있다. 속이는 법과 죽이는 것. 게다가 막강 운빨로 "죽지 않는" 에디이기에 선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천재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앞에서도 독자는 그가 믿음직스럽다.



살짝 느슨한 전반부와 다르게 후반부는 휘몰아친다. 엎치락뒤치락 뒤바뀌는 상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미드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중간중간 배심원단의 성향을 조사한 자료가 끼어있는데 이는 하나의 트릭으로,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 뒤 무심코 지나친 부분을 다시 돌아가 읽었을 때 그가 케인의 레이더에 걸린 이유를 알 수 있는,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하나의 재미요소다. 스릴러 거장들의 찬사를 받은 스티브 캐버나의 '에디 플린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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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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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결합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유년 시절은 위험하다. 보편적으로 미화된 유년기는 순수했던 그 시절로 자주 회상되곤 하는데 기억의 더께를 거쳐 제일 밑바닥을 들여다본다면 온통 불순물로 가득할 것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순수는 그 시절이 아닌 뭘 모르는 나였으며 평생의 삶을 좌우할 조타를 잡은 이는 결코 내가 될 수 없다. 자전적 경험을 담은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는 한 여성의 생애를 다룬 단편집으로 예리하게 짚어내는 감정선이 인상적인 성장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인 온타리오주에 위치한 핸래티는 마치 경계선이라도 그은 듯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을의 계급이 나누어진 곳이다. 엄밀히 따지면 '로즈'의 가족은 하층민들이 많은 웨스트핸래티에 속하지만 강가에 위치한 집탓에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 동떨어진 집은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도는 삶을 살게 될 로즈의 정체성과도 같다. 그리고 가족들. 잦은 마찰을 빚는 새어머니 플로와 매질을 일삼는 아버지, 이복동생인 브라이언. 웨스트핸래티의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녀는 아이를 배고 어딘가로 옮겨졌다가, 다시 돌아와 또 아이를 배고, 또 어딘가로 옮겨지고, 또 돌아와 아이를 배고, 또 옮겨졌다. 라이온스클럽이 비용을 대서 프래니에게 불임수술을 시키자, 돌아다니지 못하게 가두자 등의 얘기가 나왔지만 그녀가 돌연 페렴에 걸려 죽으면서 문제는 해결되었다." p.57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다른 범주의 이야기다. 친족에게 겁탈 당하는 '프래니 맥길'의 뭉개진 얼굴에서 새어 나오는 간헐적 호흡과 울부짖음을 하나의 놀이처럼 낄낄거리며 목도하는 아이들, 거듭된 임신과 '어딘가로 옮겨진다'는 공포스러운 표현, 문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해결' 되었다는 문장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장애를 가진 여성 프래니에게 가해지는 '보편적인 의미'가 없는 폭력은 목격자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배제시키고 철저한 관찰자로 둔갑시킨다. 학교에도 가정에도 울타리는 없다. 선생도, 학생도, 부모도 아무도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웃으며 행해지는 죄악 속에서 희생양의 자리는 언제나 공석이고 그곳에 앉는 것은 언제나 약자다. 청중들에게 뒤따르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는 안도감뿐. 나의 어린 시절에도 더러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과 소문들을 떠올려보면 가끔씩 궁금해진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른이 된 내가 무법지대와 같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다 커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프래니와 같은 이들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학교에 코텍스가 전시되었을 때 희생양으로 지목된 이를 두고 "나 같으면 자살, 하고 만다." 조급함이 서린 말을 내뱉던 이름 없는 학생처럼, 단 한마디 혹은 무관심한 시선이면 충분하다.




목이 비틀린 소녀 '베키'의 아버지를 때려 죽인 '해트 네틀턴'은 아주 잘 먹고 잘 살았다. 백두 해를 넘기고 장수를 기념해 라디오에 나온 그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 버기 경주의 위험성에 대해 떠들어댄다. 하지만 정말 위험했던 건 버기 경주 따위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아니던가. 상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역할을 맡듯 '장엄한 매질'을 일삼던 아버지와 야생 백조의 아름다움을 논하던 목사의 추행이 그것이다. 폭력에 노출된 유년기는 로즈에게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야기시키고 그릇된 남성관을 갖게 한다. 투철한 기사도 정신의 '패트릭'에게서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해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간 뒤 그가 휘두른 폭력에 안도하고, 어린 나이에 부유한 농가로 보내져 온갖 핍박과 폭행을 당한 플로가 그곳을 탈출하고도 계속해서 그들의 초대에 응한 이유 역시 결핍된 감정에서 온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면 다른 곳에서 느꼈던 질서와 조절의 감각이 되살아나, 결코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난처하고 서글픈 빈곤을 보았다. 헨쇼 박사의 집이 해낸 일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고향집의 자연스러움, 당연시하며 받아들였던 배경을 파괴한 것이었다. (중략) 그것은 흉한 막대기 모양 전등을 사용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의미했다. 시도 때도 없이 돈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새로 산 물건을 놓고 악담을 하며 그것을 공짜로 얻은 건지 아닌지 입씨름하는 것을 의미했다." p.131




'자몽 반 개'에서 싹튼 가난혐오는 '헨쇼 박사'의 생활방식과 쓰는 언어(가령 로즈를 노동 계층이라 칭한 부분)의 차이가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는 계기로, 또 사랑하지 않는 이와의 결혼으로 이어진다. 진취적인 인물로 보였던 헨쇼 박사 조차 패트릭과의 관계를 두고 대단한 성과라 일컬었으니 어린 로즈의 허영은 그 뒤로도 10년을 '행복에 대한 환상'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처음부터 두 사람의 세계는 양립할 수 없었다. 낭만을 부르짖듯 왕좌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 코페투아왕에 자신을 대입하던 남자와 거지 소녀라 지칭된 여자. 그렇다면 부유함에서 오는 오만과 가난한 자의 오만엔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클리퍼드'가 '정태적인 모순'이라며 결혼생활의 권태를 당당히 선언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녀가 아는 소년들은 아무리 무능해 보여도 결국은 남자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갖춘 것보다 훨씬 큰 재능과 권위가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하도록 허가받을 거라는 사실"처럼. p.359 로즈가 그토록 원했던 특권은 어떤 이들에겐 날 때부터 그냥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여자는 활달하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무엇을 만들거나 비축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빠릿빠릿해야 하고 흥정과 관리에 능해야 하며 사람들의 가식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적인 면에서는 어수룩하고 아이 같아야 하며, 지도가 긴 단어나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우습게 보고, 아기자기하면서 알쏭달쏭 한 생각, 미신, 전통에 대한 믿음 등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이게 모두 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성향이란 말인가. 작중에서 아버지가 본 플로를 가르킨 설명인데 그에게 다중인격적 요소가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처럼 어처구니 없을 따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즈의 아버지와 같은 이들은 많다. 이성과 타인,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뭔가 다를 거라는 터무니없는 믿음, 나와 같은 세계의 사람들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는 오만. 오판은 여기서 온다. 소설 전반에 걸쳐 로즈는 꽤 자주 확언한다. 헛간에서 남몰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읊조리던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 확신한 것처럼 계속해서 타인을, 자신을 속단하는 실수를 범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쉽게 유대감을 느끼고 쉽게 사랑에 빠지며 또 상처받고 도망친다. 외국문학임에도 이야기가 피부로 와닿았던 건 올곧지 않은 로즈의 캐릭터에 있다. 누군가 지난날의 좌절이 나를 성장시켰느냐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노라 대답하겠다. 보통의 소설이나 영화처럼 주인공의 인생을 바꾸는 단 하나의 사건은 없다. 모순을 저지르고 거듭 실수하며 부딪치는 것은 자신에게 익숙해지는 과정, 말 그대로 인생이다. 그 더딘 흐름을. 딸 '애나'를 통해 처음으로 가정적인 삶과 안식처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립할 힘을 얻고 '빵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 그리고 '사이먼'의 죽음이 가져온 어긋난 충격은 로즈에게 또 한 걸음 내딛는 계기가 된다.




"그녀가 늘 떨쳐내지 못했던 이상한 수치심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연기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허튼 것에만 주목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난만 전달했던 걸 아니었을까, 항상 그 이상의 어떤 것, 섬세한 결이나 깊이나 빛 등이 있는데 자신은 그것을 포작하지 못했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은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꼈다. (중략) 그때까지 해왔던 모든 일이 때로는 실수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p.367




세월은 흘러 핸래티와 웨스트핸래티를 가르던 차이는 사라지고 많은 것이 변했다. 중년의 로즈는 이제 완벽하게 로즈를 연기하고 어릴 적 친구 '랠프 길레스피'는 완벽한 '밀턴 호머'가 되어버렸다. 살면서 자주 느끼곤 했던 출처 불분명의 수치심은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옛친구와의 조우에서 유년의 자신을 마주하며 희석된다. 이는 동생 브라이언이 혐오하는 대상들로 남매가 펼치는 언쟁 속에서 우애를 느끼고 그들의 뿌리가 여전히 웨스트핸래티에 있음을 확인하는 장면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결합으로 세상에 나온 불완전한 존재들. 어쩌면 우리가 저지르게 되는 바보같은 짓들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실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더디더라도 우리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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