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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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따뜻한 실내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런데 문틈 새로 스며드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다가, 어쩌면 이건 오만일지도 모르겠다고, 눈으로 덮인 세상에 깨끗함과 포근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이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과연 저 바깥에 있는 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라난다. 냉혹한 추위와 칼바람은 그저 우리를 오돌오돌 떨게 할 뿐이거늘.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작별>에 실린 7편의 소설에는 쓸쓸한 이 계절을 닮은 외로움과 울타리 바깥에 존재하는 외부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스스로 키워드를 꼽아보았다. 어쩐지 두 단어가 풍기는 서늘함이 비슷하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 눈 결정을 손에 꼭 쥐었다가 펴본다. 내가 존재했음을 증명해줄 만한 것이 금방이라도 증발해 버릴 물기가 전부라면 어떤 기분일까. 수상작 한강의 『작별』은 어느 날 벤치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눈사람으로 변해있었다는 한 여성의 존재론적 이야기이다. 주목할 것은 이 황당한 사태를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태도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길만큼이나 담담하다는 것. 상황을 타개 할 방법을 찾기 보단 '난처한' 자신의 처지를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늦은밤 식탁에 앉아 낙관적인 미래를 계획해보지만 늘 딱딱하게 뭉쳐 피로감을 유발하는 근육처럼 한편으론 자신에게 남은 시간(한계)를 알고 싶어 했다. 지난한 삶에서 비롯된 체념적 태도는 살을 에는 추위가 더는 고통스럽지 않음을 깨닫고 안심하게 한다. 그녀를 노예와 같은 존재로 느끼게 했던 부모와 폭력을 휘두르던 오빠의 죽음, 어느덧 멀어져버린 동생, 이른 나이의 결혼이 실패로 끝난 뒤 홀로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그녀의 삶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반복적이고 무미건조한 삶은 스스로를 지하철 손잡이나 낡은 가방과 같은 사물로 상상케 했지만 정작 사물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을 때 그녀를 녹아내리게 한 것은 인간적 감정(키스, 포옹, 눈물)이었다. "조금씩 더 녹고 있는 건지, 반대로 얼어붙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심장부근의 미온은 그녀가 생과 사의 경계에 자리했음을 암시한다.



매번 차멀미를 견디며 연인을 만나러 오는 현수의 삶은 나무늘보의 것과 닮아있다. 날카로운 발톱을 안쪽으로 굽히며 타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생존을 위해 그저 버티는 삶을 사는 것은 그녀에게 동질감 비슷한 감정을, 가느다란 실의 감각을 불러들인 게 아닐까. 하지만 타인의 아픔에 쉽게 공명하는 그런 예민한 감각은 자신을 갉아먹기도 한다. 몸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연인의 자존심을 걱정하고 부모님의 건강을 염려하며 놀랐을 아이를 다독이고 자신의 차가운 몸을 사과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사고의 피해자들은 이름 모를 죄책감으로 악몽이 되어 그녀를 찾아온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져버리는 취약한 존재로의 변형이야말로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 것은 아닐까. "홀가분했다. 미치도록 후련했다. 아니, 억울했다. 이가 갈리게 분했다. 아니, 아무것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을, 제발 더 생각을 해야 했다. 가능한 시간만큼, 조금만 더." (p.53) 내내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녀는 주어진 시간이 끝났음을 직감하고 조급해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작별의 시간은 대부분 의미없는 말들로 흘려보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그 순간이란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그리고 마침내, 부서져내리는 몸의 감각을 느끼며 그녀는 사력을 다해 뒤돌아본다. 이제 남은 것은 완전한 소멸 뿐, 하다못해 소금기둥이 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건만 그녀는 무엇을 위해 뒤돌아보았나. 그것은 어떠한 궁금증도, 미련도 아닌 고난했던 자신의 인생에 고하는 작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뒷맛이 씁쓸하다.



강화길의 『손』은 무언가 딱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 사건과 마을 사람들의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결과가 자명한 집단과 개인의 갈등 구도로 그린다. 퍽, 하고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리와 마을 곳곳에서 풍기는 쿰쿰한 내음은 그들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권력과 계급에 공포스러움을 더한다. 가끔씩 뉴스로 접하는 폐쇄적인 마을에서 벌어진 경악스러운 사건들처럼 읽고 나면 왠지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권여선의 『희박한 마음』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노인이 한밤 중에 들려오는 기괴한 소음에서 부재한 연인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뻗어나간다. 하지만 기억을 떠올릴수록 경계는 불분명해지고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아득함의 끝엔 폭력을 휘두르며 그들의 사랑을 끄라고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려퍼진다. 당당하지 못하고 무력했던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여 사람들의 얼굴은 지워지고 정체성은 흐릿해진다. 그 모습은 마치 한껏 겁을 집어먹고 움츠러든 거북이와 같아서, 한때는 충만하고 선명했을 그 희박한 마음은 뒤집어쓴 세상으로부터 더욱 깊숙히 숨어들게 한다. 김혜진의 『동네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이사한 동네에서 가벼운 사고에 휘말리게 되면서 주인공은 외부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음적 시선과 배타적인 태도를 겪는데, 이는 낯선 이들로 가득한 군중 속에서 느꼈던 평온함을 오싹함으로 변질시킨다. 더 멀리, 더 낯선 곳으로 도망친다 한들 두 여성이 편하게 자리할 곳이 있을까. 극중 인물이 끝까지 사과하길 거부한 것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와 본성 자체를 부정하는 행동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 알지. 다 알아. 다 안다고." 중얼거리던 노인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은 성경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를 재해석한 것으로, 소설과 해설을 함께 읽는 것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띈다. 도시 소돔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지만 나그네 살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자유로움의 이면에 자리한 이기주의와 외부인을 배척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잘못된 이념을 가진 집단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선을 행한다는 것의 모순과 진정한 의미도 되짚어보게 된다. 언니라는 호칭이 주는 친밀감에 어쩐지 마음이 울적해지는 정이현의 『언니』는 모든 순간을 정직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개인과 속물적인 세상을 한 발 물러선 타자의 시점으로 서술한다. 극중 인물들이 교수의 중국어교재 번역 일을 떠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결코 낯설지 않은 그림이다. 권력 지향적이고 탐욕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타 전문대학 출신이 석사과정을 밟는 것을 학력세탁이라며 억울해하는, 이른바 수평폭력을 양산한다. 전쟁(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대비하기 위해 허섭스레기들을 주워 모아 얼기설기 만든 자기만의 방은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물려지고, 세상 앞에 무력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엎드려 앉아 숨을 깊게 들이쉬는 일 뿐이다. 격변의 시기에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과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배경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기억을 복기하듯 서술된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불쑥 솟아오르는" 시대이지만 동시에 "모든 게 변하고 있고, 그런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미래는 영원히 당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미래는 공백이다"라는 말처럼 좋았던 것들은 점차 사라지고 우리는 그저 현재를 반복해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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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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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유독 '공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소설 속 인물의 심리 상태에 빠져들어 덤덤하게 읽다가도 단 한 줄의 문장에 눈물이 왈칵 차오른다. 책 속을 메운 수많은 문장들은 현실 세계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 그러면서도 자칫 흩어지기 쉬운 찰나의 세세한 감정들이 이어져 있다. 어떤 거창한 이야기 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좌절감, 수치심, 죄책감의 감정을 서술하며 독자를 위로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것이 당신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무척이나 진부해보이지만 사실 큰 힘이 되니까. 때론 단순한 공감이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나은 법이니까. 




우리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무해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렇다면 무해한 사람이란 무엇일까. 흔히 일상적인 관계에서 볼 때 사람들 사이에서 '만만하다'고 명명되는 사람이 아닐까. 거절을 잘 못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늘 긴장하고 주위 눈치를 보는 사람. 사실 나 또한 그렇기에 단편들 속 인물들에 더욱 공감했던 것 같다. 소설에서 무해하다고 일컬어지는 인물들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유해한 사람이었으며, 주변인물들의 무지와 무관심, 오판 속에서 무해한 사람으로 더욱 견고한 벽을 쌓아간 것은 아닐까. 온전히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 은근하게 신경을 거슬리는 손 거스러미 같은, 생채기 하나 없이 백색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어느 시점 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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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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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과 진실된 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귀 기울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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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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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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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로르의 노래
로트레아몽 지음, 황현산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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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다 읽었다. 독특하고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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