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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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두어에는 모든 것이 성()을 지니고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양탄자, , 책과 같은 물건들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분쟁의 역사가 지속되는 곳, 전쟁과 죽음이 끊이지 않는 카슈미르에 성이 붙는다면 그것은 남성일 것이다. 아룬다티 로이의 <지복의 성자>에는 남성의 땅 위에서 치열하게 여성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피부색, 성별, 카스트처럼 몸의 한 부분으로 태어나는 것에 고통 받으며 분단된 나라에서 분리된 믿음으로 박해받는다. 죽음이 만연한 절망뿐인 땅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싹을 우리는 어떤 태도로 관망해야 할까. 무너지는 모국을 설파하는 이의 심정을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한편의 이야기로 당도한 인도의 역사에, 나는 답을 해야 한다는 어떤 기이한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군이 tv 촬영팀을 위해 대단히 멋진 헬리콥터 구조 작전을 펼쳤다. 온종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 특보에서 앵커들은 사실상 구조될 가치가 없는 배은망덕하고 무례한 카슈미르인들을 위해 용감하게 활약하는 인도 군인들을 향해 감탄을 표했다. (중략) 그리고 구조되지 않고도 살아남은 배은망덕하고 무례한 주민들이 있었다. p.352

 

 

인도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역사와 함께 세습된 뿌리 깊은 신분제는 오늘날까지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인도 사회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킨다. 이때껏 나에게 카스트 제도는 단순히 신분의 높고 낮음을 뜻하는 용어에 불과했었다.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을 연달아 읽고 난 지금, 나는 카스트라는 단어에 얼룩진 핏빛을 본다. 하나의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노동자는 산업재해로 눈에 화상을 입자 하루아침에 해고당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애초에 주장할 권리조차 없는 이들은 죽어서도 화장되지 못한 돌가루를 남긴다. 뎅기열을 피하려다 차에 치여 죽는 노숙자들, 사람들의 절박함을 자신의 이득으로 삼는 부패 경찰들, 대학살을 저지르고도 연이어 당선되는 정치인... 그들은 태어나는 순간 삶의 방향성이 정해진다. 이러한 상하구조적 사회에서 하위 카스트들은 타인의 배설물을 치우고, 쥐를 잡고, 시체를 운반하는 등의 일을 하며 상위 카스트의 멸시와 폭력, 죽음의 위험성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하여 남녀의 성징을 모두 갖고 태어난 히즈라 안줌의 존재는 분열된 인도와 같이 소설 속에서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 남자 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부모의 바람과 달리 아이는 용맹한 전사 테무진이 아닌 아름다운 여인 보르테 카툰에 본능적인 끌림을 느끼고 어느 날 밝은 립스틱과 금색 하이힐, 헐렁한 바지 차림의 여인을 보게 되면서 아프타브에서 안줌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부르카를 두르고 온몸을 가리는 보통의 여성이 아닌 화려한 차림의 히즈라에게 시선을 빼앗긴 것은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그녀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신의 생존을 위해 향한 곳, 히즈라들의 공동체 콰브가에서 보낸 삼십 여년의 세월동안 안줌은 여성으로서의 삶 이외엔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운명처럼 모성애를 실현할 기회를 얻고 자이나브가 보여준 신뢰에 보답하듯 어설픈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구라자트 학살 사건에 휘말리면서 또 한 번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소설 전체가 인도의 실상을 알리고 있지만 구라자트 학살뿐만 아니라 델리 학살, 유니언카바이드 보팔참사 등 실제 비극적 사건의 등장은 소설의 영역을 확장하며 읽는 우리를 그 참혹한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아이러니한 건 카슈미르인 네 명을 한방에 넣어놓고 아자디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명시하라고, 그 이념적, 지리적 윤곽을 정확히 그려보라고 하면 결국 그들이 서로의 목을 따는 상황이 연출되리란 점이다. (중략) 그건 현대 지정학의 언어 바깥에 존재하는 끔찍한 명료함에 가까웠다. p.241

 

 

자신의 정체성으로 평생을 고통 받던 안줌은 같은 이유로 구라자트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오지만 콰브가를 떠난다. 액운을 막기 위한 물건들로 무장한 채 이슬람교도를 살육하는 학살자들의 모순적인 태도는 믿음의 맹목성이 불러오는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누군가의 믿음이 누군가에겐 척결의 대상이 되고, 이러한 죽음의 이미지들은 안줌 뿐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틸로는 카슈미르의 현실과 굴레즈의 죽음을 목도한 것이 계기로 작용하고, ‘무사는 군에게 아내와 딸이 무고하게 희생되면서 이슬람 전사 조직에 들어갔으며, ‘사담에겐 경찰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아버지가 있다. 소설 속 저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진 동물들은 무력하고 천진하다. 맞서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죽음을 맞은 술탄처럼 약자에 위치한 인간은 동물과의 구분이 모호함을 느낀다. 과연 무엇을 위한 아자디일까. 승리하기 위한 우둔화는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통로이며, 정부에 대항해 싸우면서도 싼 융자를 받기 위해 삼대가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응시하는 모순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반면 비플랍나가는 체제의 혜택을 입고 안정된 길을 걸어온 인물로, 특히 겁이 많고 순응적인 비플랍은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삶을 산다. 틸로 자신도 이유를 모른 채 그러모은 절망의 기록물이 우연히 비플랍에게 가닿아 반향을 일으키고, 집주인이자 인도 정부를 상징하는 그가 소설 말미에 이슬람교도 세력과 반비례하듯 스스로 자멸하는 모습은 악인 암리크 싱의 비참한 말로와 함께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음료수 병의 폭발음이 유발한 참사에서 알 수 있듯 한껏 날이 선 양극단의 정세는 탄식을 부른다. 법적인 죗값을 치루지 않기 위해 시체를 강탈하는 행위처럼 아무렇지 않게 죽고 죽이는 그들의 일상이 무법지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도의 정치는 그리 고루하지 않다. 실제로 히즈라들의 활발한 정계활동을 생각하면 어떤 면에선 확실히 우리보다 앞서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암리크 싱이 의도적으로 무사에게 스카치를 선물하며 공격의 명분을 만드는 장면은 매우 교묘하다. 어떻게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는지를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정치적인 것이다. 최상하위 카스트 사이의 간극처럼 야만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세상이 공존하는 곳이 인도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그야말로 약자는 생존하기 힘든 땅이다.

 

 

그들은 돈, 자산, 여자를 훔쳐 도망쳤다. 물론 여자를. 여자를 물론. p.414

 

 

틸로의 집 벽면에 가득한 전쟁과 죽음의 단어들을 보고 술에 취한 비플랍은 생각한다. '무사도 없는데 누가 이런 쓰레기들을 틸로 머리에 채워 넣은 걸까.’ 시구처럼 반복해 등장하는 문장은 - 물론 여자를. 여자를 물론. - 씁쓸함을 자아낸다. 왜 버려지는 아기는 모두 여자아이일까. 만약 틸로가 남자로 태어났대도 버림받았을까? 친자식을 입양아로 키운 마리암 이페도 가족에게 의절 당하지 않고 잘 살아가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가정임을 알지만 생각을 멈추기 어렵다. 소설 속에서 여성들은 소유물처럼 취급되고 유린당한다. 여성이기도 하고 남성이기도 한 안줌은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기에 그녀의 삶은 언제나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녀들이 아기를 버리고 낙태를 하고 죽이려 시도하는 것은 모두 자신들의 생존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감히 그들에게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성들의 전쟁에 여성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희생양에 불과할 뿐인데. 갈 곳 없고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은 가정의 폭력을 피해 당에 들어가고 고통을 피해 또 다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과연 그들의 아자디에 여성의 자리가 있을까.

 

 

아룬다티 로이의 첫 번째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은 인도의 관습과 제도로 인해 한 가족의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렸다. 그리고 20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 <지복의 성자>는 좀 더 시야를 넓혀 가라앉는 인도 전체의 실상을 담아냈다. 두 소설에서 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한 인물들은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 늙은 새들은 어디에 가서 죽는가. 하늘에서 머리 위로 돌처럼 떨어지는가. - 언어를 버리고 침묵을 선택한 쌍둥이처럼 아무도 답 해주지 않는 물음에 아룬다티는 스스로 답을 써내려가듯 안줌을 탄생시킨다. 그녀는 풀 한포기 조차 자라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언제나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내밀지 않던가. 지복의 성자 하즈라트 사르마드가 목이 잘려나간 뒤에도 읊은 사랑의 시는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안줌에게 안착해 꽃을 피운다. 사르마드가 유대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힌두교인 소년과 사랑에 빠졌듯, 부모가 정해준 남성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여성의 삶을 선택한 안줌은 죽음으로 가득한 세상에 종교, 인종, 계급으로서가 아닌 고유한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낙원을 세우고 그곳이 장차 인도가 나아가야 할 길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왔던 엄마란 꿈을 원대하게 이뤄낸 그녀는 행복할 수 없다던 신의 실험체에서 보란 듯이 반증이 된다. 계급과 관습의 희생양으로 과거도, 가족도, 동네도, 친지도, 심지어 고향조차 없던 틸로는 미스제빈 2라는 희망을 품에 안고 낙원에 도달했다. 신분증을 채 갖기도 전에 사그라든,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 낙원에서 품어진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다는 어떤 시의 한 구절처럼, 카슈미르인들이 가진 이중성의 무기는 나아가 다양성이라는 화합과 포용의 상징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그렇게 다음세대의 태양은 붉게 떠오를 것이다.

 

 

이 장대한 이야기를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읽는 동안 인도의 참혹한 분쟁의 역사에 나는 자꾸만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계급을 지우고 종교를 지우니 내가 딛고 선 땅의 역사가 보였고 또 나에게서 달아나고 싶어 하는 내가 보였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이야기로써 존재되기 위해 나는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읽어나갈 것이다. 복수의 다짐을 흘려보내고 사담의 손톱에 칠해진 사랑의 빛깔처럼, 상처를 딛고 나아갈 수 있는 강인함은 오직 사랑에서 비롯되므로.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괜찮을 것이다. 더 이상 좋아하던 노래를 목청껏 부르지 못한다 해도, 흥얼거리는 콧노래만으로 모든 게 괜찮아지는 순간은 분명 찾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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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인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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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청춘들 현실에 로맨스 한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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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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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취미가 없던 어린 시절 어쩌다 읽게 되는 책들의 대부분이 에세이였다. 삶에 대한 고민의 답을 책에서 찾으려던 시도였는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아예 멀리 하는 분야가 되었다. 그때 그 시절 책에 담긴 조언은 대부분 나를 바꾸는 데에서 시작되곤 했다. 물론 더 나은 나를 꿈꾸려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나를 타박하고 채찍질하는 부정적인 조언들은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가끔씩 잘 쓰인 에세이를 일부러 찾아 읽는다. 사람 사는 것 다 비슷하다지만 나와는 다른 영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살면서 깨달은 사소한 진리를 잘 정리된 이야기로 듣는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일이 된다. 그토록 원했던 인생 선배를 만난 기분이랄까. 그런 위로를 책에서 얻는다.

 

 

저자 박애희의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는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평범하고도 미숙한 일상의 에피소드를 영화, 드라마, 소설과 시 등을 통해 풀어낸다. 지나온 삶에 늘 후회만이 가득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어긋나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러니 나를 옭아매지 말고 삶의 균형을 지키면서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랑보다는 미안함을 표현할 줄 아는 어른이 되기를, 꿈 이후의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어쩐지 그동안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던 나의 노년의 삶이 조금은 그려지는 것도 같다. 타인에게 상냥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책을 덮고서 마음에 걸린 문장들을 곱씹어본다. 본래 삶이 그러하듯 결국은 망각하게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 방송국에서 오랫동안 작가로 일했던 그녀의 전력 때문일까. 읽는 동안 잔잔한 라디오를 듣듯 어떤 편안한 따스함이 느껴졌다.

 

 

앞으로도, 우리가 계획한 인생의 엔딩은 자주 엎어질지 모른다. 인생은 영화와 달라서 등장인물도 수시로 바뀌고 예기치 못한 사건도 아무 때나 일어나니까. 그때마다 체념에 얼룩지지 않은박 선생의 말간 웃음이 민주를 위로했던 것처럼, 수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했던 이 말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괜찮아져요.” 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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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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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이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급작스러운 상실과 그 부재를 몸소 깨닫기도 전에 주변에서 쏟아지는 상투적인 위로는 오히려 감정의 스위치를 꺼버리듯 나를 둔감하게 만든다. 현실감 없는, 마치 연극과도 같은 상황이 끝나고 다시 찾아온 일상에서 떠나간 이의 부재가 느낄 때(가령 더 이상 바닥에 떨어진 당신의 머리카락을 볼 수 없다거나, 당신의 잔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뒤늦게 몰아치는 슬픔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리게 마련이다. 맥스 포터의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잃게 된 한 가족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까마귀가 화자가 되어 고통의 침잠에 함께 한다. 예사롭지 않은 말하는 까마귀의 등장은 이 소설이 우리에게 익숙한 슬픔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임을 시사한다. 슬픔은 눈물처럼 쉽게 흐르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악몽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기괴한 이미지와 폭력성으로 발현되고, 남편에게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아이들을 혼자 감당해야한다는 부담감, 새 인연에 대한 죄책감으로 형상화된다. 아빠와 아이들 곁에 머무는 까마귀는 시험하듯 불쾌한 말을 서슴없이 늘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악마에게서 가족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들이 둥지를 지키기 위해 함께 고통을 유영하는 모습에서 나는 묘한 위로를 받는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란, 다 잘될 거라는 공허한 위로는 그저 공허하게 흩어질 뿐이란 것을 알기에 저자 맥스 포터가 구구절절한 사연을 생략하고 독자의 눈앞에 들이미는 한 가족의 고통은 내 안의 까마귀와 마주하게 한다. 음산한 울음소리로 마음을 어지럽히지만 저마다의 시간이 흐르면 절망은 끝내 날아갈 것이라고, 그러니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잔혹동화처럼 때론 시처럼 이어지는 한 편의 이야기는 생각지 못한 묵직한 위로로 다가온다. 이 얇은 책의 무게감이 맥스 포터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만든다.

 

 

남자 이제 난 슬퍼하지 않게 되는 건가?

 

아니, 천만의 말씀. 넌 그저 절망하지 않게 된 것뿐이야.

슬픔은 네가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고, 슬퍼하는 데 까마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지.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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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20년만에 신작 <지복의 성자>를 발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도 소설은 낯선 영역이라 신작을 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덜 헤매고자 데뷔작부터 찾아 읽었습니다.

첫 소설을 발표했을 당시 작가는 어떤 사회적 이슈를 담은 것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인도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신분 제도와 관습은

너무도 이질적이고 공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경험이 아니고서는 탄생할 수 없는 문장들은 아름답고도 공허합니다.



<지복의 성자> 역시 초반부에서 벌써 풍겨옵니다.

아련하고 슬픈.. 우리나라 한의 정서와 비슷하달까요?



개동생도 궁금한 지복의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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