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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영혜는 핏물이 흐르는 고깃덩어리 사이를 내달리다 잠에서 깨어난다.
어스름한 새벽녘 익숙한 부엌에서 냉장고 문을 열고 마주한 것은 생경함. 죽음이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 죽음은 필수불가결한 존재.
영혜에게 그것은 폭력과 잔혹함의 이미지로,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환멸로 이어진다.
그래서 단순히 육식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는 식물이 되고자 한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
개를 끔찍하게 도살하는 모습에서, 아버지의 폭력에서, 이기적인 남편에게서
영혜의 씨앗은 점차 자라나 거대한 나무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욕망 앞에서 그들은 자멸하듯 스스로를 옭아맨다.
포식자의 입에 고이는 침에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실행하러 가는 도로위에서, 어린자식을 두고 죽음을 갈망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좀더 근원적인 문제,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인혜는 거대한 삶 앞에서 자신을 감추고 살아간다. 계속된 출혈이 심각한 병이 아님을 알았을때 그녀가 부지불식간에 느낀 감정은 안도가 아닌 낙담이었다. 과거에 얽매여 늘 후회 속에 사는 그녀에게 삶은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속수무책이다.
죽은듯 누워있는 영혜에게 음식을 입에 대주며 그녀 역시 삶을 견뎌내길 바라는 인혜. 그렇듯 자매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어릴 적 죽음의 이미지는 막연히 슬픈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지금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왜 사람은 죽으면 안 되나. 살면서 무수히 많은 죽음을 겪고 죽고 죽이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인데 왜 죽음만큼은 이토록 일관적일까. 영혜의 반문에 인혜가 답을 하지 못했듯 나 역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죽음에 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깨고나면 기억조차 잘 나지않는 꿈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