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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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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장 기간인 황금연휴, 우리가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을때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충격적인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59명이 사망했고 5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이 사건의 범인은 64세 백인 남성 스티븐 패덕으로, 경찰이 진입했을때는 이미 자살한 뒤였다. 은퇴한 뒤 평범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어쩌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격범이 되었을까? 범행 동기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사람들은 비극적인 사건에서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건에 늘 결정적 이유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999년 0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리틀턴에 위치한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로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모두가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을 던졌다. '콜럼바인'은 그 비극에 대한 보고서이다.



나비의 날개짓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사건이 터지고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언론에서 추측성 보도가 나가면서 용의자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외톨이, 사회 부적응자, 동성애자, 고스족, 깡패. 그중 가장 많은 입소문을 탄 것은 일명 TCM. 트렌치코트를 입은 마피아였다. 총격범들이 트렌치코트를 입긴 했다. 하지만 마피아는 아니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범죄자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지우길 바란다. 인상이 나쁘다고, 옷차림이 특이하다고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 사실상 살인자처럼 생긴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 총격범의 정체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좀처럼 믿지 못했다. 똑똑하고 모범적이었으며 모두의 환심을 사는 아이들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공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구스 반 산트 감독 <엘리펀트> (2003)



"역겨운 세상이 너무너무 싫다." 에릭 해리스가 사건 일 년 전부터 작성한 일지의 첫 문장이다. 그는 사건의 주동자였고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으며,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면서도 주위 사람 모두를 속아넘겼다. 그에게 거짓말은 일종의 놀이나 마찬가지였다. 또다른 가해자 딜런 클레볼드는 에릭 해리스와는 달리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이였다. 지독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사랑과 죽음을 갈망했다. 그래도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900발 가량의 탄환과 총기를 사들이고, 집에서 대량의 폭탄을 제작했으며, 차량 무단침입으로 교화 프로그램까지 이수했다. 그 사이 계속해서 크고 작은 범죄를 일으켰고 여러 차례 신고 된 기록까지 존재한다. 이들에게 거대한 운이라도 따른 것일까. 누군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어쩌면 이 거대한 참극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에릭의 아버지는 주문 물품이 들어왔다는 총포점 직원의 전화를 받고도 잘못 걸려온 전화쯤으로 넘겼고, 딜런은 창작수업 과제물로 폭력성이 심각한 단편소설을 써낸 뒤 교내 상담과 학부모 연락이 취해졌지만 이들 역시 겨우 소설쯤으로 치부했다. 경찰은 에릭의 집 뒷마당에서 파이프폭탄을 발견했지만 조악하다는 이유로 조사 조차 하지 않았다. 되짚어보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비극의 전조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어찌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내 아이가, 내 급우가, 내 이웃이 이런 끔찍한 살상극을 벌일 줄이야.




비극을 더 비극적으로. 사실상 사건은 20여분 만에 종료 됐고 총격범들은 계획대로 자살했지만 콜럼바인 사건은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잡음을 남겼다. 아비규환(阿鼻叫喚)속에서 FBI와 제퍼슨 카운티 보안관서의 초기대응은 형편없었고, 언론은 무책임했으며, 탐욕적인 기회주의자들이 판쳤다. 한편 제퍼슨 카운티 당국은 자신들의 실수가 드러날 것을 염려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년 동안 거짓말을 일삼았다. 화가 난 희생자 가족들과 지역 기관의 법정싸움이 이어지자 여론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 칼럼니스트가 가족들이 비극에서 "단물을 빨아먹는다며" 몰아붙인 것이다. 이미 수백만 달러를 챙겨놓고 "전례 없는 고통 속에서 콜럼바인 희생자들은 아직도 더 많을 것을 얻으려고 손을 벌리고 있다" 며 폭언을 했다. 희생자 부모단체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 어처구니 없고도 허무맹랑한 발언을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면서..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비극은 반복된다. 외양간만 고친다고 일이 끝나지 않는다. 사건은 끊임없이 터질 것이고 우리는 두 눈을 부릅 떠야 한다. 95년 4월 오클라호마시티에서 티머시 맥베이가 테러를 일으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에릭은 그를 능가하고 싶었다. 설치한 폭탄이 불발되지 않았다면 그의 계획은 성공했을 것이다.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죽였다. 본문에서도 짧게 언급이 되는데, 그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고 에릭과 딜런을 우상으로 여겼다고 저자는 짐작한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릴때 이민 간 조승희는 지속적인 인종차별과 집단따돌림을 겪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본문에 일언반구도 없다. 콜럼바인 사건을 낱낱이 밝히고자 한 데이브 컬런이 왜 조승희 사건은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했을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조승희에 영감을 받은 이들이 또다시 총을 들었다. 지독한 피비린내는 가실 줄을 몰랐다. 테러를 일으킨 자들이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기현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콜럼바인 사건의 진상은 규명됐다. 우리에겐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았다.



"인간은 쓸모없는 존재다." 에릭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열등한 자를 처벌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결국 이러한 생각이 거대한 폭풍이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 휩쓸었다. 존 스타인벡의 <하늘의 목장>에 등장하는 백치 천재 툴라레치토는 비범한 능력을 가졌지만 사람들이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정신병원에 가둔다. 재능 있는 부적응자에겐 더 많은 시간과 사랑, 보살핌이 필요한 것이라고, 에릭은 툴라레치토에 자신을 투영하고 화를 냈다. 딜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내리막 소용돌이'라고 표현했다. 인더스트리얼 밴드 Nine Inch Nails의 The Downward Spiral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치던 남자가 결국 권총을 입에 물고 자살한다는 내용의 곡이다. FBI 부서장 퓨질리어는 오랜 시간 동안 에릭과 딜런을 이해하고 그들의 동기를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가해자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할까? 분명한 것은 두 가지다. 이들은 외톨이도, 욱해서 저지른 우발적 범죄도 아니라는 것.



한때 콜럼바인은 비극의 상징이었다. 사소한 불행에도 사람들은 콜럼바인 탓을 했다. 학생들과 희생자 가족, 지역 주민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을 겪었고 자극적인 것만을 좇는 언론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겨냈다. 교장 프랭크는 은퇴를 미루고 학교에 남았고, 아이들은 하나로 뭉쳐 서로에게 힘이 돼주었다. 희생자 가족인 톰 마우저는 총기규제에 삶을 바쳤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콜로라도에 SAFE(총기에서 벗어난 건전한 삶) 법안 마련이 마련됐지만, 콜럼바인 사건으로 법제화된 전국적 총기규제 법안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13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시스템의 헛점이 여실히 드러난 콜럼바인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진정한 언론인 데이브 컬런의 9년간의 철저한 조사는 사고 현장을 생생하게 전했을 뿐 아니라 사건 그 이후의 삶까지 들여다본 최초의 완벽한 보고서로 탄생했다.


영화 <엘리펀트>의 마지막 장면은 먹구름 낀 하늘이었지만 <콜럼바인>은 새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어두운 시간은 지났다.


"폭력으로 향하는 과정은 여기저기 놓인 표지판을 따라가는 점진적인 길이다."

- FBI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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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누런 개 - 매그레 시리즈 05 매그레 시리즈 5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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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레 반장의 태연자약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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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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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프 맛있게 끓이는 법


하나. 적정 온도를 유지할 것. (고온에선 끓어 넘친다.)

둘.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저어줄 것. (겉에 막이 생기는 것을 방지!)

셋. 고독을 견딜 것.




사람들은 익명성 앞에 솔직해진다. 요리 동호회 채팅으로 알게 된 이들의 만남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면서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던 이 피상적인 관계는 막을 내린다. 사교적이지 않지만 진솔한 매력을 가진 작가 지망생 현수와 어딜가나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시집 잘가는 게 목표인 예쁘고 착한 홍아. 프랑스 유학을 다녀와 족발집에서 알바하지만 요리사가 꿈인 정선. 너무도 다른 분위기의 세 사람이 만났다. 홍아에겐 미주알 고주알 다 떠들면서 현수에게는 퉁명스러운 정선은 어딘지 모르게 속을 알 수 없다. 분명한건 이들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는 것.



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실수를 하고요. 하지만 실수한 수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나를 보았다.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사과란 말로만 '미안하다'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실수한 것에 대해 어떤 불이익이든 대가를 치르겠다는 뜻 아닌가요? 세상은 다 이런 것일 수도 있지만, 다 이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자신이 '다 이런 것'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요."  p.156



현수에겐 분명 매력이 있다. 키 크고 무뚝뚝하고 할말 다하는 성격이라 남자들이 기피하는 타입인 그녀. 방송국에서 선배 작가가 자신의 시놉시스를 표절했음을 알고 담당피디에게 찾아가 묻자 "이 작가, 미안해요. 그렇지만 세상이 다 그런 거예요."  태연히 인정하고 영혼없이 사과한다. 조용히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말한다. 세상이 다 그렇다는 건 당신이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세상이 다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세상은 다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상처를 주는 거잖아. 다른 사람과 사는 시간보다 나하고 사는 시간이 훨씬 기니까...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는 쪽이 낫지 않니?" p.158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만큼 나를 망치는 길은 없다. 늘 자신을 감추고 포장하는 데 익숙한 홍아보다는 현수처럼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자기 자신이 심어 놓은 환상을 먹고 자란다. 내가 사랑했던 그는 내가 생각했던 그가 아니다. 그저 내가 물 주고 햇빛에 내놓고 키운 꽃 같은 존재다. 꽃은 원래 그대로인데 이름 붙이고 의미 붙이고 애착한 건 나다. 꽃이 내게 이름을 붙이라고 하지도 않았고 의미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내 뜻이었다. p.180



선천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현수, 사랑 받는 것에 익숙한 홍아, 어릴 적 가족에게 받은 상처로 평생 단 한 명의 여자하고만 사랑하겠다던 정선, 다신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정우에게 찾아온 운명적 사랑까지. 저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이유와 변명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에 대한 궁금증이 다 채워지지 않을때 사랑은 배(倍)가 된다. 내가 사랑했던 것이 당신인가, 내가 키운 환상인가. <맛의 생리학>의 저자 브리야 사바랭의 말을 살짝 바꿔 묻는다. "당신이 누구와 섹스했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드리겠습니다." p.57 당신이 만나는 사람이 당신을 말해주는 법. 과연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당신은 사랑을 하며 고독을 견딜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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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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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이상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어쩐지 모든 일이 뒤틀려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하루 종일 평생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나씩 하나씩 찾아온다. 내겐 오늘이 그랬다. 9.p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잘만 쓰던 면도기가 부러지는 것을 시작으로 남자에게 본격적으로 재수 옴 붙은 하루가 시작된다. 부랴부랴 길을 나서던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끼어 두 다리가 대롱거리는 사람을 만나지만 도움을 청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서둘러 떠난다. 중력이라도 더욱 거세게 작용한 것인지 천신만고 끝에 회사에 도착하지만 구급대원은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끼었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끼어있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을 나무라던 남자는 결국 그들과 다름이 무엇인가. 현대인들의 무심함을 블랙 코메디로 풀어낸, 제목처럼 강렬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시작으로 독특한 9편의 이야기가 담긴 김영하 소설집엔 다양한 맛이 있다.



인물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사진관 살인사건', '흡혈귀'. 번개를 맞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피뢰침'. 상스러움이 하늘을 찌르는 '비상구'. 불륜을 저지른 뒤 몸이 투명해지는 남자의 이야기 '고압선'. 석상의 머리를 뚫고 자랐지만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 '당신의 나무'. 꽉 막힌 공간에서 시작된 바람 ' 바람이 분다'. 달과 같은 내면의 이야기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인생을 흉내내는 영화는 인생보다 더 지겹다. 98.p  매너리즘에 빠진, 내면의 무언갈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이야기. 속도감 있는 구성과 깔끔한 문장이 인상적인, 다분히 남성적인 소설이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벌써 네번 째인데, 다음 번엔 소설이 아닌 산문집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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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승의 선지자
김보영 지음 / 아작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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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초연해지는 우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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