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읽지 않아도 배부른 마음을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묵은지까지가 유쾌하…, 하하하…. 사실 썩 유쾌하진 않고요? 뭔 괴랄한 소리냐 싶으시겠지만 제가 몇 해 동안 꾸준하게 불성실한 서재활동을 이어오면서 처음으로 리스트를 뽑아봤습니다.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취향도 기준도 없이 남들이 재밌다고 하면 아묻따 데려와서는 아무렇게나 책장에서 비어져 나와 방치된 책들은 제 어지러운 정신머리만을 나타내는 듯하네요. 



책장이 크지 않아서 이렇게 한 칸을 앞뒤로 꽉꽉 채워서 쓰고 있어요. 



이렇게 끼어버린 벽돌들의 쾌적한 공간을 위해서라도 어서 유배 보낼 녀석들을 솎아내야 합니다.



늘 계획따윈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충동적 독서를 해왔는데 무분별한 소비를 지양하고 재고파악도 할 겸 남은 두 달 플러스 21일 동안 책장 파먹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주제는 이 제목 모르는 사람 없을 만큼 유명한 책이지만 막상 읽은 사람 찾자면 쪼오끔 힘들 수도 있는 그런 책! 한마디로 스테디 고전 위주로 골라보았습니다. 요즘 웹소설에 빠져서 문학을 멀리했는데 이렇게 페이퍼로 남겨 놓으면 책임감 때문에라도 좀 읽겠죠..?



첫 번째로 밀란 쿤데라 님 모셔봤습니다. 집에 이분 책이 네 권이나 있는데 읽은 게 하나도 없단 걸 깨닫고 혼자 깜짝 놀랐어요. 이름이 너무나 익숙해서 마치 읽지 않았는데 읽은 듯한 이 느낌적인 느낌.. 이왕이면 대표작이 낫겠다 싶어 이 책으로 골랐습니다. 네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배경으로 역사적,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라고. 예전에 한창 필독서로 추천이 많아서 고민도 않고 구매했었는데요. 이분이 한 농담도 궁금해서 이 기회에 해치워버릴까 싶어 리스트에 넣었다가 뺐어요. 욕심내다가 다시 저 어두운 책장에 박혀 못나오는 수가 있으니까요. 후기를 살펴보니 극강의 호불호로 나뉘는 모양인데 과연 저는 어느 쪽일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표지에 아저씨만 봐도 골머리 꽤나 아프겠구나, 지레 겁먹게 되는 소설. 

맨 첫장을 펼쳤더니 벌써 고독해집니다. 보통 가계도가 필요한 소설은 공부하듯이 메모하며 읽어야 해서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거든요.. 뭐 어쨌든 잘 익은 묵은지를 찾기 위한 여정이니 감수해야겠지요. 다행히 마르케스의 글은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로 경험을 해보아서 조금 부담이 덜하기도 합니다. 

죽지 않는 사람들, 부엔디아 가문의 고통과 절망을 다룬 이야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죠? 네, 아직도 안 읽었네요 제가.. 유명세 만큼이나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어서 번역 선호도에 따른 선택지가 제일 넓은 책 되시겠습니다. 소년 싱클레어의 자아탐구 성장소설인데요.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둘로 나뉘는 것 같아요. 읽을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는 인생소설이거나 당최 뭔 소린지 모르겠다거나. 헤세의 책은 몇 권 읽어보기도 했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많아서 저의 선호도는 데미안을 기준으로 판가름이 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리스트로 뽑은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미디어에서 유독 많이 거론된 사회비판 풍자소설이에요. 1945년에 출간된 소설임에도 작금의 사태와 비교하며 오웰의 통찰력에 감탄하는 감상을 많이 보아서인지 가장 기대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웃님들은 다들 읽으셨겠죠? 이 책으로 출발선을 끊어야겠습니다. 가장 얇기도 하고요? 얇고 알찬 책이 제일 좋거든요.










번외로 알라딘에서 젤 처음 산 책! 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것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타노트 꼽아봤습니다. 올해로 14살 먹었네요. 세상에나.. 무려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을 동안 이 두 권을 안 읽었다니.. 어릴 때 베르베르 책 읽고 독서의 참맛을 잠깐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죠. 추억여행 떠나듯 읽어봐야겠습니다. 






다독하시는 분들은 다소 협소한 리스트에 실망하셨겠지만 거북이의 속도로 읽는 저는 완독률 백퍼센트가 아주 무거운 과제처럼 느껴지네요. 왜 늘 일을 사서 만드는가. 마구잡이로 사들이던 대가를 치뤄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종스텝으로 도입부에 대한 악명이 자자한 <장미의 이름>이나 완독한 사람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율리시스>, 시작이 어렵지 그래도 한번 펼치면 재밌다는 벽돌책 <코스모스> 등등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책들도 쾅쾅 묵은지 타파해보려고 합니다. 2022년이란 숫자에 낯가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남은 한 해 동안 이웃님들따라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0-10 14: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쥬님 책장 속 묵은지 독파
응원합니다 🤗
전 읽다 만 이북들도 수백권🙊

2022-10-10 14:21   좋아요 2 | URL
이북 진짜 말도 못해요.. 다 읽지도 못할 책들 ㅠㅠ 응원 감사합니다! 😊

프레이야 2022-10-10 14: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묵은지 파먹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ㅎㅎ
누워있는 우울과 몽상 발견했어요
제 책꽂이에는 서 있습니다. 화이팅.

2022-10-10 15:06   좋아요 2 | URL
오? 우울과 몽상 재밌나요? 몇 년째 기대중인지 모르겠어요😅 다독가님들 많이 들러주시네요. 응원 감사합니다!

라로 2022-10-10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도 벌써 입에 침이 고였어요!!! ㅎㅎㅎ 코스모스 정말 좋았요!! 저같은 사람도 읽었으니 쥬님 시작만 하시면 될듯요!! 그런대 올려주신 리스트가 대단하네요!!!👍

2022-10-10 15:12   좋아요 0 | URL
바쁜 와중에도 다독하시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코스모스는 이름만 들어도 두근두근 설레는 책이에요ㅎㅎ 라로님 추천이니 리스트 독파하고 일순위로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10-10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묵은지 속에서 꺼낸 책들!
모두 좋은 책만 선택하셨네요.
안정효선생 번역의 ‘백년동안의 고독‘,
너무 좋았습니다^^

2022-10-11 10:32   좋아요 2 | URL
오 제가 번역가를 제대로 선택했네요😁
그나저나 날이 급격히 쌀쌀해졌네요~
컨디션 조절 잘 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페넬로페님!

그레이스 2022-10-12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지러운 정신!
그거 저예요 ㅠ

2022-10-13 08:32   좋아요 2 | URL
같이 정리해 보아요 🤗
 

독서를 하다보면 이런 우연을 더러 맞닥뜨린다. 새롭게 알게 된 단어나 혹은 관심가는 작가의 이름, 책의 제목을 책 속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번에는 글쓰기란 행위가 일으키는 효과에 대해 다른 이견을 가진 작가의 말을 연달아 읽은 책에서 발견했다.
글쓰기에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어쩌다 쓰는 장문의 서평이 그나마 글쓰기에 해당하는데, 거지같은 나의 문장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한문장 한문장이 버거운 사람으로서 알라딘 서재에 매일같이 장문의 포스팅을 올리며 활기를 불어넣는 분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정영수의 말처럼 글쓰기는 외롭고 우울하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말처럼 끝을 맺어야 비로소 행복감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라고 감히 헛소리를 해본다. 책이나 읽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떤 말로 시작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살다보면 드물게, 서로 다른 톱니바퀴가 딱 맞아떨어지듯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저 또한 그런 경험을 했다는 진부한 표현을 하는 수밖에요. 몇 해 전부터 당신의 글은 내 책장에 잠들어있었고 올 초 우연한 계기로 조금씩 읽어나가게 된 것이 어느덧 한해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글은 제 삶에 잔잔하지만 멈추지 않을 파동을 일으켰지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지만 저의 서툰 글 솜씨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에 그 모든 말들을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로 대신해보려 해요. 왜냐하면 이렇게 편지를 쓸 결심을 하게 된 것이 모두 그녀의 소설 덕분이거든요.

 

먼저 소개할 책은 니콜 크라우스를 세상에 알린 대표작 <사랑의 역사>입니다. 혹여나 제목 때문에 당신이 흥미를 잃을성싶어 서둘러 덧붙이자면,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지독한 외로움과 상실을 맞닥뜨린 사람들이고 사랑보다는 역사에 방점이 찍히는, 남겨진 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최근 몇 해 사이에 사랑에 대한 저의 생각은 크게 바뀌었고 그로인해 까마득한 어린 시절과 지금의 저에게 있어 가장 변화된 점을 꼽아보자면, 언제까지고 저는 혼자일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레오폴드 거스키라는 인물이 평생을 온몸으로 감당해낸 외로움의 통증이 저에게까지 전해진 듯 마음 한켠이 저릿한 것은. 어쩌면 그 좁은 방안을 가득 메운 고독함이 제게 당신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유대인이고 고향을 덮친 죽음을 피해 달아난 유령이에요. 기차표 사는 법을 모르지만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언제나 그를 옭아매기에 누구에게 묻지도 못 한 채 떠나는 기차들 뒤로 우두커니 서있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렇게 자신을 지우며 살았던 그가 죽음의 문턱이 가까워오자 세상에 반발하듯 온몸으로 소리칩니다. 불쾌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해서 진상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죠. 돌아갈 곳도, 사랑하는 여인도, 자식도 잃은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 길만은 외롭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크라우스의 소설엔 항상 작가가 등장하는데 <사랑의 역사> 속 잊힌 책 사랑의 역사가 인물들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듯이 편지 또한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편지가 발신인의 손을 떠나면 과거의 산물이 되듯 거스키에게 중요했던 사람들은 전부 과거 안에서 살아 숨 쉬죠. 현실의 모든 그리움과 외로움은 결국 거스키 혼자의 몫으로 남아요. 여기서 저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를 철저하게 홀로이게 만든, 사랑이란 게 정말 무엇일까요. 찰나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게 하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 같은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에게나 당신께도 영원한 물음으로 남을 테지만요. 어쨌거나 그들은 열심히 나아갑니다. 연인이 좋아한 책을 이해하고자 새로운 언어에 뛰어들고, 슬퍼하는 동생을 위해 어린 누나는 상상력을 동원해 모험가 아버지를 탄생시켜요. 그리고 오직 당신만을 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함께했던 시간보다 훨씬 긴 세월을 홀로 살아가죠. 한 줄기 희망마저 잃고 죽음을 기다리던 마지막 순간 거스키는 소녀 앨마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의 역사를 증명 받게 됩니다. 사랑의 역사가 원작자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돌며 또 다른 사랑의 역사를 만들고 있었던 거죠.

 

오직 연인 앨마를 위해 글을 썼던 거스키는 전 생애에 걸쳐 단 두 권의 책을 남깁니다. 그중 책과 동명의 소설은 살짝이나마 그 내용을 엿볼 수 있지만 아들 아이작에게 남긴 책은 베일에 가려져 있어요. 지척에 두고도 다가설 수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을 크라우스의 다음 소설 <위대한 집>에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물탱크에 갇힌 상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탱크에는 무수한 전극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상어는 고통으로 신음하지만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해요. 그 전선을 타고 사람들이 꾸는 악몽이 쉴 틈 없이 넘어옵니다. 어느 작가가 그랬지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그렇다면 같은 고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의 불행도 제각각일까요? 크라우스가 들려주는 유대인의 역사, 전쟁의 상흔은 <위대한 집>에 등장하는 많은 등장인물들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이들과 남자들은 아내를 잃고 어머니를 잃습니다. 저는 이 얽히고설킨 이야기 속에서 집이란 공간을 모성애로, 아버지는 삶 그 자체로 받아들였어요. 역사적으로 핍박받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에게 위대한 집으로 돌아갈 길은 결국 기억뿐이거든요. 그래서 남겨진 남자들이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을 살았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악몽 같은 기억들이 경계선 너머로 넘어올 수 없게하기 위해 자기 안의 방에 들어가 스스로 견고한 벽을 세운 여인들 말이에요.

 

그중에서도 저는 네이다라는 인물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가장 어리석고 이기적이지만 어찌보면 지혜로운 인물이기도 하지요. 여기서 책상은 고통의 유산으로 상징되는데 그녀는 이 책상을 쫓아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책상의 이전 소유주를 닮은 청년을 만나 한낮의 달콤한 허상에 잠겨요. 청년의 얼굴에 스친 고통을 자신이 깨끗이 닦아줄 수 있다고 믿죠. 하지만 그녀는 엄마가 아니에요. 유일하게 엄마가 되기를 거부한 인물이고 그러한 모성애는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책상을 오래 소유했지만 진정으로 가질 수는 없었지요. 모호하게 끝나는 이 이야기의 끝은 영원히 알 수 없지만 저는 소설 말미에 네이다가 일으킨 사고가 그녀의 고해를 이끌어냈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고통의 파동이 유산을 통해 전해 내려왔듯 그녀가 일으킨 충돌이 그 고리를 끊어내는 첫 파동이 되기를, 사람들의 악몽에서 상어를 구출해내고, 아버지와 아이들이 서로를 용서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굳게 잠긴 서랍은 열어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로 찾고자 하는 진실은 거기에 없을 테니까요.

 

<위대한 집>이 벽을 쌓은 채 살아간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었다면 <어두운 숲>은 그 벽을 허무는 자기 해체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크라우스는 우리가 성장하면서 정형화된 관습에 둘러싸여 세상을 보는 방식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해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원을 향해 거꾸로 가는 회귀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크라우스는 니콜이라는 자신과 분신인 인물의 입을 빌려 글쓰기에 대한 회의를 드러냅니다. “애초에 자유로움의 행위로 시작했던 것이 또다른 형태의 결박이 되었다고 말이죠. 현실에서 나를 결박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것들을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이러한 뒤늦은 질문은 우리 스스로 끌어내야 하는 물음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삶을 산다는 것은 결박당하는 일이고 그것을 깨뜨리는 것 또한 우리 스스로의 몫이 아닐까요. 흥미롭게도 크라우스는 이 소설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숨겨진 삶을 직조해냅니다. “진정으로 살았던 적 없는 사람, 자신이 문학의 비현실 속에 존재하고 이 세상에는 주소지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던 그를 크라우스가 문학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생명을 불어넣은 거죠. 그 안에서 니콜은 이끌리듯 카프카가 남긴 삶의 궤도를 따라 돕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버린 남자와 방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니콜, 그들은 과연 무사히 어두운 숲을 빠져나왔을까요? 결국 답을 알기 위해선 계속 나아가는 것만이 방법이겠지요.

 

이로써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마쳤습니다. 인물들의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고독에서, 스쳐간 페소아란 이름에서, 니콜이 자신의 불안을 향유한 사막 한 가운데서 저는 당신의 말들을 떠올렸어요. 잔잔한 수면 위로 떨어진 돌처럼 강력해서 언제까지고 멈추지 않을 기세였죠. 그러니 소아르스, 먼 미래의 누군가가 당신의 글로 인해 버거웠던 영혼의 무게를 한 꺼풀 덜어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궁극엔 그 모든 고뇌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일상의 거리에서 사라진 한 사람일 뿐일 테니까요. 부디 나의 편지가 당신에게 작은 기쁨이 되기를 바라며.

 


202012월의 어느날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0-12-16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니콜 크라우스 재개정판이 나온
다음에 <사랑의 역사>와 <어두운 숲>
을 샀습니다.

네 그리고 <사랑의 역사>는 읽다
말았네요.

이제 중고서점에 나왔더라구요. 아이구
억울하다.

이제 <위대한 집>을 살라구요.

2020-12-16 19:35   좋아요 0 | URL
오 그러셨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두운 숲이 가장 어렵더라구요ㅎㅎ
레삭매냐님의 사랑의 역사 재도전을 응원합니다!
서재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scott 2020-12-25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쥬님,내년 4월에 니콜에 새 단편집 출간예정(일정이 바뀜 ㅋㅋ하드커버가 11월20일에 출간되었네요 제목이 To Bea Man이래요.)
니콜에 작품 좋아하는 1人이
쥬님 서재방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가여 ㅋㅋ
┼..:..:..:..:..:..:..:..:..:..:..:..:..:..:..:..:..:..┼
│*** Merry ☆ Christmas!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I I         ☆
│ *** Merry ..:+ +:.. Christmas! ** ★
┼``:``:``:``:``:``:``:``:``:``:``:``:``:``:``:``:``:``┼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2020-12-25 00:16   좋아요 1 | URL
어머나 이런 선물 같은 댓글!!ㅠㅠ
트리가 넘 눈부셔서 눙물이 나네요.. ㅠㅠㅎㅎ
단편집 소식까지 넘넘 감사해요!
좋은 꿈 꾸시고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스콧님^^

scott 2020-12-25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심해서 눈팅만 ^@@^ 오조오억년 ㅋㅋ 쥬님 즐쿰 ^.~

scott 2020-12-31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쥬님 2021년 새해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복주머니 하나 놓고 가여 ㅋㅋ

해피뉴이어 !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2020-12-31 14:57   좋아요 1 | URL
댓글요정 스콧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 <다시, 올리브>가 16일 출간된다.

퓰리처상이라는 근사한 타이틀 덕분에 내 책장에 안착한 <올리브 키터리지>가 나의 게으름으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는데 <다시, 올리브>의 프리뷰단 모집글을 발견했다.

안 읽은 책을 뒷면부터 들추는 기분이라 스포 당하는 기분으로 자연스레 신청 버튼으로 손이 움직였다. (..?)

아무튼 대충 그런 마음가짐으로 단편 엄마 없는 아이를 읽어나갔더랬다.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는 주인공 올리브 그리고 아들 내외와 손주들의 방문.

여느 평범한 가족들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자꾸만 삐끗하고 어딘가 날이 서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다보니 아무래도 화자인 올리브에게 더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들 크리스토퍼와 며느리 앤과 낯설고 무뚝뚝한 아이들이 나에게도 달갑게 느껴지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불편한 기분으로, 빨리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마지막장에 가서 예기치 못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앞선 모든 상황들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아마도 부모와 자식 양쪽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요상스럽게도 올리브가 자신의 실패를 인지하는 장면에서는 빨리 앞선 이야기를 찾아 읽고 싶어서 마음이 간질거렸다. 아마도 그때엔 처음 만나는 올리브에게 남다른 동질감을 느낄 것 같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HBO에서 사부작사부작 4부작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으니 원작을 먼저 읽고 드라마를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딴 얘기지만 앤이 가슴을 내놓고 모유수유하는 장면에 올리브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니 왜 미드 오피스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혹시 이 대사 아는 분 계시나요?

메레디스, 유어 붑 이즈 아웃!”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0-11-11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요!! ㅋ

2020-11-11 16:11   좋아요 0 | URL
오! 찌찌뽕..ㅋㅋㅋ

비연 2020-11-11 1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드라마 킵 해놓고 있다가 책 다시 보고 봐야지 했는데 ˝다시 올리브˝가 나온 거죠. 두 책다 읽고 드라마 읽어야지~

2020-11-11 16:13   좋아요 1 | URL
저도요저도요~ 드라마도 평이 좋더라구요~^^

라로 2020-11-12 13:24   좋아요 1 | URL
드라마 아주 좋았어요!! 강추
 



<작은 것들의 신>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20년만에 신작 <지복의 성자>를 발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도 소설은 낯선 영역이라 신작을 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덜 헤매고자 데뷔작부터 찾아 읽었습니다.

첫 소설을 발표했을 당시 작가는 어떤 사회적 이슈를 담은 것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인도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신분 제도와 관습은

너무도 이질적이고 공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경험이 아니고서는 탄생할 수 없는 문장들은 아름답고도 공허합니다.



<지복의 성자> 역시 초반부에서 벌써 풍겨옵니다.

아련하고 슬픈.. 우리나라 한의 정서와 비슷하달까요?



개동생도 궁금한 지복의 성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