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독서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뇌는 외부 세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정보를 받아서 신경계 모형으로 변환한다. 책의 글자를 눈으로 훑으면 글자에 내포된 정보가 전기 파장으로 변환되고, 뇌가 그 파장을 받아 글자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모형을 생성한다. 책에 적힌 단어들이 경첩 하나로 매달린 헛간 문을 묘사하면 독자의 뇌에서도 경첩 하나로매달린 헛간 문 모형을 생성하는 것이다. 독자는 머릿속에서그 장면을 본다. 마찬가지로 책 속의 단어들이 무릎이 뒤집혀달려 있는 키 3미터의 마법사를 묘사한다면 독자의 뇌는 무릎이 뒤집혀 달린 키 3미터의 마법사의 모형을 생성한다. 독자의뇌는 작가가 원래 상상한 모형의 세계를 각자 다시 구축하는것이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진정한 작업은 예술을 수용하는사람의 의식에서 그 자신과 예술가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라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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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대한 효도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 가능한 것이 바로 법을 가진 사람 마음대로 법을 주무르는 인치 문화이다. 이 효도와 충성의 공간에 들어서는 것들이 이른바 힘을 가진 기관들과 나이 많은 사람들이다. 힘을 가진 기관들은 스스로를 국가로 자리매김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모로 자리매김하며 군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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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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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90년대 중반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외화 '환상특급' 소설 판 같다. 그때 당시 환상특급은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넘어 초자연적인 현상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소설집 형식으로 세 네 편씩 묶어서 방영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시공간을 만드는 인부들' 이었다.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공간을 0.0000001초 뒤의 내가 쓸 공간으로 인부들이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가구 위치며, 소품 하나하나, 먼지 위치까지 그대로 만들어 낸다. 바뀐 거라고는 먼지의 위치 뿐 이다. 신선함을 넘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박민규의 '카스테라'가 마치 그러하다. 환상특급을 책으로 읽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렵다. 같은 장르의 김언수 작가의 캐비닛은 너무 재미있게 흠뻑 빠져서 읽었는데 '카스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의 평이 어렵고 이해가 안 된다 이다. 나 또한 어렵고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 무슨 뜻일까? 너무 고차원이다. 많은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냥 이야기로만 읽는다면 흥미롭고 재미있다.

사람들은 바랄 수 없는 현실에서 꿈을 꾸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내 앞에 있는 현실이 시궁창 같을 때 뭔가 기적이 일어나 이 시궁창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공상, 판타지 소설과 영화에 빠지는 이유다. '카스테라'를 끝까지 읽은 이유 이기도 하다.

"공상, 판타지 이야기들은 실화가 아닌 허구다. 그런데도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일련의 열망을 채워 준다. 사실주의적 픽션은 결코 그런 열망을 건드리거나 채워 줄 수 없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초자연 세계를 경험하려는 갈망, 죽음을 면하려는 갈망, 영원한 사랑을 만나려는 갈망,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며 창의적 꿈을 실현하려는 갈망, 하늘을 날려는 갈망, 인류 이외의 존재와 소통하려는 갈망, 악을 이기려는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는 잠시나마 이런 갈망을 채워 주고, 미치도록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팀 켈러의 예수 예수 내용 중 -

박민규 작가는 '카스테라' 속 이야기들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속 깊숙이 박여있는 열망을 알아봐 주고 채워준다. 앞이 캄캄하고 세상에 떠밀려 난 자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부류, 비주류들에게 마술을 부린다. 이상하고 기이한 일들을 만들어 준다. 고마워, 너구리야에서의 인턴, 그렇습니까, 기린 입니다에서는 무능력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실업 고생, 아, 하세요 펠리컨은 취직이 되지 않아 유원지에서 오리 배를 관리하는 공시생, 갑을 고시원 체류기에서는 집안이 망한 대학생. 코리언 스텐더즈에서의 실패한 농촌운동가가 그렇다. 작가는 이런 저렴한 인생들을 보면서 저렴한 심야 전기가 자신의 가슴속으로 흐르는 것을 느껴 이 책을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문득 연천 이란 이름의 이 유원지가, 그래서 불쌍하게 느껴졌다. ... 심야전기처럼 저렴한 내 청춘이 흐린 전구처럼 못내 밤을 밝히기도 했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환상과 기적마저 기대하지 못한다면 이번 생은
정말 망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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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순수한 사람‘ 이었던 우리, 패기와 자신감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던 우리는 유린되고 세뇌되며 유교적 한국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공자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공자가 제시하는 도덕 속에서 우리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다. 차라리조적 위선자로 변해 가고, 우리들의 삶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유교문화의 이러한 해악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 역사 속에서 겪은 고난들을 우연으로 치부하거나, 몇몇 개인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고, 또 지정학적 근거를 통해 어설픈 남의 탓 지적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슴 답답함의 실체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사건들은 계속될 것이다. 하루만 지나면 엉클어지는 줄서기나신호위반 단속, 그리고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전진대회‘ 의 구호 속에서 답을 찾는 한 재앙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위선의 색깔은점점 더 진해져 갈 것이다. 결국, 문화적 토양이 바뀌고 생각의 틀이바뀌지 않는 한 어떠한 노력과 구호도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를 담보할수는 없을 것이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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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냐 하면, 냉장고의 사용법에 크나큰 전환의 계기가 찾아든 무렵이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즉 올 것이 왔다. 란 느낌. 그러니까, 어느 날 냉장고의 문을 열었는데 그 속에 여전한 풍경이펼쳐져 있었다. 두 개의 맥주캔과 김치통, 입을 쩍 벌리고 있는 15리터짜리 우유팩과 한 줄의 계란, 입을 허 벌린 채 나는 생각했다.
환장할 노릇이군.
그것은 모든 인류에게 부끄러운 풍경이었다. 이 환상적인 냉장시대에 겨우 이따위로 냉장고를 사용해왔다니. 과연 이 정도로 몰지각한 인간이었나? 나는 자성(自省)했고, 두 개의 맥주캔과 김치통과 우유팩과계란들을 모두 끄집어냈고, 냉장고의 내부를 윤이 나도록 청소했고, 이제 앞으로는 뭔가 근사한 용도로 냉장고를 사용하리라는 굳은 각오를다져나갔다. 그게 인류에 대한 도리야. 변질된 우유를 싱크대에 버리며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훌륭했던 각오와는 달리, 막상 그 용도에 대해선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고민은 날이 갈수록 깊어갔지만 - 뭐야, 사지선다.
형이 아니잖아. 친구들은 그런 식으로 나의 고민 자체를 부정했고 - 자식, 보기보다 태평한 성격이네. 선배들은 태평한 얼굴로 그런 대답들을늘어놓았으며 - 싫어, 재밌는 얘기나 해줘.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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