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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도서관
나카지마 교코 지음, 안은미 옮김, 고영란 해설 / 정은문고 / 2025년 1월
평점 :
기억속으로
당신의 어린 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언제인가요?
누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빠는 365일중 360일을 떨어져 지냈다. 그래서 우리가족이 다 함께한 기억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히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상인지 기억인지 흐릿해져 진짜인지 아닌지 불분명 하지만 내가 떠올린 장면엔 모두 아빠가 함께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장면이 남아 있다는 건 내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와코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전쟁 통에 부모와 헤어졌고, 그녀를 보살펴준 건 도서관이 사랑한 히구치 이치요를 좋아하던 오빠였다고 한다. 그와 함께 다녔던 우에노 도서관은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남겼다. 그 뒤 오빠와 헤어지고 다시 부모님 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가 홀로서기를 하고 찾은 곳은 결국 우에노였다. 그녀도 히구치 이치요를 좋아하던 오빠와 함께 한 시절이 그리워서 이지 않을까?
이 책은 도서관을 사랑한 기와코의 수수께끼 같은 인생을 프리랜서 작가인 화자가 퍼즐 맞추듯 찾아가는 여정과 일본 최초 근대도서관 설립 배경과 도서관이 사랑한 작가의 이야기 까지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두껍지만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여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가끔 핸드폰을 열어 아이들 어릴 때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회상에 젖곤 한다. 점점 커가면서 나와 멀어지는 아이들이 서운해 자꾸만 어릴 적 모습이 그리워진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나의 기억도 빛바랜 사진이 되어 점점 희미해져 간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 봐야겠다.
P114
"여기에 열람실이 있었는데. 어머, 이렇게 깨끗해지다니 왠지 느낌이 달라. 신문 따위를 읽었던 것 같은데, 진짜 예뻐졌네."
기와코 씨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혹시 그리운 추억이 망가져서 못마땅한가 싶어 걱정하며 먼저 밖으로 나간 그녀를 쫓아가니 커다란 문 앞에 멈춰 서서 문에 붙은 동판을 연신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건 변함없네."
P136
"있잖아, 넌 어릴 적 일을 얼마큼 기억해?
"얼마큼이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 일이 기억나?"
"기억나는 일이 있긴 한데 선명하진 않아요. 부모나 형제에게 듣고 나중에 덧대어진 기억도 있을 테고요."
"그렇지. 난 도쿄에서 지낸 뒤 쭉 미야자키에서 살았고, 그 오빠들과는 연락이 끊겼거든. 그래서 그 시절 일을 떠올리면 기분이 되게 이상해."
"이상?"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모르겠달까."
P319
이 글이 회상인지 소설인지는 불분명하다. 그 모든 것이 그녀가 만들어낸 창작일 가능성도 부정 못 한다. 기와코 씨가 쓴 글을 사토 씨에게 곧장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그 점에 확신이 없어서였다. 물론 이제 와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누구도 모를뿐더러 중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가족이 읽는다면 꽤 높은 확률로 전부 사실이라 믿어버리지 않을까. 두 여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토 씨는 또 몰라도 유코 씨 얼굴을 떠올리니 어머니가 이런 글을 남겼다며 화를 낼 것 같았다.
P332
나는 새삼스레 기와코 씨를 막 알게 됐을 무렵을 떠 올렸다. 기와코 씨는 우에노 공원 벤치에 나를 앉히고 "자, 눈을 감아 봐"라며 말했더랬다. 우에노 공원에 자리한 미술관이니 음악당이니 하는 건물이 전부 없다고 상상해봐, 모든 것을 지운 그 자리에 간에이지가 나타날 거야, 라고 알려줬다. 어쩌면 그때 그녀의 감긴 눈 속에는 미술관이나 음악당이 들어서지 않았던 시절, 간에이지 묘지였던 땅에 세워진 판자촌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