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오컴의날 님의 서재 (오컴의날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748630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1 Aug 2026 02:09:56 +0900</lastBuildDate><image><title>오컴의날</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9748630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오컴의날</description></image><item><author>오컴의날</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평전이 아니라 극단적 이분법의 정치적 프로파간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7486303/17452658</link><pubDate>Sat, 15 Aug 2026 21: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7486303/174526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2807X&TPaperId=174526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39/coveroff/899142807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슈테판 츠바이크 (1881~1942) -&nbsp;'이 사람의 글을 읽을 땐 중립성은 포기하고 읽는 것이 좋다. 역사인물 한 명을 임의로 골라 그 사람에 감정을 이입하여 자신의 일기마냥 쓰는 것이 특징인데, 긍정적인 면은 당연히 좋게 묘사되고 부정적인 면은 감성팔이까지 동원해서 합리화하는 경향이 짙다' – 나무위키에서 인용<br>슈테판 츠바이크의 &lt;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gt;는 16세기 칼뱅의 종교적 독선에 맞선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의 투쟁을 그린 평전이다.&nbsp;<br>저자는 이 책에선 극단적인 이분법적 구도를 펼친다.&nbsp;<br>역사를 '절대 악(칼뱅)'과 '절대 선(카스텔리오)'의 대립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했고, 복잡한 16세기 종교개혁 사조를 단순한 선악의 대결로 박제화했다.&nbsp;<br>또한 16세기의 인물들에게 20세기 근대적 관점의 '관용'과 '민주주의' 개념을 그대로 들이대는 식으로 시대착오적인 가치 투영하고 있다. 카스텔리오 역시 당대 종교적 테두리 안에서 사유한 인물임을 간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nbsp;<br>나아가서 히틀러와 나치즘을 칼뱅에게 투영하다 보니, 칼뱅이 가졌던 사상적 깊이와 역사적 맥락이 완전히 소거되어 버렸다. 당대 제네바의 복잡한 정치·사회적 역학 관계를 무시하고 오직 '독재자와 희생자'의 구도로만 읽어내려 했기에 이같은 무리를 범했다고 보아야 한다.&nbsp;<br>책의 전반적인 문체는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라기보다 열정적인 웅변이나 정치적 선언문에 가깝다. 작가의 강렬한 분노와 감정이 문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독자가 차분하고 다각적인 역사적 성찰을 하기보다는 츠바이크의 감정에 강제로 이끌리게 만드는 선동적 감정주의로 보인다.&nbsp;<br>이 책은 본래 나치의 폭압을 피해 망명 중이던 츠바이크가,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16세기 칼뱅의 제네바에 그대로 투사하여 집필한 것이다. 즉, 16세기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명했다기보다는 20세기 파시즘을 비판하기 위해 16세기 역사를 도구화했다는 구조적 편향성을 지닌다.&nbsp;<br>요약하자면 이 책은 파시즘에 저항한 당대의 고발장으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냉철한 역사 평전으로서는 감정 과잉과 도식적 이분법에 갇힌 한계를 드러내는 책이다.&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39/cover150/899142807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3979</link></image></item><item><author>오컴의날</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지나친 링컨 찬양주의로 일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7486303/17452656</link><pubDate>Sat, 15 Aug 2026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7486303/1745265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47757&TPaperId=174526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53/35/coveroff/8950947757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lt;권력의 조건&gt;(원제: Team of Rivals)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자신의 정적들을 내각에 등용하여 국가 위기를 극복한 과정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링컨의 통합적 리더십을 세밀히 묘사하여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학술적 관점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nbsp;<br>1860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링컨과 경쟁했던 세 명의 거물급 인사(윌리엄 슈어드, 새먼 체이스, 에드워드 베이츠)를 각각 국무, 재무,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과정을 상세히 추적한다.<br>그 과정에서 링컨이 단순히 착한 성품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위해 가장 유능한 인재들을 곁에 두고 통제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하에 이들을 포용했음을 강조한다.<br>책에서는 방대한 일기, 편지, 신문 기사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링컨뿐만 아니라 그의 내각 일원들과 그 가족들의 삶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한다.&nbsp;<br>비판점<br>1. 링컨에 대한 지나친 미화: 일부 비평가들은 저자가 링컨을 '국가적 보물'로 여기는 시각이 강해, 그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링컨을 지나치게 관대하고 관용적인 인물로만 묘사하여 그의 당파적이고 계산적인 면모를 간과했다는 비판이 있다.<br>2. 과도한 분량과 세부 묘사: 약 1,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중 주변 인물들의 일상이나 긴 인용구들이 서술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많다.&nbsp;<br>3. '라이벌 팀' 전략의 실효성 의문: 저자는 이 독특한 내각 구성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지만, 실제 역사적으로는 내각 내 갈등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기회비용이 컸으며 링컨이 오랜 친구들을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부작용이 책에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br>4. 시대적 배경 이해의 한계: 19세기 개신교 신앙이나 당시의 종교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링컨의 내면적 갈등이나 시대 정신을 깊이 있게 통찰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br>5. 특정 인물에 대한 편향: 재무장관 새먼 체이스의 도덕적 신념(폐지론)보다는 그의 야망과 결점만을 부각시켜, 그를 팀의 부적응자로만 몰아세웠다는 시각도 있다.&nbsp;<br>이 책에서 보이는 지나치게 링컨 찬양으로 흐르는 서술 방식과, 너무 세밀한 묘사 위주의 전개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nbsp;&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53/35/cover150/895094775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533558</link></image></item><item><author>오컴의날</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시장경제에 이데올로기 프레임 씌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7486303/17452652</link><pubDate>Sat, 15 Aug 2026 21: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7486303/1745265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9758&TPaperId=174526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37/1/coveroff/896051975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장하준의 &lt;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gt;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작용과 문제를 나름의 식견으로 열거하여 대중의 환기를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반적으로 규범경제학적(Normative Economics) 관점 일변도의 편향적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nbsp;&nbsp;<br>시종일관 저자의 관점을 "객관적 경제 법칙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특정 가치 판단과 정치적 지향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하겠다.주요 비판 대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br>1. 가치 판단의 '객관화' 오류<br>규범경제학은 '무엇이 마땅히 되어야 하는가(What ought to be)'를 다룬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정부 개입의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이를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실증적 증거보다는 '공정성'이나 '사회적 정의'라는 본인의 규범적 잣대로 재단하는 경향이 크다. 즉, 본인의 가치관을 보편적인 경제적 진리로 포장한다는 비판을 받는다.&nbsp;<br>2. '성장'보다 '분배'와 '보호'에 편향된 규범성<br>이 책은 시장의 자율적 조절 능력보다는 국가의 설계 능력을 신뢰한다. 이는 '경제적 평등이 성장에 우선하거나 최소한 병행되어야 한다'는 규범적 전제를 깔고 있다. 저자는 개발도상국의 보호무역 성공 사례만 부각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자원 배분의 왜곡이나 비효율성 등 실증적 부작용은 규범적 목적(국가 발전) 아래 간과하고 있다.&nbsp;<br>3.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는 편향성<br>장하준은 복지 국가나 고용 안정이 경제 불안을 줄여 혁신을 돕는다고 주장한다(21번째 가지). 이는 '사회적 안전망은 선(善)이다'라는 규범적 판단에서 출발하는 말이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를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저해하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요소로 보기도 한다. 장하준의 논리는 경제적 데이터보다는 "안정된 삶이 좋은 삶이다"라는 규범적 가치에 더 의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nbsp;<br>4. 이데올로기적 프레임 씌우기<br>제목부터 '그들이 말하지 않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주류 경제학을 마치 진실을 숨기는 집단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는 학문적 논쟁을 '선과 악' 또는 '기득권과 대중'의 대립 구조라는 규범적 틀로 몰아넣어, 경제 현상을 중립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정치적 선전 도구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nbsp;<br>결국, 장하준의 주장은 "시장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는 규범적 확신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데이터 선택이나 해석 과정에서 본인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사례(확증 편향)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이 책에 대한 규범경제학적 측면에서의 주요 비판점으로 볼 수 있다.&nbsp;<br>저자의 사촌형은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장하성이다.&nbsp;<br>당시 장하성 정책실장이 주도했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와 이를 수습하기 위한&nbsp; 통계조작, 그리고 소위 '장하성 펀드'가 시장에 몰고 왔던 각종 과오를 감안하면, 장하준의 이 책 &lt;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gt;는 다분히 진영논리에 치우쳐 옛 체제로의 향수 또는 회귀를 갈구하는 느낌이 다분하다.&nbsp;<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37/1/cover150/89605197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370134</link></image></item><item><author>오컴의날</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평전이 아니라 극단적 이분법의 정치적 프로파간다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7486303/17375596</link><pubDate>Sun, 05 Jul 2026 2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7486303/173755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2807X&TPaperId=173755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39/coveroff/899142807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2807X&TPaperId=173755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a><br/>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출판사 / 2009년 05월<br/></td></tr></table><br/>슈테판 츠바이크 (1881~1942) -&nbsp;'이 사람의 글을 읽을 땐 중립성은 포기하고 읽는 것이 좋다. 역사인물 한 명을 임의로 골라 그 사람에 감정을 이입하여 자신의 일기마냥 쓰는 것이 특징인데, 긍정적인 면은 당연히 좋게 묘사되고 부정적인 면은 감성팔이까지 동원해서 합리화하는 경향이 짙다'&nbsp;– 나무위키에서 인용<br>슈테판 츠바이크의 &lt;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gt;는 16세기 칼뱅의 종교적 독선에 맞선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의 투쟁을 그린 평전이다.&nbsp;<br>저자는 이 책에선 극단적인 이분법적 구도를 펼친다.&nbsp;역사를 '절대 악(칼뱅)'과 '절대 선(카스텔리오)'의 대립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했고,&nbsp;복잡한 16세기 종교개혁 사조를 단순한 선악의 대결로 박제화했다.&nbsp;<br>또한&nbsp;16세기의 인물들에게 20세기 근대적 관점의 '관용'과 '민주주의' 개념을 그대로 들이대는 식으로 시대착오적인 가치 투영하고 있다.&nbsp;카스텔리오 역시 당대 종교적 테두리 안에서 사유한 인물임을 간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nbsp;<br>나아가서 히틀러와 나치즘을 칼뱅에게 투영하다 보니, 칼뱅이 가졌던 사상적 깊이와 역사적 맥락이 완전히 소거되어 버렸다.&nbsp;당대 제네바의 복잡한 정치·사회적 역학 관계를 무시하고 오직 '독재자와 희생자'의 구도로만 읽어내려 했기에 이같은 무리를 범했다고 보아야 한다.&nbsp;<br>책의 전반적인 문체는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라기보다 열정적인 웅변이나 정치적 선언문에 가깝다. 작가의 강렬한 분노와 감정이 문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독자가 차분하고 다각적인 역사적 성찰을 하기보다는 츠바이크의 감정에 강제로 이끌리게 만드는 선동적 감정주의로 보인다.&nbsp;<br>이 책은 본래 나치의 폭압을 피해 망명 중이던 츠바이크가,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16세기 칼뱅의 제네바에 그대로 투사하여 집필한 것이다. 즉, 16세기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명했다기보다는 20세기 파시즘을 비판하기 위해 16세기 역사를 도구화했다는 구조적 편향성을 지닌다.&nbsp;<br>요약하자면&nbsp;이 책은 파시즘에 저항한 당대의 고발장으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냉철한 역사 평전으로서는 감정 과잉과 도식적 이분법에 갇힌 한계를 드러내는 책이다.&nbsp;<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39/cover150/899142807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397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