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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화사들 - 우리가 만난 날의 기록 계회도, 제4회 한우리 문학상 청소년 부문 당선작 ㅣ 한우리 청소년 문학 4
윤혜숙 지음 / 한우리문학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그림을 소재로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계회도는 요즘으로 치자면 기념사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림인데 윤혜숙 작가는 전작인 '뽀이들이 온다'도 그렇고 역사속에 묻히거나 잊혀졌던 소재를 발굴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더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끌어가는 솜씨가 워낙 탁월해 역사 소설임에도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장르 소설과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을만큼
세련된 구성과 문장력을 보여준다.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죽음에 접근해 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오해와 어쩌면 자신이 외면했을지 모를 진실을 마주하게 된 진수의 갈등과 고뇌는 낯선듯 하면서 익숙한 우리의 모습을 많이 투영하고 있다. 가족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애증의 고리는 주인공의 삶처럼 때로는 예기치 못한 상흔과 회한을 불러 일으킨다. 사라진 아버지의 그림과 죽음 그리고 연쇄 살인의 고리에 자신이 걸려 있을줄 꿈에도 몰랐을 진수의 혼란과 절망이 가슴아팠다. 비록 권력과 탐욕에서 비롯된 추악한 현실과 마주하게 됐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진수는 더 올곧은 선택을 하리라 생각한다. 스포가 될 수 있어 내용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독자인 내가 진수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의 실체를 파헤치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그림은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되고 해석 되어진다. 계회의 회원들에게는 기록으로, 고관대작들한테는 권력과시용 재산으로, 만수 아버지한테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작가는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각자의 처지와 목적에 따라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지는 현상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과 삶의 아이러니를 절묘하게 매치시켰다.
그림을 전공하고 오랜기간 미술레슨을 하다보니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이 있다.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요?"
그러면 나는 예외없이 같은 대답을 하곤한다.
"봐서 좋은 그림이요."
그건 결국 각자의 몫이라는 말이다. 명화라고 알려진 그림보다 봤을때 내게 울림을 주는 그림, 그것이 비록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우는 싸구려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면 그건 곧 한 사람을 위한 명화인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림에 재능이 있는 진수가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그건 이름없는 화공으로 비명횡사한 아버지가 진수에게 남기고 싶었던 유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