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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서다 - 소설로 읽는 한국 현대사 ㅣ 아름다운 청소년 15
김소연 외 지음 / 별숲 / 2017년 5월
평점 :
지난겨울 아들 녀석과 함께 광화문을 찾았다. 우리 때와 달리 축제처럼 콘서트를 즐기는 시위문화를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부모 몰래 시위 현장을 전전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매주 광화문 광장에 모여 변화를 외친 끝에 마침내 대변혁의 물꼬를 튼 구심점은 걸출한 인물도 강력한 리더십도 아니었다. 그저 촛불 하나를 들고 나온 평범한 개인들이었다. 그 중심엔 영웅을 기대하는 사회가 결코 건강한 사회도, 바람직한 현상도 아님을 깨달은 젊은 세대들이 있었다.
영웅시대를 넘어선 촛불 세대
우리는 보수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박정희 신드롬과 그 대척점에서 희생한 수많은 민주화 열사를 기억한다. 기성세대에게는 박정희나 민주화 열사로 대변되는 영웅들이 있었다면 촛불 세대에는 안타깝게도 희생자만 있을 뿐이다. 멀게는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 미선, 가깝게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 구의역 전철사고로 희생된 젊은이, 강남역 불특정 살인사건 희생자가 그들이다.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촉구할 의사도 없었고 영웅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제 자리를 묵묵히 지켰던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어이없는 그들의 죽음이 우리사회에 던져준 무언의 메시지야 말로 그 어떤 외침보다 처절하고 강렬했다.
일련의 사건을 지켜본 젊은이들은 결코 가만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섣불리 분노하거나 거칠게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건 현장을 찾아가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고 촛불 하나를 들었을 뿐이다. 바로 그 작은 행동들이 이념과 세대를 넘어서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 결과 탄압 속에서도 제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언론에 힘을 실어 주었으며 정치권에도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촉구할 수 있었다고 본다. 혁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대변혁을 이끌어 낸 힘. 그건 바로 촛불처럼 미약해 보였던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였다.
이 책 ‘광장에 서다’는 그런 의미에서 영웅시대를 꿈꿨던 기성세대가 촛불세대에게 바치는 씻김굿과도 같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면서도 특별한 개인의 능력과 희생에 의지 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대의 과오를 고백하고 성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 뒤에는 이름 없이 스러진 수많은 삶과 넋들이 있었다.
이 책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을 다루면서도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점을 반영한 절묘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변화를 꿈꿨지만 헬 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로 대변되는 현실에 직면한 기성세대가 그 원인을 진단하면서 변화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닌 함께 하는 사람들의 꿈이어야 한다는 것을 직시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4년 전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기득권 세력이 애국과 애족이라는 프레임을 선점하면서 박정희 신드롬을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본 대가는 혹독했다. 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관치 비리의 정점을 상징처럼 드러낸 세월호 사건,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기성세대의 민낯과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느꼈던 우리에게 비난이 아닌 변화를 촉구하며 손을 내민 촛불세대. 그들에 대한 화답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시대의 변곡점을 이룬 주요 사건을 다루면서도 중심축에서 살짝 빗겨 있던 평범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부끄러운 우리의 현대사를 적나라하게 조망한다. 청소년들에게는 그저 암기과목에 지나지 않았을 역사, 역사란 곧 우리의 삶이며 평범한 개인의 의지가 결코 가볍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실감 나게 보여준 작가들의 역량이 돋보인다. 우리의 자화상과도 같은 이 책을 아들 녀석에게 권하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