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덕후라고? - 청소년 테마 소설 02 덕후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14
김유철 외 지음 / 단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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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소개된 각각의 에피소드와 주인공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덕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 보면 덕후에 대한 우리의 편협된 시각과 모순을 통렬하게 꼬집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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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덕후라고? - 청소년 테마 소설 02 덕후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14
김유철 외 지음 / 단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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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하면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거나 상식에서 일탈한 괴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소위 쓸데없는 것에 꽂힌 아이들을 두고 세상은 덕후라는 말로 폄하하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어릴 적 필독서처럼 읽었던 위인전들의 주인공과도 어딘지 비슷하다는 거다. 내가 읽었던 위인들 대부분은 하나같이 어릴 적부터 엉뚱한 면이 있었고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으며 외톨이였다. 게다가 자신의 관심사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데 최선을 다 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에디슨, 아인슈타인, 칸트, 달리와 같은 외국 사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천상병, 이상, 백남준 등 쉽게 손꼽을 수 있을 정도다.

정리해 보면 결과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천재들은 위인으로, 평범한 개인의 관심사로 끝난 사람들은 덕후로 폄하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결국 천재와 덕후는 한 끗 차이 아닐까싶다.

위인들의 면면을 다시 돌이켜 보자. 그들은 과연 세상과 인류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이바지하는 게 목표였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다만 어쩌다 꽂힌 자신들의 관심사에 최선을 다 해 몰두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면 위인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위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우리나라에 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지 이해되었다.

목적이 있는 삶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우리는 원만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관심사쯤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걸 당연히 여겨왔다. 돌이켜 보면 나 자신도 그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덕후는 원만한 삶을 포기하고 기꺼이 자신에게 솔직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각각의 에피소드와 주인공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덕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 보면 덕후에 대한 우리의 편협된 시각과 모순을 통렬하게 꼬집는 매력이 있다.

4차 산업 혁명을 앞둔 시점에서 사실 어른들은 잘 모르면서 그동안 함부로 충고해 왔노라고 고백하면서 스스로에게 솔직한 삶의 가치를 피력하고 있다.

‘내가 덕후라고?’는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덕후가 되기를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기꺼이 격려한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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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서다 - 소설로 읽는 한국 현대사 아름다운 청소년 15
김소연 외 지음 / 별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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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을 다루면서도 주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변화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닌 함께 하는 사람들의 꿈이어야 한다는 것을 직시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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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서다 - 소설로 읽는 한국 현대사 아름다운 청소년 15
김소연 외 지음 / 별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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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아들 녀석과 함께 광화문을 찾았다. 우리 때와 달리 축제처럼 콘서트를 즐기는 시위문화를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부모 몰래 시위 현장을 전전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매주 광화문 광장에 모여 변화를 외친 끝에 마침내 대변혁의 물꼬를 튼 구심점은 걸출한 인물도 강력한 리더십도 아니었다. 그저 촛불 하나를 들고 나온 평범한 개인들이었다. 그 중심엔 영웅을 기대하는 사회가 결코 건강한 사회도, 바람직한 현상도 아님을 깨달은 젊은 세대들이 있었다.

영웅시대를 넘어선 촛불 세대

우리는 보수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박정희 신드롬과 그 대척점에서 희생한 수많은 민주화 열사를 기억한다. 기성세대에게는 박정희나 민주화 열사로 대변되는 영웅들이 있었다면 촛불 세대에는 안타깝게도 희생자만 있을 뿐이다. 멀게는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 미선, 가깝게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 구의역 전철사고로 희생된 젊은이, 강남역 불특정 살인사건 희생자가 그들이다.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촉구할 의사도 없었고 영웅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제 자리를 묵묵히 지켰던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어이없는 그들의 죽음이 우리사회에 던져준 무언의 메시지야 말로 그 어떤 외침보다 처절하고 강렬했다.

일련의 사건을 지켜본 젊은이들은 결코 가만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섣불리 분노하거나 거칠게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건 현장을 찾아가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고 촛불 하나를 들었을 뿐이다. 바로 그 작은 행동들이 이념과 세대를 넘어서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 결과 탄압 속에서도 제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언론에 힘을 실어 주었으며 정치권에도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촉구할 수 있었다고 본다. 혁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대변혁을 이끌어 낸 힘. 그건 바로 촛불처럼 미약해 보였던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였다.

이 책 ‘광장에 서다’는 그런 의미에서 영웅시대를 꿈꿨던 기성세대가 촛불세대에게 바치는 씻김굿과도 같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면서도 특별한 개인의 능력과 희생에 의지 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대의 과오를 고백하고 성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 뒤에는 이름 없이 스러진 수많은 삶과 넋들이 있었다.

이 책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을 다루면서도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점을 반영한 절묘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변화를 꿈꿨지만 헬 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로 대변되는 현실에 직면한 기성세대가 그 원인을 진단하면서 변화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닌 함께 하는 사람들의 꿈이어야 한다는 것을 직시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4년 전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기득권 세력이 애국과 애족이라는 프레임을 선점하면서 박정희 신드롬을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본 대가는 혹독했다. 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관치 비리의 정점을 상징처럼 드러낸 세월호 사건,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기성세대의 민낯과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느꼈던 우리에게 비난이 아닌 변화를 촉구하며 손을 내민 촛불세대. 그들에 대한 화답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시대의 변곡점을 이룬 주요 사건을 다루면서도 중심축에서 살짝 빗겨 있던 평범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부끄러운 우리의 현대사를 적나라하게 조망한다. 청소년들에게는 그저 암기과목에 지나지 않았을 역사, 역사란 곧 우리의 삶이며 평범한 개인의 의지가 결코 가볍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실감 나게 보여준 작가들의 역량이 돋보인다. 우리의 자화상과도 같은 이 책을 아들 녀석에게 권하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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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라 마트 습격 사건 아이스토리빌 28
김경민 지음, 김미은 그림 / 밝은미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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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서 오래 전 보았던 일본 영화 '러브레터'가 떠올랐다.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것 외엔 내용상 그럴만한 요소가

별로 없는데도 그랬던 것은 마지막 이별 장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한별이는 오랜 투병생활 끝에 돌아가신

아빠로 인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엄마가 운영하는 별나라 마트에 습격한 족제비를

아빠가 환생한 것으로 믿게 되는데

한별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족제비가 하필

아빠가 좋아하던 단팥빵을 먹는데다 하는 짓도

꼭 아빠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한별이의 그리움과 죄책감은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된 양가감정과 흡사하다.

한별이는 아빠를 너무 일찍 잃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빠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환생을 믿음으로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필 족제비인 이유는 평소 좋아하던 만화 영화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 캐릭터처럼 하얀 족제비라는 우연성도 있지만,

아빠가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도 반영되었다고 본다.

위기에 빠진 족제비를 구하고자 하는 한별이의 용기는

무사히 구출해서 숲에 놓아주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비로소 아빠에 대한 죄책감을 덜게 된다.

그리고 아빠와의 이별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 동화는 죽음을 일찍 경험한 아이들의 상처를

동양적 윤회사상을 통해 자연스럽고 순환적인 것으로 풀어낸다.

족제비 구출작전을 통해 아빠 없는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갖게 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독자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선사한다.

"아빠,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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