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안 현북스 청소년소설 2
장주식 지음 / 현북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百聞이不如一見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로 인해 책을 읽은 이틀간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동행한 느낌이었다. 기행문에 가까운 소설임에도 묘하게 발의 고통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다 읽고 나니 굳이 소설 형식을 빌어온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주인공 ‘길안’은 이름이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고교 진학 포기를 선언할 만큼 당찬 중학생이다. 책을 읽다 보니 등장인물들 이름이 모두 상징성을 가진 셈이었지만 각각의 캐릭터는 실재 인물들을 모델로 삼은 듯했다.

내용은 발원지인 태백산 검룡소에서 비롯된 여강을 따라 나무와 나루를 잇는 길이 중심이 된 ‘여강길’을 걷는 이야기다. 길안은 아버지를 비롯해 어른들이 의기투합한 탐사대에 어쩌다 호기심 때문에 끼게 된다. 그런데도 뚝심 있고 끈기 있게 버텨낸다. 철딱서니 없는 중딩만 키워본 나로서는 뭐 이런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있나 싶었는데 당차고 기특해 보였던 행동의 이면에 이성과 우정,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인한 현실 도피적 심리가 깔려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 책이 왜 소설이어야 하는지 그토록 디테일한 여정묘사에도 불구하고 길안이 감당하고 있는 발의 고통에 왜 자꾸 더 마음이 쓰였는지 알 것 같았다. 신발 찢기를 거부했던 길안이 마침내 신발을 찢었을 때는 ‘데미안’에서 언급된 알을 깨는 비유가 떠올랐다.

탐사대의 여정은 걷는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각각의 인물을 통해 그들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와 접근방식을 엿볼 수 있다. 탐사대원들은 같은 길을 걸었지만 각자 다른 길에 도전했던 거고 신명이 길안에게 말한 것처럼 고집스러운 마음을 한 걸음 옆으로 옮기듯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 책의 장점은 독자들이 탐사대원들이 스치거나 머물다간 장소와 사람들을 고스란히 간접체험 하게 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단지 정보에 불과했을 지명과 장소, 각종 유래담등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탐사대원들이 만난 사람들과 사연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뭇 다른 결로 각인된다. 그 모든 체험과 깨달음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 몸의 무게를 견뎌낸 발의 고통이다. 몸이 가고자 하는 것이 삶이라면 땅을 딛으며 현실의 고통을 감당하는 것은 발이다.

여강길 탐사는 본문에서 신명이 언급했듯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될 뿐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열쇠가 마음에 있음을 깨닫는 여정이 아니었을까싶다.

엄두가 나지 않으면서도 이들의 여정을 따라 가고픈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없으면 좋겠어? -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동화집 햇살어린이 52
임어진 외 지음, 김주리 그림 / 현북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선천적으로 붉은빛이 도는 갈색 머리칼을 가진 나는

자라면서 늘 타인의 시선과 오해에 시달렸다.

가장 많이 받은 것이 혼혈이라는 오해였다.

사람들이 아이노코니 튀기니 하며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릴 때면 억울하기는 했지만,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난 혼혈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혼혈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호기심 어린 시선 때문에 귀찮았을 뿐

차별을 받았다던가 설움을 당했던 기억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엔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 책에는 다양한 형태의 혐오가 등장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

편견과 차별, 오해에서 비롯된 거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편견 없이 대한다면 굳이 공감 능력까지 발휘하지 않아도

적어도 상대에게 상처 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는 내내 처음엔 비록 호기심 어린 눈빛을 감추지 못했어도

곧 나와 거리낌 없이 뛰어놀곤 하던 내 유년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놀다 보면 그랬다. 머리 색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그랬던 아이들이 요즘 왜 혐오적 요소에 민감해졌을까?

조금은 뜬금없이 아주 오래전 읽은 작품이 떠올랐다. 

이문열의 ‘雅歌' 라는 작품에서 다룬 사회적 변화에서

어렴풋이나마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씁쓸한 현실에도 아이들이 가진 힘을 믿게 한다.

놀다 보면 그 어떤 것도 중요할 게 없는 천진함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숲을 지켜 줘 꿈꾸는 문학 6
윤혜숙 지음, 강화경 그림 / 키다리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울수는 이 시대의 마지막 전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반갑고 애틋했다.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찾아든 정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숲을 지켜 줘 꿈꾸는 문학 6
윤혜숙 지음, 강화경 그림 / 키다리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을 읽는 내내 숲이 사라지는 것과 아이들이 사라지는 것이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우리 주변에서 숲과 아이가 사라지는 원인은

어쩌면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도 다루었듯이 자본의 논리로 우리 주변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져간 것은 수도 없이 많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옛이야기가 사라져 간다는 거고

그것을 들어줄 아이들도 사라져 간다는 거다.

얼마 전 조카가 엄마, 아빠가 다닌 학교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자신이 다니는 학교는 신생학교라 그런 이야기가 없다며 아쉬워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럼 네가 전설을 만들면 되지?’

하고 대꾸해 주었다. 자녀가 없거나 한 자녀 가정이 대부분인

요즘 아이들이 자라면 미래세대는 학교 전설뿐 아니라

형제, 자매, 이모, 고모, 사촌 등 친인척마저도 사라진 세상에서 살게 된다.

그저 시대적 흐름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기엔 씁쓸한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숲을 지켜줘’에 등장하는 울수는

이 시대의 마지막 전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래서 더 반갑고 애틋했다.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찾아든 정령.

그동안 잊고 있었던 먼 옛날의 전설 한 조각이 그리움을 찾아,

아이들을 찾아 나선 듯 능청스레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재로 탈바꿈시킨

작가의 상상력에 나도 모르게 깊숙이 빨려들고 말았다.

참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자신이 전설을 듣고 퍼트리고 만드는 존재였던 것을…….

팍팍한 현실에 뛰어든 울수가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숲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숲뿐만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이야기.

즉 오랜 역사와 일상의 추억 그리고 소중한 존재들.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가치들을 지키라고. 지켜 달라고

그리하여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 언제까지고 사람들과 함께 머물고 싶노라고.

숲과 아이들이 사라져 가는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사라진 미래를 앞두고 대체 무엇을 꿈꾸는 걸까.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쫓겨난 거인의 정원 같은 팍팍한 일상과 환경에서

영문을 몰라 추위에 떨고 있던 거인에게 손 내밀어준 아이.

바로 그 아이가 울수가 아닐까?

늦기 전에 거인이 그 아이의 손을 잡았으면 좋겠다.   

아리는 자작나무를 힘껏 끌어 안았다.
"울수야, 내 말 들리는거지? 기다릴게. 우리 다시 만날때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만 골라골라 풀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44
최영희 지음, 조경규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인간만 골라 뭘 할까? 그것도 풀이?

흔히들 SF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고들 한다. 그래서 동화보다는 청소년이나 성인독자를 대상으로 다루어지게 마련인데 이 책 만큼은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뻔한 소재가 되어버린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에는 수학 공식처럼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패턴과 주인공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우선 지구를 위험에 빠트리는 악당과 이에 맞서는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으로 이어지는 영웅 캐릭터는 뭔가 비범함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예외적으로 평범한 인물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알고 보면 능력자거나 특별함을 감춘 위장술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첨단 무기를 공급해주는 박사가 등장해 감초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책 ‘인간만 골라골라 풀’은 설정을 살짝 비틀어서 그 같은 공식을 어린이 눈높이로 풍자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영희 작가는 지구를 지키는 ‘맨’의 계보에 턱 하니, 사람이 아닌 미친 염소 ‘염맨’을 끼워 넣었다. 게다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와 첨단 무기를 제공하는 박사라는 존재를 추적해 보면 문방구 할머니다. 주인공 풍이가 선택된 이유도 사나흘에 한 번꼴로 문방구를 드나들며 쿠폰에 야무지게 도장을 받아가기 때문이다. 포켓몬스터 카드 중 ‘라이츄 브레이크’ 카드를 뽑는 게 인생의 목표인 평범한 꼬맹이. 열 살밖에 안 된 이 꼬맹이가 지구를 지키는 임무를 떠안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순전히 문방구 할머니랑 엮였기 때문이다.

빛과 물이 넉넉한 행성을 찾아 우주를 떠돌아다니다가 적당한 행성을 발견하면 터를 잡고 농사를 짓는다는 외계인 아그리꼴라도 우리가 흔히 접해왔던 외계인 악당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많다. 이들의 생김새나 지구에 온 목적을 보면 먼 옛날 우주로부터 날아와 지구에 생명체를 퍼트렸다는 외계 생명체 유입설을 떠올리게 한다. 한 행성의 생명은 이미 생명체가 존재하는 또 다른 행성으로부터 전파된 것이라는 것이 가설의 핵심인데 아그리꼴라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지구에서 신나게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목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만 골라서 습격하는 풀을 퍼트리기로 한다. 이들의 계획을 돕던 연구원이 바로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문방구 할머니라는 설정도 기발하다. 젊은 날 식물학 박사였던 문방구 할머니는 외계 생명체 아그리꼴라들에게 고용된 연구원이었다. 다이아몬드를 대가로 받는 대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외계인의 요구대로 일한 결과는 식인식물의 탄생이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익숙한 광경을 떠올리게 된다. 자본과 권력이 결탁해 순전히 이익추구만을 위해 해로운 물질을 생산하고 판매한 결과 부메랑처럼 많은 사람이 위험에 빠지게 되는 상황 말이다. 식인식물이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슬며시 뿌리를 내리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면서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과정은 환경파괴로 인해 지구생명체가 위협받는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 외계인들 측면에서 보면 고작 탄소화합물에 불과한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무모함을 이토록 통렬하게 꼬집을 수 있을까 싶다. 다행히 문방구 할머니인 김도경 박사가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인간을 구하고자 비장의 무기를 풍이에게 남긴다. 이 어마 무시한 임무가 담긴 메시지와 무기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작가는 허를 찌르는 유머와 위트로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세상이 홀딱 망할 징조가 나타나거든 목에 걸고 싸우라고 준 것이 바로 유치원생 여자아이들이나 걸고 다닐 법한 분홍색 왕 구슬 목걸이니 말이다. 정작 주인공 풍이가 가장 무서워하고 믿음직스러워하는 무기는 엄마의 뒤집개다. 뒤집개를 든 채 결연한 표정으로 책표지에 등장한 주인공 모습과 내용상 위기 상황을 뒤집는 주인공 역할을 보면 이 설정 또한 복선이 아닐까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느닷없는 임무에 주인공 풍이는 아이답게 지구를 지키는 것은 당연히 어른들의 몫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도 알다시피 어른들이란, 실은 일을 저지르기만 했지 해결은커녕 확대 재생산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예외 없이 상황은 악화되고, 검은 풀 소행으로 보이는 실종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더니 급기야 풍이 엄마마저 실종되고 만다. 주인공 풍이는 ‘지구를 지키는 것은 침략자의 비밀을 알아차린 사람의 몫’이라고 한 문방구 할머니 말을 뒤늦게 떠올린다. 마침내 유치해 보이는 분홍색 목걸이가 동물들과 말할 수 있는 장치라는 것도 알아낸다.

정부는 검은 풀의 습격에 갖은 방법을 써보고 가축을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는 것도 통하지 않게 되자 초강력 농약과 폭탄투하라는 극단적인 대응책을 발표한다. 그러한 위기를 앞둔 시점에서 풍이는 말이 통하게 된 미친 염소 염맨의 도움으로 국면 전환을 이룬다. 사실상 인간 최악의 위기를 다룬 이 책은 인간의 위기를 지구의 위기로 전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엄밀하게 보면 위기를 초래한 것은 인간이다. 심지어 ‘인간만 골라골라 풀’은 먼저 공격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인간이 무심코 저지른 잘못에 무서운 재앙으로 다가오는 환경의 역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 녹조로 가득 찬 4대강 등 현실에서 우리는 이미 비슷한 현상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인간에게 재앙으로 닥친 검은 풀을 없애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미친 염소 ‘염맨’이라는 사실 또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염맨은 가축 흑염소다. 미친 염소라는 별칭처럼 인간에게 길들지 않고 툭하면 우리를 뛰쳐나와 아이들을 공격한다. 그러다 동물과 말이 통하게 된 풍이의 도움으로 죽을뻔한 위기를 넘기자 위험에 빠진 풍이를 구하게 된 것을 계기로 검은 풀을 없애는 데 앞장선다. 여기에서 작가는 단지 말이 통하는 것과 소통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풍이는 평소 두룽마을 어린이로 살아가는데 고달 품을 안겨준다고 여겼던 염맨과 도아리 누나와 소통하게 되면서 검은 풀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약점도 찾아낸다. ‘인간만 골라골라 풀’의 천적이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일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풍이는 외계인들이 밝힌 식인식물을 만들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그들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고 지구를 떠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전제한 ‘인간은 지구 상에서 가장 사악한 포식자라는 것과 지구의 다른 동물들은 인간을 경멸하고 두려워한다’는 관계설정이 오류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상 인간들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봉준호 감독의 ‘옥자’라는 영화를 보면 소위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생명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다루어 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 인디언들은 사냥할 때 희생당한 동물들을 상대로 형제라는 호칭을 써서 애도하고 고기와 가죽을 내어준 것에 감사함을 표시하며 절대로 필요 이상의 생명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그리꼴라들은 오히려 인간도 결국은 자연 일부에 불과할 뿐이며 우리의 생존이 결코 다른 생명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준 셈이다. 아그리꼴라들이 지극히 평범한 어린아이 풍이에게 설득된다는 설정은 작가가 그들이 전제한 사실을 오류로 만들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생각한다.

최영희 작가는 포켓몬 카드 같은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평범한 아이와 뭔가 비밀스러웠지만 따뜻한 감수성을 지닌 사춘기 소녀, 문방구 할머니, 미친 염소, 구슬 목걸이 등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법한 인물들과 물건에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춘 채 지구를 지키는 것은 어른도, 영웅도 아닌 바로 너희들 손에 달려 있다고 설득력 있게 말한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에게는 ‘인류의 위기가 정말 지구의 위기일까?’ 라며 되묻는 것 같다. 기발하고 황당한 설정에 깔깔거리고 읽다 보면 눈 깜박할 사이 시간이 지나는데 서늘한 여운이 꽤 오래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