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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후 한성에 가다 ㅣ 별숲 동화 마을 17
최연숙 지음, 이영림 그림 / 별숲 / 2019년 1월
평점 :
제목에서 풍기는 묘한 매력만큼이나 독특한 발상을 보여준 책이다.
요즘 흔한 타임슬립 소제인가 싶지만, 제목 위에 붙은 '조선 최초 미래 공상 소설'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일반적인 클리셰와는 사뭇 다른 전개로 익숙한 듯 낯선 가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내용은 백 년 전에 살았던 노비 아이 언년이의 이야기와 언년이가 접하게 되는 미래 공상 소설이 맞물리며 전개된다.
주권을 잃어가는 국가에서 노비 신분으로 살아가는 암울한 처지의 주인공을 내세웠음에도 이야기의 톤은 무겁지가 않다. 밝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문제의식을 가볍게 다룬 것도 아니다.
이 책의 매력은 상상력의 힘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데 있다.
언년이의 눈을 통해 독자가 접하게 되는 미래는 곧 우리의 현실이기에
묘한 일치와 어긋남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언년이는 우연히 미래소설을 접하고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날 꿈을 갖게 된다.
‘엉뚱 보따리’라는 별명을 가진 자신의 상상력이 허무맹랑에 그치지 않고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는다.
백년 후의 미래로 가서 신분의 굴레를 벗고 새 삶을 살고자 했던 언년은
현실에 눈을 돌리고 백 년 후가 아닌 자신이 개척해야 할 미래를 직시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안타까움이 교차 되었다. 언년이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백 년 후의 한성.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분단된 조국의 반쪽짜리 수도이자 자본주의의 욕망이 지배하는 구조 속에 금수저 흙수저로 풍자되는 새로운 신분제의 굴레가 형성되고 있는 곳이 아닌가.
나는 언년이 타임슬립으로 백 년 후의 현실로 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랬다면 그건 현실 도피에 불과했을 테고 언년은 또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했을 테니까.
언년이는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개척하며 살았을 거로 믿는다.
미래는 결코 현실을 외면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백 년 전 언년이가 접했던 공상 속의 미래와 기술적, 물질적인 면에서는 맞닿아 있지만, 이상적인 가치 기준에서 볼 때 아직 갈 길이 멀다.
요즘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부자’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불어 잘 사는 게 아닌 나 혼자 잘 사는 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될 텐데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생각해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 키다리 아저씨에서 쥬디가 한 말을 떠올렸다.
‘상상력은 어린 시절부터 키워 주어야 해요.
하지만,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는 상상력의 싹만 보여도 즉시 짓밟아 버리곤 했어요.
그 대신 오로지 의무감만 심어 주었지요. 어린아이들은 의무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지요.’
마치 우리의 교육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듯한 저 말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
나는 이 책이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냥 하루하루 즐겁게 꿈꾸고 일하며 지내기로 했다. 꿈꾸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바뀐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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