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저 멀리 평창 아트센터 자인에서 신종식전이 시작했다. 가장 동쪽은 아니지만 이정도로 높이 있는 곳은 자하와 목석원이다 (기회 닿을 때마다 포스팅에서 계속 밀고 있다. 여름날 걸어올라가는 자는 전시러버 고급코스 이수)


전에 한 번 언급했었는데 이제 막 시장에 뛰어든 젊은 작가는 나는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주섬주섬 실력을 진열하기 바쁜지라 전시 전체의 일관성은 부족하 편이다. 전시 경력이 꽤 되는 중견작가는 이제 전시 하나에 한 테마만 진중하게 민다. 신작가도 그런 침착함과 통일성이 보인다


참고: https://blog.aladin.co.kr/797104119/16352149



일견 동일해보이는 작품이지만 반복되는 라이트모티프 속에서 다양한 변주가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장르와 프레임을 고정시키고 세밀한 디테일을 컨트롤하는 편이 관객입장에서도 눈이 즐겁다.


그림은 직관적이고 흥미롭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부감샷의 지도를 그림 위에 앉힌 레이어다. 폐허에서 층층히 쌓인 고대유적을 발굴한 단층마냥 동서양과 시간이 혼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작가의 개인적 슬픔이 작품에 투영되어 그 해석을 더 짙고 깊고 굵게 만들었던 올해 전시는 세 개다


북촌 초이애초이 영국작가 캐서린 안홀트, 쌍둥이 딸 매디의 때이른 죽음과 그로 인한 회한의 여운이 오래가는 상실

평창 가나아트세터 독일 기반 일본작가 시오타 치하루와 6개월차의 유산

그리고 용인 호암, 북촌 국제, 서촌 아트사이드 등에서 하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와 불륜 아버지에 의한 학대


안홀트는 죽은 딸을 회화에 등장시켜 추모하는 동시에 기억을 되짚으며 아픔을 달래고

시오타는 있었을 법한 태아상태의 아이 마네킹을 자궁에 넣고 피를 상징하는 실로 묶어 인연이 이어지고(結ぶ) 연결되는(繋がる) 것을 표현했으며

부르주아는 어머니를 거미화한 설치작품을 만들고 트라우마서린 방을 붉고 으스스하게 표현했다




안국역 현대화랑의 김민정작가 작업에서도 가나아트센터 시오타 작가와 비슷한 연결 모티프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일견 별자리 같은 노드는 비슷해도 이를 확장하는 단계에서 볼륨감의 차이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며칠 전부터 저녁에는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조금씩 느껴진다

한낮 폭염의 폭격에 풀이 죽은 아스팔트에서는 아직 달궈진 열기가 느껴지지만

바람만큼은 저 멀리 북쪽 저기압 기단에서 불어 온 듯한 아련한 가을바람이다

가을에는 항상 이 시가 생각난다

2006년에 처음 접하고 종종 다시 찾아 감상하곤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HxAodm1EF8


풍경의 깊이/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 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문학동네 2023년 겨울호는 특히 좋았다.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김건형의 인트로는 지금 읽어봐도 시의성 있는 명문이다.

문학으로 구미에 유학을 가서 박사를 한다는 것은 이런 글을 외국어로 읽는 것과 같을 테다


비유해보자


케이팝과 드라마로 한국어를 접하기 시작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대학의 한국어과에 진학한 일본, 베트남 등지의 학생이 중간에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와서 살아도 보고 토픽6급도 딴 후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한국에 있는 국문과에서 석박사를 하겠다고, 마침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온다면?


이런 글을 읽어야할 거다. 이제 이건 언어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 글을 읽어 온 자들과 씨름하는 지성의 영역이다. 불문학으로 독일문학으로 영문학으로 그 나라에 가서 현지인과 이런 문어체의 글을 소화하면서 살아야한다.


이 호에 실린 전기화 경기대 교수이자 평론가의 글도 좋았다. 그녀는 이 글로 올해 신동엽 평론부문상을 받았다. 한 문단을 지긋이 읽는 자의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리 -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보는 초예측 지정학
최준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