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이화여대 아트하우스모모에서 독일 영화감독 크리스챤 페촐드 특별전을 한다(10.1-19) 앞사람 머리통이 스크린을 보는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층 사이가 높게 설계되어 계단을 걸을 때 특별히 조심해야하는 영화관이다. 신촌홍대연희동 일대에는 이외에도 독립영화관이 꽤 된다. 파주에도 하나, 강남에는 아트나인 코엑스, 동북에는 건대KU시네마 정도라고 생각했을 때 단위면적당 독립영화관의 숫자가 꽤 된다.


홍대 일대는 미대생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술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미적감각을 지닌 이들이 고양이 생선가게 찾듯 빈번하게 출몰하는 지역인데 이런 이들은 대개 하나로 대동단결하기보다 서로 다른 취향과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만큼 취향의 폭이 넓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러 작품을 상영하는 독립영화관이 이들의 꾸준한 발길에 힘입어 건재하며 지속가능한 영업이 가능하다.


영화평론가 이동진도 페촐드 감독의 <어파이어>를 주목하는 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 2023년 초 베를린 영화제에서 공개되고 한국에는 23년 9월에 개봉한 <어파이어>의 독일어 원래 제목은 붉은 하늘(Roter Himmel)이다. 특유의 을씨년스런게 쌀쌀한 유럽을 배경으로 숲과 모래사장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에 몽환적이고 EDM스러운 노래가 울려퍼지는 것이 기억남는다. 오스트리아 그룹 월너스과 독일 듀오 타워터의 In My Mind다.


많이들 프랑스어가 연음 때문에 부드러워 듣기 좋다고 말한다. 한편 독일어는 후두음이 많아 거세고 촌스럽게 들린다고 조롱당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디아(파울라 베어 분)가 자기 박사논문의 대상인 시 <아스라(Der Asra)>를 낭송하는 장면을 보면 독일어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실감하게 된다.


배우이자 여자인 파울라 베어는 시를 무수히 반복해 완전히 외워서 입에 올리고(상구) 몸으로 시를 전달한다. 배우의 몸에 온전히 체현된 시에 현장감과 아우라가 느껴진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AZ1AuX4ve4A


위의 유투브 쇼츠에서 파울라 베어는 아래 블로그에서 보이는 시를 낭송한다.


19세기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의 낭만주의와 허무주의계열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의 <로만체로(Romanzero, 1851)>에 수록된 <아스라(Der Asra)>는 술탄 공주를 사랑한 노예 아스라가 비극적인 사랑과 절망으로 죽어간다는 낭만주의파 시다.


나디아는

2연에서 Täglich 앞에서 끊어 포즈를 주어 강조하며

3연 2행에서 zu까지 쭉 읽고 끊고

heiße의 공기반 음성반 부드럽게 처리하며

Yemen과 함께 둘 다 뒷 음을 생략해 먹어버린다.

물론 쉐너, 니더, 브룬, 셴 같은 각운도 유의할만하다.


캡쳐는 다음 링크에서 보이는 한독 비교표다

링크1: https://blog.naver.com/brucelee55/150142258823


조금 더 문학적인 번역은 링크2: https://blog.naver.com/tammy3m/70134917661


링크의 번역은 김영찬이다




술탄의 공주는 밤마다 은빛 티아라를 두르고 눈 위를 걷듯


사라수(沙羅樹) 정원을 거닐었네


모스크바로 가기 위해 거기 크리스털 투명한 빙하


왕자의 나라 


 


설원의 밤 설야(雪野)에 공주는 옷을 벗어 눈부시게


하얀 알몸으로 태어난다네


눈 오는 나라의 어린 양들이 공주에게


순백의 양털 의상을 입혀 왕궁으로 안내할 것이므로


 


하지만 공주는 하루하루 야위기 시작했네


모스크바로 가는 꿈을 접고


머리 위 티아라는 몸종에게 주어버린 채 침대에 몸을 뉘여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지


 


술탄은 어린 딸을 위해


아라베스크arabesque 대리석 기둥에 밤마다 불을 밝혀


찬연한 향연을 베풀었지만


공주는 밤마다


어디론가 떠나 늘 혼자였다네


 


공주의 침실에 문득 초록 등이 켜지고


무릎에 얼굴을 싸안고 숨죽인 청년의 모습이 얼비쳤는데


검은 피부의 노예는 이미 화석으로 굳어있었네


그의 운명은, 사랑을 하면


그 갈망에 죽고 마는


아스라Asra  






영화제 링크

https://www.arthousemomo.co.kr/pages/board.php?bo_table=special_program&wr_id=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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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
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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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실리콘밸리 메타 커넥트 2025 행사에서 스마트 안경이 공개되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전면 유리에 표시될 스마트 디스플레이와 함께 스마트 안경이 향후 20년간 우리의 일상을 가장 크게 뒤바꿀 기술이다.


마치 2010년에 스마트폰이 나온 후 15년간 통신, 소비, 금융, 여행 등 우리의 일상영역이 상전벽해를 겪었듯 말이다. 2009년 개봉한 <국가대표>에서는 아직 공중전화로 연락을 했었고 2010년의 <아저씨>에서는 지금은 비트코인이나 간편계좌이체로 표현될 전당포와 현금 장면이 나온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에 틀린 게 없다. 훌륭한 우리 선조님의 통찰이여


그러나 기술의 등장이 곧바로 보급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대개 이공계 사람들은 이렇게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였으니 사람들이 당연히 좋아하겠지? 하고 나이브하게 생각하지만 일반인들은 기술 문해력이 없고 있더라도 바로 구매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마케팅과 경영, 행동경제학이 필요한 지점이 있다. 스마트 글래스가 좋은 기술이라고 쓰는게 아니기에 넛지해줄 필요가 있다. 공돌이가 학생일 때는 이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고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에 울분을 토하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 비로소 이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는 복잡한 수식은 이해못하지만 물리법칙을 응용한 신기하고 재밌는 장난감에 끌려한다는 경험을 토해 (물론 이 문장에는 이미 자연계 남성이라는 편견이 포함되어 있고 여성 이공인의 입장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베르누이의 법칙을 이해하는 사람이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니다. 베르누이의 법칙의 일반적 설명이 맞지 않다는 최근 연구를 전혀 모르더라도 사람들은 그냥 티켓가격과 여행사진을 보고 비행기를 타러간다. 기도메타로 비행기가 뜨는 줄 아는 사람들을 싣고도 자연은 무심하게 얼마든지 물리법칙을 이행한다.


기술보급의 윤활유는 픽션이다. 재밌는 스토리와 신기하고 유용한 볼거리가 기술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것이 유용해요! 라는 말로는 설득이 안되고, 즐거워요! 편리해요! 라는 말에 설득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존 당일 배송 시스템은 해리포터 시리즈 배송 프로모션과 함께 확충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고 스마트폰도 여러 편리하고 유용한 앱(오픈 시스템의 장점)과 함께 성장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 글래스도 스토리와 함께 보급될 것이다.


해리포터만 보자면 이런 과정이었던 것 같다. 해리포터와 비슷한 작품은 영국소설 중에 있었으나 현실에서 마법세계로 이동하는 이세계물의 성격에 기숙학교 학년제라는 익숙한 교육제도와 맞물린 매력적인 플롯으로 인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러나 1권에는 전통적 영시 운율에 맞춘 기숙사노래, 2권에는 목이 달랑달랑한 닉의 유령 다과회 같이 다소 흐름이 튀는 듯한 불필요한 장면도 있었다. 저자가 아직 IP의 잠재가치를 모른 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고 이것저것 탐험하는 과정이었기에 등장한 신이다.


영국이나 미국 같이 다운타운에 나가려면 몇 시간 걸려서 다시 서점 앞에 긴 줄을 서서 구매해야만 했었던 번거로움을 해결해주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매년 발간된다는 정기적 스케쥴이 배송망의 체계적인 확충과 결합해 시너지효과를 얻었다. 내년 나오는 5권은 우리 지역에도 당일 배송된대! 그러니 해리포터 3,4권 이후 부터는 배송 시스템과 결합을 통해 낙양의 지가를 올린 것이고, 이후는 영상화+테마파크 등을 통해 장기적 파이프라인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스토리와 시스템의 상부상조다.


배민도 마찬가지다. 초기 모델은 있었다. 원래 짜장면은 짱깨라고 불리는 자체 배달부가 있었고 만16세부터 원동기 면허를 취득할 수 있기에 용돈벌이하려는 청소년들이 많이 진입하는 노동시장이었다. 이들을 그리는 만화나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맥도날드 라이더스도 정식으로 운영되었고 피자집도 배달부가 있었다.


이를 B급감성으로 디자인하고 플랫폼화해서 하나의 시장으로 승화시킨 것이 배민이다. 코로나 비대면 락다운의 낙수효과를 제일 크게 수혜받았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배민과 넷플의 성공과 비즈니스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책이 여러 권 나와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


말하고자하는 바는 소프트한 지적재산권(IP)과 하드한 제도적 결합이 만날 때 어마무시한 승수효과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일본망가와 주간연재잡지의 관계, 방송+배우와 함께 드라마화, 영화관+성우와 함께 애니화, 이후의 굿즈, 피규어, 광고 등등의 미디어믹스와 2차 시장까지. 사례가 너무 많아 도저히 다 쓸 수도 없을 정도다. 케이팝도 음악 하나가 아니라, 인재발굴, 체계적 교육, 데뷔, 매니징이 모두 포함된 하나의 시스템인 것처럼.


스마트 글래스는 여러 잠재력이 있다. 개중 즉각적인 정보전달이 가능하다는 점이 화룡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글 같은 촌스러운 디자인은 대중의 감성과 유리되기 때문에 젠틀몬스터와 콜라보해 가볍고 멋지면서 혁신적이고 편리하 웨어러블 기기로 리브랜딩해, 모든 가정에 시계,라디오,테레비,전화,컴퓨터,인터넷이 보급되었듯이 보급될 것이다. 2050년에는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될 정도의 필수재가 될 것이다. 트론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챗지피티에 익숙한 세대가 성장하면 더더욱 눈 앞에 동시에 표현되는 시각정보를 섭취하려고 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내고 검색하는 동작마저 불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가시범위 안에 바로 보여지는 정보전달은 큰 장점이다.


전시회에서 안경에서 바로 전시작품의 정보를 읽고, 맛집에 들어가지 않고도 바로 평점과 메뉴와 가격을 보는 등의 일상적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과거에는 전문가를 찾아가 어렵게 물어야했고, 그 다음에는 도서관과 서점에서 책으로 확인해야만 했으며, 이후 인터넷에 검색하는 지식의 민주화/대중화를 거쳐서 이제는 전달속도마저 혁신적으로 빨라졌다. 전문가 의뢰는 사회적 위계, 교육과 양성, 탐색과 방문, 경험적 정보 나열 같은 고체근대의 특성인데 액체근대(지그문트 바우만의 통찰)에서 이제 21세기 중반엔 기체근대로 이행한다. 정보는 생산과 동시에 소비되고 소비와 동시에 바로 휘발 되며, 바로 구현되지 않는 정보는 아예 섭취되지도 않을 것이다.


기체근대 특성을 강화하게 될 스마트 글래스의 보급을 강화할 소프트한 IP로는 포켓몬고와 나혼렙이 있다. 후자는 상태창을 열어서 정보를 눈앞에서 확인하는 회빙환물은 스마트글래스와 결합하기 적절한 픽션이고 이미 대중을 시각적으로는 길들여놓았다. 포켓몬이라는 글로벌 IP에서 현장성만 결합한 포켓몬고는 한국 정식 출시도 전에 사람들을 속초로 몰려가게 만들 정도였다. 인터넷망의 어떤 복잡한 문제로 인해 속초에서는 해적 이용이 가능했었던 것이다.


기술이 나왔을 때 픽션을 만들면 늦다. 고점매수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스케일을 글로벌로 확산시킬 잠재성이 있어 이윤이 보장된다면 진입할만하다. 다만 카카오,배민,테슬라,엔비디아... 비트코인이 초창기에 몇 만원할 때 매수한 사람이 경험한 폭등과 지금 진입한 사람이 기대하는 장기적 우상향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결정일 뿐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1억원할 때 매수한 사람과 향후 재개발을 예상하고, 서울이 뉴욕이나 런던처럼 매매가 2-300억에 월세 300만 받는 초고가 부동산 시대가 될 것을 내다보는 사람의 입장이 다를 뿐이다.


스마트 글래스라는 기술보다 포켓몬고나 나혼렙 같은 상태창 활용 웹소설 웹툰이 더 먼저 나왔다. 글이 기술보다 빠르다. 질량이 낮고 에너지 소모가 적은 것이 먼저 나오고 빠르게 확산된다. 말<글<그림<영상<프토토타입기술<상용화 순이다. 우주여행,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재생에너지,배터리,비행기,전기차 모두 비저너리들이 먼저 말로 말하고 글로 쓰고 예술가들이 그림으로 그리고 영상화를 거치며 이후 기술자들이 감화받아 초기모델을 만들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겨우 투자를 받아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진다.


이제 기술은 먼저 나온 글, 그림이 만들어 놓은 픽션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보급될 차례다. 스마트글래스가 향후 20년을 지배할 것이다. 작품을 만들려는 사람은 스마트글래스에 활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는 게 좋다.


오늘의 아무말 대잔치는 여기까지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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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중


내 댓글 

중간은 사라지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대식 중세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뭐 듄 같은 게 되겠죠

관리자가 실무까지 다 하게 되고, 마케팅, 재무, 회계, 디자인까지 다 하고 야근하면서 월 삼천을 벌고 그들은 알아야할 지식이 엄청 많아질 거예요 과거 전문가 10명 분량, 마치 전기시대가 되어서 모든 사람이 노예50명을 부리는 양반의 삶이 되었듯이요

그리고 아예 저임금 반복노동, 반자동 분류작업, 육체노동, 피지컬AI가 할 수 없는 방문, 고령노노돌봄, 기계의 힘을 입지만 기계를 관리해줘야하는 반자동화 음식제조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 같아요



댓글 중 : "마음에 여유가 없이 살고있는데 얼마전 대도서관님이 갑자기 사망한 기사를 보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내 댓글 과로였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그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나의 업계를 효시를 알린 인물이죠. 이렇게도 돈벌이가 된다고 이러 삶도 가능하다고

극심한 양극화 속에 필연적으로 내쫓겨서 마치 중세 유럽의 숲에서 떠도는 요정과 유령같이 SNS와 해저케이블의 전기신호 사이를 배회할 이름 없는 수많은 미생들이 있을 것인데

이들은 옛날 같았으면 그냥 마을 소규모 공동체에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한 줌의 사람들과 오래 관계를 맺고 소박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이들이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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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선교사가 처음 조선에 와 보니 사람들이 갓을 쓰고 다녔다.


신기하고 궁금해서 지나가는 양반에게 물어봤다.


"머리에 쓴 게 무엇이오?"


"It's 갓"


"What? God? Oh my God!"


머리에는 갓(God)을 발에는 신(神)을 신으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이다 이곳이야 말로 주님이 선택한 땅이도다!


이어서 물었다.


"나라 이름은 무엇이요?"


"chosen이요"


"what? The 선택된(Chosen) 사람들?"






feat. 2025-09-18 조선일보 윤희영 English의 글감을 재구성

조큐한테 해리포터 드립했더니 좋아해서

채선생에게 부탁했더니 자막 입히고 갓 쓴 버전 만들어줬음

안 시켰는데 알아서 갓 씌운 버전 대니얼 래드클리프 얼굴의 해상도를 보정하고 미소를 띄게 수정해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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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리뷰오브북스 가을호가 출간됐다.
 
한국의 뉴욕리뷰오브북스와 같은 전문 서평지와 그를 통한 서평문화의 확산의 필요성에 대해 남다른 열심을 경주하던 홍성욱 교수가 편집장이던 초기에 비하면 최근은 다소 폼이 죽은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순항 중이다. 초반에는 미번역 영문서 추천도 더 있고 필진도 더 다양했으나 지금도 크게 나쁜 것은 아니다. (p191 이두은의 글에 China' Green Religion있음)

이번 특집 리뷰는 기후, 에너지, 식량위기에 대한 AI지만 그보다 알라딘에서 일하는 김재욱의 글꼭지가 인상적이다. 작년 알라딘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리스트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회고글이다. (p100-103)

책의 목록을 만들기 위해 200여 명의 다양한 직군의 리스트를 뽑아 최종 106명의 청탁자를 선별했고 그들로 하여금 각기 10권을 선정하게 한 후 약25%의 복수를 제외한 최종 809권이 완성되었다.

리스트 작성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목록은 무제한이 아니기에 제한된 범위 안에서 무엇을 넣고 뺄지지 결정하는 선택의 논리와 배제의 이유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제한된 자원을 운용하면서 판단이 수반되기에 정치적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빈번한 일인데 예컨대 아이돌 콘텐스트에서 우승자를 선택하거나 요리 대결 프로그램에서 후보군을 선정하는 방송 에피소드에서 선택과 배제의 행위가 정치적이라는 표현만 하지 않았지 정치적인 특성을 띄고 있었다.


또한 리스트에서는 선정자(들)의 의도, 그가 바라보는 시각, 사람들이 이렇게 읽었으면 하는 당위성이 엿보인다. 예컨대 같은 개신교와 카톨릭이라도 성경의 목록이 다르다. 성경은 시대와 저자와 다른 여러 서적의 합본이고 정경에 포함되냐 안되냐가 교단의 시각을 반영한다. (외경 위경 등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종교와 무관하더라도 학창시절에 서울대 고전 100선이나 하버드 필독서 같은 정체 불명의 목록을 접한다. 이 목록도 처음부터 자연스레 존재한 게 아니라 편집되었기에 정치적인 리스트다. 이렇게 읽어야한다는 당위성만 존재하고 선정자의 편의와 권위만 돋보일 뿐, 실제 읽는 독자의 연령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리스트다. 오히려 서울대에 진학'시키고' 싶다는 '부모'의 열망이나 하버드의 네임밸류를 차용해 있어보이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는 이런 것도 읽어요, 나는 이런 것도 하는 사람이야, 라는. 서울대와 하버드 독서목록은 아마 출판사 관계자가 필요에 이의해 해당학교 교수진의 전필과목 리스트를 누군가가 짜집기한 것이겠다. 이외에도 과거에 유행하던 복수의 필독 세계문학 100선의 리스트도 있는데 대개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작품로 구성되었다. 그러니 리스트 선정은 정치적인 것이고 선정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기에 필독서 리스트는 일반적인 책의 모음이 아니라 욕망과 권위가 동작하는 무대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김재욱은 "최종적으로 구성되는 리스트에는 설문 주체의 지향과 사회적 압력이 개입된다"면서 이를 타파하기 위해 최대한 많고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도모했다고 한다. (p103) 리스트 선정에 수반되는 "누구에게 묻고 누구에게 묻지 않는가, 어떤 껄끄러움을 피할 것인가" (p103) 같은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참여자와 답변 전체를 공개하는 결정을 했다. 인상적이다.

김재욱의 이런 정전 선정 방식은 영국영화협회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사이트 앤사운드>가 10년마다 진행하는 역대 최고의 영화설문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p104) 그에 따르면 이런 리스트의 갱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화 전문가들이 무엇을 훌륭한 영화로 보는지 그 관점 역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p104)

그래서 이렇게 과거의 한계를 업그레이드한 알라딘 선정 최고의 책 목록은 "새로운 독자를 유인하고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로서 기능"을 목표로 삼는다. (p105)

이렇게 리스트가 정해졌으니 꼭 이렇게 해야만해! 라는 방식이 아니라 이러한 생각도 있으니 우리함께 탐험해볼까? 하는 권유의 방식이 특별하다. 책과 미로를 동치시킨 생각이 인상깊다. 리스트를 일단 선정은 해봤어, 시간이 지나며 바뀔 수도 있지만, 그 변화과정 마저 생각해볼만한 문제가 될거야. 아예 리스트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오늘날의 현실을 일단 정박시킬 수 있을테니까.


돌이켜보면 한기호의 <베스트셀러 30년>(2011년) 정도만 통시적으로 출판문화를 읽은 거의 유일하고 마지막 책이고, 그 이후에는 매년 FOMO에 기반한 트렌드 서적만 나왔지(김난도가 쏘아올린 작은 공, 트렌드 코리아) 선정 이유까지 있는 책 리스트가 제공된 적이 흔치 않다.

이전에는 반드시(필) 읽어야 할(독) 책(서)라는 기치 하에 강압적 특성이 있었다면 지금의 제안은 유화적이다. 21세기 최고의 책이 여기있으니 우리 함께 살펴볼까? 앗 길을 잃었네 그래도 괜찮아 다른 책을 발견했다고? 더욱 좋아 잘했어!

이런 유연한 리스트는 우연하게 책을 만나게 해주고 다른 만남으로 이어지는 세렌디피티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며 스스로 리스트의 중첩된 미로를 돌면서 무궁무진한 세계를 조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유익이 많다. 자기만의 새로운 리스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어 모두가 자신의 필독서를 가지게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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