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미술관에 다녀왔다. 5.23-29까지 아주 짧은 기간만 AI전시를 하고 있다. 굿모닝 미스터오웰전. 백남준 아트센터가 좋아할 법한 제목이다.
공모전 선정 작가(juried artist from open call) 8명과 초청(invited) 작가 7명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팀 소속 작가를 분별해서 대략 국내 12명, 해외 9명이다. 시청각처럼 갑자기 일몰경 하루 오픈한다고 인스타에 올리는 그런 갑작스러운 개막은 아니지마 국제학술회의와 함께 진행하느라 1주일 남짓만 진행해서 많은 이들이 보러가기엔 다소 타이트한 스케쥴이다.



생성AI로 속담을 시각화한 작품이 인상깊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잘 표현했다. 그러나 딥러닝은 문장 내에 사회적 함의가 있거나 과정이 포함된 프롬프트는 적절하게 시각화하지 못하는 듯 보이다. 예컨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라는 속담을 우리는 옛 연초 담뱃대를 생각하지 8cm길이의 현대 담배를 꼬나문 호랑이를 상상하지 않는다.
중간 진행과정이 포함된 속담도 2D평면 스틸컷에 잘 표현하지 못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3살과 80살의 습관이 이어짐을 나타내지 못했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소를 잃고 고치는 이미지가 어그러지고 빠개지고 버무러져있다. 인간 만화가처럼 한 컷에 표현하지 못했다. 아직 인간 예술가가 우위에 서있다는 반증. 평면에 어떻게 시간의 경과와 사회적 함의를 나타낼 것인가? 한 컷에 어떻게 과정과 깊이를 표현할 것인가? 를 고민해보자
이외에도 당신과 신이라는 문화적 어휘를 딥러닝 프롬프트가 어떻게 다루는지 고민하면서 만든 디지털 프린팅 연작은 살점을 지닌 인간의 뒷모습이 사실 AI였다는 반전이 숨어있다. 현 백남준 아트센터의 젊은 작가전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에서 김호남 작가가 <해저 광케이블을 위한 에코챔버 시스템>를 통해 백남준의 위성TV에 의하 동시성과 미세한 버퍼링을 시각화했듯 서울대 미술관에서 김규남 작가는 2023년 12월 7일 방영된 전세계 뉴스를 모두 중첩해서 보여주어 미디어를 낯선 방식으로 제시한다. 택배상자를 열어보니 AI 얼굴이 깜짝하고 말을 거는 기괴한 작품도 있고, 북극곰 털가죽 위에 누워 30분 동안 전문가들의 터무니 없는 북극곰 보호 이주 계획을 듣는 작품도 있다. 곰을 풍선으로 부풀리고 지구가 회전할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물개로 북극곰을 유인한다거나 운송비 절감을 위해 곰을 다이어트시키자는 등의 허무맹랑한 대화인데 영어로 말해서 프로페셔널하게 느껴지는 것일 뿐 블랙코미디다.





다소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띈다. NFT는 이미 메타버스와 함께 팬데믹 때 일시의 광란이 끝나고 유효기간이 끝난 이슈인데 이를 가지고 오염된 토양의 정화에 이더리움 블록체인으로 토큰을 부여하는 작품이나, 섬유에 16mm, 35mm 옛 필름조각을 바느질한 작품이나(전시기획과 무슨 관련이 있지?), 디지털 게임공간에 어떤 말을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뭔가가 나오게 되어있는 작품은 전혀 구동이 되지 않아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전시공간을 지하 2층까지 풀로 사용한 이전 무기세전과는 달리 전시장이 비어보이고 B1-B2에는 작품이 없어 벽에 로고마 페인팅되어있는 점도 아쉽다.

더욱 아쉬운 부분은 기획사에서 AI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설득과 근거없이 공표하다는 것. 그리고 영어번역이 많이 어색하다는 점이다.

미래future, 기술techonolgy, 생각thoughts, 영화movie같은 단어가 너무 많이 반복된다. 일부 문법 오류도 눈에 띄고 맥락에 어긋난 표현도 눈에 띈다. 스타일, 톤앤매너도 다듬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백남준과 오웰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개중 하나만 짚어보자면
전염병, 전쟁, 차별은 어둡고 지난한 삶의 모습이다
Pandemics, wars, and discrimination are dark and arduous aspects of life
이 문장은 한국어와 같은 고맥락 언어에서는 의미가 통할 수 있어도 외국어로 표현해서는 그 속뜻이 다 전해지지 않는 갑툭튀 문장이다
일단 arduous는 고급어휘책에 나올 법한 대학수준 어휘는 맞지만 다들 토플공부하다가 difficult의 동의어로만 외우고 그 맥락이 physical or sustained effort라는 점은 간과한다.
그래서 차별 같은 추상적인 아이디어에는 쓸 수 없다.
대신 혼란스러운chaotic, 깊은profound, 다면적multifaceted가 차라리 낫고
remain some of the most difficult and urgent challenges of our time
confront us with profound and unresolved questions about the human condition
같은 말로 풀어써야한다.
아니면 아예 These are emotionally exhausting, morally painful, and deeply distressing aspects of life라고
정서적으로 지치고, 윤리적으로 고통스러우며 매우 골치아픈 문제라고
더욱 더 세밀하게 풀어 서술해야한다.
"삶의 고된 문제다", "이 문제는 다루기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하는 한국어 번역투 영어논문이 너무 많고 그럴 때마다 가끔 지친다.
명사를 나열한 주어를 유지한 채 뒤만 바꿔보자면 이런 식으로도 대안이 있다
Pandemics, war, and discrimination
1) cast long shadows over human life
2) are some of the most harrowing and destabilizing forces we face
3) represent painful, enduring struggles that continue to shape our present
4) remain some of the most painful and persistent challenges in our l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