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갤러리에 다녀왔다. 고려대역 앞에 있는 갤러리다. 작품과 자신을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붓질 하나에 애정을 담아 그려 작품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서양화가 김해진 작가의 전시다. 그전에는 일산 아침나무 까페에서 전시를 했다



그림은 오랜 꿈속을 한땀 한땀 되짚어가는 바람의 결을 닮았다. 라일락 빛깔의 분홍색 표면은 말랑하고 서늘하며, 이따금 담청색 캐롤리나 블루의 부서지는 하늘바람도 보인다. 그러한 붓질의 유동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의 간섭음 같기도하다. 스트로크는 단속적 스타카토로 경쾌하나 일정한 리듬을 지녀 마치 노을에 밀려 퇴각하는 바람이 물 위를 스치는 리듬처럼 느껴진다. 고요하지만 휘몰아치는 시각적 진동을 응시하면 그 안 어딘가 지금-여기가 아닌 저 먼 환상의 가장자리에서 서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는 무언가를 애써 말하려는 대신 되려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은 감각을 전하니

관람자가 그림에서 자각하는 것은 감정의 기후 같은 것이다.


가지런히 빗어진 털과 같은 붓의 궤적, 정서의 균일한 표백, 감각의 침전과 냉각, 냉소적 회복과 잿빛 로망, 그리고 통증의 희석. 그것은 또한 지나가버린 청춘의 단면, 기억의 편린, 해체된 서사의 부유물.


색이 관건이다. 색면추상의 색은 화학적으로 존재하는 것 아니라 정신의 숭고를 위해 관객 앞에서 매양 되살아나는 것일진저. 붓질은 묘사가 아니라 기록이며 생성인 것이외다. 스트로크의 스피드에 따른 벡터의 방향성은 다이내믹을 부여하고 그 운동성은 감정 밑바닥 심연의 리듬과 합한다. 하여, 회화의 표면 위에 고요히 그리고 고즈넉히 산란되는 시각의 입자들은 무심한 요약과 느슨한 압축을 허락하지 않는 일종의 미학적 실험이다. 그러니 보는 자는 보이는 틈에서 실상을 보기보다는 심상을 듣고 느낀다. 침묵하는 색채들이 만드는 음향적 무늬가, 그 무늬를 타고오는 사람의 무늬가. 人文의 고향 고려대에 위치해 그 기운을 한껏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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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

라는 말에 감화되어

매일 블로그에 글쓰기 시작한지 100일째

스레드에 올리기시작한지 97일째

일본어로 쓰기 시작한지 7회차


많이 읽고 많이 다니고 많이 생각했지만

완벽주의에 펜이 안 떨어지던 내게

인생이 나더러 글 쓰라고 여러 차례 펀치를 날렸다

친구 장례식에서 돌아와서도 고독하니 하루종일 작업하는 뒷모습이 인상적이 영화 룩백 엔딩 장면을 보는데

프레스코가 마르기 전에 도쿄도미술관 5m 거대한 벽을 엉망진창으로 바르는 작가의 모습을 보는데


어쩐지 누군가 어디에서 나에게

그냥 해!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앞의 길을 다 보지 못하고

어둠 속 내 발만 비추는 초롱불 들고 가듯이

등산길 계단앞 한걸음 한걸음씩만 오르듯

그냥 매일 걷는다

쿠오바디스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어디로 가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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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설미재 미술관에 다녀왔다


고속도로를 달려 설악 IC에서 나와 국도를 절마냥 내려다보는 깎아지르는 듯한 산비탈에 위치해있다. 자하/목석원 올라가는 정도의 경사다. 산에 걸려있는 운무가 시선의 높이에 닿을락 말락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고양이가 인상 깊다. 조영철 작가의 몽유도묘(2025)다. 박재연 작가가 석고 표면에 동으로 유동하는 흐름을 표현한 작품도 흥미롭다. 석고 외에 시멘트로도 표면을 발라보았다. 동으로 돌을, 옻칠로 흘러 떨어져내리는 덩어리를 표현한 것도 인상깊다. 하나의 물성을 다른 물성의 감각으로 치환한다.


서울인사아트센터 지하 1층 제주갤러리 (제주, 충북, 경북 등의 지역갤러리가 인사동 한 건물에 위치해있다)에서 했던 김다슬 작가의 스테인리스 스틸 고양이, 물고기, 새, 뱀도 생각난다. 



설미재 조영철쪽이 붉은 색감에 살아있는 듯한 생명성을 조형에 강조했다면 제주 김다슬쪽은 조금 더 선이 화려하고 보이지 않는 기운의 흐름을 포착했다. 잠시 멈칫하고 지켜보는 사람을 경계하며 언제든 도망갈 수 있게 무게중심이 뒤로 잡혀있는 붉은 스텐리스 스틸 고양이는 발에 묘한 긴장감이 있고 꼬리를 높이 치켜들었다. 이에 비해 김다슬 작가의 고양이는 봄날의 제주 모슬포 햇빛을 받는 등 여유롭고 주변의 아지랑이마저 은색 선으로 시각화한 것 같다. 날아가기 바로 전 힘차게 날갯짓하는 매와 나뭇가지에 둘둘 몸을 만 뱀과 그 앞 연못에서 꽥꽥거리는 오리도 인상깊다. 설미재는 눈과 얼굴을 강조했으나 제주는 얼굴보다는 형상화에 방점을 두었다.


갤러리 내일에서 김영목작가가 철사 윤곽으로 전체상을 부여한 작품도 생각난다.


스텐리스 스틸 용접 기술은 건설현장에서 쓰일 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예술품을 만든 동일기술을 건축주에게 의뢰받은 형상을 구현하기 위해 쓸 수도 있다. 물론 내심 예술품을 셀링해 먹고사는 편을 더 선호하겠지만 기술 자체는 범용성과 현실성이 있고 실리적이다. 한편 배첩 같은 400여개의 사멸직전의 한국민속예술은 타분야로 번역이 안되어 일감이나 보조금이 끊겼을 때 자구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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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보고 왔다. 


이전 시리즈의 좋은 점을 다 가져 온 모둠 세트 같은 영화다. 윌리엄 던로의 재출연도 좋고 귀여운 이누이트 와이프도 재밌다. 다만 왜 이들이 콩고까지 와서 자연스럽게 팀에 합류하는 것 같은지는 설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흠.


추운 베링해에서 흐미를 배경으로 알몸으로도 아쿠아맨처럼 수영할 수 있고 콩고 상공에서 풍압에도 경비행기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붙어있을 수 있는 것은 영화적 허용


이보다 인상적인 점은 아프리카 초원을 치타나 영양처럼 우다다 달리는 탑골공원 장기 두는 어르신과 동년배인 톰 할아버지가 난이도 있는 미션을 수행해낸다는 점이 아니라 미션을 설득력있게 소통한다는 점이다.


영화 하얼빈은 안동지는 어딨소가 반복되다가 클라이맥스를 황급히 처리해 매력을 잃은 반면 이 영화에서는 에단에게 국가기관이 계속 계획이 뭐냐고 물어보지만 에단은 알려주지 않고 관객들만 아는 서스펜스가 지속되다 완벽한 실현 및 마무리로 그 정점을 찍는다


정교한 국가제도의 운영, 미션에 대한 완벽한 이해 및 전달, 운영기관의 윤리적 책임과 신뢰체계, 탈중심화된 주권외부행위자인 독립스파이집단에 대한 중앙기구의 신뢰와 분업(항공모함과 잠수함을 빌려줌)과 전인류적 의제공유가 사실 불가능한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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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라서 정말 좋아 필사 에디션 (노출 제본)
김지훤 지음, 하꼬방 그림 / 길벗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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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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