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우갤러리에 다녀왔다. 고려대역 앞에 있는 갤러리다. 작품과 자신을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붓질 하나에 애정을 담아 그려 작품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서양화가 김해진 작가의 전시다. 그전에는 일산 아침나무 까페에서 전시를 했다

그림은 오랜 꿈속을 한땀 한땀 되짚어가는 바람의 결을 닮았다. 라일락 빛깔의 분홍색 표면은 말랑하고 서늘하며, 이따금 담청색 캐롤리나 블루의 부서지는 하늘바람도 보인다. 그러한 붓질의 유동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의 간섭음 같기도하다. 스트로크는 단속적 스타카토로 경쾌하나 일정한 리듬을 지녀 마치 노을에 밀려 퇴각하는 바람이 물 위를 스치는 리듬처럼 느껴진다. 고요하지만 휘몰아치는 시각적 진동을 응시하면 그 안 어딘가 지금-여기가 아닌 저 먼 환상의 가장자리에서 서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는 무언가를 애써 말하려는 대신 되려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은 감각을 전하니
관람자가 그림에서 자각하는 것은 감정의 기후 같은 것이다.
가지런히 빗어진 털과 같은 붓의 궤적, 정서의 균일한 표백, 감각의 침전과 냉각, 냉소적 회복과 잿빛 로망, 그리고 통증의 희석. 그것은 또한 지나가버린 청춘의 단면, 기억의 편린, 해체된 서사의 부유물.
색이 관건이다. 색면추상의 색은 화학적으로 존재하는 것 아니라 정신의 숭고를 위해 관객 앞에서 매양 되살아나는 것일진저. 붓질은 묘사가 아니라 기록이며 생성인 것이외다. 스트로크의 스피드에 따른 벡터의 방향성은 다이내믹을 부여하고 그 운동성은 감정 밑바닥 심연의 리듬과 합한다. 하여, 회화의 표면 위에 고요히 그리고 고즈넉히 산란되는 시각의 입자들은 무심한 요약과 느슨한 압축을 허락하지 않는 일종의 미학적 실험이다. 그러니 보는 자는 보이는 틈에서 실상을 보기보다는 심상을 듣고 느낀다. 침묵하는 색채들이 만드는 음향적 무늬가, 그 무늬를 타고오는 사람의 무늬가. 人文의 고향 고려대에 위치해 그 기운을 한껏 받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