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누크갤러리에 다녀왔다


세밀한 콩을 알알이 그려낸 노동집약적 그림의 정정엽 작가와, 불교 금니기법으로 식욕과 신체의 미시정치를 그린 시카고미대 학석출신의 이피작가의 2인전을 하고 있다. 예고하건데 이피작가는 향후 대형화랑에 소속될만한 잠재력이 있다. 그 이유는 이후 서술하고, 이 전시에 대한 내용은 몇 번 더 쓸 예정. 우선 오늘은 전시제목에 대해서만 쓴다.


전시제목은 <숨어서 숨쉬는 작가 연합 The Painters’ Union Breathing in Hiding>인데 한국어의 용언 숨다와 숨쉬다의 울림과 병렬이 돋보인다. 영어에서도 시적 운율이 느껴진다. 한국어와 영어의 문학적 활용이 대단히 감각적이다.


우선 한국어에서 <숨어서>는 행위의 은폐성, <숨쉬는>은 존재의 지속성을 표현해, 은폐되어 보이지 않지만 숨죽이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존재성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ㅁㄴㄹㅇ(중고딩때 샘이 마누라야라고 부드럽게 부르는 느낌이라고 외우라고함) 라는 유음을 활용한데다가 음성적으로도 유사한 리듬을 가진 두 용언이 '숨'을 두운으로 해서 한 호흡으로 묶어서 말아기에 좋다. 다시 한 번 은근히 읆조려보자. 숨어서 숨쉬는... 한국어의 용언활용에만 내적 라임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영어의 동명사 ing구조도 시적 운율감이 느껴진다.


내면적/신체적 생존(breathing)과 외면적 회피/감춤(hiding)라는 이중적 존재방식이 음성적으로도 유사한 리듬을 가지며 두 단어 사이의 중간자적 역할을 하는 in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음절리듬과 의미상의 대칭이 일어난다.

아울러 Breathing in Hiding에는 이중모음(diphthong) ea=[iː]와 i=[ai]가 있어 모음 리듬의 어조(assonance)가 부드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ing라는 비음의 사용이 숨을 쉬는 존재라는 정서와 부합하고 약강약강(da-DUM-da-DUM)의 숨쉬는 듯한 리듬감이 숨겨진 억압과 조용한 저항, 비가시적 존재를 나타낸다. 소리와 형식에 있어서 일치를 보이는 좋은 제목이다.


https://www.nook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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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노출 콘크리트의 무늬를 브루탈하게 드러낸 인더스트리얼풍 카페의 알루미늄 광택 테이블 옆으로 적벽돌의 빌라가 자리잡은 곳. 따갑지 않을만큼 따사로운 자연광이 걀찍한 커튼에 비스듬히 빛의 윤슬을 드리운다


스피커에선 로파이 힙합이 은근하게 공간을 감싸고 앰비언스감이 마음을 은근히 들뜨게 한다. 오래된 공장을 리모델링한 듯한 천장엔 배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현대예술 오브제같고, 짙은 바디감의 스모키한 커피향과 민트 바질의 초록 내음새가 한데 섞여 20대만의 이국적인 공간인마냥, 서울인데 여기만 특별한 서울인 것 같은 묘하게 이질적인 풍경을 빚는다. 노이즈캔슬링 소니헤드폰과 맥북을 펼친 패피들은 거울보다 더 말 없는 창문 옆에서 무심한 얼굴로 토스트 위 아보카도를 포크로 눌러가며 마치 이 공간의 공기를 하나의 필터처럼 흡입하고 있다. 숨막히는 회사와 집안을 피해 성수동이라는 우주정거장에서 또래의 산소로 심호흡하듯이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 성수 브런치 바 토스트 앤 테크노에 침입한 불청객이 있으니..

종팔: 65세, 공무원 퇴직하고 요즘 성수동 돌아다니는 게 낙인 사람

만식: 61세, 아직 자영업 중. 힙한 공간에 진절머리남. 지방 장터 소주에 국밥이 최고라 생각

기룡: 58세, 대기업 임원출신. 형님따라 어쩌다 온 케이스, 나는 젊은 애들 아주 잘안다고 생각. 영피프티출신

(세 사람, 성수동의 화이트톤 미니멀 퓨전한식안을 발견한다)

종팔 : 여기 한식이라고 써있다 아이가. 3명이오

점원 : 저.. 손님.. 예약하셨나요?

종팔 : 우리 돈 많아 테이블도 비어있잖아

점원 : (주방의 눈치를 흘끔 본다)

그런데 아이고, 이미 세 명이 앉아버렸다.

종팔 : 사장님요! 여기 제일 맛있는 거로 빨리 디비 주이소

점원 : 그 .. 메뉴보고 골라주시겠어요?

종팔 : 여기 제일 잘하는 거로 그냥 갖다주라니까 셰프의 메뉴인지 뭔지 있을거 아녀!

점원 : 아.. 그.. 으..

주방 : (그냥 받아..으드득..)

진퇴양난의 상황.. 내쫓으면 리뷰테러할까봐 받아준다

우여곡절 끝에 테이블 위엔 아보카도 샌드위치, 민트 라떼, 고추장 페이스트와 고사리로 만든 퓨전 파스타가 놓여 있다

종팔:

(아보카도 한입 먹고)

야 이게... 기름기 빠진 삼겹살 같다 아이가. 니네 이거 고소하다꼬 먹나. 내한테는 이게 뭐라냐 그니까 벌건 밭두렁 뜯는 기분도 아니고

만식:

(라떼 휘휘 저으며)

아니 저게 뭐꼬, 빵 위에 풀이랑 콩장을 쳐발라놨네. 니네 집에 소 키우나? 이건 사람 음식이 아이고, 염소 간식이다 염소 흐하하하(자기 조크에 만족해 아주 크게 웃는다

기룡:

(진지하게)

근데 말이오 형님들 요새 젊은 것들은 저런 걸 비건 소울 푸드라카드라예 내 아무리 봐도 우리 어무이가 텃밭에서 뜯어온 싱싱한 상추 같은데 말입니더

종팔:

(딴청 부리며 민트 라떼 한 모금)

어이 사장 이거 뭐꼬? 초코 바니라 이런 거 없어? 쿨담배맛이 나는 음료를 돈 받고 팔아? 하이고 이래서 서울을 못 믿는다. 니 혹시 방금 빨대 씹었나? 치약인지 라떼인지 구분이 안 간다 아이가

만식: (주위를 둘러보며 속삭인다)

저기 저 구석에 앉은 애 봤나? 머리에 쇠사슬을 감았네. 옛날엔 그거 도망간 소 잡을 때 쓰던 거 아인데

기룡: 제가 한 마디만 할게예. 우리가 저리 입고 다녔으면 어릴 때 동네 어르신들이 대못으로 벗겼다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예술이랍니더 하이고 세상말세입니더

종팔:

야야 근데 인정할 건 하자. 여기 공기 디비지게 좋다아이가 돈이다 돈 기가 막히게 돈 냄새난다

만식:

우리가 돈을 쓰니까 그러제 커피 한 잔에 만 원 돈지랄아인교 이름은 또 브루클린 빈티지(블루베리 스무디악센트로) 맞나?

기룡:

(한숨) 형님들 우리 이런 데 또 오지 말입시더. 다음엔 그냥 밀면이나 한 그릇 묵읍시더. 소스가 고추장인데 철학은 프랑스라카면 우짤끼오?

종팔:

그래도 이래 사람사는 거 같다 아이가 우리도 이래 있으니까 마치 젊은 애들 사이에 위장취업한 첩보원 같다 안카나. 요새 곱하기 0.8가 진짜 나이라고 안하나

점원: (시발 그래도 40대 이하로 안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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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NN에 다녀왔다. 얼마 전 혜화역 아르코미술관에서 했던 권오상의 프린팅으로 구성된 봉고차 작품과 비슷해보이는 작품이 있다. 폴리곤 모델링으로 입체를 납작하게 변형시킨 차량. 공통점은 자동차 모티브 하나에, 차이점이 많아 생각해볼만하다



우선 권오상은 딱딱한 철로 만든 차를 가벼운 프린팅으로 재구성해 어긋남이라는 개념을 물질로 구현하고 조각이라는 매체의 본질에 질문하며서 사물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타파한다. 가벼움과 무거움, 순간성과 영속성이라는 상반된 물리적, 시간적 속성 사이에서 조각의 존재 조건을 재고하며 조각을 단단한 실체가 아닌 흐르는 감각으로 제시한다. 작품에는 차량 유리창에 비친 다중초점의 사진이 겹쳐져있어 다양한 시간을 중첩하고 그 시간 사이의 시차를 나타낸다. 이렇게 사진과 경량 재료를 결합하여 조각의 비물질적 가능성을 실험한 작가는 시차와 갱신, 즉 시간의 불균형/오차와 반복의 리듬이 만들어내는 조각적 운동성을 탐구한다


한편 WWNN 신종민 작가의 차량 설치작은 입체를 평면화하고 차량 표면에 프린팅을 바른 권오상과는 달리 오히려 실체의 내부를 노출시킨다. 권오상이 조각의 외피를 탐색했다면 신종민은 그 속을 해체하여 형식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입체적 형상을 납작하게 변형하기 위해 클래식 로우 폴리곤 모델링 기법을 차용했다. 구멍이 뚫려 텅 빈 내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물질의 해체와 시간의 퇴적을 동시에 체험하게 한다. 형태는 마치 열화되어 찢어질 듯한 상태로 존재하며 이는 과거의 시간들이 한데 용융돼 중첩된 층위로 남아 있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분명 자동차를 보고 있으나 이것은 자동차가 아니다. 마그리트적 아이디어 속에 철과 시멘트와 비단으로 만든 신종민의 작품은 조형물 너머의 시간성과 상상력을 환기시키며 매개된 다층적 조건 속에서 현실의 경계를 유예한다.


혜화역 아르코, 25년 4-5월 미니버스전

권오상, 1800장으로 구성된 오류를 위한 오차, 2001, c-프린트,혼합매체, 190×140×320cm, 영은미술관 소장.

WWNN 25년 5-6월 아폴로전

신종민, Asset:/VehicleCar1, steel, cement, silk, acrylic, variable ize,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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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소네트 1번

너무 현대어로 번역하면 그 특유의 고풍스런 느낌이 살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기미독립선언서에 보이는 국한문혼용체로 바꿔보자


4,5,6행이 핵심이라 생각


미려한 생령이 창조의 뜻을 이어받아 그 꽃을 퍼뜨림은(1행 From fairest creatures we desire increase)

영원불멸한 아름다움의 계승이요(4행 His tender heir might bear his memory:)

진실로 인류의 축복이라

허나 너, 오직 네 눈빛의 찬란함에 매여(5행 But thou, contracted to thine own bright eyes)

스스로를 기름 삼아 스스로를 태우며(6행 Feed’st thy light’s flame with self-substantial fuel)

풍요의 밭에 기근을 불러

사랑스러운 너 자신에게 조차 잔혹한 원수가 되었으니(8행 Thyself thy foe, to thy sweet self too cruel

오호 슬프도다!

네 지금이야말로 세상에 한 송이 싱그런 꽃이요

찬란한 봄을 알리는 전령이거늘

그대는 스스로의 봉오리 속에 그 축복을 묻고

인색함 속에 낭비함을 감행하니

이 어찌 가엾지 않으리오

천하를 위하여 자비를 베풀 것이냐

아니면 무덤과 함께 세상의 몫을 삼키는 탐욕의 자가 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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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버스는 예의있는 선비처럼 장유유서가 확실해 할머니들에게 사랑합니다, 아이들에게 반갑습니다하고 외쳐준다.

부산의 버스는 공공적자를 메우기 위해 기본요금이 서울보다 600원 높은데 환승요금은 50원 싸다.


부산의 지하철은 승강장 진입시 갈매기 울음소리와 함께 뱃고동이 울린다. 문이 열리고나서는 발밑 조심하라고 집착적으로, 미친사람처럼, 약간 과하게 15번 이상 반복한다.


서울 횡단보도도 위험하오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들어갈 때까지 반복하는데 대개 유툽쇼츠보는 사람들의 이어폰을 뚫고 음성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옛날 소니 워크맨들고 다니던 시절에는 귀는 음악은 듣되 눈은 좌우전방주시라도 했는데 이제는 스크린에 눈을 못 뗄 정도로 연출과 스토리가 재밌어서 수십 번 반복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위험신호를 감지하지 못한다.


만약 버스 안내양처럼 일일이 사람들에게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하는 유도원이 있다면 어땠을까. 거의 미쳐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 되지 않았을까?


도저히 말을 듣지 않고, 다음 날 나아지지 않는 인파를 통제하는 인간 유도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이런 반복작업은 기계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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