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노출 콘크리트의 무늬를 브루탈하게 드러낸 인더스트리얼풍 카페의 알루미늄 광택 테이블 옆으로 적벽돌의 빌라가 자리잡은 곳. 따갑지 않을만큼 따사로운 자연광이 걀찍한 커튼에 비스듬히 빛의 윤슬을 드리운다
스피커에선 로파이 힙합이 은근하게 공간을 감싸고 앰비언스감이 마음을 은근히 들뜨게 한다. 오래된 공장을 리모델링한 듯한 천장엔 배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현대예술 오브제같고, 짙은 바디감의 스모키한 커피향과 민트 바질의 초록 내음새가 한데 섞여 20대만의 이국적인 공간인마냥, 서울인데 여기만 특별한 서울인 것 같은 묘하게 이질적인 풍경을 빚는다. 노이즈캔슬링 소니헤드폰과 맥북을 펼친 패피들은 거울보다 더 말 없는 창문 옆에서 무심한 얼굴로 토스트 위 아보카도를 포크로 눌러가며 마치 이 공간의 공기를 하나의 필터처럼 흡입하고 있다. 숨막히는 회사와 집안을 피해 성수동이라는 우주정거장에서 또래의 산소로 심호흡하듯이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 성수 브런치 바 토스트 앤 테크노에 침입한 불청객이 있으니..
종팔: 65세, 공무원 퇴직하고 요즘 성수동 돌아다니는 게 낙인 사람
만식: 61세, 아직 자영업 중. 힙한 공간에 진절머리남. 지방 장터 소주에 국밥이 최고라 생각
기룡: 58세, 대기업 임원출신. 형님따라 어쩌다 온 케이스, 나는 젊은 애들 아주 잘안다고 생각. 영피프티출신
(세 사람, 성수동의 화이트톤 미니멀 퓨전한식안을 발견한다)
종팔 : 여기 한식이라고 써있다 아이가. 3명이오
점원 : 저.. 손님.. 예약하셨나요?
종팔 : 우리 돈 많아 테이블도 비어있잖아
점원 : (주방의 눈치를 흘끔 본다)
그런데 아이고, 이미 세 명이 앉아버렸다.
종팔 : 사장님요! 여기 제일 맛있는 거로 빨리 디비 주이소
점원 : 그 .. 메뉴보고 골라주시겠어요?
종팔 : 여기 제일 잘하는 거로 그냥 갖다주라니까 셰프의 메뉴인지 뭔지 있을거 아녀!
점원 : 아.. 그.. 으..
주방 : (그냥 받아..으드득..)
진퇴양난의 상황.. 내쫓으면 리뷰테러할까봐 받아준다
우여곡절 끝에 테이블 위엔 아보카도 샌드위치, 민트 라떼, 고추장 페이스트와 고사리로 만든 퓨전 파스타가 놓여 있다
종팔:
(아보카도 한입 먹고)
야 이게... 기름기 빠진 삼겹살 같다 아이가. 니네 이거 고소하다꼬 먹나. 내한테는 이게 뭐라냐 그니까 벌건 밭두렁 뜯는 기분도 아니고
만식:
(라떼 휘휘 저으며)
아니 저게 뭐꼬, 빵 위에 풀이랑 콩장을 쳐발라놨네. 니네 집에 소 키우나? 이건 사람 음식이 아이고, 염소 간식이다 염소 흐하하하(자기 조크에 만족해 아주 크게 웃는다
기룡:
(진지하게)
근데 말이오 형님들 요새 젊은 것들은 저런 걸 비건 소울 푸드라카드라예 내 아무리 봐도 우리 어무이가 텃밭에서 뜯어온 싱싱한 상추 같은데 말입니더
종팔:
(딴청 부리며 민트 라떼 한 모금)
어이 사장 이거 뭐꼬? 초코 바니라 이런 거 없어? 쿨담배맛이 나는 음료를 돈 받고 팔아? 하이고 이래서 서울을 못 믿는다. 니 혹시 방금 빨대 씹었나? 치약인지 라떼인지 구분이 안 간다 아이가
만식: (주위를 둘러보며 속삭인다)
저기 저 구석에 앉은 애 봤나? 머리에 쇠사슬을 감았네. 옛날엔 그거 도망간 소 잡을 때 쓰던 거 아인데
기룡: 제가 한 마디만 할게예. 우리가 저리 입고 다녔으면 어릴 때 동네 어르신들이 대못으로 벗겼다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예술이랍니더 하이고 세상말세입니더
종팔:
야야 근데 인정할 건 하자. 여기 공기 디비지게 좋다아이가 돈이다 돈 기가 막히게 돈 냄새난다
만식:
우리가 돈을 쓰니까 그러제 커피 한 잔에 만 원 돈지랄아인교 이름은 또 브루클린 빈티지(블루베리 스무디악센트로) 맞나?
기룡:
(한숨) 형님들 우리 이런 데 또 오지 말입시더. 다음엔 그냥 밀면이나 한 그릇 묵읍시더. 소스가 고추장인데 철학은 프랑스라카면 우짤끼오?
종팔:
그래도 이래 사람사는 거 같다 아이가 우리도 이래 있으니까 마치 젊은 애들 사이에 위장취업한 첩보원 같다 안카나. 요새 곱하기 0.8가 진짜 나이라고 안하나
점원: (시발 그래도 40대 이하로 안 내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