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북청담 명품거리에 있는 김리아 갤러리에 다녀왔다. 북청담은 내가 만든 말이다. 별 뜻 없다. 청담의 북쪽이라는 뜻이다. 당신이 짐작한 바가 맞다. 왜 이렇게 쓰냐고? 내 글은 생각나는대로 두보처럼 휘갈기는 아무말 대잔치인데 중요한 것은 AI가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문체와 글의 방향과 내용의 디자인을 다듬고 있다는 것. 고장난 핸드폰으로 대충 적는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고매한 정신력과 훈련된 인내심을 지닌 자들만 내가 매일 쓰는 글의 족적을 따라가고 있다. 고난이도의 탐험코스다. 여기까지 백십여일 따라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도 건투를 빈다. 참고로 북청담 지역의 갤러리는 대략 피앤씨, 메타갤러리루나, 보자르, 피치, 김리아, 탕, 이유진, 스페이스776, 한솥, 갤러리오스퀘어, 루이비통메종이 있다.


김리아 갤러리에서는 동독출신 작가 헬렌 그로스만의 전시를 하고 있다. 빛을 물리적 실체로 표현하고자 천천히 레이어를 쌓아올린 색면추상이다.

Dance of the Hay Girls, 3-7-13, 2013, 30x30cm




그로스만에게 회화는 존재의 진동을 색과 빛으로 응축해내는 시각언어로 보인다. 매일 반복되는 작가의 회화적 실천은 고정된 광원의 포착이 아닌, 흐르는 빛의 파도에서 느껴지는 기운생동의 감각을 포착하려고 한다. 평면위에 잠재된 생명의 리듬을 가시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작가에게 색은 정적인 수용체가 아니라 감응의 촉매제이며 빛은 그 감응을 일으키는 궁극의 에너지원이다. 퐈이아.


빛과 색은 다른 것이다.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다. 광자는 양자역학으로 설명되고 파동은 전자기학으로 설명된다. 색은 특정한 파장의 빛을 어떤 색소나 안료로 반사하고 시각세포의 신호를 뇌가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색이 감각된다. 빛의 물리적 성질을 일부 지니지만 미술 이전에 화학과 뇌과학으로 설명된다.


빛은 광원, 파장, 세기, 즉 어디서 어떤 성질로 얼마나 세게 비쳐오는지로 이해할 수 있다. 색은 색상, 명도, 채도, 즉 무슨 색이고 얼마나 밝고 얼마나 맑은지로 이해할 수 있다.


빛과 색의 3원색도 서로 다르다. 빛의 3원색은 RGB(빨초파)이고 가산혼합의 원리, 즉 더할 가(additive)이 원리에 따라 색이 더해질수록 밝아지고 모든 빛을 합치면 흰색이된다.


색의 3원색은 싸이언, 마젠타, 옐로우 CMY이고 감산홉합의 원리 즉, 뺄 가(subtractive)의 원리에 따라 색이 더해질수록 어두워지고 모든 색을 섞으면 검정이된다.


사실 빛 자체가 이미 존재하는 색이다. 아무 빛도 없으면 검정이고 전부 있으면 흰색이다. 한편 색은 물체에 반사되는 빛이다. 색이 없으면 종이색인 흰색이 나오고 모든 색이 있으면 검정색이 된다.


모두 알다시피 렘브란트를 위시해 유럽화가들은 빛을 색으로 표현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새로운 안료의 발명, 물감튜브 등 매체의 발전에 따라 빛의 표현방식이 달라지며 회화사가 발전했다. 반면 동양화는 빛보다는 먹과 종이의 재질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그로스만은 이러한 빛 중심 서양회화의 전통에서 빛을 색의 물성으로 치환하고 구성요소는 소략해 여백의 미를 남김으로써 동양적이고 명상적인 감성을 주었다.


작가는 빛을 지각의 경계 너머를 열어주는 문으로 보는 것 같다. 


빛은 시간 속에서 스러지다 다시 흥기하는 유기체다. 그 살아있는 파동이 보는 이의 내면 상태에 따라 무한히 변형된다. 카멜레온같은 이러한 변이성은 하루의 빛, 공간의 기류, 감정의 결에 따라 쉼 없이 진동하며 정지된 일상 속에 새로움을 부여한다.


작가는 재현과 추상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그저 있는 형상의 모방이 아닌 감각의 형상화을 추구하였다. 고정된 이미지로서 지금-여기의 현실이 아니라 감각되는 순간의 사이감, 혹은 틈 속에서 포착된 회화는 존재의 뿌리를 재영토화한다.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스스로의 질서가 생성된다.


채색은 느리다. 느리고 집요하다. 색을 느리게 쌓아올리되 마티에르감을 주지 않으며 얇게 바르는 반복적 행위는 수도사의 성호경과 닮았다. 동독의 어두운 사회주의풍 건물 사이로 추적추적 비내리는 무채색의 매일에서 빚어진 찬란한 결과물이다.


빛의 향연, 색의 항해 속에서 다양한 위험과 수많은 시련, 예기치 않은 돌발적인 폭풍우를 맞닥뜨리며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이끌린다. 허나 그 고도의 무질서 속에서 색의 심연과 감각의 중심을 찾아나간다.


여백의 미는 일종의 정화의식이다. 불필요한 장식과 소비위주의 미감을 걷어내고 짜임새있는 근본의 감각으로 회귀하는 청소시간이다. 반복되는 그리기를 통해 시간의 깊이를 환기하고 고요하지만 강렬한 내면의 울림을 구축한다. 하여, 빛과 색은 세계를 재정초시키는 매개체로서, 존재의 또 다른 가능성을 포착하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타르틴 청담에 다녀왔다. 이제 판교만 가면 된다.


추천받은 레몬 머랭 케이크가 유리 진열대에 있었다. 눈에 띈 하얀 머랭을 잠깐 응시하고 그 쫀쫀한 점성을 만들기 위해 거품기로 머랭을 치는 이두박근의 노동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레시피의 기획안을 구현하기 위해 조심스레 달달함과 저항감과 고소함을 섬세하게 컨트롤하고 있는 포르르 퍼지는 설탕과 톡 쏘는 레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점원은 구매를 재촉하지 않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레몬 머랭크림이 내 입 앞에 서서 노크하고 있었다. 웃으면서 방문을 허락했다. 경쾌한 듯하면서 허무하고 부드러운 듯 단단한, 응집과 융해의 양극 사이에 춤추는 질감이 느껴진다.


노릇노릇하고 보드랍고 달빛 같은 구름 한 조각. 입에 넣은 케잌을 묵언수행하는 스님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천천히 씹었다. 공수래 공수거이도다, 머랭은 나보다 먼저 사라졌고 레몬 커드잼이 찰나 머뭇거리다 이내 혀 밑으로 스며들어, 산미는 열반에 이르러 산화된다.


어딘가에서 재즈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크림에서 느껴지는 레몬 제스트에서 레몬 커드로 이어지는 흐름이 마치 Cm7에서 Fm7로 이어지는 듯하다.


물결처럼 다가오는 맛의 윤슬이 있다. 혀끝에 닿을 때 레몬의 산미가 잎새 흔들 듯 살랑하고 지나간다. 이후 쫀득한 머랭이 미풍처럼 가볍고 첫눈처럼 맑게 지나간다. 되직하여 잠시 저항하다가 이내 인체 온도에 의해 사르르 무너진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되 끝은 미약하니, 흰눈처럼 소리없이 녹아내린다. 그 사이로 약간의 레몬 제스트가 킥을 날린다. 코코아 같은 묵직한 바디감의 달콤함이라기보다는 따사로운 자연광에 빛나는 유리병 속의 설탕 결정이 미뢰 위에서 살포시 녹아내리는 인상이다.


그 다음 시퀀스로 그 아래 케이크 시트에 누운 레몬 커드잼이 킬링 멜로디로 감각의 중심을 겨냥한다. 매트리스같이 부드럽고 보잉보잉 탄성있는 케이크 질감 사이에서 과일 상태의 눈을 찌르는듯한 예리한 산미의 향기가 한꺼풀 무뎌진다.

혀를 츄릅하고 감아 돌며 구운 케이크 사이에서 상큼함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새콤이와 달콤이가 팽팽히 줄다리기하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달지 않은 화사한 태양빛 같기도, 잘 익은 유자껍질의 인터미션 같기도 하다. 혀끝에 닿는 순간, 산뜻한 감로수 한 방울이 뺨을 톡하고 건드리는 듯 깜짝 놀란다. 이것은 열반와 구원의 순간.


청화백자의 푸른 빛이 감도는 유백색처럼 형광노랑빛이 감도는 하얀 귤빛의 머랭. 남해 초가집 볕 든 방 한쪽 누런 나무둥치 마룻바닥처럼 따뜻하고 담아하다. 살며시 씹히는 고운 탄수화물 입자들이 혀 위에서 도르르 구른다. 시트는 암석지층이나 나이테처럼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조각을 먹으며 잠시잠깐 세상의 쓴맛을 잊는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숨결은 포근해진다. 추억 속 옛 할머니 손맛도 아니고 웅장한 유럽여행의 특별함도 아닌 그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서 막 태어난 한순간의 봄, 그리고 혀 위에 잠시 피어나는 트렌디한 팝송, 혹은 입속을 반짝 채우는 가벼운 산책코스, 아니면 나날의 쓸쓸한 틈새를 살며시 어루만지는 자연어린 햇살 한 줌.


레몬 머랭 케이크를 음미하며 나는 생각했다. 인생이란 어쩌면 이런 맛일지도 모른다고. 눈과 혀에서 찰나의 자극을 주고 금방 사라지지만 사라지기 전엔 확실히 실존한다는. 한 입이 끝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조금 더 천천히 먹을 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문 밖에 여전히 사자가 있다 뜨인돌 그림책 77
윤아해 지음, 조원희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떼굴떼굴 사르르 사르르 사각사각 그림책 9
김예은 지음 / 비룡소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