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커비 울트라 슈퍼 푸푸푸 히어로 2 - 도팡 일당과 환상의 방울! 별의 커비 푸푸푸 히어로
아오키 케이.미카마루 지음, 김지영 옮김 / 다산어린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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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1화부터 4화까지 흐름이 좋다.


이미 대작이 될만한 잠재력은 초반에 증명이 되었다. 원피스나 나루토처럼 시작 흡입력이 좋고 설득력이 있으며 작화가 좋고 세계관의 비밀을 제시하는 순서가 부드럽다.


농구. 여자친구. 사고뭉치에 직진하는 성격. 최대 라이벌. 그리고 고교생에게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여자친구와 그녀의 비밀-바로 주장이 바로 오빠라는 사실.


특히 슬램덩크는 진지(구체적인 작화)와 병맛(캐리커쳐적 표현)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점이 눈에 띈다. 게다가 얼굴 각도에 따라서도 원래 얼굴이 과하게 바뀌지 않는다. 어떤 만화는 옆얼굴 45도 얼굴 등이 너무 달라서 인물의 시각적 연속성이 부족해 몰입도를 떨어뜨리는데 슬램덩크는 덜한 편이다. 특히 전환이 깔끔하고 효율적이다.


교실에서 여학생들-체육관의 남학생들

농구부 주장이라고? - 백호와 치수의 겨루기 12컷(1페이지 후) - 바로 우리 오빠야! -이 고릴라야!


정상적인 상황이면 채소연 친구들은 농구부 주장이 친구 오빠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체육관에서 농구부 주장과 시합하고 있대! 가 아니라

소연아 지금 오빠랑 빨간머리애가 시합하고 있대! 라고 해야 정확하다.


친한 순서대로 먼저 정보를 전달하고, 나중에 알게 된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이름대신 신체특징으로 지칭하기 마련이니까.

또한 소연이도 친구들이 농구부 주장이라고 말한 순간, "오빠가?"라고 말해야 정상이다. "농구부 주장이?"이라고 되묻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엄마의 이름이 지영이고 기업 부장이라고 했을 때, 누가 지영부장님이 차사고 나셔서 전화드립니다, 라고 하면 부장님이? 라고 하지는 않는 것처럼


저자는 일부러 이 정보를 12컷 이후로 지연시키고 중간에 승부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영화적 효과를 주었다. 농구부 주장이라고? 우리 오빠잖아! 하고 농구신을 넣는 것과 중간에 삽입하는 것 중 어떤게 더 영화적 연출이 좋은지는 두말할 나위 없다

작가의 의도적인 연출이고 천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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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n-foundation.org/archives/exhibition/%ec%84%a0%ed%8c%85%ec%98%a4%ec%9d%bc-suntint-oil


이태원 언덕길 고급주택가 사이에 위치해있는 캔파운데이션에 다녀왔다. 선팅오일이라는 제목으로 이진형과 조효리 2인전을 하고있다. 들어가는 길목은 북미 상점가처럼 느껴진다.



태양(썬)과 착색(틴트)의 합성어인 썬팅은 콩글리시로 영어권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차량유리의 자외선 차단필름을 지칭하는 이 어색한 조합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서 이질적인 두 감각을 상징하며 태양의 직사광선과 틴트의 차단, 즉, 외부의 에너지를 가리면서 동시에 내부에서 밖을 볼 수 있도록 투명해야하는 불가능한 공존을 의미한다.


뒤틀린 조합은 우리가 세상을 언어로 포착하는 방식과 실제 지각 사이의 어긋남을 드러내는 재밌는 예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언어적 일탈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림이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수단을 넘어서서 감각을 조정하고 현실 인식을 전환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썬이라는 외부 자극은 걸러내고 동시에 원하는 시지각은 통과시키는 반투명한 막, 틴트는 전시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두 상반된 속성의 중간지대에서 감각이 잠시 정지했다가 흘러가는 순간을 포착하기도, 서서히 번져가며 자취를 남기는 점성물질을 보여주기도, 지평선이 서로 다른 시간대의 회화표면에 공존하는 순간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불가능의 동시성을 드러냈다.


이진형 작가는 이미지가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그것이 인식되는 방식에 더 초점을 둔다. 내용보다 접근법이다. 작가가 수집한 시각자료는 디지털매체에서 발생하는 불완전함을 드러내는데, 크기 조절과 해상도의 흔들림, 형태의 왜곡을 반복하며 실험한다. 그의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해석되지 않고 찬찬히 볼 때만 서서히 의미를 드러내는 시각적 단서들이다. 작가는 일련의 이미지를 해체하거나 병치하거나 새롭게 재조합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시지각의 구조 자체에 대한 창조적 실험이며, 보는 행위를 탐구하는 과제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에서 회화는 대상을 복제하는 매체가 아니라 감각의 리듬을 조율하는 시각적 언어로 정초된다. 화면은 안료가 덧입혀지는 평면에 머무르지 않고 시각적 정보가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깊이감 있는 필드로 외연이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보는 이는 시선을 고정하지 않고 분산시키게 되며, 이미지에 몰입하기보다 그 가장자리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된다. 하여,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자각한다.


조효리 작가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감각의 움직임을 재조립한다. 3D 시뮬레이션으로 활용해서 가상구조를 평면이나 입체로 전환시킴으로서 허상과 실재가 뒤섞이고 내부와 외부 그리고 정과 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작품은 유리 표면, 반사된 이미지, 불분명한 경계 등이 특징인데, 감정의 여운이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다양한 감각적 층위 위에 부유하면서 따라가고, 문득 자신의 기억과 상상을 겹쳐보게된다. 하여, 보는 이는 무엇을 보는가, 보다는 어떤 존재로서 바라보는가라는 화두에 천착하게 된다.



선팅오일전은 두 작가의 작업세계에 익숙한 이들과 새로 보는 이들 모두에게 새롭게 맥락화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처음 보는 이들은 각각의 회화세계로 들어서는 관문이 될테다. 이 전시는 보는 이가 그림을 매개로 어떤 감정을 어떻게 느끼는지, 시선이 어떻게 머물렀다가 흘러가는지, 혹은 나는 어떤 존재로서 그림을 바라보는지 등, 각기 다른 생각에 침잠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보는 이는 각자의 속도와 감각으로 작품에 응답하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전시는 끝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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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즉 결여되어 있어서 채우고자한다.

그리고 그 결핍은 쉬이 충족되지 않는데

채우고자 파이를 키우게 되면

외연이 증가한만큼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무슨 말이냐 예를 들어 자세히 보면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행복을 연구한다

양심없는 사람이 양심에 대한 글을 쓴다

정직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방법이 정직하지 않다

남의 심리상담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심리가 더 문제다

내면의 힘이 없어서 외면적 권위를 추구한다

실력은 없는데 학벌만 있거나

맞춤법이 안되는데 글을 쓰고

진솔하지 않은 데 진솔한 척하며

진짜 친구가 없는 사람이 무리를 만들고

부단히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아름다움에서 멀어져만 간다

외국의 그 유명학자, 그 셀레브리티는 한 번 잠깐 만났는데

친한 척 아는 척하며 울궈먹는 사람이 있다 어차피 한국어로 말해봤자 그 사람 귀에 안들어가니까

유학갔다가 잘 안되어서 돌아왔는데 현지경험을 계속 팔아먹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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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유작 해적 계몽주의가 한글로 번역되었다. 


작년 부산 비엔날레(어둠에서 보기)의 유럽인 큐레이터 베라 메이와 필립 피로트가 영감을 받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물론 초기의 의도가 잘 구현되었는지는 관객으로서 의문이다. 한국의 행정과 규제를 겪고 나면 다 다운그레이드가 되는 것인지. 건축물 조감도처럼.


역자는 고병권 선생. 12만원짜리 1280쪽짜리 희대의 대작 자본 강의를 쓴 저자다. 책에 하이라이트 잘 안 치는 내게는 굉장히 드물게도 한 페이지에 한 번 꼴로 줄을 그으며 읽었다. 그리고 그 잘 읽히는 대작을 쓰기까지 12권짜리 북클럽 자본 전질을 쓴 경험이 있어야했다. 단 한 권을 쓰기 위해 습작(이라고 하기에는 퀄리티가 높은) 12권을 쓰며 자신 안에 내공을 찬찬히 축적해야했던 것. 물론 그 책을 쓰기 위해 지난 10년간의 궁리가 있었겠다. 오랜 생각의 실타래가 꾸준한 습작을 거쳐 다듬어진 후에야 정련된 결과물 한 권이 나오는 것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팬데믹 초반에 necrotic pancreatitis, 그러니까 괴사성 췌장염으로 환갑 전에 명을 달리했다. 예일대를 거쳐 런던정경대에서 교수를 역임한 인류학자인데 탄탄한 이론과 활동가로서 현장성을 겸비한 보기 드문 지성인이었다. 그의 글은 특별하다.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데이비드 그레이버만 쓸 수 있는 글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하냐?


일단 명료함과 깊이를 동시에 지녔고, 급진적 이론(아나키즘)을 인류학적 증거로 뒷받침해 실제 경험적 사례에서 대안을 제시하며, 상아탑의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이론적 정밀함을 유지한다. 나아가 피카소급으로 기존 역사적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데 능하며 아나키즘을 사상으로서뿐 아니라 지적 형식이자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그레이버의 저서는 빌브라이슨이나 신형철처럼 어느정도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읽었을 때 그 안의 유머와 해학과 풍자적 요소를 제대로 발견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있지만 팬이 되면 그만큼 또 재밌는 책이 없다. 그가 요리조리 구사하는 재치있는 반어법이라든지 일상에서 발견해낸 철학적 직관 같은 부분은 예를 들어 <헛소리 직업(쓸모없는 일자리)>의 이런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Normally, when you challenge the conventional wisdom—that the current economic and political system is the only possible one—the first reaction you are likely to get is a demand for a detailed architectural blueprint... Historically, this is ridiculous."– Bullshit Jobs: A Theory


그레이버는 이 인용문이 언급된 책에서 관료주의 서류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시시한 일을 하는 일터에서 사람들이 어떤 가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꼬집는데 마치 SNS에 올리는 냉소 섞인 농담같다. 그런 농담섞인 말과 학술언어 사이의 오솔길을 더듬어가던 어느 순간 독자는 깨닫는다. 우스운 일상이 사실은 우리가 속한 체제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레이버는 노동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왜 쓸모 없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느냐고 물으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한다.


"지옥이란 자신이 잘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Hell is a collection of individuals who are spending the bulk of their time working on a task they don’t like and are not especially good at."– Bullshit Jobs: A Theory


또 다른 재밌는 예시는 규칙의 유토피아에서 찾을 수 있다. 


"The ultimate, hidden truth of the world is that it is something that we make, and could just as easily make differently."– The Utopia of Rules

"세상의 궁극적인 진실은 이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를 만들었고, 원한다면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자본주의, 국가시스템 등의 기존 질서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은 유발 하라리 등 사회 구성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대부분의 지성인이 공유하는 논점이지만, 그레이버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위 인용문에서처럼 얼마든지 사회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관찰적 비판자의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이 대안을 꿈꾸는 사상가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레이버는 사회변화를 말하면서 무의미한 청사진과 보여주기식 매뉴얼을 내놓는 식의 정치적 상상력에 회의적이다. "사회 변화가 언제 누군가의 청사진에 따라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에서 몇몇 선지자들이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구상하고, 언젠가 주식 거래소와 공장이 어떻게 작동할지를 설계한 뒤,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행에 옮겼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이런 생각 자체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애초에 우리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상상하게 되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When has social change ever happened according to someone’s blueprint? It’s not as if a small circle of visionaries in Renaissance Florence conceived of something they called “capitalism,” figured out the details of how the stock exchange and factories would someday work, and then put in place a program to bring their visions into reality. In fact, the idea is so absurd we might well ask ourselves how it ever occurred to us to imagine this is how change happens to begin."


그레이버는 혁명을 일상의 행위로 본다. 약자의 무기나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을 쓴 제임스 스콧과 비슷한 입장이다. 학내정치로 인해 2005년에 테뉴어에 임용되지 않았을 때 같은 예일대에 몸담고 있던 제임스 스콧은 그레이버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는데 이는 우연의 일이 아니다. 둘의 학문적 방향성은 비슷했고 상호 존중하는 사이였다. 그 둘의 입장의 고갱이는 곧, 거대한 서사 대신 함께 규칙을 만들고 다시 검토하고 또 다시 바꾸는 작은 실천들이야말로 진짜 정치적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레이버는 사유하는 시인라고 할 수도 있겠다. 논리와 이성을 가능성과 이상으로 버무리고, 제도와 함께 관계를 접목시키고, 전환과 동시에 실천에 주목했던 시인. 임마뉴얼 월레스틴이나 칼 폴라니, 니클라스 루만이 메타적으로 거대관계에만 다루어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그레이버는 현장에 뛰어들어 생생한 현장감을 통해 구조적 분석과 미시적 예시가 돋보이는 정치한 글을 빚어냈다. 


그레이버 사후의 독서는 어떠해야하는가? 그레이버를 읽는다는 것 좌파적 상상력을 익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세상을 향한 어떤 우회적인 신뢰를 되찾는 일에 가깝다고 본다. 인간이 아직 계산하지 않.을. 줄 안다는 것 그리고 아직 인간이 불교의 무주상보시와 모스의 증여론을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레이버는 우리에게 그 믿음을 증명해 보였다.


다르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은 다르게 상상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레이버는 새로운 상상력을 증언하는 글쓰기를 새로운 언어를 통해 증거했다. 그래서 많은 카우치 인류학자들과는 달리 탁상공론이 아니라 가능성 그 자체였고 그의 책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레이버의 레거시를 좇는 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활동하고 생각하고 글쓰면서 다른 세계를 도모하며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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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 2025-06-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인용문 중에서 ˝사회 변화가 언제 ~~ 묻지 않을 수 없다˝라는 구절은 어떤 책에서 인용한 것인지요?

글을매일씁니다 2025-06-17 18:01   좋아요 0 | URL
그것은 책이 아니고 칼럼기사입니다.
https://bogost.com/writing/blog/well_whats_your_solution_then/
https://afflictor.com/2013/04/08/when-has-social-change-ever-happened-according-to-someones-blueprin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