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일이 번역한 다케우치 요시미 관련 저서는 다 읽었다. 이론과 실천의 두 날개로 나는 지성인이 드문데 그래도 윤여일이 그 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박사학위 취득 이후 10년간을 살아왔는지 알 것 같다.


어떤 순간이 있다. 낙뢰를 맞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에 하나의 분기점이 될만한 그런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구를 보다가 소설가가 되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게 된 몇 초의 찰나일 수도 있고

제3세계 봉사활동을 가서 그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야지 하고 마음을 먹게 된 1개월의 경험이 수도 있고

재미로 시작한 유투브가 하다보니 실버버튼을 받고 먹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윤여일의 경우는 수유+너머의 집단토론 경험일 것 같다. 그에 더해 생계를 위해 해야만 했던 논술학원 강사 (대중전달력).

책은 수유+너머의 경험에 대한 찬사와 레거시, 그리고 교토의 산맥모임 같은 비슷한 장시간 토론학습의 외국변주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대학원 강의나 그가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는 학술대회보다 이런 사적 모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그는 내내 설파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이후로도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 있을까? 그리고 그가 꼽는 멤버들 중 그를 포함해 많은 이들은 아카데미아에 교수로서 정규직 취직했는데 그 한 때의 열정을 지속할만한 공간이 또 있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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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파이브보고 왔다.


준수한 영화다. 각본을 아주 오랜 시간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고 후반작업에 많은 시간을 쏟은 듯 VFX가 상당히 많고 이야기의 속도감을 위해 편집을 매우 자잘하게 잘랐다. 김선녀(라미란 분)의 대사가 특히 그 나이대 그 직업의 여성들이 할만한 대사다. 거기에 강남 유학파 느낌이 있는 기동이(유아인 분)과 무능력한 백수 시나리오지망생 지산(안재홍 분)이 전혀 다른 말투로 뒷받침을 하니 대사를 듣는 맛이 있다. 특히 펀치라인 대사가 종알종알 쉴새없이 오갈 때 쓸데없이 인물의 벙찐 표정에 몇 초 이상 주지 않고 바로 다음 컷으로 이동시키면서 다수의 가벼운 잽을 관객에게 날린다. 그러면서 대사가 하나하나 잘 들리게 조정했으니 이것도 믹싱을 잘한 것 같다.


설경구 같은 경력이 많은 배우도 <더 문>에서처럼 과학용어가 많으면 대사전달이 웅얼웅얼 잘 안들릴 수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영역이다. 대사량이 많은데 일일이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인상인데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즐기면서 촬영했을 것 같다. 현장분위기는 좋은 편이었겠으나 코로나와 유아인배우 사건 등으로 시절을 잃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팀이름을 하이파이브라고 소개하고 엔딩을 친데다가, 오정세 배우를 이정도까지 클라이맥스 액션에 등장시켰는데 아직 미각성자이고,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죽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기에 아직 모든 떡밥이 회수되지 않았다.


분명 발냄새나고 삑사리 나는 한국형 히어로물 시리즈를 만들고자 속편을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일텐데(안재홍이 발 헛디딘다든지) 대중의 취향이 일단 한 번 옮겨간데다가 넷플릭스에 워낙 거대자본을 투자한 비슷한 시리즈물이 많아서 속편을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특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엔드게임 이후 페이즈4부터 진정성과 방향성을 잃으며 더더욱 슈퍼 히어로물은 많은 이들에게 소구력을 잃었다. 투자자와 제작자는 많이 아쉽겠다. 시간이 오래 지나 리부트물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007이나 스타트렉 등도 장기적인 아이디어로 IP를 관리하듯이. 그때까지는 시나리오는 창고에 보관해야할지도. 다만 한국적 정서에서 넥스트 찬스가 주어질지는 알 수 없다.


돌리 트랙을 따라 카메라를 이동시키며 줌인아웃을 통해 배경을 조절해 강렬한 심리적 효과를 주는 버티고샷이 사이비 행사에 한 번 등장한다.


이재인 배우와 라미란 배우가 킥이다. 이재인 배우의 발견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역배우 김강훈을 닮은(누가 누구를 닮은 거지?) 강아지형 얼굴에 깨발랄하면서 편부모의 아픔이 있는 여중생 태권소녀 역할을 하기에 적절한 캐스팅이다. 안재홍과 첫 대화신과 리코더신에서 모래바람을 맞아 가려운 눈을 비빌 때, 그때 표정연기가 괜찮다.


박진영 배우는 신구 배우의 말투를 따라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 것처럼 보이고 김희원 배우는 주로 맡던 악역이나 형사에서 이미지 변신을 잘 시도했다.

레퍼런스로 여러 영화가 생각난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갈등을 해결하고 협업하게 된다는 점에서 배우의 앙상블신이 빛나는 <써니>. 완서는 편부의 과잉보호와 친구없음, 우울과 분노장애와 과거트라우마에 고통받는 선녀, 공사현장 현장감독으로 샌드위치 스트레스 상태인 약선, 데뷔못한 시나리오작가인데 표절시비가 있고 악플러인 지산, 그런데 기동만 과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부분이 두 번 나타나지만 제대로 설득되지 않는다.


기원담 비슷하게 시작했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2편의 프리퀄이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한 박훈정의 <마녀>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레트로배경에 경쾌한 분위기인데 그 안에 깔린 이야기는 심각하고 처절한 <빅토리>(지방조선업의 험함과 노동결의)나 <스윙키즈>(UN포로석방) (그리고 그 냉엄한 현실을 라이트하게 다룬다. 여기서는 사이비 종교 문제)

한국형 슈퍼히어로를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외계+인>시리즈, 그러나 히어로의 기원담에 대한 서사가 더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천박사 퇴마연구소>가 생각난다.


이 두 작품은 한국문화의 글로벌화를 위해서 한국적인 것을 전통적인 것으로 생각했으나, <하이파이브>는 보통의 한국인의 삶과 90년대 근과거 레트로한 느낌을 담았다. 어떤 방향성이 더 한국적일지는 외국관객이 판단할 것. 다만 비슷한 테마의 <서울대작전>보다는 더 짜임새 있다.


예컨대 지산이가 콧방귀 뀌면서 능력 보여주는 장소는 두 곳, 노가의 리 같은 중저가 호프집과, 지방 역사 근처에 있을 법한 연탄 고기집이다. 아울러 영화의 대미라고 할 수 있는 박완서의 달리기신도 언덕이 많은 한국의 도시지형이고 야쿠르트 체이스신도 어지러운 전선들 사이로 2층짜리 낮은 적벽돌집과 크리닝, 떡집 등이 늘어서 있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이다. 체이스신의 루트는 한 공간으로 보이지 않고, 로케 여러 곳을 합성했을 것 같지만 힙한 까페나 대리석 건물이나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는 서울은 피하고 덜개발되 근교에서 찍었을 것 같다. 스쳐지나가는 공인중개사나 도로명을 기억했다 돌아와서 검색해보니 인천 춘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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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사칭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실력없음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에게 학벌로 찍어 누르거나 없는 지위를 자랑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거나 허장성세로 조그마한 자아를 부풀리거나 하는 등의 온갖 난리법석과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나는 아무 관심도 없다. 그럴 가치도 시간도 없다.

어떤 사람의 준수한 학벌은 판단의 one of factors 즉 한 요소일뿐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본질적 실력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외면만 보고 내면은 보지 않는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고 외면의 화려함을 내면의 실속으로 등치시킨다는 데 구조적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디 외국 대학 나왔어요 외국어 몇 개를 해요 하면 와 대단해요 나도 거기 가봤어요 누구 알아요 하면서 시덥지 않은 잡담이나 서로 띄워주기하는데만 무의미한 시간을 쓸 뿐이다

거기서 뭘 배웠고 외국어로 읽는 신문 잡지 소설은 무엇이고 우리나라말과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어떤 사고방식이 흥미로운지 한국사회에 기여방법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깊게 들어가면 진지충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기도 하고 대화가 스무스하게 굴러가지 않는다. 어떤 학교 졸업이네요 라고 단답형으로 말하는 것보다 더 재수없다는 뒷담을 듣기 십상이다. 무슨무슨 학교졸업이예요 라는 말에서 왜 잘난척이야? 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진중한 질문과 답변을 하는 순간 왜 나대? 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사회는 허례허식이 중요해서 학벌사칭은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일일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학벌을 넘어 실력을 봐야하고, 허세를 넘어 본질을 꿰뚫어봐야한다. 이 모두 스스로 판단해나갈 뿐..


더가디언이나 파이낸셜타임즈나 코리아 타임즈를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트럭이어도 구체적으로 논조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표현상 특징은 무엇인지 자세하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읽은 자만 아는 개별 사례를 말해주는 사람이나 소스에 신경을 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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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글리코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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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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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끝
정해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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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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