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에서 열린 정수영 개인전에 다녀왔다. 


작가의 팬트리 연작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물질문화를 전시한 정물화의 현대버전이다. 정수영 작가의 현대판 저장고 정물화를 17세기와 비교해보자. 무엇이 공통되고 무엇이 차이이며, 정수영은 무엇을 그리지 않았고, 이 팬트리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 것이며, 미래 AI, 바이오테크, 양자역학과 우주식민지 시대의 팬트리는 어떤 모습일까?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들이 21세기의 저장고를 생각할 수 없었듯, 지금 우리도 23세기의 저장고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몇 가지 트렌드는 있다. 양갱형태의 곤충프로틴식 같은.


아, 물론 학고재를 오늘 다녀온 것은 아니다. 거의 초기에 다녀왔다. 이번 주말부터 장마시즌이 시작되니 비축분이 슬슬 풀릴 예정이다. 지난 네 달간 거의 매일마다 많은 전시장을 부지런히 다녔다. 다 이유가 있다. 본격적으로 장마시즌이 되면 우르릉 쾅쾅 쏴아아아 하고 내리는 비때문에 이동이 힘드니 매일 올리기 위한 비축분을 쟁여놓은 것이다. 장마와 폭염에는 습도로 인해 찌는 듯이 더워 여러 곳을 다니기 힘들다. 따라서 봄가을처럼 하루에 여러 곳을 이동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1일 3끼하듯, 1일 3곳이 최대다. 안국역을 서둘러 졸래졸래 빠져나와 국현미 한 번 들어가서 달래 먹는 곰처럼 동굴 속에서 안 나온다랄지, 시청역에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쏙 들어가버리고 땅거미가 거뭇거뭇할 때 나온다랄지


다니지 않을 때 밀린 책과 OTT를 챙겨야하는 기간이다. 쌀 농사에도 모내기와 추수의 타이밍이 있듯이, 지식 농사에도 시즌별로 해야하는 작업이 있다. 이동이 적절할 풍년의 때에 많이 추수해 미리 사일로에 7년 어치 곡식을 저장해 이후 7년의 흉년에 대비해 둔 조셉처럼. 그 날과 시를 알지 못하지만 기름을 미리 준비해둔 이들의 옛 이야기처럼.

정수영, Pantry, 2025, Acrylic on linen, 120x120cm

Clara Peeter’s Still Life with Cheeses, Artichoke, and Cherries (ca. 1625)





정수영 작가의 팬트리 연작은 당대의 풍요로운 물질문화를 집요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정물화가 페테르 클라스(Pieter Claesz, 1597-1660), 얀 데 헤엠(Jan Davidsz de Heem, 1606-1684), 클라라 피터스(Clara Peeters, 1594-?) 등이 생각난다. 이 두 시대 속은 사조를 비교해보자. 


먼저, 두 시대의 작품 모두 사물의 배열이 과시적이고, 묘사가 섬세하다는 점에서 닮았다. 네덜란드 정물화는 육류의 마블링, 레몬 껍질의 나선, 은잔에 비친 빛, 조개껍질의 질감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팬트리 연작은 스팸 통조림, 리츠 크래커, 김치통, 심지어 휴지 롤까지 표면의 광택, 라벨의 구김, 포장의 질감을 놓치지 않고 상세히 묘사한다. 폴리프로필렌 원료의 과자포장재가 부드럽게 구겨지는 질감까지 표현한 점이 특히 인상깊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든 오브제는 그저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관객에 보여주기 위한 광고 연출처럼 의도적으로 정돈되어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과시적 소비리스트이자 문화적 전시로 읽힌다. 네덜란드가 혁신적인 주식회사 시스템을 통해 거대 상단을 만들어 식민지 무역으로 부유해진 결과, 아메리카에서 유입된 향신료, 이국적 과일, 값비싼 식기류 등이 부르주아의 테이블을 장식하게 되었다. 당대 정물화는 이런 풍요로운 물질문화의 과시적 기록이다. 한편 정수영의 팬트리는 프링글스, 엠앤엠, 스키피, 캠벨수프, 코카콜라, 하인즈케챱에 심지어 푸라면, 아니아니 신라면까지, 그리고 온갖 건조 향신료와 일본 간장소스 등을 진열해 오늘날 대중이 즐겨 소비하는 글로벌 브랜드 제품들과 현대 소비자의 취향과 습관을 보여준다. 심지어 아랍어로도 적혀있는 코카콜라 라이트 상자도 있다. 이정도로 많은 식료품을 보관해둘 수 있기 위해서는 나라 전체의 부의 파이가 증가해야한다. 팬트리는 대중적 소비기호의 평준화와 확장된 식탐의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암시하는 장치 또한 흥미로운 비교 지점이다. 헛되다는 뜻의 라틴어 바니타스(vanitas)는 17세기 정물화에서는 부패한 과일, 꺼진 촛불, 해골 등의 정해진 아이콘을 통해 상징적으로 삶의 덧없음을 표현했다. 이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죽을 때는 빈 손으로 간다는 깨달음은, 세속적이면서 동시에 엄격하게 종교적이었던 칼뱅주의파 개신교의 문화적 영향 속에 있었던 네덜란드인의 양가적 감정을 보여준다. 언뜻 현대 팬트리에서는 그런 해골 같은 게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직접적인 상징 없이도 과잉적 소비, 캠벨 수프의 반복되는 패턴, 인스턴트 식품의 차가운 질감으로 소비의 공허함과 지속 불가능한 풍요를 암시한다. 가득 찬 선반은 오히려 결핍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두 회화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도 존재한다.

정수영, Pantry, 2025, Acrylic on linen, 120x120cm

Jan Davidsz De Heem, Still-Life, Breakfast with Champagne Glass and Pipe,  1642. Oil on oak, 47 x 59 cm. Residenzgalerie, Salzburg


첫째, 자연물과 인공물의 차이다. 네덜란드 정물화는 과일, 생선, 고기 등 자연산 생물 재료들이 중심이었다면, 팬트리는 산업화된 가공식품과 화학 조미료, 합성착향료가 들어가 음료 등 전적으로 인공적인 대량생산품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오늘날 인간이 더 이상 직접 음식을 길러내기보다, 선택된 소비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반영한다.


둘째, 제품의 양, 종류 그리고 감상자와의 거리감이다. 정물화는 오브제와 감상자의 거리가 상당히 가깝고 보여주는 식료품이 수백 개는 아니다. 소수를 집중해서 보여주는 구도다. 그러면서 감상자가 식탁 위를 내려다보는 구도를 취하면서 어느 정도 경외감과 성찰을 유도했다. 반면 팬트리는 정면 구도로 3단 정도의 찬장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보여주는데,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있을 법한 낯설지 않은 광경이지만, 가짓 수와 종류가 수백 개라 압도적이다. 미국 어느 영화에서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실제로 있을 법한 팬트리를 보는 듯 익숙함이 있지만 오히려 너무 가짓 수가 많고 실제 다 먹을 수 있을 것인지 묘한 불안을 자아낸다. 게다가 팬트리는 음식 뿐 아니라 공구, 장난감, 술, 의약품, 청소도구 등 다양한 사물이 혼재되어 있다.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도구가 소유자의 정체성, 기억, 그리고 무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를 보여준다.


셋째, 시간의 감각 혹은 기시감(데자뷰)다. 17세기 정물화는 연회 직전의 활기나 막 지나간 순간의 여운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생동감이 있다. 그런데 팬트리는 반대로 저장고 문이 열려 있는 찰나처럼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느낌을 준다. 냉동된 찰나, 감정도 동작도 없는 정지된 공간이다. 디지털스크린에 있는 쇼핑카트를 보듯, 무표정하고 기능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정말로 먹기 위해 둔 것들일까? 식욕이 아니라 소유욕의 제단은 아닐까


이 마지막 질문의 꼬리를 물고 정수영 팬트리 연작을 다른 방식으로도 읽을 수도 있다.


우선, 이 저장고 안에 무엇이 빠져 있는가? 다시 말해, 많이 그린 것 같은데 무엇은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았는가?

네덜란드 정물화처럼 장기보관용 염지된, 훈제된 고기나, 문어나 유리병 안에 담긴 곤충이 보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방금 도살한 후 해체를 거친 살아있는 가금류, 돼지, 소 등 생물 재료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먹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혹은 먹기 바로 직전의 재료가 아니다. 수많은 상품과 브랜드가 있지만, 정작 보이지 않는 것은 손맛, 온기, 이야기, 나눔, 자연, 혹은 막 요리된 따끈한 음식이다. 오히려 제품 디자인과 브랜드와 화려한 로고만 강조되어 있는 먹을 수 없는 보관용 제품만 나열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음식은 있지만 요리의 흔적은 없다. 재료는 있지만 조리된 결과는 없다. 통조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공장에서 반조리된 칼로리일 뿐이다. 그러니 생동감있게 살아있는 현실에 기초한, 먹는 삶이 아닌 보관하는 삶의 초상이며, 가득 채움으로써 오히려 결핍을 드러내는 풍경의 파편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인의 소비 습관과 욕망을 비판하고, 패스트푸드, 정크푸드, 브랜드 마케팅의 시각적 폭력성을 읽어낼 수 있다.


나아가 두 번째 차이점에 대해 꼬리를 물고 이런 질문도 생긴다. 음식 뿐 아니라 공구에 곤충, 문어까지 갖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팬트리는 누구의 것인가? 어떤 나이, 문화, 인종, 배경, 학력, 계층의 소비 패턴을 반영하고 있는가? 독신의 삶인가, 육아하는 가족의 삶인가? 혼자 먹기에는 너무 양이 많고, 보통 남성이 많이 소비하는 과자류와 여성이 많이 구비해두는 소스류가 충돌하는데 정작 과자를 제외하고 베이비용품은 많지 않다. 팬트리 속 물건들은 모두 일상적인 저가 상품이다. 홀푸드나 트레이더스 조 같은 유기농제품을 취급하는 상류층 타겟 마트보다는 크로거나 월마트같은 데서 많이 보일 법한 상품이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생각은 청소년 아이를 둔 3인 한국-일본계 미국 교외에 사는 중산층 가족이라는 것인데, 특히 신라면과 일본간장류 때문에 그런 추측을 한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17세기 네덜란드인이 상상할 수 없었던 초국적 브랜드 제품으로 가득찬 21세기의 팬트리. 그렇다면 오늘날 상상할 수 없는 23세기 미래의 팬트리는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저장고는 시각적 기억의 제단에서 디지털화된 리셋 공간으로 이행할지도 모른다. AI가 제안하는 맞춤 식단, 데이터 기반의 비시각적 저장 방식. 배터리 충전식 식품이 있을 수도. 음, 이번 배터리는 음이온이 많아서 맛있어. 지구의 태양열로 충전한 배터리라 그런지 확실히 느낌이 다르네! 하는 식으로. 나아가, 인공지능이 개인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따라 식단을 추천하고 무인 드론 배송이 굴뚝으로 팬트리에 바로 드랍해 필요한 물건을 즉각 채울 수도 있겠다. 가상 브랜드가 실체 없는 포장을 디자인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런 미래의 팬트리는 더 이상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닐 수도 있다. 선반이 아닌 서버 속에 저장된 데이터처럼. 실물이 아닌 디지털 트레이스. 냉장고를 여는 대신, 스마트 글래스 안경으로 눈을 아래로 내려 화면을 스크롤하는 시대... 그런 날에도 팬트리에 무언가를 채워두겠지. 저소득층은 양갱형 곤충프로틴을 먹을 것이고, 중산층은 콩배양육으로 소고기풍미를 입힌 단백질을 먹고, 상류층만 엄선해서 키운 암소의 한우를 먹겠지.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17세기가 좋았어. 21세기가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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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매일씁니다 2025-06-1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투브 듣는 버전 링크 : https://youtu.be/gIMgf_jmExo
 


















서리뷰 12호(2023년 겨울)에 실린 권석준의 김재인 책에 대한 서평

"미학과 철학의 기준으로 재평가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운명"에 대해

1년 반이 지나

서리뷰 18호(2025년 여름)에 해당 저자의 반론이 실렸다.


공격적인 제목이다.

"제대로 읽지 않고 서평을 써도 되는가"


그 글의 일부를 발췌해보면

"당시 나는 이 글이 서평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았다. 독자들이 알아서 비교 평가를 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5년 2월에 출간한 내 책 <공동 뇌 프로젝트>에 대해 평자는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 책이 "갑갑하다"며 "기승전인문학류의 고루한 주장"은 그만 보고 싶다고 논평했다.

...

이공계 학자는 책을 읽지도 않고 서평을 써도 되는가?

...

이 글이 거칠게 느껴졌다면 철학과 인문학이 느낀 모욕감때문이었다는 점을 끝으로 남긴다."



이 글이 실린 서리뷰 18호에 반도체 삼국지의 저자 권석준의 맥스 베넷의 지능의 기원에 대한 평이 함께 실린 것을 보아 잡지는 누구 한 명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논쟁의 장터를 열고 싶은 것 같다. 논쟁이 생산적이 되면 참 좋겠다. 그러나

산업공학자 김태유의 "인문사회를 먼저 하면 나중에 이공계를 할 수 없다"는 발언 함께 흥미롭고 첨예한 이야기들이 온라인상에 오가는 가운데,


불필요하게 문과vs이과의 진영갈등이 되고 있다.


포스트휴면을 연구하는 미학자 김재인과 반도체 공정을 연구하는 인공지능학자 권석준이 건설적인 논의를 해서 상호 불통과 오해의 종식을 거쳐 논점을 명확히 해야하는데, 대개 서로의 분야가 더 어렵다,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로만 귀결되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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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로 산다는 것 - 일잘러(가 되고 싶은) 기획자의 일기장
카카 지음 / 길벗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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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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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듣는 답사기 시작.

책, 영화, 전시에 대해 매일 글을 쓰고 AI로 낭독하는

일간 듣는 이야기 시리즈입니다


아직 영상내용은 없습니다. 출퇴근, 등하교, 이동시 듣기용으로 사용해주세요.


블로그 글이 아무말 대잔치인 것처럼 대충 시작했습니다.


클로버 무료 이용 제한이 있는데, 유료 전환하려면 9만원/달은 필요하고 유투브 수수료 30%라, 무료 제한 몇 개 끝나면 이후에는 부득이하게 유료회원으로 전환해야할 것 같습니다. 글은 그냥 계속 쓰구요. 가격은 글쎄요..


일단 네이버 클로버 목소리 거의 다 들어보고 전달의 여왕이 제일 딕션이 좋아서 선택했어요


https://youtu.be/pmOcU01PUXA



1) 안녕하세요. 이제부터 듣는 이야기 시리즈 시작합니다. 책, 영화, 전시에 대한 에세이를 글로 쓰고 AI로 낭독합니다.


2) 영상은 알씨 동영상 편집기로 만들었습니다. 아직 영상내용은 없습니다. 출퇴근, 등하교, 이동시 듣기용으로 사용해주세요.


3) 전문은 다음 링크에 있습니다.

https://www.threads.com/@sagawasser

https://blog.aladin.co.kr/797104119


4) 클로버 무료 이용 제한이 있어서, 무료 한계 이후는 부득이하게 회원전용으로 전환하오니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5) 본 영상에는 클로바더빙(CLOVA Dubbing)의 AI 보이스가 사용되었습니다.

#클로바더빙 #전달의여왕


바로 가기 URL: https://clovadubbi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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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영화 엘리오 보고왔다. 오늘 개봉했다.


마블은 페이즈 4,5,6까지 가면서 이전의 작품 대략 36개를 거의 다 봐야 서사진행, 캐릭터설명, 떡밥과 복선을 다 이해할 수 있는데반해 디즈니는 시리즈가 30개에 달하지만 몇 개를 건너뛰어도 감상에 전혀 지장이 없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자꾸 찾아오면 나에게 길들여진다고 했는데, 디즈니 역시 스토리 구조와 선명한 기승전결의 스타일과 가족 중심주의를 대중에게 명확히 습득시켜서 디즈니 영화는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맛이다. 이때 새로운 맛을 내기 위해 인종, 문화, 배경 등 내부 요소를 다르게 조합한다.


예를 들어 모아나는 폴리네시아 배경에 바다항해 소재에 환경생태와 공동체서사를 조합해 족장 가문의 외동딸로서 전통과 책임 사이에 갈등을 겪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으며

코코는 멕시코 배경에 사후세계 소재에 대가족 전통과 잃어버린 아버지 서사를 조합해 뮤지션이라는 꿈의 억압과 기억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이야기를 노래했고

메리다와 마법의 숲(Brave)는 스코틀랜드 배경에 중세 판타지와 모녀전쟁 소재를 조합해 자율성을 요구하는 딸과 억누르는 엄마 사이의 세대 갈등을 표현했고 

비슷한 방식으로 엔칸토는 콜롬비아 배경의 라틴팝 뮤지컬애니메이션이고 루카는 이탈리아와 바다괴물 이야기이다.

그런데 너무 한 문화권으로 이야기가 치중하면 해당하는 나라에서만 각광받고 전세계적 흥행은 더디다는 것을 깨달은 디즈니가 최근들어서 그런 뾰족한 소수자성은 다소 지양하고 보다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접근성 있는 보편 서사를 추구한다. 예컨대 엘리멘탈은 한국계 감독이 만든 한국 이민자 이야기지만 페르시아 이민자나 다른 미국내 이민자들에게도 설득력이 있도록 캐릭터 디자인을 바람, 불 등 오행원소로 바꾸었다. 만약 얼굴을 한국인으로 했다면 그나마의 흥행도 없었을 수 있겠다.

디즈니애니 중 최저 수익을 기록한 비운의 작품 메이의 새빨간 비밀(Turning Red)는 1억 달러넘는 심각한 손실이 났다. 한국인들이 많이 뛰어넘었을 법한 두 디즈니 영화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카 시리즈(사실 세 편)인데 미국의 자동차에 대한 애착과 중부, 서부 횡하고 황량한 사막 지역풍경을 알고 있어야 감정적 몰입이 가능하다. 메이는 중국계 이민자와 여성성장서사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둘 다 구체적 묘사는 차이가 있어도 미국땅 위에 살아가는 자들의 정서가 아주 깊게 배어나온다. 그래서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같은 외국을 그리지 않아도 상당히 이국적 느낌이 난다. 비유하자면 우리 내부의 또 하나의 외국, 국내의 국제인 것이다. 말하자면 도심 외곽 지역에서 벌어지는,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다문화 소수자 서사같은 것이다.


메이의 감독은 도미 시(Domee Shi)는 흥행 참패라는 뼈저린 와신상담을 딛고 이번 엘리오에서 공동 감독으로 복귀하며 너무 소수에게만 호소하는 서사는 버리고 보편성을 획득하려했다. 과도한 PC주의 논란 이후 피트 닥터가 복귀하면서 잘 매만진 티도 난다. 부모 없이 라틴계 고모 밑에서 자라나는데 여성군인이고, 이름은 러시아스러운 올가이며, 스패니시 이민자가 보통 부유한 백인이 등장하는 SF물의 주인공으로서 외계여행을 한다. 중간에는 물리 잘 하냐고 흑인 남자청소년에게 물어보는 장면을 삽입해 백인 남성 중심인 과학계에 아프리카 미국인의 참여를 간접적으로 독려하기도 한다. 스페인어는 처음에 황금색 원반 돌릴 때 한 번만 등장한다.


참고로 토론토라이프의 기사에 따르면 도미 시의 도미는 낯선 이름인데 doumi 콩 두豆에 쌀 미米로 중국 충칭에서 태어나 2살 때 캐나다로 이민간 석자여(본명 한자발음)의 부모님이 대충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콩과 쌀, 두미다.

https://torontolife.com/culture/how-domee-shi-turning-red-became-new-pixar-superstar/


잘 만든 SF작품은 미국에 많고 주인공이 라틴계라도 클리셰는 기존 레퍼런스에서 따올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드니 블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 2016)에서 외계인과 조우할 때 나온 직사각형의 공간이 엘리오가 우주선에 빨려들어가서 외계인과 조우할 때 똑같이 등장하는데 공간의 색감은 차가운 백색이 아니라 터렐스러운 하얀핑크빛의 색감이다.


디즈니 기존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핟나. 소울스러운 캐릭터 디자인에 인사이드 아웃스러운 표면 질감에 토이스토리와 버즈라이트이어, 월-E스러운 우주배경이다.


봉준호가 확실히 미래적 취향을 가졌다. 최근작 미키17에서 굼벵이 같은 외계인을 귀엽게 연출했는데, 엘리오에 이르러 글로든은 확실히 무해하고 부드럽고 귀여운 곤충류다. 특히 목소리도 10대 이하의 귀여운 어린아이라서 더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본다면, 스타워즈나 스타트렉처럼 인간의 외형이지만 골격이나 피부구성이나 언어가 다른 자가 외계인이라는 상상에서 한층 더 진일보해 곤충까지 외계인의 범위에 들어왔다. 이전 영화에서는 레이저총 쏘아 죽일 몹에 불과했었다. 그만큼 인간적 유대감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피터싱어가 제창한 윤리적 범위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글로든 캐릭터는 갑옷이 외골격이 되는 갑각류라는 점에서 마징가Z부터 시작해 무적캡틴사우루스, 제이캅스(우리방송에 상영된 버전 제목은 K-캅스) 등의 로봇 변신 합체 만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일본의 70-80년대를 호령한 변신물로서 서양의 과학기술이라는 외피를 입어도 정신만큼은 동양의 어린아이가 조종한다는 개항시기의 화두, 동도서기, 화혼양재를 솜씨좋게 시각화한 작품들이다. 엘리오에 그런 아이디어는 없다. 다만 캐논으로 쏘아서 죽이는 시연할 때 꽃 같은 연약한 존재를 쏘는 것이 특이하다. 어린 아이들을 감안해서 톤다운해서 표현한 것이다. 비군사적, 연성목표물에 큰 탄환과 과도한 중화기로 쐈으니, 무기와 목표물의 성격이 맞지 않은 부적절한 할당, 미스매치된 타겟이다.


특히 눈에 띄이는 레퍼런스는 엘리오가 지구의 리더로서 그라이곤 군주의 침입을 막겠다는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보이는 스타워즈 은하의회를 닮은 연단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amphitheater)에서 레퍼런스를 따온 부분이다. 거대한 반원형 구조물의 중앙 하단에 발언을 위한 연단이 있고 그 주위로 계단식으로 배열된 수백 개의 캡슐형 의석이 벽면을 따라 원형으로 층층이 배치되어 있는데 각 의석에는 의원들이 앉아 있어 이 발언자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도 나왔던 대학 계단형 강의실같지만, 중심의 발언자에게 모두가 시선을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다수의 의원이 위에서 권력자 한 명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탑다운의 권력구조가 읽힌다. 이런 배치는 발언자가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으나 청중은 집단으로서 익명성을 보장받는다. 왕관을 원하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권력의 횡포를 제어하기 위한 건축공간이다. 그러나 그 권력구조가 투영된 권력공간을 기형적으로 반영해 소시민적 외계인 대사들은 위협에 대응하기는 커녕 도망가기에 바쁘고, 지구에서 이제 막 도착한 철부지 아이에게 그라이곤 군주의 침략이라는 거대한 임무를 떠넘기다.


이때 이 대사(앰배서더)들의 대사(말)도 스타워즈의 영국 의회 억양을 많이 따왔다. 

계속 음료수 쭉쭉 빨아대는 헬릭스 대사는 물론 영국 중년 남성 귀족처럼 예의바르게 말하지만 기회주의적이다.

마인드 리딩을 할 수 있는 퀘스타 대사는 영국 중년 여성 귀족의 억양과 표현을 사용하고(그러나 성우는 파키스탄 혼혈이다) 개중 가장 현실적이고 배려심이 있다.

중량감있는 조각처럼 생긴 테그맨 대사는 말이 조각조각나고 절뚝절뚝거리며 말하는 것이 스타워즈의 드로이드 C-3PO를 모델로 한 것 같다.

그라이곤 군주가 확실히 권위적인 미국 중년 남성 억양이다.


그럼 엘리오의 다른 디즈니 작품과 차별화는 무엇일까?

일단 보통 한 번 삑사리 개그를 넣어주는데 그런 부분 없이 서사가 직선으로 쭉 진행한다.

예를 들어 미국 너드남 식의 웁스! 실수! 하는 식의 개그코드가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은 없다.

특히 나올 법한 부분은 우주선이 쏜 빛의 터널을 통해 빨려들어가는 장면인데, 원래라면 그 장면에서 한 번 쿵 하고 떨어지거나 했을 것이다. 지구에서 자기가 있을 곳은 없어 우주인에게 납치당하고 싶어 해변에 SOS신호그림을 그리고, 우연히 고모 일터에서 잡힌 외계인 메시지에 답신을 보내고, 땡땡이와 부적응으로 인해 고모가 보낸 단기캠프에 갔다가, 학폭과 다구리의 위협에 도망가다가 외계인에게 납치당하는 기승에 해당하는 부분이 경제적이고 속도감있게 진행된다. 무엇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삑사리 개그 하나 없이 외계행성까지 스트레이트로 직진한다.


지금-여기의 공간에서 소외되고 자기와 멀리 떨어진 외계행성에서 진정한 친구를 만나고 성장을 한다는 표면의 서사지만 외계행성을 외국이라고 생각하면 이중의 메시지가 읽힌다. 어느 누구는 자기가 있는 공간과 불화해서 저 멀리 나와 언어 문화 지역 기후가 다른 곳에 가야 편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민을 가고 유학을 가고 하는 것이다. 엘리오의 집은 풍요로운 물품으로 가득차있고 글로벌 사우스의 저개발국가의 평균삶에 비하면 호화로운 삶이지만 엘리오는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물질과 관계없이 정신이 다른 곳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중동에서 가부장제와 여성인권억압과 전통종교의 압박에 신음하는 이들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그런 것을 문제로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들, 즉 문화적 외계인들 사이에서 더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한국사회가 불편한 사람들은 한국사회의 굴레과 족쇄가 전혀 문제가 안되는 또 다른 문화적 지역적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동했을 때 당연히 수반되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새로 배워야하는 언어와 다른 문화적 관습. 엘리오는 언어를 통역기로 너무 쉽게 처리했고, 처음보는 우우우가 미국문화식으로 대화모드를 체인지해준다는 점에서 과도한 환상이 녹아있다. 예컨대 중력 원래대로 해줄까요?에 대해 엘리오가 I'm fine 괜찮아 했는데, 발화된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맥락적으로 겸양의 표현으로 생각해 중력을 원래대로 바꿔주고 (괜찮아라는 말에 사회맥락적으로 적절한 패턴으로 바꿔서 대응했다는 뜻) 웰컴드링크도 준다. 외계인도 과도하게 영국식 매너가 배어있고 이계의 존재가 누군지 확인없이 환대와 배려를 베풀어준다.


하이퍼점프가 가능한 공간까지 가기 위해 우주 쓰레기(debris)가 있는 지대를 넘을 때 맥맬의 신호가 끊긴 곳에서 전세계의 무선동호회가 무정부적 용병집단처럼 등장해 파편의 동선을 분석해주는 부분은 스타워즈 로그원이 생각난다. 베트남, 일본의 무선동호회(일본은 곤니찌와! 까지 말해준다)까지 등장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 비공식 기관들이 좋은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도와준다는 언더독 서사다.


고모인 올가의 캐릭터 디자인은 영장류의 턱과 같은 하관 구조에 입꼬리에 팔자주름이 살짝 걸리게 했다. 캐릭터 배경은 부모노릇 교본을 공부하며 맡겨진 형제or자매의 아이, 즉 조카를 돌보는 것인데 이 역시 확장된 가족형태로 특이한 구조다. 아이 기르기 도감 보면서 공부하는 것은 굳이 최신은 아닌 패런팅 트렌드지만 미국적이다. 그녀의 위치 궤도관찰대(즉 과학부대) 여군 소령에 유년기에 해병대 단기캠프를 다녔다는 점은 특이하다. 그리고 캠프 담당자에게 아이가 코 조금 다쳤는데 너네 인성함양방침에 문제있다고 상관에게 따질거라고 클레임 거는 모습은 정말 최근 엄마들의 모습이다. PTSD...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는 2005년에 나와 젊은 청소년의 yo 하는 대사를 비판적으로 느끼는 어른세대를 묘사한 바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사회언어학적으로는 매 세대마다 즐겨 사용하는 표현, 억양, 어휘가 다르다. 브레이킹 배드의 아내 스카일러 와이트는 제시의 표현을 불편하게 느끼지만 엘리오에서는 그런 장면은 없다. 그저 같은 언어라도 세대별로 다른 표현을 쓴다는 예시일 뿐. 엘리오에서는 대표적 MZ세대 어휘로 shredded가 사용되었는데 보통 잘게 찢긴 치즈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지만 요즘에는 근육 질감이 잘 쪼개졌다는 뜻, 즉 몸 좋다는 말로 사용된다. 헬스짐에서의 운동 트렌드를 반영한 어휘다. 슈레더는 파쇄기로 보통 알려져있지만 석션(흡입)이 치과에서 피와 침 빨아들이는 흡입기로 쓰이는 것처럼 의미는 같을지라도 다른 분야와 상황에서 다른 맥락으로 쓰이는 말들이 있다. 사회적 동음이의어의 범위가 한자(명청중국어)에서 영어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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