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idn’t expect to get pulled into Byzantine history at breakfast, but Jonathan Harris’s prose is crisp, almost cinematic. Fascinating! This intro reads like the beginning of a novel — yet it’s grounded in splendid scholarship. Posting the page that got me hooked.

It surprised me how quickly the tone pulled me under. Here's why.

Harris opens the door to Byzantium not with the musty air of textbook reverence, but with the clean cut of a storyteller who knows where the shadows fall.  

In just a page, he renders ancient political paranoia eerily familiar — as if history moves in silk robes through dimly lit corridors. It’s an elegant reminder that history, when well-written, resists distance.

It’s a tone that I hope to channel in writing my own monograph on Korean art history; clear-eyed, shadow-aware, and never far from the human drama — woven from the vicissitudes and agony of entangled histories, not least in the Korean past, where art emerges as both witness and surviv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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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윤경 옮김 / 반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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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생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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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가서 인종차별의 아픈 경험을 말하지만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진상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들을 겪어야하는 시간도 있어야했다는 것이지 환경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

한편으로 유학을 부러워하는 이들은

그들이 고립, 우울, 부적응,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공감하지 못하며

저 먼 나라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여기에 있는 이들이 경쟁, 야근, 비교 등으로 얼마나 고생하는지 느끼지 못한다

장마와 폭염에는 뼛 속까지 아리는 추위와 쌩쌩 찬 바람을 상상할 수 없고

한파와 폭설에는 사우나 속 숨막히는 더위와 개굴 맴맴 소리를 상상할 수 없는데

중요한건 시간은 흐르고 시절은 순환하며 언제간 그 날이 온다는 것이다

어느 시기에는 시절을 잃어 광광 울며 꿈꾸기만 하다가

어느 시기에는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이상하게 꿈이 쑹텅하고 갑자기 현실로 이루어지니..

언젠가 아름다운 날은 오고

반드시 행복한 날이 온다


내 지갑에 돈이 들어오는 것만 돈이라 생각하지만

관리는 예산안을 운용하며 돈을 사용하기도

펀드매니저는 남의 돈을 불려주며 돈을 사용하기도 하듯

어떤 이는 1박 100만원의 고급 리조트 휴양지에서 부부싸움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어디를 가지 않아도 치맥 하나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곳에서 천국을 살고

어떤 이는 멀리나가 지옥을 경험한다

어떤 이는 멀리나가 에덴동산에 살고

어떤 이는 이곳에서 아귀지옥에 산다

나에게 맞는 공간과 나에게 맞는 시절을 찾기

그리고 그때까지 기다리고 준비하기

그날이 오면 즐기고 누리기

나의 풍요와 행복 속에서도 항상 부족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기

나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항상 성공하고 잘 나가는 이들을 축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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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도잉아트에 다녀왔다. 예술의 전당 앞, 유명 두부집 백년옥 너머에 있다.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면서 광학법칙을 왜곡하는 Annie Duncan의 네 점과 극사실적 표현의 Kayla Witt의 한 점에 특히 눈길이 간다. Annie Duncan의 다른 한 작품과 유일하게 출품된 Kayla Witt의 한 작품은 이후 포스팅에 이야기하고 오늘은 애니 던칸만 조금 깊게 이야기해보자.


회화인데 세라믹적이다, 라는 것이 핵심이다.


작품 세 점 모두 빛을 과하게 굴절하고 정상적인 물리법칙을 초월해 투영을 왜곡하는듯 하나, 묘하게도 하이퍼리얼리즘의 극치에 있다. 


평면화된 색면, 명확한 테두리, 그림자의 불연속성 등은 조형적으로 연출된 인위성에 가까워 회화적 왜곡과 회화적 유희의 접점 어느 경계에서 노닌다. 색채는 밝고 경쾌한데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Annie Duncan, Diary, Acrylic on Canvas, 76.2x60.9cm, 2023


우선 시각적 묘사만 해보자. 첫 번째 작품에서 DIARY라는 단어가 수면 너머 유리병에 반사되어 비틀려 보이며 그 아래 딱딱한데 물렁한(이 감각이 핵심) 일기장이 있다. 


Annie Duncan, Bureau, Acrylic on Canvas, 119.3x78.7cm, 2023


두 번째 그림에서는 탕후루 같은 분홍빛 진주 목걸이가 향수병에 감겨 있고 그 뒤에는 일렁이는 나무 나이테 배경에 헤어브러시와 폴라로이드 사진이 있다. 각기 다른 크기의 염주알 같은 진주와 불가능한 다층 레이어의 파란 그림자가 특이하다. 


Annie Duncan, Three Wishes, Oil on Canvas, 121.9x121.9cm, 2025


세 번째 회화에 이르러 영원한 청춘(ETERNAL YOUTH), 장엄함의 망상(delusions of grandeur) 같은 양각 문구가 유리병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덫에 새겨진 듯 돋을새김 되어있고, 수상할정도로 돌돌말린 꽃 가지, 체리, 망치, 8볼, 메이크업 브러시, 못 등이 비현실적 크기와 비정상적 구도로 어지럽게 뒤섞여있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실존하는 사물을 따와서 그렸지만, 작가는 그것들을 사진처럼 충실히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자, 유리, 액체, 표면의 반사를 과장해서 마치 감각의 자화상처럼 다룬다. 현실의 고정된 물질성을 벗어나 기억과 감정의 굴절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타이거 옐로우와 버밀리언의 색감에 새벽 1시 취한 바 풍경의 시각적 재즈를 그린 오지은 작가의 최근작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 쨍하고 정신이 말짱한 상태다. 


시각적 묘사를 했으니 문맥적 분석도 해보자. 그림의 의미는 무엇일까? 첫 번째 그림 속 일기장은 감정의 기록을 암시하지만, 그 위에 올려진 물이 차있는 투명한 화병은 노란 꽃을 가두고 진실을 왜곡시킨다. 투명한 액체 속에서 굴절된 다이어리 표지는 사실의 일부만 증폭시키는 응어리진 감정의 왜곡을 시사한다. 또한 선택적 기억이 부유하는 고밀도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일기장의 핵심인 내부는 글자가 가려진 채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작품의 향수, 헤어브러시와 진주는 모두 여성성을 상징한다. 향수는 기억의 증류물로, 감정의 잔향처럼 번진다. 남성의 손을 붙잡고 어딘가로 데리고 가려는 여성과 이를 머뭇거리는 것 같은 연인의 뒷모습이 찍힌 불분명한 사진은 이심전심의 불가능성, 사랑과 초조, 예정된 이별을 암시하면서도, 서사는 철저히 침묵시킨다.


세 번째 회화의 오브제들은 소비사회의 미학과 자기표현의 방식, 혹은 욕망의 편린들을 연상케 하나, 그 여러 도구들과 소비재를 감정적 환상과 뒤섞어, 자기표상적 정물화로 기능한다. 물리적 현실의 법칙이 느슨해지는 지점에서 이 회화는 시작된다. 명확하게 나뉜 색면과 단절된 그림자, 선명한 윤곽선은 물질의 사실성을 담기보다는 감정의 표면을 조형적으로 정리한 것처럼 보인다.


이 세 점의 공통점은 모두 투영과 굴절의 메타포를 중심에 두고, 표현하는 바와 의미하는 바, 즉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킨다는 것이다. 물, 유리, 금속, 액체 등은 빛을 반사하거나 왜곡하는 소재이지만, 작가는 그것들을 증폭시켜 내면의 감정이나 기억, 혹은 문화적 고정관념을 비틀고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투영과 굴절의 왜곡은 마치 세라믹 조각의 느낌을 자아내는데까지 나아간다. 그렇다. 이 작품은 평면의 회화가 아니라 조각이라고까지 읽을 수 있다. 캔버스에 마티에르감을 쌓거나, 조형물을 올리거나, 프레임을 3D로 만들지 않고도 충분히 삼차원의 조각적 느낌을 줄 수 있다.


우리는 회화를 종종 평면에 색을 올리는 일로 단순화한다. 하지만 애니 던컨의 회화를 보고 있자면 마치 점토를 주물러 눌러 만든 성형물의 감각이 느껴진다. 루시안 프로이드가 매만진 살점의 점성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세라믹의 무게, 온기, 미세한 균열이 작가의 붓질을 통해 번역되고 캔버스에 이식된다. 하여, 눈으로만 읽히는 회화가 아니라 촉각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만약 회화가 도자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면? 조각은 시간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형태로 포박한다. 완성된 조각에는 시간이 안료에 배어들고, 구워지고, 식고, 깨지고, 채색되고 코팅되는 장시간의 결과물로 드러난다. 표면으로, 피부로, 눌림과 울림으로, 주저와 호흡을 기억하는 표면으로. 애니 던컨의 왜곡된 굴절은 점성이 있는 조각을 매만져 뒤틀리게 빚는 행위와 닮았다. 


그렇다면 회화를 조각으로 다시 재해석해 볼 수 있을까? 표면 질감과 색채 대비와 공간성으로 다시 읽어보자.


표면 질감은 유리처럼 매끈하지만, 그 속엔 세라믹의 은밀한 온기가 감돈다. 작가는 미세한 하이라이트와 중간 톤을 조율하여 마치 젖은 유약같은 질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투명성은 언제든 금이 갈 듯 섬세하다. 빛은 반사되지 않고, 사부작사부작 머문다. 숨죽인 채 웅얼웅얼거린다.


색채는 충돌한다. 따뜻한 번트 시에나와 카네이션 레드, 차가운 파우더 블루와 스모키 라벤더는 정서적 긴장을 일으킨다. 따뜻함 속엔 갈망이 있고, 차가움 속엔 억제가 숨어 있다. 이는 단순한 색의 대비가 아니라 감정의 온도차다.


공간은 압축되어 있다. 수직성에서 그렇다. 헤어브러시의 돌기는 그리스 신전 기둥처럼 꽃혀있고, 줄기는 물을 빨아들인다기보다 수로 터널 사이를 투과해있는듯하다. 반복패턴도 보인다. 주황색의 일기장 그림자도 다층의 레이어로, 진주알의 파란색 타원형 그림자도 복합 층위로, 테이블 보위 하얀 별모양의 되풀이되는 패턴도 보인다. 위스키처럼 무언가가 응축되어 표면을 둥실둥실 떠다닌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증류된다.


시각적 묘사에 이어 문맥적 분석을 경유했으니 이제 이 모든 것을 유의미한 인사이트로 정리해보자.


이 모든 것은 왜곡의 실험이다. 물이 채워진 유리병을 통해 DIARY라는 단어는 마치 붓글씨처럼 일그러진다. 이 글자는 단지 물속에 잠긴 것이 아니라, 기억의 깊이 속으로 가라앉은 듯하다. 배경의 강렬한 주황색은 거의 살결처럼 뜨겁고 노골적이며 관람자를 어떤 사적이고 동시에 노출된 심리적 공간으로 몰아넣는다. 디퓨저나 향수가 아니다. 빛 아래 펼쳐진 기억의 해부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여성성을 코스튬처럼 두르며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진주는 물음표처럼 휘어지고, 향수병은 그것을 구불구불한 반향에코로 뒤틀어낸다. 실패한 사랑의 흔적이 엿보이는 연인의 사진은 응결된 친밀함의 초상이다. 매캐한 버번의 향기가 느껴지는 가운데 쾌락과 균열 사이를 유영하는 어떤 응축된 감정이이 있다.


가장 오브제가 많은 작품은 회화라기보다는 선언문에 가깝다. 화장도구, 시든 꽃이 담긴 디퓨저 화병, 뒷부분 클로가 과장된 분홍 장도리, 한 입 베어먹은 과일, 철제 덫이 난무하는 이 시각적 소란은 인위적인 소녀성과 소비의 의식을 조롱하면서도, 그 기이하고 오페라적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존한다. 영원한 청춘이 새겨진 병은 액체가 다 매말랐고, 장엄한의 망상만 확실하게 주문처럼 새겨져있다. 아이러니하고, 우울하며, 날카롭다.


첫 번째 회화의 의미는 이렇다. 기억은 투명하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왜곡되어 있다. 반사는 반란이다.


두 번째 회화의 의미는 이렇다. 아름다움과 사랑은 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흐르고, 흔들리며, 고정된 의미를 거부한다.


세 번째 회화의 의미는 이렇다. 소녀의 세계는 무해하지 않다. 그것은 문화적 설계물이며, 그 속에는 무장한 사물들이 존재한다.


애니 던컨의 극사실적으로 왜곡된, 모순적인 정물화는 리얼리즘의 논리를 전유하되, 나른한 마음으로 대충 복제하지 않고 관객들의 시선을 재빠르게 낚아챈다. 정물은 더 이상 정지된 정물이 아니다. 그것은 용암처럼 끓고, 바람처럼 속삭이며, 식물처럼 움찔거린다. 꽃은 피지 않았으되 퍼포먼스한다. 유리는 빛을 너무 굴절시켜 시선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면서 투명한 진실을 드러낸다. 일기장은 고백하지 않고, 의미를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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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를 영어로 쓰고 있(싶)다고 했는데 이것도 걍 대충 올려야겠다. 준비가 안된 것 같다고 너무 꽁꽁 싸매고 끙끙 대지말고


At first glance, the two images on these open pages appear to draw from the tradition of Munjado (文字圖, 문자도), the ideograph paintings of the Joseon dynasty. Yet something in their visual logic feels distinctly unconventional, suggesting a departure from orthodoxy toward a more abstract, even modernist sensibility.


Rather than adhering to the balanced symmetry and decorative restraint typical of classical Munjado, these works adopt a more assertive visual language. Thick black contours carve out space with graphic confidence, blocks of color interrupt the composition with bold contrasts, and the overall structure leans toward asymmetry, lending the images a restless, almost kinetic energy. 


On the right-hand page, a two-story cheonggiwa—a traditional wooden building with blue-tiled roof—seems to perch improbably atop a single sweeping line of choseo(草書, 초서), the fluid cursive calligraphy. The effect is at once architectural and gestural, suggesting a deliberate fusion of form and stroke, structure and spontaneity.


Despite the surface textures that evoke the patina of age, the overall aesthetic feels deliberately hybrid. It could be a late 19th reinterpretation, or just as plausibly, a contemporary work that reimagines Confucian form through a modernist lens. Without attribution, one can only speculate—but the ambiguity is part of the intrigue.


On the left, the inscription reads: 「百世淸風夷濟之碑」. This classical Chinese phrase, rendered in a 4-4 rhythm, can be translated as “A stele commemorating the pure and upright conduct of Yi and Ji, passed down over a hundred generations.” The first half—百世淸風(in korean: Baekse Cheongpung/in chinese: Baishiqingfeng, in japanese: hyakuseiseifu)—literally means “the pure breeze of a hundred generations,” a metaphor for moral virtue that transcends time. Its origins trace back to the Zhou dynasty in ancient China, where the brothers Bo Yi and Shu Qi (known in Korean as 백이Baek Yi and 숙제Suk Je) refused to serve the conquering regime after the fall of the Shang(Yin) dynasty. Choosing self-imposed exile, they survived on wild plants(in korean: 고사리 gosari) and ultimately starved rather than compromise their principles.


The renowned Confucian philosopher Mencius revered them as “the purest among sages” (夷齊.聖之淸者), and their story became a cornerstone of moral discourse in East Asia. The line appears in the Mencius, Wan Zhang Xia(만장하), the second volume of the fifth chapter of Mengzi(맹자). I recall vividly from my year in traditional school, where I memorized the Sishu(사서) in its entirety through daily recitation. That rigorous training embedded these classical texts not only in memory but also in instinct, making the resonance of this stele's inscription all the more immediate.


In Korea, the brothers' legacy was especially admired during the Joseon dynasty, referenced by figures such as Prince Suyang(수양대군) In modern times, the independence activist An Jung-geun(안중근) invoked their names in calligraphy, underscoring their continued relevance as emblems of integrity.


The pure breeze of hundred generations, Baekse Cheongpung(百世淸風) serves as a kind of moral shorthand—an ideal encapsulated in a phrase—symbolizing the endurance of ethical clarity in an age of ambiguity. The stark formal treatment in these images, particularly the sculptural density of the black forms, reflects that clarity with unexpected visual power. Whether a historical artifact or a modern intervention, the work reclaims the language of virtue and repurposes it within a bold, expressive framework. It is a deeply Confucian message, refracted through a strikingly experimental visual idiom.


사진출처: https://www.threads.com/@o.binyoun.o/post/CuZWva5LL-Y?xmt=AQF06SiyRP-vtYfjx7SdgS241J14oUZYO1TY9wHdHg8b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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