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영자신문 중에는 더코리아타임즈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방위 취재범위와 분량, 특집기사의 깊이, 원어민스러운 표현, 칼럼필진의 다양성, 로이터스, AP, 워싱턴포스트 등 외부기사 공급 등의 여러 면에서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부 이슈를를 매일 정확히 번역하는 과정에서 뉘앙스와 맥락은 다소 간과되기 마련이다. 더코리아타임즈를 읽는 독자는 대개 한국주재원, 각 나라의 주한 외교관 등일테니 그날그날 이슈를 번역하는데 방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코리아타임즈 필진 중 대다수는 외국체류경험있거나, 통대출신이거나, 외고나 이대 국제학부 같은 영어커리큘럼으로 교육받은 한국인인 것 같다. 일차적으로 한국기사를 바로 소화하고 영어로 변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네이티브가 썼는지 한국인이 썼는지 출생신분은 크게 관련없다.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영어로 잘 옮기는 실력만 있으면 된다.
반면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이 쓰고 검수한 글이 아니라, 네이티브를 대상으로 네이티브가 검수한 영어에서 한국관련기사를 찾으면 어투, 논조, 초점, 표현법 모든 것이 다르다. 같은 사람인데 한국과 미국에서 다른 화장법과 패션을 하니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처럼, 기생충, 케이팦, 오겜, 탄핵, 세월호 한국에 대한 메이저이슈에서 한국 내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인이 한국에 대해 쓴 더코리아타임즈와, 외국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해 쓴 기사는 메이크업이 전혀 다르다.
즉, 한국을 다룬 영어신문잡지와 한국내 영자신문을 비교해보면 공부가 많이 된다는 것이다. 고급 영국식 영어는 가디언, BBC 같은데서 블랙유머, 꼬은 표현 같은게 있는데 그건 나중에 또 다루기로하고 일단 고급 미국식 영어는 NYT, 뉴요커, 뉴욕리뷰오브북스 등에서 볼 수 있다.
참고로, 난이도별로 분류하면 토익<(작문회화허들)<토플<(단어허들)<GRE<(독해문화허들)<SAT<(교양지식허들)<AP<(독서경험허들)<원서,신문<(다년간의인문학과학분야풍부한독서)<뉴욕리뷰오브북스
정도 될 것 같다. 그래서 뉴욕리뷰오브북스는 제외하고(한국 이야기도 별로 없다), 뉴욕타임즈와 뉴요커만 보자. 한국 관련 기사가 실제로 개제되어서 읽어봤던 매체다.
뉴욕타임즈 국제판에서 한국을 다룰 때 항상 등장하는, 2000년 노근리사건 취재로 퓰리처상을 받은 최상훈 편집장은 영남대 경제학 학부, 외대 통역대 출신인데 수십 년의 영어기사 발행경험이 뒷받침되어 깔끔하고 정확한 기사를 쓰는 편이다. 가끔 아시아 다른 기자와 협업하는 기사도 있지만 한국은 거의 최상훈 기자가 커버하는 것 같다.
https://www.nytimes.com/by/choe-sang-hun
https://en.wikipedia.org/wiki/Choe_Sang-Hun
뉴요커는 김태미 tammy kim인데 예일대 철학 학부를 나와 뉴욕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사람으로 법에서 언론으로 커리어를 튼 케이스다. 최상훈 편집장은 경험이 뒷받침하는 60대의 책임자 위치고, 김태미의 대략 30-40대 정도의 기고자라는 점에서 글감 주제 선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런 외삽적 조건을 제외하더라도 글에서 보여지는 개인적 특징이 다르다.
https://www.linkedin.com/in/e-tammy-kim-%EA%B9%80%ED%83%9C%EB%AF%B8-23252696/details/experience/
예를 들어 뉴요커의 기사 하나만 살펴보자
https://www.newyorker.com/culture/photo-booth/the-henri-cartier-bresson-of-south-korea
Photo Booth
The Henri Cartier-Bresson of South Korea
Han Youngsoo chronicled the postwar transformation of mid-century Seoul, complicating popular depictions of that era as one solely of deprivation and hardship.
By E. Tammy Kim
January 18, 202
Let’s start with the photographer himself. A self-portrait, which, like the rest of Han Youngsoo’s work, is in black-and-white—not a nostalgic choice, just the technology of the times. It’s deep winter, 1958, and he’s standing outside, on the frozen Han River, the massive waterway that bisects Seoul, which he once likened to “a mother’s breast.” A gentle snow falls. Behind him are two bridges, foreshortened at a tilt, and an ice fisherman, shivering in a Siberian-style hat. No such quiet, wide-open space can be found in contemporary Seoul. Han, looking almost cartoonishly mid-century metropolitan, wears a dark coat, with the lapel snapped up, over a white shirt and a dark tie. His jet-black hair is cleanly parted and oiled; his face, big and round. He holds a small Leica rangefinder with a 50-mm. lens to his chest.
This period, a decade after the end of the Korean War, is often depicted—by my parents’ generation, who were children at the time, and later in books, film, and TV—as one of hunger and hardship, of basic survival. It’s easy to forget that, even during war and reconstruction, artists keep making art. And that postwar life is about more than staying sheltered and fed. Han’s photographs reflect a sharp, inexorable striving—not only for safety but also for romance, learning, exploration, and aesthetic pleasure. There are more pictures like the self-portrait: stylish couples on dates, businessmen in taxis, a beauty-pageant contestant onstage.
Sogong-dong, Seoul, undated (1956-1963).
Han shot in many areas of Korea, but Seoul was his home base and muse. The residents of his pictures speed walk and gossip, drink coffee, sell newspapers and dried fish, repair shoes, ogle at posters and mannequins (ready-made clothing was just becoming a thing), sunbathe, hang noodles out to dry. Signs contain words spelled in Hangul (the Korean script) and Chinese characters. As time goes on, more and more English gets mixed in. Traditional architecture, clothing, hair styles, and shoes give way to a global American uni-style.
저작권 문제상 뒷부분 모두 생략
이 기사에서 보이는 예술과 정치가 결합된 문화적 에세이를 추구하는 뉴요커 영어산문의 특징은 다섯 가지다.
1. 저널리즘과 비평과 개인적 서사가 고르게 섞여있다.
그 저널리즘은 관찰적 산문이다.
예를 들어
Behind him are two bridges, foreshortened at a tilt, and an ice fisherman, shivering in a Siberian-style hat
그의 뒤에는 기울어진 각도로 축소되어 보이는 두 개의 다리가 있고, 시베리아 스타일의 방한모자를 쓴 채 떨고 있는 얼음낚시꾼이 있다
시각적 이미지의 세부사항로 풍경을 정확히 잡아낸다. 사진같이 묘사가 디테일하면서 깔끔하다. 단어의 사용이 다른데 이는 마지막에 한 번 더 종합적으로 설명하려한다.
2. 한국계 미국인 여성 저널리스트로서의 세대적문화적 감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 가족의 경험, 기억, 세대차이 등의 사적 회상을 공적 서술에 섞는다.
예를 들어,
This period, a decade after the end of the Korean War, is often depicted—by my parents’ generation, who were children at the time, and later in books, film, and TV—as one of hunger and hardship, of basic survival.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쯤 지난 이 시기는, 당시 어린아이였던 부모 세대와 이후 책이나 영화, 텔레비전 속에서 흔히 기아와 궁핍,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시대로 그려진다.
3. 구조적 측면에선 시간적 흐름을 따라가는 병렬 서사다.
연대순 혹은 주제순의 섹션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붙이는데
플래시백처럼 과거로 회귀했다가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가 현재 전시장 방문으로 다시 회귀한다.
문단 간 이음새는 매끄럽지만 의도적으로 지그재그를 택한다.
4. 미시적(문장 차원)에선
시대 이미지와 가족의 기억, 이민자적 인식을 연결하는 다중 초점적 글쓰기다.
예를 들어
A small figure of a man in swimming briefs, seen from behind, stretches his arms into a “T.” He is just about to dive off a rickety river barge, but, for this moment, his white body resembles an ornamental cross.
수영 팬티만 입은 남자가 뒤에서 보이는데, 그는 팔을 양옆으로 쭉 뻗어 T자 모양을 만들고 있다. 금세 강둑의 낡은 바지선에서 다이빙하려는 찰나지만, 그 순간만큼은 하얀 그의 몸이 마치 장식용 십자가처럼 보인다.
여기서 rickety river barge 강둑의 낡은 바지선은 전후 서울의 낡고 불안정한 물리적 환경을 의미하고
white body는 정말로 몸이 하얀 게 아니라 흑백사진 특유의 질감을 표현한 것으로 전후 복구 시대의 시각적 코드다.
그 앞 문단에서 이 사진의 아이들이 부모세대라고 했기에 객관적 묘사같지만 주관적 느낌이 깔려있고,
팔 벌린 사람의 모습을 T모양으로 묘사했다가 기독교 상징인 십자가로 은유해서 이 세대가 거친 전쟁의 죽음, 베이비붐 재건시대의 희생이라는 문화적 코드를 넣는다.
5. 우리나라 사람과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단어를 특이하게 사용하는데서 드러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나 저널리스트의 글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낯설게 보는데, 사소한 단어 선택 하나에서 그 시각의 차이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1번의 Siberian-style hat은 우리나라였다면 털모자, 방한모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보온용 모자라기보다 추위의 상징이자 시베리아라는 지리문화적 상상의 공간을 소환해
그냥 추운 날 쓰는 모자가 아니라 전쟁 직후 서울의 겨울 풍경을 더 쓸쓸하게 그리는 한편 국제적으로 상상하게끔한다.
또 다른 예시로 4번에 His white body resembles an ornamental cross가 있다.
직역하면 하얀 그의 몸이 마치 장식용 십자가처럼 보인다지만
의역하면 팔을 벌린 채 다이빙 준비를 하는 모습을 다중초점으로 풀었다(앞에서 설명)
신미양요 때 장수 帥가 쓰여진 장군기를 가져간 미국인들이 수帥를 못 읽으니 BT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한 기호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다르게 읽힌다. H마트에서 울다에서도 미역국=해초수프 등 다른 표현법이 확인된다.
이렇게 특이하게 어휘를 사용하는 까닭은 문화권이 다르기 때문에 사고방식이 다르고 다른 시각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기 때문이다. 명사 동사 같은 미시적 분석도 있지만 글의 구조나 글의 진행, 논의의 초점 같은 거시적 시야에서 글을 분석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 다양한 차이점이 보인다. 이런 차이를 공부하는게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나의 생각을 유연하게 하며 지적 자극을 주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데 정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