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의 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에서 인지 범주화 실험을 언급하며 나온 동서양 사고방식 차이 실험이 있다.
원숭이 팬더 바나나 세 가지 중 연관성이 있는 두 가지는 무엇인가?
총체적 사고에 익숙한 동양인은 맥락을 중요시해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다는 데 착안한다. 사물 간의 관계와 맥락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한편 개별 특징을 파악하는데 익숙하고 분석적 사고를 하는 서양인은 동물, 포유류라는 분류학적, 형태적 유사성에 근거해 원숭이와 팬더를 묶는다. 사물의 속성과 범주를 중요시한 것이다.
어느 무엇이 더 좋다라는 말도 아니고 사람마다 차이가 분명히 있는 일반화다. 무엇보다 어디까지 동양이고 서양인지에 대한 지리적 문화적 구별도 애매하다. 하지만 이 리트머스 시험지가 경향성에 있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는 모양인지 다큐에서 조명 후 이 문제만 각종 짤로 많이 돌아다닌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의 경향성 차이는 미술감상 방식의 차이와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들여온 서양미술을 배치하는 기획자도 관람하는 감상자도 그 작품이 원래 위치한 서양미술관에서 감상하는 서양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듯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전시 인트로, 캡션 설명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서양을 거칠게 정의해 서유럽으로 일단 고정하고 동양은 한국이라고 생각해보자. 서양미술관에서 서양인이 자신의 서양전통작품을 감상할 때는 형식, 구성, 조형에 초점을 맞춘다. 색채, 형태, 원근법, 구성의 조화, 기술적 완성도을 일별하며 한 걸음 더 이해해보려한다. 시선이 개별적이고 사고가 분석적이다. 작품을 요소별로 나누어 관찰한다. 화면 내 일관성, 형식과 논리에 주목한다.
그러나 서양미술관의 서양작품을 한국에 들여온 혹은 현지에서 감상하는 동양인의 감상방식은 대략 정서, 관계, 맥락 중심이다. 가족관계와 사제지간 학파를 따진다. 작품이 주는 느낌, 정동, 의미를 파악하려한다. 이쁘다! 재밌다! 하는 단발성 감탄이 지배적이다. 기하학적 선의 리듬과 반복패턴에 주목한다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작가의 신분과 삶의 서사까지 포괄적으로 본다. 전시 인트로, 도록, 캡션에 불필요하게 과다한 작가의 생애와 사생활이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서양은 작가의 사생활, 정신문제, 가족관계가 보조적인 설명에 그치는 데 반해 동양은 작가의 (도덕적) 문제가 작품 해석에 깊게 관여한다. 다만 우리와 관계없는 먼 나라 옛 사람이라서 문제삼지 않는 것일 뿐. 문화적 위계질서가 작품해석에 영향을 준다. 이 화가는 사대부 출신이라 그런지, 문인화풍이라그런지 붓끝이 고요해 하는 식으로.
그런데 쿠사마 야요이가 강박장애로 인해 정신병원에 스스로 들어갔다는 것이 반복된 모티프를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일인가? 반고흐가 고갱이 떠난 후 비관하여 자기 귀를 자른 것이, 김홍도가 양반이 아닌 중인 문인화가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아 장영실처럼 유교사회의 신분제도를 뛰어넘었다는 것이, 작품의 색채와 기법을 이해하는데 꼭 수반되어야하는가? 배경, 출신, 신분, 맥락이 보조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이해에 선행될 경우에는 개별 작품 감상이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
서양의 조형에 대한 응시는 그림을 또렷하게 바라볼 때만 가능하기에 작품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시간과 노력 매우 많이 필요하다. 특히 다리와 허리가 중요하다. 개별 작품을 미세하게 보기 위해 작품 앞에 서서 시간을 많이 할애야한다. 무엇보다 색채, 조형 어휘가 구체적이다
한편 동양의 맥락중심, 관계적 시선은 그림을 나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기에, 좋은 작품이 좋은 날씨에 좋은 자연에서 관람되면 더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무엇이 더 좋다는 말은 아니다. 새가 양 날개로 날듯이 두 사고방식을 동시에 운용하는게 온전한 관람경험에 이바지하리라고 생각한다. 개별 요소에 대한 분석적 이해가 결여된 느낌위주의 감상은 휘발적이고,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형식 위주의 감상은 건조하여 미술감상이 아닌 수학문제 탐구와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