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에 냉전 종식이 되고 더이상 체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 내부 단속을 할 이유를 상실한 정부가 92년에 여행 자유화를 단행한 이후, 그동안 대우상사나 외교관만 접하던 세계의 실상을 직접 육안으로 체험을 하고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세계화, 글로벌 리더, 국제교육을 부르짖으며 유학을 보냈다. 말하자면 현대판 영선사, 보빙사 같은 것이다. 물론 유길준처럼 직접 현지 여행과 학습을 겸한 답사를 하는게 적절한 현장체험형 교육도 있고 외국교사를 국내에 초빙해 가르치는 육영공원같은 현지교육형 케이스도 있다.
국제화도 좋지만 한창 감성이 예민한 청소년 아이들을 문화도 낯설고 아침밥도 챙겨줄 수 없는 먼나라에 홀로 보낼 수 없어 고교 졸업 전까지는 데리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한 부모들을 위해 지자체가 저마다 외고를 우후죽순 세운지 어언 20년. 이는 한국인 입장의 이야기다. 우리를 외국에 파견, 방출, 발산하는 관점과는 반대로 외국이 우리에 들어온 영입, 토착, 수렴의 관점도 있다.
우리도 초반에는 외국에 일부만 서광범, 유길준, 박정양, 김옥균 등 파견한다. 일본의 경우도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 유학을 경험했고 극히 일부만 외국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소수다. 한국 현지 경험을 한 일부가 고국(미국)에 돌아가 한국의 문화를 알린다. 익히 알다시피 미국의 한국학 1세대는 5-60년대 평화봉사단 혹은 미군파병을 통해 한국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한국천주교사 권위자 도날드 베이커(황사영 백서 번역)도 1971년에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왔고 인디애나의 한국근대사 연구자 마이클 로빈슨이나 전라도 광주에서 체류한 클라크 쇠렌슨은 워싱턴대 한국학센터 소장이다. 그보다 더 전 시기인 하버드의 카터 에커트와 워싱턴대의 제임스 팔레는 미군, 미군통역장교 출신이다. UCLA의 로버트 버스웰은 아예 한국 사찰에서 출가경험을 했다.
한국이 외국에 가는 경우 육영사, 보빙사 등 정부지원 프로그램이다. 외국이 한국에 오는 경우 국제정세에 의한 정책과 제도다. 개화기 정부초청 교사, 미군과 케네디의 평화봉사단.
초기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환경이 변한다. 누구도 미국이 한국에게 이렇게 중요하게 되고 밀접한 나라가 될지, 한국문화가 전세계에 이렇게 퍼질지 알지 못했다.
이제는 보빙사, 육영공원, 평화봉사단, 던컨의 조선사, 커밍스의 한국전쟁사를 몰라도 다른 경로로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 들어온다. 학생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한국에 체류한다. 비단 외교관, 주재원, 교수뿐 아니라 아주 다양한 직업, 배경의 사람들이 온다. 결혼을 통해 오는 경우도 있고, 미국식 레스토랑을 열기도하고, 출가를 하기도하고, 영어교사를 하기도한다.
마치 한국에 외고나 국제학교가 즐비한 것처럼, 이제 한국을 알고자하는 사람들이 세종학당의 문지방을 두드리니 문화는 어쩌면 상호적인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초창기 경험자는 학력이 높은 엘리트출신이기에 한국이나 외국을 서술한 언어가 조탁된 학술어다. 그래서 일반인이 접하고 소화하기엔 다소 어렵다. 이에 외국의 문화는 상아탑의 이야기라고 소원해진 경향도 없지 않다.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한국(정확히는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외국에 파견해 외국을 경험하고 돌아 온 이들이 쓴 보고서가 한문체라서 어렵게 쓰여졌다는 말이다. 청나라 열하를 돌고 와서 북학파의 거두가 된 박지원만큼 쉽고 반짝반짝한 문체로 쓰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로 인해 문체반정론이 일어날 정도였다. 옛날 성현들의 문체로 쓰라고. 지금으로 치면 블라인드의 커뮤니티언어로 정부보고서를 썼다고나 할까.)
반대의 경우도 미국의 학자들이 한국을 소개할 때도 논문과 단행본으로 문어체로 썼다. 유진 피터슨의 성경책 프로모션 문구처럼, 쟁기로 밭을 가는 소년도 읽을 수 있게 쉽게 쓴 게 아니다.
그런데 이제 다양한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 20년 이상 살게 되면서 음악 같은 대중문화가 아니라 역사 문화 미술 같은 하이컬쳐도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서 쉽고 일반적인 문체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한국인도 조기유학이든 외고를 거쳐서든 외국에 나가 외국에 대해 이해하고 일상이야기, 브랜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쉬운 말로 SNS에 풀어낸다. 그래서 70년대 프랑스 문화를 책으로 접하던 시절과는 달리 프랑스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이 적어지고 그들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또, 몰랐던 현지 맛집도 더 알게 되고 앎이 깊어지고 다변화된다. 유투브에 여전히 피상적인 여행만 하는 해외여행 브이로그도 꾸준히 올라오지만, 현지경험이 많은 한국인이 현지에서만 알 수 있는 문화를 알려주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는 외교관 등 고위공무원, 해외지사 경험 회사임원, 유학파 교수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그래서 그 말투가 친근한 대중말투로 전환되어 지식의 유통이 빨라진다. 밋돌세같이 미국 현지 그로서리 브랜드 계급도를 경상도 말투로 알려주기도 하고, 기묘한 케이지처럼 미국 셀레브리티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채널도 있으며, 일본 철도 시스템과 지리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알려주는 이마고나 판급이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럼 한국을 찰지게 알려주는 일반인 외국인도 있을까? 여럿있다. 우리 눈에 띄지 않을 뿐. 다 그들의 SNS와 블로그에서 유통되는 이야기라 한국인의 주파수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읽어보면 표현방식에서 우리가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 식으로 접근하는게 보여 신기하고 우리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 좋은 교육자료다.
예를 들어 우리문화에 대한 어떤 식의 표현방법이 흥미로운가?
오늘자 더코리아타임즈 사설에는 Joseph Bengivenni라고 하는 충청남도 서산에 살고 있는 작가 겸 사진가가 도선대사의 수도이전 관련 이야기를 풀었다. (이것도 하나 특이한 점이다. 보통 수도 혹은 거점지역(미군이 위치한 평택 의정부 왜관 혹은 일본의 경우 무역항 부산)을 중심으로 포진하다가 점점 이해관계 없는 곳으로 들어간다)
https://www.koreatimes.co.kr/opinion/20250716/will-new-president-fulfill-ancient-prophecy
이 글에서 도선이 왕건의 출생을 예견한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썼다.
"According to legend, he gave a sealed document to a couple, instructing them to pass it on to their unborn son. That child was Wang Geon, the first king and founder of Goryeo. The document reportedly guided him in locating his palace and temples — and he forbade any construction not authorized by it."
번역하면
"전설에 따르면 그는 부부에게 봉인된 문서를 건네며 태어나지 않은 아들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그 아이는 고려의 초대 왕이자 시조인 왕건이었다. 이 문서는 그가 궁궐과 사찰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그는 이 문서에 의해 허가되지 않은 공사는 금지했다."
커플couple이라는 표현이 아주 특이하다. 왕건 아버지와 부인은 당연히 결혼한 사이이니 커플이라고 쓸 수 있지만 우리는 현대적 맥락에서만 쓰는 커플이 갑자기 옛날 고사에 들어오니 신기하다. 그러니까 원어민적 감각에서는 일반명사인데 한국말에서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https://namu.wiki/w/%EB%8F%84%EC%84%A0
도선대사의 이야기
한국일보 칼럼에서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가 소개한 재밌는 예시가 있다. 한국말에서 한자어와 외국어가 사실 같은 의미이데 다른 맥락과 위계적 질서를 띄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110480003223
그가 제시한 사례는
파란불-녹색등-그린라이트
찬물-냉수-콜드워터
인데
이외에도 물건-제품-아이템, 프로덕트, 굿즈가 있다.
우리말에 비해 외국어가 더 높은 위계에 있어 더 좋고 더 고급지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회사는 마케팅에서 더더욱 외국어를 쓰게 된다.
옷=의복=패션이 아니라
옷<의복<패션순으로 더 좋다고 여겨지는 것
내의<언더웨어
장신구<악세서리
구찌 장신구라고 하면 뭔가 촌스러운 느낌이 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이 약간 반전이 되는 흥미로운 케이스가 있는데 바로 중국 대만 등의 한자어가 들어오는 경우다.
이미 우리는 한자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 대중의 정서와도 거리감이 있고 촌스럽고 옛스럽다는 느낌이 있는데
중국이나 대만의 언어가 한국에 번역이 되거나 중국과 대만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할 기회가 생기며 문화충격을 받는다. 내가 아는 그 영어가 그 영어가 아닌데 다운그레이드된 느낌을 받게 된다. 현지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미국식가배차(메이쉬까페이)=아메리카노
신분=아이덴티티
사명=미션
계통=시스템
금융중심=파이낸스센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