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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하우스 - 있지만 없었던 오래된 동영상
김경래 지음 / 농담과진담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있지만 없었던 오래된 동영상"
책이 어떤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지 짐작하지 못한 채 펼쳐들었다. 읽다보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2016년 7월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 공개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군복무 21개월 동안 5백만 원을 모은 전설의 솔저, 김태훈은 복학하면서 노트북이 필요했다. 부도를 낸 아버지 탓에 군대로 도망쳤지만 이후에도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 모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대학생 할인을 받아 노트북도 마련하지만 카페에서 잠시 화장실 간 사이에 도난 당하고 만다. 노트북을 찾지못한 태훈은 중고나라에서 잃어버린 노트북과 비슷한 사양의 노트북을 직거래로 구매한다. 중고 노트북엔 삭제되지 않은 덩치 큰 파일이 숨어있었고, 몰카 폴더 안에 있는 동영상은 흡사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하다.
한편, 돈냄새를 맡는데는 기가 막힌 박미도가 최용식에게 한국에 들어온 지 6개월 이내, 마른 체형에 발이 작은 20대 초반의 조선족 여자들을 의뢰한다. 용식은 중국에 드나들면서 KTV로 불리는 주점에서 만난 김윤희가 몇 달 전 한국에 왔다는 카톡을 보낸 걸 떠올리고, 그녀에게 연락한다. 돈 많고 나이도 많은 어떤 사내가 한번에 네댓명씩 조선족 여자를 부르는데, 하루에 오백이라는 거금을 준다는 말에 윤희는 면접을 보러 가기로 한다.
HBC 기자인 동해는 JS 비자금 사건과 연관해 특검의 불구속 기소에 대한 평가와 사회적, 경제적 파장을 분석하는 기사를 맡기로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때 JS그룹의 실세였던 고 전무의 인터뷰를 내보내려고 했지만 사회부장을 비롯해 JS의 변과장까지 이를 제지하며 삭제해줄 것을 요청한다. 고 전무 사건 이후에 동해는 공짜 술을 마시지 않았고, 동해는 자연스레 접대성 밥자리, 술자리에서 퇴출된다. 그런 그에게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오고, 제보자가 보낸 메시지에는 네 장의 사진이 있는데...
이건희 회장의 동영상이 어떤 언론에 의해 최초 공개 되었는지 몰랐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사건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왜 하필 메이저 언론사들이 아닌 인터넷 독립 언론에서 최초 공개되었을까?'라는 의문이 책 속 사건들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된다. 동해는 JS가 연루된 기사를 내려고 할 때마다 누군가의 만류나 제지를 받는다. 기자가 자신이 취재한 것들을 외압에 의해 기사화 하지 못한다는 건 언론 탄압인데...... 정계와 대기업이 결탁해 벌이는 부정부패한 나라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고 속상했다. 한 때 기자를 꿈꿨던 내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바른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언론인의 사명'은 멋있다 못해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막상 눈 앞의 알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는 진실을 밝히는게 두려울 것 같기도 하다. 2022년에 22년 간의 기자 생활을 접은 저자의 이력은 소설을 더 생생하게 묘사하고 실감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소설 속 결말에 생각이 많아진다. 힘을 가진 것과는 상관없이 죄를 지으면 동등하게 벌 받을 수 있는 투명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