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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한강
권혁일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1월
평점 :

<제 2한강>은 자살한 이들만 전입 할 수 있는 세계라고 한다. 글을 보는 순간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중학교 시절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두 명의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전날까지도 인사하며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친구가 사라졌다는 말은 믿기지 않았고, 그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꽃 다운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이 마음 아프고 안타깝다. 곁을 지키며 더 살갑게 대화해주는 이들이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주인공 홍형록은 2019년 4월 17일 드넓은 한강에 몸을 던진다. 그대로 끝일 것 같았지만 죽은 상태의 그는, 기존의 한강과 똑같이 생겼으며 자살한 사람들만 온다는 제2한강에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다시 눈을 뜬다. 세상이 푸르스름하게 보인다는 것 외엔 여전히 공기를 마시고,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 원망스럽기만 하다. 죽은 상태로 처음 만난 인물은 죽었을 때 기준으로 열아홉 살이고, 이곳에서 보낸 시간까지 합치면 스물아홉인 류이슬. 그녀의 도움으로 찾은 '제2한강 북부관리사무소'에서 8평 남짓한 원룸을 배정받는데, 이곳은 '다시 자살'을 통해 제2한강을 이탈하는 시점까지 거주할 수 있다.
형록은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화짜'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뷰티 유튜버 현진, 서울 중상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했으며, 앱 개발 업계에서 꽤 괜찮은 연봉을 받았지만 6년 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오 과장, 이슬과 식당 아주머니. 그들은 자살할 만한 사연은 하나도 없어 보일 만큼 아주 평범해보인다. 그런 이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각자의 사연들을 소개하는데... 형록은 제2한강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데.
야구를 좋아하긴 해도 실력이 없어 주눅 든 채 동아리를 그만두었던 거, 분노를 참지 못했던 시기, 아까워하며 노트북을 치우던 멍청한 장면까지요. 이 배트를 보고 있으면 전부 떠올라요. 제가 유실문 센터에 처음 왔을 때, 그런 물건들을 싹 다 긁어모아서 강물에 던져 버리려고 했거든요? 마음이라도 후련하게요. 근데 다 받아 놓고 나니 그러질 못하겠더라고요. 아무리 한심하고 멍청한 모습이라도, 그 자체가 나였으니까요. 하나씩 버릴 때마다 나의 일부분이 잘려 나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나라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죠. 저는 저를 지워버리려고 자살한 게 아니거든요.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나를 지키고 싶었던 것뿐이지.
p.87 중에서.
'사후세계', '자살', '죽음'... 자살까진 아니지만 죽으면 편해질까라는 궁금증을 가진 적이 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 쯤은 괴로울 정도로 힘든 일과 마주하는 일이 생길텐데,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고 잠시였지만 힘듦으로부터 도망가고 싶고,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관심이 있던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책은 단숨에 읽었고, 책장을 덮는 순간 긴 여운과 함께 짧은 감동이 밀려왔다. 혹여나 이 순간에도 죽음을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존재의 이유나 삶의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