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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의 위험성 경고

바람직한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습관(책과 학문으로 도덕적, 비판적 통찰력 키워야)
-유희(달콤한 독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결코 자비롭다고 단언할 수 없는 어느 군주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은 끔찍한 불행이다. 왜냐하면 그가 마음만 내키면 언제든지 잔악하게 되는 것이 군주의 권력과결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다만 하나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려고한다. 과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실제로 인민들은 폭정을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숱한 사람들이 단순히 복종할 뿐아니라, 노예처럼 복종하는 것을 바라본다. 그들은 강압적으소 통치되는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억압을 자청하고 있다.

이러한 독재자는 헤라클레스나 삼손이 아니라, 시합장의 모래판에, 전쟁의 대포 연기에 익숙하Listin지 않은 겁쟁이이다. 그는 강인한 남자들에게 감히 명령을내릴 힘조차 없다. 남자들을 유혹하려는 계집 주위에서 비루하게 얼쩡거리는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졸장부이다.

적은 수의 그리스 군대가 승리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러한 불가사의한 결과는 단순히 페르시아에 대한 그리스의 승리가 아니라, 굴종과 비열한 약탈에 대항하는 그리스인들의 자유의 승리 그리고 권력욕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폭군에 의해서 스스로 학대당하는 자가 인민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유를 그저 "열망 하기만 하였으며,
단순히 그러한 의지만 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숨마저 바칠 정도로 자유가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폭군을 살펴보라. 폭군은 마치 하나의 불꽃과 같다. 그는자그마한 불티에서 발생하여, 점점 커진다. 사람들이 땔감을많이 던지면 던질수록, 불은 더욱더 많은 것을 태워 삼키며,
강대해진다. 만약 불 주위에 더 이상 탈 것이 없다면, 화염은 조만간 꺼져서 사멸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겁쟁이나 바보는 불행을 간파하거나 행복을 획득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들이 끝내 성취하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개인적 욕망에 불과하다. 이들은 천성적으로 걸핏하면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무엇만을 차지하려고 한다. 근본적으로 고찰할 때 이러한 개인의 욕망이 내면에서 자유를 열망하는 어떤 힘을 배척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 즉 신중한 자와 변덕스러운 자, 용기 있는 자와 비겁한 자들, 누구나 할 것 없이 행복해지고 싶어하며, 선善을 바란다. 그러나 많은 선 가운데는 단 하나의고결한 선이 있다. 그것은 자유이다. 우리가 만약 이것을어버린다면, 도처에 악이 창궐하게 되며, 사람들은 남아 있는 다른 선에서 어떠한 맛과 흥미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자발적 복종은 모든 것을 망치며, 자유만이 유일하게 선을 정당화시킨다. 모든 선 가운데에서 최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러한 충동이 인간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을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가만히앉아서 자유를 얻으려고 한다. 사람들은 단순히 자유에 대한열망만을 수동적으로 지니기 때문에, 자유를 경시한다. 과연 이 러한 일이 있어서 되겠는가? - P26

게는 자유에 대한 욕구와 의지만으로도 충분하다. 독재자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라.

그를 지지하지 않으면 족하다. 그러면 너희는 조만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토대가 사라지면, 독재자는 마치 제 무게에 못 이겨 저절로 붕괴되어, 산산조각 나는 거대한 입상立像처럼 무너지고 말리라는 것을.

그러나 나는 다음의 사실을 확신한다. 만약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이를 가르치는 자들의 말씀에 따라 살았다면, 인민은 자연에 합당하게 부모를 따르고, 이성에 복종했으리라고 말이다.

자연 속에는 어느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될 사항이 한 가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평등이다. 신의 시녀이자 인간의 교사인 자연은 인간을 오로지 어떤 한 가지형태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동일한 설계에 따라 창조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서로 동지로서 그리고 나아가 형제로서 인식하도록 조처했던 것이다.

자연이 개개인들에게 제각기 다른 능력을 부여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추측컨대 강한 자와 영리한 자로 하여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형제애를 나누게 하고, 힘없는 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자연은 우리를 단순히 결합시키는 게 아니라, 함께 바람직한 공동체를 재건하려고 애쓴다.

자연이우리 모두에게 고유한 권한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허용했음을 고려한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이 주어진 사회에서 평생노예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유를 지닌 채 태어났을 뿐 아니라, 자유를 지키려는 충동을 지닌 채 태어났다.

이러한 완강한 저항을 통해서 동물들은 자유의 상실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명백하게 표시한다.

폭군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무력에 의해서나라를 차지한 자이고, 둘째는 상속을 통해서 나라를 차지한자이며, 셋째는 인민에 의해 선출된 자이다.

권력을 약탈한자는 인민을 마치 노획한 물건처럼 다룬다. 왕위를 계승한자는 인민을 마치 타고난 노예처럼 취급한다. 선출을 통해 권력을 쥐게 된 자는 마치 사나운 수소를 길들이듯이 그렇게 자신의 신하들을 부려먹는다.

엄청난 전쟁의 고통과 당면한 재난은 인민들의 비판력을 마비시키는 법이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노예 상태를 천부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이전 세대의 잘못된 제반 사항들을 정확하게확인할 만한 유산이란 아무데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하게 노예로 만드는이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 언젠가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는 사람들이독약을 먹는 데 익숙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처럼 권력자들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노예 근성이라는 독으로써 유혹한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발전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바르게 교육받지 않으면 얼마든지 나쁘게 변형될 수 있다. 선善의 싹이란 자연이 우리의 내부에 부여한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자그마하고 연약하다. 그 때문에 선의 싹은 거짓된 교육이 만들어 내는 가벼운 타격에도곧 쓰러지거나 소멸되고, 결국에는 죽어버린다.

노예 상태는 어디서든 쓰라리고, 자유는 모든 나라에서 달콤하다.

그렇다면 끝없는 밤 동안에 태어난 사람들은 결코 빛에 관해서 들어본 적이 없으며, 한번도 찬란한 햇빛을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빛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해서 우리가 놀라워해서는 안될 것이다.

고결한 생각과 맑은 정신을 지닌사람들은 일반 대중들보다 더 많은 것을 통찰하는 눈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 비하면 민중은 직접 코앞에 닥친 사실만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좋은 두뇌를 지닌 사람들은 탐구와 사색으로써 오로지 그들의 정신 세계에서 자유를 찾아내어 그것을 창조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속으로 자유를 느끼며, 그것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탐구하는 자는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이 순수한 용기와 곧은 정신으로써 나쁜 지배자로부터나라를 해방시키려고 한다면, 거사는 항상 성공한다는 사실말이다.

"자유" 라는 고귀한 이름은 결코 모반이라는 비열한의도에 남용될 수 없다.

인간이 자유를 잃으면, 용기 또한 상실한다.

즉 인민은 그들을 사랑하는 자를 믿지 않고, 그들을 속이는 자를 신뢰한다.

진실로 말하건대, 폭군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노예근성이라는 달콤한 독을 로마 시민들에게 마시도록 조처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의 낭비벽, 관대함, 연회석은 인민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달콤한 맛을 즐기게 하였다.

오늘에도 권력을 지닌 자들은 마구잡이로 불법을 자행하면서, 이른바 공공의 안녕, 인민을 위한 허울 좋은 "모델로써 그것을은폐하고 있다.

어리석은 인민들은 허위 사실을 직접 고안하거나날조해 놓고는, 나중에는 스스로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자고로 인간의 신체에서 나쁜피는 항상 곪아가는 상처 부위로 집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측은한마음도 떠오르곤 한다. 왜냐하면 독재자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뜻하며,
온 생명을 바쳐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는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참한 삶을 영위해도 괜찮단 말인가? 평범한 사람들은 오로.
지 자신만을 소유할 뿐이다.

다시 말해 신하들은 과연 자신들도 부유함을 계속유지할 수 있는가 하고 자문하며, 항상 전전긍긍한다.

만약 고대사를 세밀하게 읽으면,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수 있을 것이다. 즉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의 야비함을이용하거나, 혹은 왕의 우둔함을 간교하게 악용하지만, 결국바로 그 왕에 의해 섬멸된다는 사실 말이다.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항상 독재자를 용서한다

우정을 맺는 것은 성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고결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그리고 상대방을 존경하는 데서 생겨날 수 있다. 우정은 선善에 의해서 그리고 깨끗하고 고결한 품행에 의해서 유지된다. 친구의 성실성을 아는 자는 그 친구를 신뢰하게 된다. 우정을 보증하는 것은 선량한 인격과 정직이며,
변하지 않는 마음이다. 잔인한 행동이 광란하는 곳에, 불신이 팽배한 곳에 그리고 부정이 널리 퍼져 있는 곳에 우정은절대로 존속되지 않는다. 죄악이 창궐할 때 친구 사이에는배반이 발생한다. 이 경우 우정은 없고, 공범자만 있을 뿐이다.

불나방 역시 빛나는 광채에 도취하여 불꽃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진다. 나방은 불꽃에서 너무나 달콤한 희열을 열망하고있지만, 죽기 직전에야 모든 것을 태우는 불의 또 다른 힘을 쓰라리게 경험한다.

모든 고생과 불행을 근심스럽게 감내하는 그들은 결국 어떠한 대가를 얻는가? 이를 탐지해 본다면, 우리는 권력자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민은? 인민은 독재자를 직접 고발하고 탄핵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지배자를 조종하는 사람들을 더욱더 증오한다.

배우자,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배우자! 위를 향하여 응시하자! 우리의 명예를,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선을 위하여!
우리의 행동을 깨닫고, 우리의 오류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게 하는 신의 사랑과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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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는 누구를 사랑하지도, 누구로부터 사랑 받을 수도 없다.

자유에는 항상 피의 냄새가 수반된다. 그 까닭은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의 곁에 항상 이를방해하는 자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독재를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억압과 폭정에 관한 역사를 케케묵은 것으로 간주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무릇 민주주의는 마치 어떤 선한 싹과 마찬가지로 매우 유약한 무엇이다. 그것은 라보에티의 비유를 도입하자면 세밀하게 보살피지 않을 경우, 금방 시들어버린다.

한마디로 인간은 얼마든지 어느 단체 혹은 어느 이데올로기에 의해 남용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권력이나 단체에 복종하려는 성향에 대해항상 경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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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가니스탄인이 지은 최초의 영어소설. 매일 조금씩 읽다가 하루 그냥 밤새서 읽게 된 책! 덮기가 힘들었다ㅜㅜ

UN이 매년 측정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은 늘 최하위권에 머물러있다. 아마 올해도 제일 밑바닥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솔직히 우리나라 순위도 잘 모르는데 다른 나라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가상 현실을 체험하듯 이 나라를 여행하고 온 것 같아 관심이 간다.

그래서 막 짓기는 했지만..이 책을 6행시로 남겨봐야겠다.^^

‘아’ 름답고 리얼한 막장 스토리로
‘프’ 리덤(자유)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가’ 슴 깊이 공감의 전율을 느끼게 하며
‘니’ 모를 찾아서를 보듯 모험과 가족애를 발견할 수 있고
‘스’ 스로 과연 내 삶은 떳떳한 지 반추해보게 하는
‘탄’ 탄하고 감동적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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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가인가보다. 비유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

네 아버지에 대해 묻더구나. 네 아버지 소식을 전해주자 하산이 얼굴을 손에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밤 내내 하산은 어린애처럼 울었다.

알리의 무표정한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정말로 그의 평온한 눈을 그려보려 했지만 시간은 탐욕스럽게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때로 시간은, 저 혼자서 모든 세세한 사항들을 훔쳐가버린다.

"왜요? 제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어요? 서른여덟 살을 먹고 난이제야 비로소 내 삶이 모두 빌어먹을 엄청난 거짓말이었다는것을 알았는데요. 무슨 말로 이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도 없다고요."

라힘 칸이 밝힌 사실 때문에 상황이완전히 바뀌었다. 1975년 겨울보다 훨씬 전인, 노래하던 하자라유모가 내게 젖을 먹여주던 그때부터 내 모든 삶이 거짓말과 배신, 비밀의 순환이었음이 드러났다.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라고 그가 말했었다. 그 순환을 끊어버릴 방법.

"저게 진짜 아프가니스탄이에요, 선생님. 저게 내가 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라고요. 당신요? 이곳에서 당신은 항상 관광객이었어요. 당신이 그것을 몰랐을 뿐이죠."

그날 아침 일찍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26년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했다. 매트리스 밑에 구겨진 돈을 한 움큼 집어넣어둔 것이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늙은 귀신은 어떻게 됐지?" -눈 사이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다리가 차가워지면서 마비가 되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각자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른 거라고만말해둡시다."

내가 알고 있었다는 그 동안의 네 추측이 옳았다. 나는 알고있었다. 그 일이 일어난 직후에 하산이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는 잘못을 저질렀다, 아미르 잔.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너도 어렸다는 것을 잊지 마라. 불안한 어린아이였다.

사실은 속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속죄일것이다, 아미르 잔,

그의 몸을 끌어당겨 꼭 안고서 세상이 너에게 가혹하게 대한것이지 네가 세상에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머리가 들어올려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나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소랍이 조용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말이다. 조용함은평화와 평온함을 의미한다. 조용함이란 삶에 대한 볼륨 스위치를 줄이는 것이다.
침묵은 버튼을 눌러서 삶을 완전히 꺼버리는 것이다.
소랍의 침묵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자진해서 지키는 침묵이나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을 나타내려는 항의자들의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두운 곳에 숨어서 온몸을 어둠으로 돌돌 감고 있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소랍의 방문을 닫으면서 용서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싹트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하산의 아들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메리카로 데려온 것이다. 그를 확실성의 혼란으로부터 들어올려서 불확실성의 혼란속에 떨어뜨렸다.

내가 오마르 파이살 변호사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소랍의 눈에서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수줍은 손님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었다. 이제는 그 빛이 사라져버렸다. 손님이 도망쳐버렸다. 언제쯤 그 빛이 되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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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다는 연인이 오길 기다리면서 지새는 별빛 하나 없는 밤을 의미했다. 소라야 타헤리를 만난 후 내게는 매일 밤이 옐다가 되었다.

소라야. 공주 같은 내 보물. 옐다다음 날 뜨는 아침 해 같은 그녀

코란 구절이 방 안에 울려 퍼지고 있을 때 바바가 발루치스탄에서 검은 곰과 씨름을 했다는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바바는평생 동안 곰들과 씨름했다. 젊어서 아내를 잃고 혼자 아들을 키웠고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왔다. 가난과 모욕을 경험했고 결국에는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물리칠 수 없는 곰을 만났다. 그러나그때에도 그는 자기가 원하는 조건을 내세우며 져주었다.

잠든 소라야 옆에 누워 있으면 바람결에 미닫이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와 마당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때면 소라야의 자궁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 공허함은 살아 숨 쉬는 생물 같았다. 그 공허함이 우리의 결혼생활 속으로, 우리의 웃음 속으로, 우리가 나누는 사랑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밤늦게 어두운 방에서 공허함이 소라야에게서 떠올라 우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는 것 같았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오너라,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그의 끝없는 검은 눈, 그것이 우리 사이에 무언의 비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했던가. 지금은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다. 지나간 시절 내내 내 의심이 옳았다. 그가 아세프와 연, 돈과 번개 모양의 바늘이 달린 시계에 대해 알고 있었다. 줄곧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전염병을 피하듯이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라." 시 있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가 한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학생들도 선생님과 함께 웃었지만 나는 상투적인 표현이 부당하게 매도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다. 상투적인 표현이너무나 정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투적인 표현이들어간 말은 상투적인 표현이라는 그 말의 본질 때문에 그 정확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방 안의 코끼리(무시할 수 없는 현실)‘ 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라힘 칸과의 재회 첫 순간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말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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