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춤추기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과 관련이 있는 감정이다.

테드 숀Ted Shawn은 우리가 말보다는 춤을 통해 감정을 훨씬 잘 표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춤은 보이도록 만들어197015Dance is thought made vi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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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건강하게 하는 데 무엇이 가장 좋은지를 탐색한 수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그 중에 다음의 답이 아주 자주 등장합니다. 사람을많이 만나고 교류해라.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에 이와 관련된 많은연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뇌의 성능을 높여 준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들을 억누르지 말고 표현하며 스스로 느끼고 이해해라.

재미있게도 춤을 추면 이 세 가지가 모두 일어납니다. 사람을 만나고, 몸을 움직이고, 감정을 표현하며 이해하죠. 그리고 리듬에맞추어 나 자신을 변화해 가는 법을 배웁니다.

"삶은 풍랑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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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속으로 새로운 교단을 만들고 있었다. 새로운 삶의 누룩이 될…….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고 선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온몸으로 땅을 쓰다듬는 뱀은 대지의 모든 비밀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내 영혼을 육신으로 채우리라. 내 육신을 영혼으로 채우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저 영원한 두 적대자가 내 안에서 화해하게 만들리라.

이렇게 몇 시간 부드러운 비가 내리는 동안 내면에 일어나는 슬픔에 탐닉하는 것은 얼마나 관능적인가! 의식의 심연에 잠겨 있던 쓰디쓴 추억들이 모두 수면 위로 떠오른다. 친구와의 이별, 여자들의 희미해진 미소, 나방처럼 날개를 잃은 희망들, 그 희망 뒤에 남은 것이라곤 삼류 글쟁이라는 한 마리 구더기뿐. 그 구더기는 내 심장의 잎사귀에 기어올라 그것을 갉아 먹어 치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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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내 존재의 심연에서는 하나의 욕망, 한 알의 씨앗이 태동해 왔다.

나는 내 내부를 파먹으며 익어 가고 있는 그 씨앗을 내 장부(臟腑)로 느껴 왔다. 씨앗은 자라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밖으로 나오려고 내 몸의 벽에 발길질을 시작했다. 내게 그것을 파괴할 용기는 더 이상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정신적인 낙태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식물이 똥과 진흙 속에서 어떻게 돋아나고 꽃으로 피어나지요? 조르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봐요. 똥과 진흙은 인간이고 꽃은 자유라고.」

조르바가 주먹으로 식탁을 치며 외쳤다. 「그러면 씨앗은? 식물이 싹으로 돋아나려면 씨앗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내장 속에 그런 씨앗을 집어넣은 건 누구지요? 이 씨앗이 친절하고 정직한 곳에서는 왜 꽃을 피우지 못하지요? 왜 피와 더러운 거름을 필요로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의 정열에서 풀려나와 다른 더 고상한 정열의 지배를 받는 것. 그러나 이 역시 예속의 한 형태가 아닌가? 이상을 위하여, 종족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다? 우리의 지향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더 길어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훨씬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의 한계에 이르지 않은 채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자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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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우스의 후손인 파트로클로스여! 소녀를 데리고 나와이들에게 내주게나. 그러나 훗날 수치스러운 파멸에서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할 때이 두 사람이 축복받은 신들과 필멸의 인간들 앞에서,
그리고 저 무정한 왕 앞에서 내 증인이 되도록 하게나. 우그는 진실로 사악한 마음을 품고는 미쳐 날뛰며앞도 뒤도 볼 줄 모르니, 이래서야 어찌 그의 아카이오이족이자신들의 함선들 옆에서 안전하게 싸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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