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일단 바로 총질로 시작합니다. 총격전도
아니구요. 목덜미에 총알 한 방을 박아 넣는
일방적인 살해입니다. 가타부타 상세한 설명도
묘사도 없고, 느낌이나 감상은 애초에 기대않는게
좋습니다. [잘가요 내사랑, 안녕] 이라는 제목에
슬프고도 비극적인 로맨스 소설을 기대하셨다면,
속으신 겁니다. 이 책은 아주 그냥 순도 99.99%의
범죄 소설이니까요. 그것도 하드-보일드한
스타일로 말이죠.
잘가요 내사랑 안녕
이야기는 갖은 범죄를 저지르는 한 사내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겠네요. 여기저기 흘러다니다 머무른
어느 곳에서 기반을 만들고, 현금수송차 털이
로 한탕 크게 해 먹은 후 밑천을 잡는 앞부분,
그리고 지역을 옮겨 레스토랑 사장으로 제 2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뒷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갖은 범죄와 함께하던 주인공이
어두웠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셨다면,
여러분은 또 속으신 겁니다. 그런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제 버릇 개 못주는 거죠.
그랬군. 그래서, 죽일건가?
책을 읽다보면 하도 많은 범죄를 보다 보니
사람 서넛 죽이는 건 별시리 느낌도 오지
않습니다. 감정 묘사가 없으니 머리속에
느낌이 와닿지도 않고, 절반 이상은(?) 하드
- 보일드한 스타일 때문에 끔찍하거나 잔인하단
느낌도 크게 들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범죄도
신속 정확한데다 뒤탈 안나게 깔끔하기도 하고,
감정적인 이유 없이 필요에 의해 저지르다
보니 더 그렇겠죠. 와 이 나쁜 새끼 정말, 잡아서
영원히 깜빵에 처 넣어야 한다고 느끼기 보단
음 그랬군, 그래서, 또 죽일건가. 뭐 이딴
식으로 독자도 반응하게 된단 말입니다. 하기야,
사람을 파리 죽이듯 하는 폭력 영상이 넘쳐나는
것도 모자라 혐오스럽기까지 한 엽기 하드코어
까지 난무한 세상에 폭력에 너무 무감각해져
버린 이유도 있겠죠. 어쨌든 주인공이 저지르는
범죄들은 볼만합니다. 순수(?) 범죄소설에서의
범죄는 이런 느낌이다! 를 한번 빡시게 체험해
볼 수 있죠.
범죄의 악순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주인공이 뼛속부터 나쁜
놈인거냐 하면 꼭 그렇진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는 착한데 어쩌다보니 나쁜 놈이 되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구요. 절망의 나락이나
3류 인생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가 첫번째 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깨끗한
손 대신 범죄를 좀 저질러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뒤가 구린 존재들이 있고, 그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에 범죄는 계속된다는 얘기가 두번째 입니다.
원래 못되 처먹은 악인이어서 본능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게 아니라, 한번 발 담그면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두운 세계에 빠져서, 어쩔 수 없이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제거해서 상황이 조용해 질 때까지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는거죠. 그러지 못하면 책잡힌 상태로 누군가의
영원한 '을' 이 되어 '갑' 의 더러운 손 노릇을
계속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어둠의 마피아 그리고 백색 마피아
그리하여, 범죄의 악순환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 탄
주인공은 헤어나올 수 없는 비극을 계속해서 뱅뱅
돕니다. 감정이 있어야 희극인지 비극인지 구별을
할 수 있으니 비극이랄 것도 없네요. 본인이 살아야
하면 상대를 죽여야죠. 살려면 돈이 있어야죠? 그럼
훔치던가 삥뜯어야죠. 개과천선한 새로운 삶이요?
그런건 개나 줘버리세요. 과거는 좀 벗어버리고
새로이 살아 보겠다고 옮긴 일상의 공간 역시 말도
못할 정도로 범죄로 가득합니다. 총과 매춘, 폭력과
마약으로 먹고사는 마피아가 지배하는 지하세계처럼
지상의 세계는 양복과 제복을 입은 정치인과 관리,
변호사, 부자 등으로 변장한 또다른 마피아들로
가득합니다. 어느 곳이나 다 똑같아, 똑같은 놈들
이라는 작가의 냉소적 시선과 세상을 향한
조소가 어찌보면 이 범죄소설이 쓴 가면 속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나머지
마지막으로 살해당한 사람은 좀 안타까운 면이
없잖아 있네요. 아니, 뭘 잘못한게 있다고 죽임을
당해야 하나 란 생각이 드는 유일한 존재기도
합니다.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
거라고 주인공을 이해라도 좀 해줬다고 해도, 이젠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진짜 나쁜 놈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하드보일드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오랫만에 하드보일드한 스타일의 책을
읽었네요. 그러면서도 이 책은 나름 저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는 도중에도
참 매력적인 책이다 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재미는 기본이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