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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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60대' 를  묻다

 

65세의 나이란, 뭐 그렇게 고령도 아닙니다.   

요즘 치과에서 만나는 환자들 보면 한 80세는

되어야 아 나이가 드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기야 기대수명이 100세

바로 직전의 시대를 사는 상황에서 60대의

나이는 아직 죽기까진 좀 시간이 남은

상태죠.

 

점점 나이 들어가시는 56년생, 올해로

57세이신 아버지를 보니 아... 우리 아버지가

노인이 되셨구나 하는 느낌은 몇년 전보다

약간 더 늘어난 주름살과 돌아가시기 직전의

할아버지의 모습을 더 닮아간다는 것 외에는

외모에서는 크게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분명 나이가 들었다는 몇몇 징후들은 있습니다

아침잠이 없으시다던지, 몸 여기저기가 조금씩

문제를 일으키신다던지, 약주도 예전만큼

드시지도 못하구요. 60대란 나이가 노인이라고

부르기엔 조금은 민망한 나이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노인으로 가는 변화가

분명 나타나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60대 여자 킬러라니요

 

킬러, 살인청부업자 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시나요? 해지고

닳은 데님을 입고 며칠은 면도 안한듯

덥수부룩한 수염이 있는 젊은 사내?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소형 최첨단 화기를

하드케이스에 넣고 다니는 선글라스를

낀 중년 남자? 작가 구병모가 그리는 살인

전문 방역업자는 할매, 할망구, 할머니라고

불리면서, 마주친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어쨌건 그 옆을 피하게 되는 60대의

여성입니다. 그리고 소설은, 킬러로서의

황혼기 즈음에 진입한 그 60대 할망구의

어느 날들을 그립니다. 

 

 

 

파과

작가
구병모
출판
자음과모음
발매
201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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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破果

 

파과 破果 (전 瓜 보다는 果라고 생각해요

이것은 저의 자폭 서비스) 라는 제목이 주는

무게감은 보기보다 훨씬 강합니다. 냉장고

안에서 방치된 채 몇 주 혹은 몇 개월을

보내고 시꺼멓게 변해버린 복숭아는

혹 이 소설의 숨겨진 진짜 주인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발합니다.    

이 60대의 살인 청부업자는 자신의 처지를

모르지 않아요. 자신의 직업 수명이 다해

간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건강 검진 결과는

문제없지만 몸이 예전같지 않고 문제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어요. 이제는 슬슬 은퇴를 준비해 가야할

타이밍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늙었다는,

이제 은퇴하라는 주위의 비아냥과 질타에

오기와 자존심으로 정면으로 맞받아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도 알고 있던

사실을 받아 들이고 인정하죠. 주인공은

자신이 냉장고 속에서 거무죽죽한 빛으로 

물러져 가고 있는 복숭아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냉장고를 열였을

때 주인공과 그 파과 가 대면하는 장면은

고요하면서도 공허하고, 고독하면서도 

숨이 막합니다. 

  

 

 

파과같은 주인공의 마지막을 그리다

 

어쩌면 그녀가 바라는 건 완전히 씨꺼멓게

찌그러져 버렸을 때, 냉장고에서 꺼내

쓰레기통에 고이 잘 버려줄 누군가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그녀의 개는 참

복받은 겁니다. 천수를 누리는 것도 모자라

죽은 후에도 남은 덩어리를 잘 거두어 줄

누군가가 있으니까요. 무심한 듯 남의

손에 처리를 부탁하지만, 결코 차갑거나

냉정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자신의 최후만큼 그녀의

개에게도 베푸는 것이겠죠.

 

우리는 이제  냉장고 속의 오래된 복숭아처럼

파과 가 된 그녀의 마지막 행보를 묵묵히

지켜봅니다. 발버둥치고 노력한다고 파과

상태를 벗어날 순 없는 일임을 알기에  주인공

역시 그러려고 하진 않습니다. 역설적으로

본인의 처지를 잘 알고 있기에 그녀가 하는

모든 일들이 어떤 의미있는 행위로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킬러로서의 마지막, 혹은 한 인간

으로서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그녀의 60대의

어느 날들은 책을 읽어서 직접 확인해 보는

것으로 하죠.

 

 

 

 '작가의 말' 의외로 재미지다

 

 ...그러니까 설마라도 이 소설이 아드레날린의 

폭발적인 분비를 유발하는 킬러 미스터리 

서스펜스인 줄 알고 선택했을 누군가에게는,

번지수가 달라 미안하다는 이야기.

 - 작가의 말 

개인적으로 이 책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책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작가의 말' 에서 언급한

것과는 좀 다르게 킬러 미스터리 서스펜스

로서토 멋지다! 라는 점일 겁니다.  뭐, 책을

읽다보면 가장 마지막 장, '작가의 말' 도

다 읽어 보시게 될 텐데, 이 '작가의 말' 도

꽤 재미있었다는 점도 알려 드리고 싶네요.

마치 영화 끝나고 자막 다 올라가고 나오는

보너스 영상 마냥 말이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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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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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월 3일, 서울의 날씨는 뜨겁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드디어 더운 정도가 아닌,

뜨거운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여름의

클라이막스가 시작된거죠. 괜찮습니다.

우리는 이 클라이막스가 한 주 또는 두 주만

지나면 한풀 꺾이리란걸 알고 있으니까요.

 

더위와 함께 여름 휴가철도 시작입니다. 

다들 저 어느 곳으로 바캉스 가시나요?

시원한 물이 있는 계곡과 해변으로 떠나시는  

분들 많으실겁니다. 혹은,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망중한을 즐기시는 분도 있으시겠죠.

 

 

휴가를 위한 책 한 권

 

클리셰 같지만, 휴가지에서의 독서, 여행

가실 때 책 한권 함께 챙겨가시란 문구가

떠오르네요. 왠지 열린책들 출판사가 휴가와

바캉스를 염두해 둔 채 작정하고 만든 듯한

화제의 신작, 서점에 가면 새로나온 신간

코너에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인터넷이든

어디든 어렵지 않게 광고 배너를 볼 수 있는

바로 그 책, 이번 감상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입니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작가
요나스 요나손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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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표지가 좋아

 

일단 이 책은 기분 좋은 밝은 파랑의 표지부터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표지는 책의 얼굴이죠

독자와 책이 만나는 가장 첫 페이지이기도 합니다

일단 첫인상부터 뭔가 상쾌하고 기분 좋아지지

않나요? 좋습니다. 표지부터 나쁘지 않은 점수를

따고 시작하네요.

 

 

 

그리고 제목도 좋아

 

책 제목도 한번 읽어볼까 마음을 끌어 당기는데

한 몫 하니다. 도망하는 100세의 노인이라니. 헐.

노인 이야기라면 뭐 좀 고리타분할 듯도 한데

일단 도망간다니 그렇게 답답할 것 같지는

않잖아요. 100세 노인이 창문을 넘어 도망간다는

것도 헐~ 한 설정이구요. 은근 유쾌하면서도

깔끔한 제목입니다. 뭔가 재미있어보이기에

충분합니다.

 

 

 

후덜덜한 수상내역 믿고보는 책

 

그리고 이어지는 책 뒤편과 책날개에 있는 

서평과 수상 이력은 아주 대박입니다. 전세계

수백만부가 팔린 책, 주루룩 늘어지는 수상

실적들, 이 책의 재미는 이미 검증받았다! 를

아주 강력하게 어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책을 집어들고 카운터로

향합니다. 도서출판 열린책들 과의 책 구매를

걸고 벌어진 한판 승부에서 저는 패배했습니다.

다들 그 유명한 문구 아시죠? 패자는 카운터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야기는 크게 보면 두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00세 생일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친 알란 할아버지의 100세까지의 인생

이야기가 한 덩어리, 그리고 도망친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가 또 한 덩어리,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독자는 우선 한 인물의

생애를 훑어 내려가는 이 100년이 조금

넘는 서사에 첫번째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마치 세헤리자데의 천일야화처럼 그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다리고 궁금해하는

맛이 있죠. 이 할아버지, 또 어디서 뭔 짓을

저지를까 에 대한 궁금증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계속 됩니다.

 

 

 

 

할아버지의 앗쌀한 인생드라마

 

스웨덴의 시골에서 시작한 할아버지의 삶은

어느덧 스페인을 거쳐 미국으로,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한창 전쟁 중인 한국까지 오게 됩니다.

지구를 한바퀴 도는 할아버지의 여정에는

현대 세계사와 함께 역사적 인물들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문제에는 무관심한 이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작용하고, 세계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놓기도 하는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철저히 계산되고 소수의

권력자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역사가 아닌, 오히려 그 반대의 평범하면서도

무심한 듯한 존재에 의해 아이러니와 함께

묘한 희열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어느 영화에서 이미 본 적이 있죠. 포레스트

검프요.

 

포레스트 검프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톰 행크스
개봉
199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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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쩌다보니, 궁금하니까

 

그리고 재미난 건, 할아버지를 그렇게 행동

하게 하는 이유일 겁니다. 왜? 라는 질문에

그냥, 어쩌다보니, 궁금해서, 술과 맛있는

식사를 원해서 라고 대답할 수 있겠네요.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참 기가 차고

어처구니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

때문에 세상의 흐름이 바뀐단 말인가 싶은

거죠. 하지만 또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

속에서 우리는 위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세계

정복이나 왕국건설 따위의 위대하고 찬란한

목표라기 보다는, 유구한 시간 앞에 작은

존재에 불과할 한 인간의 호기심이나, 식욕

과도 같은 작은 소망 또는 기가막힌 우연이나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라는 점이죠. 그만큼

이 세상이란 것도, 역사란 것도 꽤 소박

하고 아주 인간적인 무엇인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결론은

'사람'이겠죠.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란

겁니다. 불행히도 세계사 속의 역사적

인물들이 이 점을 간과한 경우가 많았죠.

 

 

 

골때리는 할아버지의 액숀 어드벤쳐

 

100년을 산 이 할아버지의 살인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단죄하기에는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존재라 참

애매하긴 해요. 그렇다고 죽어 마땅한

천하의 악당을 죽인 것도 아니고, 철저히

의도된 살인이기 보단 사고에 가깝긴 

하지만요.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휠씬

더 적을 때, 삶의 무게도 그만큼 가벼워

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살인이란 엄청난 일 조차도 해프닝같이

느껴지게 만들 정도니까요.

할아버지의 생애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양로원을 탈출한 이후 할아버지가 벌이는

어드벤쳐 영화같은 이 한판의 활극도

꽤 재미있습니다. 어떻게 수습할라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싶지만, 어떻게는

독자를 신나고 기분좋게 만드는데에는

성공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깜놀! 김일성 김정일 등장!

 

스웨덴 작가가 소설에 주인공의 한국전쟁

중의 한국 방문과 김정일, 김일성과의

만남을 그렸다는 건,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꽤 반갑고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어떻게 그려졌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일단 크게 무리없이, 위화감 없이, 역사적

왜곡 없이 무난하면서도 경쾌하게 잘 그려

냈다고 봐요. 이건 사실과는 다르다거나

보면서 눈살 찌푸려지거나 거부감이 들게끔

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알려

드릴게요.

 

 

 

소소한 재미 깨알같은 센스 

 

이 책, 열린책들 출판사, 대박나나요?

기획하신 분들 보너스받고 소고기 드시는

건가요? 저는 뭐 열린책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고  서포트도 받고 있지 않습니다만, 이번

감상에서 너무 띄워준 것 같네요. ㅋㅋ 

양장본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신경 많이 

쓴 흔적이 보여요. 예를 들면, 

 

 

 

바로 이런거죠! 책 표지종이 뒷면에 있는 

세계지도 같은거 말이예요. 이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할아버지의 여정을 한 눈에 

보는 소소한 재미, 이 깨알같은 센스에 

개인적으로 환호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신나게 읽어대기 좋다, 괜찮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좋은 평가 받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활자 자체가 주는 압박과

두꺼운 책의 부담감 때문에 읽다보면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하던 책의 첫인상이 약간은

줄어드는 점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그게

그리 큰 흠은 되지 않을 겁니다. 휴가지든

직장이든 카페든 일단 들고 다니면, 그 책

뭐냐고, 재미있냐고, 주변 사람들이 다들

한번씩 물어볼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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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축 처지는 감상이라니

 

 이 책을 들고서 감상문 써보려고 한

 대여섯 번은 시도한 듯 한데 이제서야

 쓰게 되네요. 뭐랄까요, 감상 좀 써보려

 하면 꽁하면서도 기운빠지게 만들고,

 이 축축 처지고 눅눅한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 오른다고나 할까요.

 

 

 

선셋 파크

작가
폴 오스터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1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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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셋 파크

 

 선셋 파크에 붙은 어느 집, 주인은 있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이 곳을 무단

 점거한 채 지내는 젊은 남녀 네 사람이

 있습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채 그 곳으로

 모여들었죠. 느낌상 별로 좋은 사연들은

 아닌 것 같네요. 맞습니다. 각자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선셋 파크의 어느 집으로

 모이고 또 흩어지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

 입니다.

 

 

 

 당신의 삶은 온전합니까

 

 현대 도시인들의 불안. 이 책을 읽으면서

 딱 이 단어가 생각나더군요. 평일이면

 일어나서 직장에 가서 일하고 저녁이면

 퇴근해서 집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잠들고 아침이면 일어나서 출근하는 삶.

 주말이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든, 쇼핑을

 하든, 영화를 보든가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들면서 시간을 보내죠. 특별히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지만 그 삶이 마냥

 평화롭고 안온한 건 아닙니다. 어딘가

 불안하고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죠.

 이런 삶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계속해서 일은

 할 수 있는 걸까. 아직 충분하지 않은

 돈은 어떻게 하나. 나의 노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노부모와 태어날 아기는

 어떻게 부양해야 할까. 이렇게 쳇바퀴

 돌듯 살다가 그냥 내 삶은 끝나는 걸까.

 분명 현재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불안합니다. 흐릿하고도

 불분명 합니다.

 

 

흐릿한 도시인의 삶

 

 소설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가슴에

 상처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해요. 적어도

 삶을 완전 포기한 이들은 아니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현재는 별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마치 트레이드 밀

 위를 달리듯 계속 달려야지, 멈춰서는

 순간 뒤로 밀려 꽈당 넘어지듯

 말이죠. 열심히 일해도 곤궁한

 생활은 좀 벗어나기 힘들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빠듯하죠.

 그런 현실에 회의감을 가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희망이 그리 많지 않은

 불안한 현실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나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들

 자체가 나약한 존재인건가요? 전 이들이

 나약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것

 보다는 이 사회와 도시라는 시스템이

 그들을 나약한 존재로 간주하는 건

 아닐까요.

 

 

 

 

낙관주의는 마약이다 

 

 이 힘들고 어려운 현실도 결국엔

 다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며 행복

 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그리는

 이 미국식 낙관주의가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얼마나 먹힐 수

 있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할만한 ‘파란 약’

 이기에는 너무 약하지 않나요. 지금

 당장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행복한

 미래를 꿈꿀 여유나 있냐 말입니다.

 딱히 강력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진

 않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

 입니다. 뜨악하게 생각하나 본데요.

 뭐 그렇죠. 이 도시 속 쳇바퀴를

 일단 계속 돌게 만드는 마약같은

 아닐까요. 일단 돌아봐. 이게 다

 도움이 될거라고. 좋아질거야.

 

 

 

내 삶은 내가 이끄는대로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분명히 말합니다.

 바로 지금,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자고

 말이죠. 불확실과 불안으로 가득한 삶

 에 목매인 채 질질 끌려가는 상태론

 살아가진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나의

 현재를 꽉 부여잡은 채 나의 일상을

 내가 컨트롤하고 리드하겠다고 일갈

 합니다. 이 다짐이 얼마나 오래갈 지

 또 어떤 시련이 주인공의 앞에 닥칠지

 혹은 거대한 사회의 시스템 앞에 또한번

 나약한 존재로 무릎 꿇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어진 삶이 아니라 내 삶의 진짜

 주인이 되겠다는 다짐은 삶의 좋은 

 원동력이 될 겁니다. 이런 단호한 자세

 좋잖아요. 주체성을 좀 회복해 봅시다. 

 이거, 미국식 낙관주의 보다는 훨씬

 약빨좋은 ‘빨간 약’ 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머지

 

 폴 오스터의 작품들을 조금 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다음 작품은 ‘뉴욕 3부작’ 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폴 오스터가 이야기하는

 현대 도시와 도시인에 더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특이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도시의 정경과 사람들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쇼킹하거나 임팩트 있는건

 아니지만 분명 그만의 느낌과 분위기를

 내면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위기와 메세지를 충분히 느끼고

 이해하기엔 단지 그의 책 한 권만 읽어서는

 좀 부족할 것 같아요. 제일 뒷장을

 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폴 오스터는

 분명 천재다’ 라고 했던 언급이 적혀

 있네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딱 좋아할

 만하다는 생각에 혼자서 그냥 한번 씩

 웃고 말았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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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상담 자주하세요?

 

 상담 자주 하세요? 친한 친구나 

 가까운 이들에게 고민이나 걱정

 거리를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당신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조언을 구하는 편인가요?

 어떠세요? 당신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우신가요?

 

 

 상담 이란 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 같아요. 남의

 말은 들을게 못된다, 혼자 끙끙 앓느니

 같이 고민해 보는게 낫다,  고민은

 같이 해보고 최종 판단은 결국 본인이

 하는거다… 등등 뭐 그렇지 않겠어요?

 남의 조언 들어서 완전 망한 사례부터

 괜히 조언해줬다가 욕만 들어먹은

 사례까지 엄청나게 다양할 겁니다.

 그래서 아마 상담이란 걸 받기도 또

 상담을 해주기도 어려운 거 아니겠어요.

 

 

 확실한건요. 이 상담이란 거, 받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내밀한 부분까지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크게 용기를 내거나 심사숙고 끝에

 결단을 내려야 할 경우가 많을 거란

 겁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결심을 하고

 어렵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은거죠.

 상담하는 사람 입장은요? 언제나 리스크

 를 안고 있는거죠. 내가 해 준 조언이

 상대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 올까,

 그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준 건 맞을까, 백 년도 채

 살지 못할 미래를 모르는 이 무지한

 존재가 타인에게 상담이란 걸 해 줄

 조건과 자격은 되는걸까 고심한다는

 겁니다.

  

 

 

 상담이란 종합예술이다  

 

 저는 상담이란, ‘종합예술’이 아닐까

 생각해요. 상대방의 마음과 처지를

 읽어내고, 적절한 표현과 문장을

 선택해서, 그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그를 행동하게 만드는 설득하게

 하는 것,  마음을 비우고 결과는

 시간과 운명의 흐름에 맡긴 채,

 그의 미래가 부디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일련의 과정

 같은 것이겠죠. 그만큼 상담이란 거

 어렵습니다. 만만한 게 아닙니다.

 이런 점이 바로 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더 돋보이는 이유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
현대문학
발매
201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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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오갈데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강도행각이라는 사고를 친 세 청년이

 우연하게 아무도 없는 상태로 낡고

 버려진 나미야 잡화점에서 하룻밤을

 숨어 지내게 됩니다. 알고보니 이곳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묘한 공간

 이었죠. 그곳의 주인이었던 나미야

 할아버지가 편지상담을 했던 것처럼

 상담편지는 시간의 갭의 뛰어넘어

 현재의 나미야 잡화점으로 날아듭니다

 이 곳에 숨어든 세 청년은 때론 중구

 난방이거나 즉흥적으로, 또 때론 진지

 하고 솔직하게 과거에서 온 상담편지

 들의 답장을 보냅니다. 그들의 상담은

 적절했던 걸까요? 상담의 결과들과

 그  뒷 이야기들이 점차  하나하나씩

 밝혀집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

 

 사실 알고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길거리에서 어깨를 부딛혔던 그 남자,

 알고보면 내 옛 애인의 새로운 남자

 친구일 수 도 있는 일이고, 오늘도

 나를 위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준

 카페 사장님의 딸이 내 병원의 환자

 일수도 있는 일이죠. 어디서 어떻게

 연결되고 접점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무엇이자

 묘한 미스터리 아닐까요.  각자의

 삶이 만나는 곳, 각각의 인생들의

 교차하는 지점에서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들과 눈물이 생겨난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이런 마음 따뜻한 에피소드와 절묘한

 삶과 사람들의 만남이 있는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마치 ‘심야식당’처럼

 말이죠.

  

심야식당 1

작가
아베 야로
출판
미우
발매
200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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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추천하는 한 권의 책!  

 

 한손으로 집어 올리면 두툼함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지만 읽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참

 재미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라는 점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출판된 지 조금은 시간이

 지났는데, 왜 이제야 읽어 보았나 싶네요.

 모두에게 추천해 주고픈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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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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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은 작년 6월에  

출판된 이후에 꽤 씨끌벅적 했나 봅니다.

아마존닷컴에 가 보면 꽤 많은 서평과

리플을 볼 수 있어요. 뭐랄까요... 읽다보면

독자를 진짜 열받게 만든다고 할까요?

애매모호한 결말에 대한 코멘트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목을 바꾸자 <사라진 XX년>

 

원제 <gone gilr>을 굳이 번역하면

뭐라고 하는게 좋을까요? 사라진 여자?

정직하게 한글로 옮겨 보자면 그렇겠지만

책을 읽고나면 이게 딱입니다. 사라진 년,

사라진 XX년, 이정도 느낌을 살려줘야

적절한 제목이 될겁니다. 정말 분노에

치를 떨게 만드는 이런 캐릭터는 아주

오랫만에 만나보네요.

 

 

 

 

나를 찾아줘

작가
길리언 플린
출판
푸른숲
발매
201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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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 어디까지 알아봤니

 

이 문제의 주인공은 소시오패스가 확실

합니다. 잠깐 소시오패스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좀 찾아보고 가죠.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기준 (DSM-IV-TR)은 다음과 같다.
1)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해하는 행태를 전반적,

지속적으로 보이며, 이러한 특징은 15세 이후에 시작된다.

다음 중 세 가지 이상의 항목으로 나타난다. 

- 반복적인 범법행위로 체포되는 등, 법률적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는다.
- 거짓말을 반복하거나 가명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기성이 있다.
- 충동적이거나,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행동한다.
-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어서 신체적인 싸움이나 타인을 공격하는

일이 반복된다.
-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을 무모하게 무시한다.
- 시종일관 무책임하다. 예컨대 일정한 직업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하거나

당연히 해야 할 재정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학대하는 것, 또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거나 합리화하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2) 진단 당시 최소한 만 18세 이상이어야 함
3) 만 15세 이전에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기준에 따른

행실장애(품행장애)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4) 반사회적 행동이 정신분열병이나 조증 삽화 중에 일어난

것이 아니어야 한다

 

 

만약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 애인, 배우자가

소시오패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상상이 가시나요? 소설의 문제제기

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 모든 끔찍한 것들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스토리가 이정도면 작가가 양반입니다.

   

 

지능범, 독자를 농락하다

 

문제의 주인공은 굉장히 스마트한 두뇌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문제겠죠. 도덕성 없는

스마트한 두뇌를 가졌다는건 참 비극입니다.

자신을 피해자인양 사건을 꾸며 가해자가

되는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그의 수법은

참 기만적이면서도 효과적 입니다.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수법이나 행동도

얼토당토 않지만 그녀가 그러는 이유도 참

가관입니다.

 

이 소시오패스의의 음모가 사람들에게 먹히는

이유에는 여성이기 때문인 것도 없잖아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위치가 되기 쉬운

여성의 지위를 한껏 이용해 먹지요. 꽃뱀

같은거랄까요. 원나잇 섹스를 즐긴 후에

여자가 성폭행 당했다고 고발하면 남자는

빠져나갈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저같아도

남자를 우선 의심할거예요.

   

 

 

주먹을 부르는 그녀

 

책을 읽는 많은 이들은 분명 이 주먹을

부르는 소시오패스에게 정의의 심판이나

천벌이라도 내려서 악의 처참한 최후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결말

을 원했을 겁니다. 저 역시 마지막 한 장

까지 읽으면서 좀 그러길 바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반의 체념과 포기, 그리고 절반의 연민

속에서 계속해서 그렇게 주위의 사람들과

살아간다는 마무리는 오히려 더 충격적

이었어요. 생각한 것보다 그녀는 훨신 더

치밀하고, 악랄합니다. 그녀를 합법적으로

벗어날 방법이 별로 보이지도 않죠. 불법

적인 방법을 이용한다는 건 그녀와의

전쟁에서 패하는거나 마찬가집니다.

무서운 상황이죠. 그런 존재가 우리의

삶 주변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본다면

참 소름끼치는 일이죠. 도로에서, 마트에서

영화관에서 뭐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일 아니겠어요. 그렇기에 그러한 결말을

선택한 그녀의 남편은 영웅같은 존재입니다.  

 폭발 1초 남은 폭탄을  온몸으로 껴안는 건

영웅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이거든요.

 

 

600페이지가 넘은 꽤 많은 분량이라 읽는데

조금 힘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뭐 이렇게

주절거림과 난삽한 이야기들이 많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이 비정상적인 사건을 묘사하고

풀어내는데에 이정도 분량을 이용해야 하는게

오히려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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