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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ㅣ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오늘, 8월 3일, 서울의 날씨는 뜨겁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드디어 더운 정도가 아닌,
뜨거운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여름의
클라이막스가 시작된거죠. 괜찮습니다.
우리는 이 클라이막스가 한 주 또는 두 주만
지나면 한풀 꺾이리란걸 알고 있으니까요.
더위와 함께 여름 휴가철도 시작입니다.
다들 저 어느 곳으로 바캉스 가시나요?
시원한 물이 있는 계곡과 해변으로 떠나시는
분들 많으실겁니다. 혹은,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망중한을 즐기시는 분도 있으시겠죠.
휴가를 위한 책 한 권
클리셰 같지만, 휴가지에서의 독서, 여행
가실 때 책 한권 함께 챙겨가시란 문구가
떠오르네요. 왠지 열린책들 출판사가 휴가와
바캉스를 염두해 둔 채 작정하고 만든 듯한
화제의 신작, 서점에 가면 새로나온 신간
코너에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인터넷이든
어디든 어렵지 않게 광고 배너를 볼 수 있는
바로 그 책, 이번 감상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입니다.
일단 표지가 좋아
일단 이 책은 기분 좋은 밝은 파랑의 표지부터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표지는 책의 얼굴이죠
독자와 책이 만나는 가장 첫 페이지이기도 합니다
일단 첫인상부터 뭔가 상쾌하고 기분 좋아지지
않나요? 좋습니다. 표지부터 나쁘지 않은 점수를
따고 시작하네요.
그리고 제목도 좋아
책 제목도 한번 읽어볼까 마음을 끌어 당기는데
한 몫 하니다. 도망하는 100세의 노인이라니. 헐.
노인 이야기라면 뭐 좀 고리타분할 듯도 한데
일단 도망간다니 그렇게 답답할 것 같지는
않잖아요. 100세 노인이 창문을 넘어 도망간다는
것도 헐~ 한 설정이구요. 은근 유쾌하면서도
깔끔한 제목입니다. 뭔가 재미있어보이기에
충분합니다.
후덜덜한 수상내역 믿고보는 책
그리고 이어지는 책 뒤편과 책날개에 있는
서평과 수상 이력은 아주 대박입니다. 전세계
수백만부가 팔린 책, 주루룩 늘어지는 수상
실적들, 이 책의 재미는 이미 검증받았다! 를
아주 강력하게 어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책을 집어들고 카운터로
향합니다. 도서출판 열린책들 과의 책 구매를
걸고 벌어진 한판 승부에서 저는 패배했습니다.
다들 그 유명한 문구 아시죠? 패자는 카운터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야기는 크게 보면 두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00세 생일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친 알란 할아버지의 100세까지의 인생
이야기가 한 덩어리, 그리고 도망친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가 또 한 덩어리,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독자는 우선 한 인물의
생애를 훑어 내려가는 이 100년이 조금
넘는 서사에 첫번째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마치 세헤리자데의 천일야화처럼 그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다리고 궁금해하는
맛이 있죠. 이 할아버지, 또 어디서 뭔 짓을
저지를까 에 대한 궁금증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계속 됩니다.
할아버지의 앗쌀한 인생드라마
스웨덴의 시골에서 시작한 할아버지의 삶은
어느덧 스페인을 거쳐 미국으로,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한창 전쟁 중인 한국까지 오게 됩니다.
지구를 한바퀴 도는 할아버지의 여정에는
현대 세계사와 함께 역사적 인물들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문제에는 무관심한 이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작용하고, 세계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놓기도 하는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철저히 계산되고 소수의
권력자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역사가 아닌, 오히려 그 반대의 평범하면서도
무심한 듯한 존재에 의해 아이러니와 함께
묘한 희열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어느 영화에서 이미 본 적이 있죠. 포레스트
검프요.
그냥, 어쩌다보니, 궁금하니까
그리고 재미난 건, 할아버지를 그렇게 행동
하게 하는 이유일 겁니다. 왜? 라는 질문에
그냥, 어쩌다보니, 궁금해서, 술과 맛있는
식사를 원해서 라고 대답할 수 있겠네요.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참 기가 차고
어처구니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
때문에 세상의 흐름이 바뀐단 말인가 싶은
거죠. 하지만 또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
속에서 우리는 위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세계
정복이나 왕국건설 따위의 위대하고 찬란한
목표라기 보다는, 유구한 시간 앞에 작은
존재에 불과할 한 인간의 호기심이나, 식욕
과도 같은 작은 소망 또는 기가막힌 우연이나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라는 점이죠. 그만큼
이 세상이란 것도, 역사란 것도 꽤 소박
하고 아주 인간적인 무엇인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결론은
'사람'이겠죠.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란
겁니다. 불행히도 세계사 속의 역사적
인물들이 이 점을 간과한 경우가 많았죠.
골때리는 할아버지의 액숀 어드벤쳐
100년을 산 이 할아버지의 살인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단죄하기에는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존재라 참
애매하긴 해요. 그렇다고 죽어 마땅한
천하의 악당을 죽인 것도 아니고, 철저히
의도된 살인이기 보단 사고에 가깝긴
하지만요.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휠씬
더 적을 때, 삶의 무게도 그만큼 가벼워
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살인이란 엄청난 일 조차도 해프닝같이
느껴지게 만들 정도니까요.
할아버지의 생애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양로원을 탈출한 이후 할아버지가 벌이는
어드벤쳐 영화같은 이 한판의 활극도
꽤 재미있습니다. 어떻게 수습할라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싶지만, 어떻게는
독자를 신나고 기분좋게 만드는데에는
성공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깜놀! 김일성 김정일 등장!
스웨덴 작가가 소설에 주인공의 한국전쟁
중의 한국 방문과 김정일, 김일성과의
만남을 그렸다는 건,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꽤 반갑고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어떻게 그려졌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일단 크게 무리없이, 위화감 없이, 역사적
왜곡 없이 무난하면서도 경쾌하게 잘 그려
냈다고 봐요. 이건 사실과는 다르다거나
보면서 눈살 찌푸려지거나 거부감이 들게끔
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알려
드릴게요.
소소한 재미 깨알같은 센스
이 책, 열린책들 출판사, 대박나나요?
기획하신 분들 보너스받고 소고기 드시는
건가요? 저는 뭐 열린책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고 서포트도 받고 있지 않습니다만, 이번
감상에서 너무 띄워준 것 같네요. ㅋㅋ
양장본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신경 많이
쓴 흔적이 보여요. 예를 들면,
바로 이런거죠! 책 표지종이 뒷면에 있는
세계지도 같은거 말이예요. 이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할아버지의 여정을 한 눈에
보는 소소한 재미, 이 깨알같은 센스에
개인적으로 환호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신나게 읽어대기 좋다, 괜찮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좋은 평가 받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활자 자체가 주는 압박과
두꺼운 책의 부담감 때문에 읽다보면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하던 책의 첫인상이 약간은
줄어드는 점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그게
그리 큰 흠은 되지 않을 겁니다. 휴가지든
직장이든 카페든 일단 들고 다니면, 그 책
뭐냐고, 재미있냐고, 주변 사람들이 다들
한번씩 물어볼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