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드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블라드'만 보고도 눈치챈 당신은 센스쟁이

 

블라드 Vlad 라는 제목만 보고도 눈치

빠르신 분들은 이미 드라큘라, 뱀파이어

이야기겠거니 하고 대충 짐작하시는

분들 있을 겁니다. 소설 '드라큘라의 성'

이 15세기 실제 존재했던 '블라드 더

임팰러(Vlad The Impaler)'라는 인물을

소재로 쓰였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미 여기까지 와 버린 이상 더 감출

필요는 없어 보이네요.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일단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는 소설입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가장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데요, 노벨 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이 분은 안타깝게도

2012년 5월에 사망하셨습니다. 또한번

대충 눈치를 채시겠지만, 이런 작가가

쓴 작품이기에 뭔가 마냥 귀신을 소재로 

피튀기는 공포 스릴러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슬슬 드시죠?

 

 

 

블라드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
출판
민음사
발매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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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드 Vlad

 

이야기는 어느 한 변호사로부터 시작

합니다. 바닷물에 휩쓸려 들어가버려

어린 아들은 잃고, 열살짜리 딸과

부동산업을 하는 아내와 살고 있는

이 변호사는 어느날 사장으로부터

유럽에서 멕시코로 건너올 친구가

살 집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습

니다. 절벽과 붙어있는 집을 요구하고

모든 창문을 막을 것을 원하는 등의

특이한 요구사항을 내세우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외모를 가진 그

사장의 친구는 결국 정체를 드러내고,

변호사의 딸과 부인을 원합니다.

 

 

공포 스릴러로도 훌륭한 책

 

일단 이 책은 책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뱀파이어라는

소재 덕분에 무섭고 으스스합니다.

이 자체로 본다면 공포 소설이라고 

생각해도 아주 훌륭합니다. 그로테스크

하면서도 기괴한 뱀파이어에 대한

묘사라든지, 상황의 설정과 이야기의

전개 또한 공포 스릴러로 읽기에

손색이 없다는 거죠.  

 

 

 

텍스트를 뒤져보자

 

다시 한번 작품을 살펴 봅시다.

이번에는 작품의 텍스트를 좀

탈탈 털어보고 들추어 볼 겁니다.

눈여겨 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면

이 변호사 부부의 판에 박힌듯한

정형화된 삶 과 뱀파이어의 어린

아이에 대한 찬미겠지요. 변호사

부부는 별다른 것 없는 매일을

살아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 그리고 출근, 퇴근 후에는

딸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서

저녁 식사, 8시면 아이를 재우고

그런 후에 이어지는 부부만의

밤시간. 섹스조차도 특별하진

않습니다. 언제나 열정적이고

만족한 듯 하지만 속을 알 수는

없거든요.

 

변호사의 아내가 뱀파이어에게로

간 건 딸아이의 보호나 뱀파이어의

유혹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가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남편의 평범함

이었어요.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

지쳐버린거죠.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마음 속에 담은 채 살아가는

그 일상의 나날들이 너무 싫고 괴로운

겁니다. 그녀의 선택은 뭐가 어찌되었건

남편과 죽은 아들로 대표되는 일상을

떠나는 겁니다. 그런 아내의 욕망은

안정적이고 윤택한 삶의 포기라는

의미를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일상적인 

삶조차 포기하는, 거의 죽음과도

같은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뜻하죠. 인간성의 상실이란 결과를

가져올 것 같기에 심히 염려스러운

아내의 왜곡된 욕망은 자신의 몸을

바치는 조건으로 딸아이의 영생을

얻고자 합니다.

 

 

달콤한 그리고 치명적인 유혹 

 

변호사조차도 뱀파이어로부터 함께 

가자는 유혹을 받지만 변호사는 일상을

버릴 수 없어요. 자신의 직장과 속물적인

삶이 주는 보답과 쾌락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에 유익한' 일꾼이자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뱀파이어는

지적합니다. 그리하여 정치, 경제,

예술 같은 것들이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거죠. 그래서 뱀파이어는

복마전같은 영욕이 들끓는 세상 속에서  

살다가 언젠가 찾아올 죽음 앞에서 스러

지기 보다는 우선 인간의 근본적 한계인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우선 벗어나 보라고

역설합니다. 와, 정말로 달콤한 유혹입니다.

 

 

뱀파이어의 실험

 

소설 속의 어린아이는 아직 사회와

세상에 때묻지 않아 되바라지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존재들일 겁니다. 

영생을 가진 뱀파이어가 원하는 것은

이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내적인 힘

입니다. 오염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채

삶과 순수함의 근원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그런 존재를 곁에 두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뱀파이어는 실험을 해 보려고

합니다.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운 육체와

어린 여자아이가 지녔던 그 맑고 순수함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공존 가능한

것인가를 두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죠.

가능할까요? 앞으로 시간이 지나 아이가

성인이 되면 맑고 순수한 영혼과 함께

아름다운 육체적 매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순수함을 잃어가는 건 무엇 때문인가요?

원래 인간은 태생적으로 그런건가요?

아니면 주변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건가요? 한가지 더 물어보죠. 욕망은

내부에서 생기는 건가요? 아니면 외부에

의해 만들어지는 건가요?

 

 

현대판 신세대 뱀파이어란

 

잔혹했던 꼬챙이 황제 블라드는 권력을

향한 욕망을 좇다가 죽음 직전에 가까스로  

영생을 얻어 다시 세상에 나옵니다.  

아직도 순수함을 소유하고픈 욕망을

향해 광기를 내뿜는 진짜 욕망의 괴물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드라큘라처럼 어둠 

속에서 몰래 나타나 목에 송곳니를 박고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괴물은 아닙니다만  

오히려 더 악랄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존재의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300년 묵은 간악한 놈이예요.

변호사의 사장이 초반부에 했던 얘기가  

기억나시나요? 오래 살아 이로운 점은

상황이 허용하는 바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거란 말이요. 300년이나

살았으니 오죽하겠어요. 

이렇게 작가는 현대판 드라큐라 백작을

재구성 합니다. 호환마마와 도적떼가

무서웠던 시대가 아닌 사이버테러와

교통사고가 더 무서운 이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약점인

'욕망'을 집중적으로 노립니다.

 

 

약속은 기대하지도 말자

 

약속한 것들을 지키기나 할까요?

이미 변호사의 사장은 이용당했구요,

변호사의 아내 역시 무사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때는 헝가리와 루마니아

국경의 아주 넓은 땅을 가졌던 귀족

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메리카로의 이주민들은 모두

시정잡배, 평민, 전과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 같네요. 멕시코 땅으로

건너온 뱀파이어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욕망의 욕망에 의한 욕망을 위한

 

자, 이제 슬슬 정리해 보죠. 작가는

타인의 욕망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울 줄 아는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이용해 이 욕망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나서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욕망의 근원적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해 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누군가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욕망으로

타인을 조종하고 있는 존재의 정체는

누군지 생각이나 해 본적은 있냐고

작가는 묻습니다. 욕망의 반대편에는

죽음이 존재합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욕망하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치환될 수도 있겠네요. 이런 점에서

본다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자유로이 욕망할수 있을 것이고,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달콤한 미끼

를 물기 위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나약한 인간들을 이용해 먹기에는

뱀파이어는 정말 좋은 캐릭터입니다.

이러한 욕망에 관한 논의는 인간

본성에 관한 간단한 담론에서부터

확장되어 인간의 삶과 사회 시스템

그리고 정치 구조에까지 그 범위를

넓혀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은 바로 욕망

이니까요. 

 

...나는 주차된 자동차를 향해 다가갔다.

자동차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흐릿한 형체.

마침내 그 형체를 알아본 순간 나는

경악과 환희가 뒤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두 손을 눈으로 가져가 나 자신의

시선을 가로막고 이렇게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냐, 안 돼, 아냐...."

 - 끝 -

결말은 모르는 게 나을수도

 

어쩌면 작가는 열린 결말의 형태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페이지,

뱀파이어가 그의 아내와 딸을 데리고

떠난 후에 그의 차 안에서 움직이던

게 무엇인지 저는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뱀파이어의

욕망을 채워 주기 위한 삶을 살았던

이 변호사에게 남은건 아내와 딸

마저도 없는 죽음과도 같은 삶이겠죠.

죽음의 목전에서 블라드 앞에 나타나

그의 목을 물어 영생의 삶을 준 소녀

뱀파이어였던 것과 동일한 구조로,

변호사의 죽음과도 같은 삶 앞에

나타나, 죽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살아 가야만 하게끔 만들 존재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결말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거 같네요.

사랑하는 가족이 돌아왔으니 오히려

잘된 일 아니냐구요? 죽을뻔 했는데

영생을 얻게 된 건 나쁘진 않은 일

아니냐구요? '죽음 그 자체의 주인이

것과 타인의 권력에 의해 희생양이

되는 것은 서로 다른 것' 이라는

구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저 '죽음'의 자리에 '삶'

을 넣어도 같은 의미일 겁니다. 아,

이래서 재미있어요. 거장의 작품은

편안한 듯 보여도 면도칼 하나 안들어

갈만큼 치밀하거든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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