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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 상 :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
사노 요코 지음, 황진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11월
평점 :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
사노 요코 지음, 『시즈코상 :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아름드리미디어)
세상 모든 모녀가 이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 만나게 된다면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끝내 말 못하고 마음 깊-숙이, 넣어뒀던 엄마한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천천히 꺼내보길 바란다.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때가 있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연히 그리고 다행히 사노 요코 작가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이 시간을 특별하고도 귀하게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한다. 세상 모든 모녀에게 사노 요코의 이야기가 잘 닿길 바란다.
누군가의 삶을 들을 수 있다는 건 감사하면서도 부담될 수밖에 없다. 모녀 이야기라면 더더욱. 사노 요코의 모녀 이야기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듦과 동시에 ‘어? 내 이야기인 줄.’하고 쓴웃음이 났다. 책장을 넘길수록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긴장이 되었고, 나였다면 전혀 용서할 수 없는 엄마와 어떻게 극적인 화해를 할 수 있었던 건지, 드라마틱한 화해의 과정이 궁금했다. 솔직히 화해가 아니라, 사노 요코가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보니 엄마를 어느 정도 이해했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용서하기에는 사노 요코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으니까(책장을 덮고 알았다. 엄마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라는 걸). 엄마의 학대가 시작되고, 언제 히스테리를 부릴지 몰라 불안에 떨었던 사노 요코의 어린 날은-물을 긷고 얼음이 언 강에서 기저귀를 빠는 등-얼어버린 강보다 더 추웠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때의 사노 요코에게 아무도 묻거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괜찮아? 아프지 않아?’라든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안아주거나 등을 토닥여준다거나.
사노 요코를 향한 엄마의 말과 행동은 사랑이었을까? 다양한 사랑의 유형과 모녀의 유형이 존재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사랑한다면 상대가 덜 아프길 바란다. 사노 요코의 엄마가 딸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사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노 요코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다(어째서). 엄마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다. 사노 요코에게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주지 않았다. 아니, 평범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았다. 그런데 딸이 엄마를 향해 죄책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고 지난날 모질게 엄마를 대했던 순간을 후회한다. 읽으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노 요코의 모습에 억울했다. 후회는 할 수 있지만 죄책감까지 느낄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사노 요코의 감정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으나, 마음은 전혀 추측할 수 없으니 여기서 내가 더 말은 하는 건 실례인 것 같다.
사노 요코가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라는 걸 인정했다. 엄마가 싫었지만 사랑했다.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진 거대한 덩어리에 짓눌린 듯한 딸 사노 요코를 느낄 수 있는 문장들에서 여러 번 멈칫-, 했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고, 가장 사랑하지만 가장 싫어하는 관계가 ‘엄마와 딸’이라는 걸 끝내 인정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책으로 사노 요코가 엄마에 대한 원망을 마음껏-해도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응어리가 사라질 거라는 기대는 안 한다.-하길 바랐다. 읽고 나면 통쾌할 줄 알았다(화해대신 복수를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나쁜 딸 아닌가). 나는 사노 요코도 그러길 바랐지만, 그녀는 엄마를 모질게 대하고 냉정했던 지난날 자신을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살림살이를 잘하고 힘든 조건에서도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는 등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했다. 엄마 나이가 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사노 요코는 시즈코, 엄마를 사랑했다는 것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쓰지 않고, 사랑을 보여줬다. 딸 사노 요코와 같은 딸들이 세상 곳곳에 얼마나 많을지 어림잡아 떠올려 보는데, 마음 아래서부터 물이 차오른다.
엄마를 떠올리면, ’애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빈틈없이 꽉, 채운다. 사랑하면서 미워한다. 딸이 엄마한테 하지 못한 말이 있듯 엄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할 나이가 되어보니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있다. 엄마가 된다면 엄마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살아온 길과 속도, 조건이 모두 다르니까. 달라서 오히려 다행이다. 자신의 엄마를 이렇게밖에 쓸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기도 하면서 사노 요코와 같은 수많은 딸이 그녀 덕분에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엄마, 가족에 대해 솔직하게 문장으로 적어낸 사노 요코는 쓰는 동안, 다 쓰고 나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사노 요코는 치매에 걸리고 나서 ‘고맙습니다’와 ‘미안합니다’를 ‘국자로 퍼내듯이’ 말하는 엄마와 어렸을 때 바랐을 모녀가 되었다. 엄마는 정신이 온전할 때 절대 하지 않았던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로 사노 요코를 의지하고, 고맙고 미안한 딸이라는 걸 정신이 온전하지 않을 때 인정하며 딸에게 용서를 구했는지 모른다. 딸은 그런 엄마의 용서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후회, 죄책감, 자책감을 바람에 실어 보내며 한결 편안한 숨을 쉬었을 것이다. 서로의 진심이 닿기까지,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만 돌아온 모녀가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시즈코와 요코는 극적인 화해를 했지만, 화해를 생각조차 하지 못한 모녀는 또 얼마나 많을까. 책장을 덮고 나서 시즈코가 요코를 질투했다는 사실이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고 나니 요코가 겪었던 지난날에 대한 억울함이 아주 조금, 흐려졌다. 시즈코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요코와 보냈던 아주 짧고 달았던 시간은 요코의 아팠던 시간을 완전히 보듬을 수는 없지만, 흘러가는 시간 중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라고 말하며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늘에서 만난 모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사노 요코 덕분에 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엄마에게 쏟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솔직히 엄마를 마주하고, 진지한 이야기할 용기가 없어서 늘 숨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사소한 상처,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모여 빙산을 이룬 마음을 서로에게 숨기지 않고 보이기까지 먼 길을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단한 길을 선택하기에는 쌓인 상처를 서로 바라보는 것은 잔인한 일이니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세상 모든 모녀에게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은 해결책이 되어줄지도 모른다(그러길 바란다). 사노 요코의 모녀 이야기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녀 이야기도 하면서 내 이야기도 하니까.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길벗어린이’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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