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런 - 떠나고 돌아오고 멈추고 날아오르다
에이미 립트롯 지음, 홍한별 옮김 / 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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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태어나던 날 아버지의 조울증 발작이 시작되었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미치광이 같은 생활에서 어떻게 자신을 구원했는지를 그리고 있던 에세이다. 아버지는 조울증, 엄마는 기독교 광신자, 양극단의 광기속에서 평범치 않는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20대가 되자마자 런던으로 도망치듯 떠난다. 자신을 옭아매는 감옥 같았던 고향 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면서 자유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10년 외지 생활이 남긴 것은 중증의 알콜중독뿐. AAA를 다니면서 중독의 심각성에 제대로 눈을 뜬 에이미는 살기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고,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던 그곳에서 오히려 삶의 치유를 얻어가게 된다. 그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을 솔직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저자의 솔직한 목소리가 나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듣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왜 나는 알콜중독자가 되었을까, 늘 묻고 해답을 찾기 위해 애를 쓰던 그녀. 자신의 문제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멋져 보였다. 그녀가 평화를 찾아가는 동안 그녀를 지켜준 섬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녀가 왜 정신을 차렸는지 이해하게 하더라. 그녀의 평화가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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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트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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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고보면 골고루 망한( Fuck up)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구글의 광범위한 데이타를 바탕으로 충실하게 논증하고 있던 책.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나,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충분히 납득이 간다. 우리가 예상하는 혹은 기대하는 고상하고 행복한 사회와 슬프고 괴상하고 혼탁한 현실과의 괴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이며--책 제목에서 밝혔듯이 우리 모두는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에헴~~!--, 과연 그것이 좁혀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식견이 돋보이던 작품. 만약 그것이 좁혀질 수 없는 것이라면 데이타를 어떻게 활용해 좀 더 나은 사회로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분석하는 도구로만 사용하는게 전부일 듯 싶었지만서도. 저자는 소설을 무척 싫어한다고, 그저 가지런한 수학과 야구를 좋아할 뿐이라고 하던데, 그는 아마도 모르는듯했다. 그의 책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여타의 소설책과 거의 비슷하게 읽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고보면 구사하는 언어만 다를뿐, 거의 모든 책은 인간이 얼마나 망한 존재인지를 논증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직관적인 통찰력이건 수리적인 통찰력이건 간에 말이다. 재밌게 읽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구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다는, 즉 구글이 일종의 고해소가 되어 가고 있다는 챕터였다. 인간이 솔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존재인가라는 문제기도 했지만, 솔직할 수 없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싶은 섬뜩함 때문에... 저자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다 읽을 소수의 사람들을 향해 감사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던데, 다비도위츠씨!  당신이 고생하며 쓴 덕분에 어렵지않게  읽었으니 쫄 거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당신의 아이디어가 매우 흥미로워서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고 말이다. 술술 읽힌다. 하니 쇼셜 미디어상의 행복한척하는 가짜들에게 짜증이 나신 분들이라면 겁먹지 말고 도전해 보시길. 이 행복하고 정의롭다는 미디어 세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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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장화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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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닝 만켈이라는 저자의 이름만 보고 고른 책. 저자의 책을 거의 다 읽기도 했지만, 전작 <이탈리아 구두>의 8년 뒤를 그린 후속작이라는 말에 안 볼 수가 없었다. 그 책을 워낙 재밌게 봐서 말이다. 후속작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이탈리아 구두>의 주인공 프레드릭이 다시 등장한다. 성공한 외과의였다 의료 사고로 모든 것을 다 접고 낙향해서 살아가던 그에게 뜻밖의 큰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그의 집이 야밤에 홀라당 타버린 것이다. 이제는 평화롭게 죽을 날만 기다려야지 했던 70세의 나이에 다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니, 프레드릭은 분통이 터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이없는 사실은 경찰이 그를 방화범으로 의심한다는 것이다. 집이 다 탔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온 딸 루이제는 위안이 되기는 커녕 가뜩이나 정신 사나운 그에게 걱정거리만 잔뜩 안기고는 사라진다. 그 와중에 방화를 조사하러온 40대 여기자에게 반한 프레드릭은 어쩌면 그녀와 모종의 썸씽이 생기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게 되는데....아마도 헤닝 만켈의 분신이라 생각되는 프레드릭이란 캐릭터가 원맨쇼 수준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던 작품이다. 전작보다는 인간미나 감동은 덜한 편. 프레드릭이  어찌나 재수없는 사람으로 나오던지 집이 불이 탄 것도 딸이 그에게 야박한 것도 하나도 안스럽지 않아서 말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구석이 없는 노인네를 주인공으로 저자가 책을 썼다는 것이 놀라웠을 정도. 하지만 이야기를 엮어가는 역량만 따지고 본다면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세심하고 생생하다. 마지막에 가서는 약간의 감동적인 삽화로 마무리를 하니, 혹시나 중간에 열받아서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은 그냥 내처 읽으시라고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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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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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가 얼마 전에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읽게 된 작품.  필립 로스는 사실 내가 그리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다. 글을 정말로 정말로 잘 쓰신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서도, 뭐라 말해야 할까. 정감이 가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는 너무 잘 알겠는데, 그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를 사랑하게 되지는 않는....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로써 굉장한 자질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없겠지만서도, 그래서 보여지는 그대로의 그가 내겐 영 매력적이지가 않아서 말이다. 어쩌면 그걸 염두에 두고 책을 쓰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세상을 너무 사랑할 필요는 없어요, 세상은 원래 개같은 것이랍니다. 라는걸 친히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징그럽도록 솔직해서 한없이 얄미워 보이던 그가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쓴 회고전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들여다 보게 된 작품이다. 역시나 필립 로스. 그가 손을 대면 평범한 일상도 수채화 같은 그림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던 책으로, 그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짓궂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얼마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본 필립 로스의 책 들 중에서 최고다. 그리고 그것이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라는 점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 글쟁이인지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진부한 일기가 될 수도 있는 사건을 이처럼 통렬하고 아름다운 시로 바꾸어 버리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80이 넘어서도 너무도 정정해서 100살은 넘게 살 것 같으시던 아버지가 뇌종양에 걸려서 힘없이 스려져 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면서, 삶의 끝자락에 선다는 것의 허무함과 비통함을 과장이나 감상을 넣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해가고 있는데, 많이 배웠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쓸 당시의 작가와 같은 나이에 비슷한 처지라 그런지 문장 한 구절 한 구절이 그렇게 와 닿을 수 없더라. 특히나 필립 로스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너무도 닮은 성향의 사람이라서, 작가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전체주의적인 사고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회상하는데 무릎을 탁 쳤다. 어쩜 사람 사는 곳은 이렇게 다 비슷한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발견하게 되면 새삼스럽다. 사랑하는 이가 고통속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만큼 고역이 있을까. 회피하고 남에게 떠 넘기고 모른척 하고 싶지만, 나를 키워준 분이기에, 내가 사랑하는 분이기에 의리있게 그 옆에 서 있던 그가 아주 괜찮아 보이더라.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설득시키는데 드디어 성공한 작품, 그는 과연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그렇게 처절하고 암담한 과정을 거쳤을까. 라는 안스러움과 연민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부디 그러지 않으셨기를 ...고인의 평온한 영면을 빌어본다.


<밑줄 그은 말들>


무덤을 찾게 되면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며, 이것은 얼마나 웅변적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햄릿이 요릭의 두개골을 보고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드는 생각이나 하는 말은 거의 모두가 " 그는 나를 천번이나 업어주었다" 의 변형이다. 묘지에 가게 되면 일반적으로 이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진부한지 깨닫게 된다. 아, 도움이 된다고 느끼면 죽은 자에게 말을 해볼 수도 있다. 내가 그날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어, 엄마...." 하고 시작할 수도 있지만, 첫 문장을 간신히 넘기고 나면 접골의사 진료실에 걸려 있는 척추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알기 어렵지 않다. 죽은 자에게 약속을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소식을 들려줄 수도 있고, 이해, 용서, 사랑을 구할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 더 활동적인 접근법을 사용하여 잡초를 뽑고, 돌을 고르고, 묘석에 새겨진 글자를 어루만질 수도 있다. 심지어 주저앉아 유해가 묻힌 곳을 손으로 어루만 질 수도 있다. ---땅, 죽은 자의 땅을 어루만지면서 눈을 감고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있을때 어땠는지 회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이런 회상으로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 십 분 전에 차에 타고 있을때보다 죽은 자가 더 멀어지고 더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린 것처럼 보일 뿐. 묘지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죽은 자가 죽은 자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어떤 미친 짓을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에 성공하여 죽은 자의 존재를 느끼도록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해도, 결국은 그를 놔두고 떠나야 한다. 묘지가 적어도 나같은 사람에게 증명하는 것은 죽은 자는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가버렸다는 사실뿐이다. 그들은 가버렸지만, 우리는, 아직, 가지 않않았다. 이것이 핵심이며,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해도, 이해는 쉽다.--23


"역시 나의 필립이야." 빌은 말하더니 내 손을 잡고 음악가들이 악기를 들고 나타나 자리에 앉아 조율을 시작할 때까지도 놓지 않았다. 빌은 내가 아직도 일곱 살짜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나를 일곱살 때부터 알았기 때문에 손을 잡고 있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이를 먹었건 얼마든지 내 손을 잡고 있을 권리가 있었다.--64


하지만 아버지는 역시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런 것을 이해하리라 긷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 오직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 다만 그것만을 맹렬하게 이해했다.--114

 

" 그래, 생존을 위해필요한 것들이 다 예쁜 건 아니지. 아버지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큰 이득을 봤어. 나는 평생 아버지한테 사람들은 다 다르다고 말하려고 해왔지. 어머니는 다른 방식으로 이걸 이해했어, 아버지는 이해 못하는 방식으로, 그게 내가 아버지에게서 바라던 거야. 어머니의 인내와 관용을 조금이라도 갖는거. 사람들은 다르고 그런 차이는 정당하다는걸 그냥 간단하게 인정하는 거. 하지만 아버지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어. 모두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원하고, 똑같이 의무를 이행해야 했으니까. 누구든 다르게 하는 사람은 메슈게--미친거였어."

" 물론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아버지가 처음은 아니지. 하지만 아버지는 그 나름의 독특한 유대인적인 방식으로 뭐가 선하고 뭐가 옳으냐에 관해 절대적으로 전체주의적인 관념을 고집했고, 어린 시절에 나는 그것때문에 정말 우울했어. 모두가 똑같이 해야만 하다니. 아버지가 하는대로."

" 뭐 , 너도 가차없어. 알잖아. 너한테도 그게 있어, 아버지에게서 받은 어떤 가차없는 태도가. 너도 네가 옳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요령있게 구는건 아니야. 너는 아버지를 용서했어.아버지의 그 가차없는 태도와 요령없는 태도, 모든 사람을 똑같은 틀에 넣어 바꾸고 싶어하는 태도를 용서했어. 모든 아이들은 대가를 치르지. 따라서 용서란 네가 치른 대가에 대한 용서도 포함하는 거야. 너는 아주 평온해진 말투로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150


그는 프로이드가 추측하기를 좋아했듯이, 힘으로 아버지의 존재를 지울 만한 소질이 있는 아들들--아버지를 미워하고 두려워하다가, 아버지를 이긴 뒤에는 아버지를 먹어 그를 명예롭게 하는--로 이루어진 원시 부족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나는 주먹을 날리지 못하는 부족 출신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버지든 다른 누구에게든. 우리는 폭력에 질린 아들들이며, 신체적 고통을 가할 능력이 없고, 때리고 몽둥질을 하는데 소질이 없으며 , 설사 그런 일을 당해 마땅한 적이라도 가루로 만드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소란을 피우고, 성질을 내고, 한 술 더 떠 광포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식인종과 마찬가지로 이빨이 있지만, 그냥 거기에 , 턱에 박혀 있으며, 다른 일보다는 말을 분명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초토화할 때, 분노의 주먹이나 무자비한 음모나 미친듯이 퍼져나가는 폭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 우리의 뇌를 , 정신을, 우리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 통렬한 심연을 만들어 낸 그 모든 것, 바로 아버지들 자신이 우리에게 주려고 허리가 부서져라 노력한 그 모든 것을 이용한다. 우리가 그렇게 영리해지도록 또 에시바 부허가 되도록(유대인 대학생 정도 의미) 부추기면서도 그들은 그것이 곧 우리가 그들을 고립시키고, 우리의 그 모든 강력한 주절거림으로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장비를 갖추게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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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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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가 배경이라고 해서 미심쩍어했는데, 작가의 필력이 모든 것을 무마한다. 최신 기법이 난무하는 요즘 추리소설이 갖추지 못한 미덕, 인내심과 범인을 잡으려 하는 형사들의 의지가 돋보이던 작품. 결국은 인간미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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