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과 책사 - 천하를 얻는 용인과 지략의 인간학
렁청진 지음, 박광희 옮김 / 다산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책사의 나라인 중국을 해부한 책.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제갈량을 꼽는다는 말에 의아해했었는데, 이 책을 보고나니 이해가 간다. 황제 못지 않게 중국인들의 초미의 관심을 받는 것이 그를 보위하는 책사였고, 그들에 능력치에 따라 역사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어 가는 모습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일종의 국민들의 내셔널 하비(취미)로 책사에 대한 로망을 키워온 것이 아닌가 하는...특히나 그것이 우리나라에는 없는 문화라서 더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는 하나, 정부에 대한 관심이 문화적 특성이 될거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말이다. 이 책 속에서 중국인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이 언젠가 나라를 바꾸어놓을 수 있는 책사가 될 수 있다는 웅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저자의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여서 서늘했다. 천안문 사태때 왜 그렇게 정부가 극단적으로 진압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었는데-그냥 좀 자유를 달라는 거잖아요? 라면서--중국의 역사를 그리고 국민성을 제대로 바라보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엔 없었겠다 싶기도 하다. 주절 주절 서론이 길어졌는데, 본론으로 들어가보면 중국의 유명한 책사들을 한자리에 모아 분석해 놓은 책이다. 중국에는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무수히 많은 나라와 황제들이 있었고, 그에 비례해 수많은 가신들이 있었으니, 그 중에서도 유능해서, 혹은 무능해서, 혹은 끈질기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내서 역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을 골라서 묶은 것이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흥미롭다는 것이 장점. 실제로 옛날 이야기이고, 실제로 벌어졌던 것이라는 점이 함정이라면 함정이겠지만서도. 중국이 나라는 넓고 사람은 많다 보니 어찌나 극단적인 사람들이 넘쳐 나는지 말이다. 중국의 스캐일을 보면 우리나라는 상대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어떤 분야이건 간에...제왕과 책사라는 제목에서 짐작 되듯이, 책사가 아무리 잘나면 뭐하나? 제왕을 잘 만나야지...그렇게 책사와 제왕 사이의 궁합이 어떤 결과를 내놓는지를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권력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는 것도. 중국인들은 어떻게 보면 태생적으로 심리학자의 소질을 타고 내어난 사람들인 듯... 이 책 하나만으로도 중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어마무시한 잠재력을 숨키고 있는지 짐작이 되던데, 좀 기가 죽는 기분이다. 번역이 조금은 완벽하게 마무리 되지 못한듯했던 점과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탄력을 잃어간다는 점때문에 추천작으로 넣어졌지만, 통찰력만큼은 강추천작 못지 않은 책이었지 않으니, 역사에 관심이 있다시는 분들은 한번 들여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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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하는 천재들의 마의 나이라 할 수 있는 26을 넘지 못한 걸출한 재즈 여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 중독 치료소가 잘 되어 있는 요즘 같은 시절에도 알콜중독과 마약 중독을 치료하지 못해서 죽었다는 사실에 놀랐었는데, 이 영화를 보니 그것 못지 않게 거식증도 심각했었다고. 몸을 그 정도로 혹사하고도 살아있길 바란다는게 어불성설이지. 그 유명한 "Rehab" 으로 그래미 상을 받을 순간에도 마약 없이 견디려니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는 그녀를 보니, 천재들의 뇌 어디에는 아마도 자신들을 못 견뎌해서 자폭하는 시한장치가 내장되어 있는게 아닐까 싶더라. 10대에 이미 굴곡있는 보이스로 중년이 되서야나 읊조릴만한 가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에이미. 자신이 요절할 것을 알고 미리 세월을 앞당겨 살았던 것일까, 아니면 세월을 앞당겨 살다보니 요절하게 된 것일까. 그녀의 천재성이 아깝고, 그녀의 인생이 안스러울 뿐이다. 영화 보면서 느낀 점 셋은,


이 영화를 보면서 이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 성이 와인하우스라니...술이 와서 쩍쩍 들러붙을 것 같지 않는가.

중독자를 대하는 보통 사람들의 자세/ 가족은 회피함(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음. 자신의 골치아픈 문제가 되는게 싫기 때문에) 친구들은 차마 볼 수 없어서 피함. 중독이 일정 수위를 넘어가면 보통 사람들의 인내나 사랑만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것 같다. 그걸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지켜본다는 것 역시 끔찍한 일이고. 중독자들이 결국 모두를 떠나보내고 혼자 쓸쓸히 지내다 죽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개입의 중요성/ 사람이 아니라 중독이 말을 하기 시작할시 주변 사람들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 때론 누군가 그렇게 강하게 개입해주는 것만으로도 당사자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왜냐면 이미 자신이 조절할 능력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만 자존심때문에 도움 달라는 말을 못하는 것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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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11-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네사님 , 에이미 노래를 많이 좋아해서 이 다큐 , 서너 달 전 쯤에 극장에서 봤어요.
안타깝죠. 평범(?)한 뇌와 마음/재능을 가진 저같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천재의) 광스러움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너무 짧게 살다 떠났어요.

이네사 2015-11-02 19:44   좋아요 0 | URL
네ㅡ, 안녕하세요, 몬스터님...
맞습니다. 넘 짧게 살다 떠났죠. 사망 소식을 들은 날 믿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게 유명한 중독자였으니 누군가 옆에서 치료를 도와주고 있을 거라 지례짐작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허망하게 사람을 가게 할 줄은 몰랐었네요. 그런데 다큐를 보니...어느정도는 이해가 가더라구요.
막을 수 없었겠구나 싶으면서, 토니 베넷이 말미에 한 말이 가슴에 와닿더군요.
충분히 오래 살다보면, 살아가는 법을 알 수 있었을텐데, 하시던 말씀...
그녀를 보면서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녀가 그렇게 충분히 오래 살지 못했지요.
그녀가 오래 살았다면 어쩌면 젊은 시절의 자신에 대해 안스러워 하면서, 중독을 벗어난 것을 다행이라고 말하고 다녔을지도 모르는데 말여요. 그랬다면 참 좋았을텐데...
하여간 넘 허무하게 가서 더 안타깝네요.
그냥 노래나 들으면서 그녀의 명복을 빌어줘야죠. 윤회가 있다면 다음 생에서는 그렇게 고통 받지 않으시길...
 






누구나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을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몰입감 있게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던 작품. 왕이자 아버지였던 영조가 아들이자 세자였던 사도 세자를 죽일 수밖엔 없었던 과정이 한치 오차없이 설득력있다. 심리학적으로 둘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조울증 환자였다는 사도와 강박증과 경계성 인격 장애자로 보이는 영조, 두 성격이상자를 도망갈 구멍도 없는 권력이라는 방 속에 가둬놓은 꼴이니...둘 중 누군가 죽어야 끝이 났을 것이란 점이 극이 전개될 수록 분명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왕이 아니고 네가 세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영조의 한서린 탄식은 변명이라기 보단 적확한 표현이다. 그저 집안 문제일 수도 있었던 것이 나라 문제가 되어 버리면서 결국은 역사에 남는 참혹한 비극이 되고만 사건. 부자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유아인의 연기는 작두 타는 듯 신이 들렸고, 송강호야 뭐. 말할 필요도 없고.두 출중한 배우들의 열연과 긴장감 넘치는 인상적인 연출, 궁궐 안의 복잡한 정치세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로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 되었지 않는가 한다. 다만 마지막 정조가 나오는 장면만큼은 ...소지섭 나오고부터 줄줄 울던 눈물이 다 들어가 버리는데 적잖이 당황했다. 소지섭 팬으로써 정말 기대했었는데 , 그 장면이 원래 임팩트가 없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워낙 유아인이 연기를 잘 한 것에 비교가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흥을 깨는 분위기라서 안타까웠다. 대단한 것의 대미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쉽지 않은 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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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있게 밀어붙인 " 가오" 덕에 재밌게 본 작품. 물론 폭력이 심하다 싶은 것엔 눈살을 찌프렸지만서도, 요즘 왕좌의 게임 같은 미드의 수위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기본이 된 것인가 싶기도 하고.  가오 대신 돈이 말해주는 사회에 익숙해져버린 찌질하고 우울한 우리들에게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안긴 것이 좋았다.정의에 대한 갈증을 유머와 폭력을 활용해 적절하게 풀어낸듯하다. 뻔할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황정민이나 유아인, 오달수님등 전문 배우들의 연기야 말할 필요도 없고, 나는 그들외에 미스 봉으로 나온 장윤주의 연기도 인상적으로 봤다. 그렇게 열심히 할 줄은 몰랐기에, 그럴듯했고 말이다. 후속편을 찍는다면 거기에서도 미스 봉으로 나와주기를.



익히 아시는대로 무한 긍정왕 마크 와트니의 화성에서 나홀로 한 판. 사고로 화성에 홀로 살아남은 마크는 살아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과학지식과 화성에 남은 한정된 재료들을 합해 서바이벌 미션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그가 살아있다는걸 알아차린 지구인들과 동료들이 함께 힘을 합쳐 불가능해 보이는 마크 구출작전에 성공한다는 이야기. 장점은 과학적 지식의 유용함을 눈앞에서 보게 해준다는 것과 긍정의 힘을 믿게 해준다는 점이고, 단점은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다들 저렇게 힘을 합쳐 도와줄까라는 의문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 감격적인 장면이 많아서 울먹울먹하면서도, 머리 한편에서는 이거 너무 작위적인데?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조카는 자신이 본 우주 영화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면서, 그 이유로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꼽았다. 자기 인생의 영화라면서. 뭐...그 이후로 과학 공부에 매진하는 것을 보면 영화 자체의 효용도는 그닥 나쁘지 않은 듯...



일제시대 독립군의 이야기를 이렇게 세련되게 그려내다니...놀란 작품이 되겠다. 가장 맘에 들던 장면은 맨 마지막 임무 완수씬. 멋진 역활은 하정우와 전지현의 몫이었지만, 연기적인 면에서는 이정재가 가장 인상적이지 않았는가 한다. 영화속 결론과는 달리 영화관 밖의 현실은 여전히 독립군은 잊혀지고, 친일파는 승승장구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런 부정의는 언제쯤 말끔히 정리가 될 것인지...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지네.


별 네개 반을 줬다가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서 반개를 뺐다.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작품이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김이 빠져버렸다고 해야 하나...감독이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하지 못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뜬금없이 끝이 나버린 것이 이 영화의 단점이라면 최대 단점. 다른 산뜻하고 기발한 결말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쉽긴 했는데, 문제는 내가 생각해도 어떤 결말로 가줘야 할지 구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아마도 그건 감독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줄거리는 슈퍼 히어로 <버드맨>으로 젊은시절 아주 잘 나갔던 리건 톰슨은 자신은 프랜차이즈 영화가 아니라 작품성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주장을 하다 한물간 배우가 되어 버렸다. 다른 프랜차이즈 히어로 배우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부러워 하는 마음 숨길 수 없는 그는 재기를 위해 무모한 도전을 시도한다. 바로 브로드웨이 연극을 제작  연출 출연하기로 한 것인데, 용기를 왜 냈을까 후회될 정도로 힘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제작비는 모라자고, 평론가는 그의 시도 자체를 비웃는데다 , 함께 출연하는 배우는 통제불능에 그의 연기를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뭔가 이뤄내기 위해 애를 쓰는 리건은 점차 연기란 무언인가? 라는 화두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데...마이클 키튼의 인생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 리건 톰슨과 마이클 키튼의 현실이 묘하게 닮아 있어서 그런가 마치 마이클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설득력이 있었다. 거기에 진정한 연기자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던 에드워드 노튼이나 깜찍한 얼굴에 도발적인 연기를 보여주던 엠마 스톤기도 인상적. 모든 장면을 커트없이 찍은 듯 보여주던 연출도 신선했지 싶다. 어떻게 저렇게 찍었는지 궁금해지게 만들더라. 비록 2015년도 아카데미상에서 주연상이나 감독상 작품상을 받지 못했지만 감독이건 배우들이건 간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을 듯 싶었다. 그들이 모여서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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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올해가 다 가진 않았지만 가장 강력한 <올해의 깜찍상> 우승후보 되시겠다. 깜찍한 시나리오, 깜찍한 나레이션, 깜찍한 자막, 깜찍한 여주인공등, 보는 내내 도대체 저런 깜찍함은 어떻게 구해 질 수 있는 건가요? 라고 자못 진지하게 (제작진에게) 묻고 싶어지던 작품이었다. 혹시라도< 미앤 얼 앤 더 다잉 걸 > 이란 제목에서 별 감흥을 받지 못하신다면, 내진 저런 제목으로 괜찮은 내용이 나와줄라나? 나와 줄 건덕지가 있을까? 라고 회의가 드시는 분들이 있다면, 주목하시길...이 영화가 무려 2015년 선댄스 대상(그랜드 주리)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심드렁한 제목에 어울리지 않은 거창한 수상 목록이 하도 수상해서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심정으로 봤더니만...이 영화 정말 대박이다. 올해 유난히 감동적으로 본 영화가 많았음에도 탑 파이브에는 무난히 들어갈만한 수작으로, 무엇보다 깜찍한 시나리오가 영화 전반을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눈을 뗼 수 없을만큼 매력적이다. 빈틈이 없고,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데다, 청소년들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설득력까지 들어가 있던데, 오래전 보았던 <길버트 그레이프>나 <철목련>처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닌 영화였다. 셋이 비록 전혀 다른 작품들이긴 해도 한 영화속에 개성적인 캐릭터에 흔치 않은 이야기, 거기에 인간미에 감동까지 우겨 넣을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 않는가 한다. 미국이 나라가 개판이 되어 간다고 해서 인간성마저 그렇게 되는게 아닐까 했었는데, 여전히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하게 썪어가는건 아닌 듯 하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낼 정도의 감성이 여전히 살아있다면, 그건 오히려 우리가 경배하고 존경해 마지 않아도 좋을만한 자질이니 말이다. 하여간 서두부터 좀 장황해 졌는데, 그건 혹시나 이 영화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실까 걱정이 되서 노파심에 그렇게 된 것이고. 내용에 들어가보면...


내용은 심각하고 진지한 것이라면 본능적으로 피해다니는 고등학교 졸업반 그렉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넋두리가 너스레가 아니라 진심인 이 청년이 들려주는 것은 어떻게 그 해 그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려버렸는가에 대한 연대기적인 이야기. 괴짜 사회학 교수인 아버지 덕분에 천부적인 냉소 탑재에 진지한 것이라면 질색하는 성품으로 자라난 그렉은 아무 문제 없이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꿈의 전부인 평범한(?) 청년이다. 어디에도 속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아무데도 속해있지 않다고, 그것이 자신의 생존 전략이라고 본인을 설명하는 그는 모두와 친해 보이지만 실은 그저 모든 관계가 겉핦기일 뿐인, 누구보다 자폐적인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친구다. 그렇게 일명  " 이 세상 모든 일에 상관없어요," 청년에게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지니, 같은 동네 친구인 동급생 레이첼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안 됐긴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그렉에게 그의 엄마는 폭풍같은 잔소리를 퍼부어대고, 결국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못 이긴 그는 하는 수 없이 레이첼의 집으로 병문안을 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평생 그가 그토록이나 꺼려하던 우정의 첫 날이 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한채 말이다. 그렇게 그는 유치원 시절부터 쭉 보아왔지만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레이첼,< 지루한 유대인 소녀 그룹 B> 섹션에 속해있었을 뿐인 이름만 알던 한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자, 이제 진지한 것이라면 전염병 보듯 하는 청년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그가 상대하는 대상이 바로 진지하지 않을 시간이 별로 주어지지 않는 소녀라는 것이다. 우정이니 사랑이니 교훈이니 진심이니 열정이니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사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그렉은 그럼 과연 사기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신의 유일한 친구 얼 조차 "친구" 라는 말대신 < 동업자>라는 말을 쓰던 그렉은 병마와 싸우면서, 그리고 죽음을 목전에 두면서 진실과 맞닥뜨리려 용기를 내는 레이첼을 보면서 점차 자신의 틀을 깨나가기 시작한다 . 그것이 그가 그렇게 혐오하던 우정의 시작이라는 것을 까맣게 인지하지 못한 채... 과연 이들의 운명은 , 어떻게 될까요? 보면 볼수록 그렉이 왜 마음이 흔들리는지 너무 이해가 되던 깜찍하고 매력적인 레이첼은 병마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보고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훈훈해지는 작품이다. 제목에 미앤 얼 그리고 다잉 걸...이라고 주인공 외에 두 사람의 이름을 더 올린 것에서 짐작이 되듯, 주인공 외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버려지는 것 없이 다 알차게 활용이 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버릴 없이 없다. 지나가는 듯 한마디 했던 것이 나중에 큰 복선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는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시나리오가 정말 이렇게나 빈틈이 없기는 힘들지 싶다. 영화속 내내 그렉은 자신을 보고 착한 아이라고 하는 어른들에게 경기를 일으킨다. 나는 절대 착하지 않다고, 몰라서 하는 소리인데, 나를 길들일 생각 하지 말라고...하는 듯 눈동자를 굴리던 그렉, 그런데 마지막을 보면서 ' 넌 정말 착한 아이였군, 어른들이 잘못 본게 아니었어, ' 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더라. 등장인물들 모두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고, 그걸 보는 나 역시도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던 괜찮은 영화. 몇몇 장면은 보면서 울컥 울컥 했었는데, 특히나 레이첼의 엄마가 레이첼을 위한 동영상을 찍으면서 그렉에게 하던 조언이 인상에 남는다. 아가들은 무조건 예뻐해야 한다고, 그것이 아가의 권리이자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하던 나는 레이첼의 엄마가, 아이의 엄마를 평생 사랑할 자신이 생기지 않는 한 아기를 가지지 말라고 그렉에게 부탁하는 장면에서, 레이첼의 상황과 맞물려 묘하게 가슴이 아팠다. 어린 시절부터 동업자 얼과 장난겸 취미삼아 고전 영화 패러디를 만들던 그렉이 평생 처음으로 진지한 영화를 만들고 그걸 상영하는 장면도 인상적...하지만 무엇보다 레이첼의 방을 들여다 보면서 그간 무수히 그곳을 드나들었음에도 발견하지 못했던 다람쥐를 찾아내던 그렉의 표정이 감동적이었다. 사랑이건 우정이건, 우리가 그것에 무엇이라 이름을 붙이건 간에...상대에 대한 애정은 그간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들었음에도 듣지못했던 것을 듣게 하는 기적을 행하게 하나니...어른들의 말이라면 그것이 무엇이건 충고건 교훈이건 간에 받아들일 생각이 없던 청년이 어쩌다 보니, 어른들도 늘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더라, 오히려 다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 안에서 진실을 말하려 애를 쓰는 존재더라, 라는걸 알아가게 되는,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바라마지 않았으나,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심하게 망해진 한 해를 보내고 있더라는 청년의 반강제(?)성장기. 참을 수 없는 깜찍함의 퍼레이드에 조연 배우들의  호연, 신선한 줄거리에 설득력 있는 대화들의 항연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감동은 덤이니 알아서 챙겨 가시길...아마도 어리버리하고 소심한 이 청년에게 당신들도 마음이 움직여지실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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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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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체크 말체프스키Jacek Malczewski  /죽음 Death 1902


얼마전 폴란드 전에 갔을때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작품중 하나가 야체크 말체프스키의 <죽음>이었다.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갔었는데 머리속에서 그림이 해석되자마자 좀 충격적이라고 해야 하나, 감명이 깊었다고 해야 하나, 다가가서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화가가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내가 저 그림에서 본 인상은 죽음의 사자가 고된 삶을 살아온 인간에게 " 고생하고 살아온 그대, 이제 쉴 지니라," 라고 축복을 내려 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해골과 낫과 망투로 상징되는 죽음의 사자를 한없이 자애로워 보이는 통통한 젊은 여성으로 그려 놓은 것도 주목할만했지만, 죽음의 선고를 받아들이는 할아버지의 저 표정이라니...마치 신의 축복을 받는 듯 감사해하는 표정이 아닌가. 삶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저주이고, 죽음이 오히려 그 저주에서 풀려나는 축복이라는 뉘앙스의 이 그림을 보면서 도대체 화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속에서 화가는 뚜렷하게,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지니, 왜냐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에...라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서도 흔하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서 충격적이고 흥미로웠다. 아니 ,사실 우리들 마음속에 한자락씩은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감히 누구도 나서서 그런 말을 입밖엔 꺼내 놓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신선하고 통쾌했다. 이렇다보니, 이런 금기같은 말을 당연한 것이라는 듯 단정적으로 그려낸 화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 한 것도 이해가 가실 것이다. 놀라운 인생관 아닌가.화가가 만약 아직 살아계시다면,  당장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왠지 그는 시간과 장소가 달라진다고 해도 변하지 않은 진실의 한자락을 알고 있는 듯해서...그리고 이건 다른 말인데, 흔히들 사진이 원판만 못하다고 하는데 이 그림을 보니 확실히 알 것 같다. 원본속의 생생함이나 풍성함이 사진속에서는 흔적없이 사라진 것을 보니 말이다. 원본이 전해주는 감동을 이 사진만으로는 읽어낼 수 없다. 아마도 그래서 다들 비싼 돈을 내고 꾸역꾸역 전시회를 가는 것이겠지만서도...

<사는게 뭐라고>라는 책 리뷰를 쓰면서 뜬금없이 야체크 말체프스키의 그림을 들고 나온데는 두 작가가 어느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나의 엄마 시즈코상>의 저자 사노 요코, 치매를 20년 가까이 앓아온 90대의 노모를 잃은 뒤, 드디어 홀가분하게 사시는가 했더니만 그 2년 뒤에 그녀 역시 암으로 사망하셨다고 한다. 죽기 전까지 그녀가 성실하게(?) 끄적여온 몇 편의 수필을 모아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죽음>이라는 그림을 봤으면 엄청 좋아했겠다 했다. 아마도 많은 위로를 받았겠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말이다. 사노 요코, 그녀는 의사가 암으로 기껏해야 1년 남짓 살 수 있다고 하자, 당장 나가서 재규어를 산다. 그 차가 2주만에 너덜너덜해졌지만, 어떠리, 마냥 태연하다. 신기하게도 평생 앓아오던 우울증이 단박에 낫더라며 신나한다. 이럴때 보면 어쩌면 삶 자체가 그녀에겐 우울증의 근원이었던 것도 같고...그녀의 지인들이 암이라서 어쩌냐, 죽음이 무섭지 않느냐고 울상짓자,  그녀는 오히려 잘됐다고. 어차피 인간 한번 죽는데, 암보다 더 고약한 것에 걸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대답한다. 거기에 70에 죽고 싶었는데 소망이 이뤄진걸 보니 착하게 살아왔던 모양이라며 자신은 더 이루고 싶은 것고, 더 책임져야 할 것도 없으니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조용히 수긍한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기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내진 관습적으로 삶은 어떤 순간에서도 붙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그렇게 인생 막바지에 선 저자의 시크한 매력이 돋보이던 책이다. 삶보다 죽음이 가까운 자의 솔직함이랄까, 내슝을 떨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좋아하는 한국 비디오도 비디오 가게 점원이 이상하게 볼까봐 대놓고 가서 빌리지 못할만큼 소심한 양반이 글속에서는 그런 자신을 비웃다가 변호하다가, 그럼에도 본인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 어쩌랴, 이게 나인걸...하는 할머니의 무대포 정신에, 만약 그녀가 현대에 살았더라면 훨씬 더 재밌게 잘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살았던 시절은 아이에게도 여성에게도 그닥 좋은 시절이 아니었어서 말이다.


<나의 엄마 시즈코상>을 읽으면서 그녀가 암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어놔서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었는데, 그녀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이런 책을 읽게 되서 다행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 굉장히 서운하고 안 됐어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홀가분하게, 자신이 멋진 삶 까지는 아니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삶은 아니었다고 자부하면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바라건데, 나 역시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했을때 그러할 수 있기를. 그것이 엄청나게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그런데 오해는 마셔야 할 것이, 여기서 말하는 이런 죽음은 노년의 죽음입니다요. 삶을 그리 오래도록 인내하고 살았으니, 그들에게 은혜같은 휴식을 주어도 된다고, 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젊은 이들은 착각하지 마시길...당신들에겐 인내하고 살아야 할 시간이 아직도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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