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스, 앤불린의 몰락
힐러리 멘텔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플라자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기다림에 지쳐 완전히 잊고 있던 <울프 홀>의 후속작이 드디어 출간됐다. 이름하여 <튜더스, 앤불린의 몰락>. 제목만으로도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헷갈릴리 없는 매우 친절한 단어 선택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상상력을 발휘될 가능성이 없는 고지식한 제목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원제를 가져가 쓰기가 망서려진 출판사가 이해가 안 되는건 아니다. <죄인들을 불러오라>내진 < 참수형으로의 초대> 는 좀 어색하게 들리니 말이다. 이런게 영어랑 한국어 어감의 차이겠지. 어감상으로는 물론 원제가 한층 의미심장하다는 점에서 점수를 받을만 하지만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이 무엇인지 쉽사리 캐치가 되는 것은 앤 불린의 일화를 들어면서 자라난 영국인들이고,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선 앤불린이 누군인지, 그녀가 어떻게 몰락을 했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테니, 그만하면 됐지 싶다. 책의 내용이 들어가보면...

<울프 홀>에서 천신만고끝에 앤 불린을 왕비로 올린 토마스 크롬웰은 권력의 핵으로 떠오르게 된다. 부와 지위와 명성까지 얻게 된 그에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나온 거지꼬마를 떠올리기는 힘들다. 어린 시절부터 갖가지 고생을 해가며 오늘날의 자리에 오른 그가 여지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운도 좋았긴 하지만  그가 철저히 현실주의자였기 때문도 있다. 현실주의자라서 살아남은 것인지, 아니면 살아남았기에 현실주의자가 된 것인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물음만큼이나 답하기 애매한 질문이지만서도, 어쨌거나 세습귀족이자 당대의 이상주의자였던 토마스 모어와 붙어서 처형된 것이 모어라는걸 감안하면 현실주의의 생존력을 무시하면 안 되지 싶다. 물론 이상주의자가 훨씬 더 멋있어 보일 수 있겠지만서도, 현실을 굴러가게 하는건 다분히 현실주의자의 피묻은 손이니 말이다. 앤을 왕비에 오르게 함으로써 그동안의 모든 소란이 대충 진압이 되고, 왕비가 임신을 함으로써 새로운 왕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왕국이 들썩일때 과연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그 기대감은 공주 엘리자베스가 태어남으로써 한차례 가라앉더니 어느날 슬금슬금 앤의 시녀 제인 시모어를 바라보는  헨리 8세의 강렬한 눈길로 인해 완전히 꺼지게 된다. 이제 헨리가 바라는 것은 어떻게 저런 여자를 사랑했었는지 주문에 걸린게 틀림없다고 단언하는 앤 왕비를  "누군가 "가 신속하게 치워주는 것이고, 그 임무를 맡게 될 그 누군가가 토마스 크롬웰이라는건 묻지 않아도 뻔한 것이렸다. 앤이 왕비가 된지 3년, 왕은 그녀와의 결혼이 무효가 되길 바라고, 앤이 왕비였던 그 삼년간 누구못지 않게 앤에게 정나미가 떨어져버린 크롬웰은 서서히 그녀의 목을 옥죌 올가미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현왕의 왕비를 폐하는 역활을 맡게 된 크롬웰의 운명이라니... 참 기구하기도 하지, 앤이 캐서린때만큼 애를 먹이면 어쩌나 고민하던 크롬웰은 앤의 주변인들의 제보(?)로 어쩌면 쉽게 일이 진행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증언은 별별 일을 다 겪었다고 자부하던 크롬웰조차 경악하게 만드는데...


<앤 블린의 몰락>이라고 해서 그녀가 주인공이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실텐데, 이 책의 주인공은 전적으로 토마스 크롬웰이다. 그의 시점에서 바라본 앤 불린 사태, 역시나 주인공이 바뀌고 보니 내용이 확 달라진다. 어떻게 같은 역사를 가지고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라고 감탄스러울 정도로 전혀 다른 내용을 우리 앞에 내밀어 놓는데, 작가의 시야와 통찰력에 두손 두발 들게 된 작품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을 들라면 토마스 크롬웰이라는 당대의 권력자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 있다. 그저 헨리8세의 수하에 있다보니 악역을 맡게 된 하수인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권력의 중앙에 서서 현실 정치를 다이나믹하게 펼쳐 나갔는가 라는 것을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그걸 보면 우리는 다들 각자의 무대에 서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던 셰익스피어의 말이 맞지 싶다. 헨리 8세라는 그물하에서는이상주의자는 누구라도 살아남기가 불가능했으며, 그나마 권력의 중심에서 헨리 8세가 벌려놓은 사건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은 크롬웰이 그만큼 눈치가 빠르고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가 산전 수전을 다 겪어본 백전 노장이고, 왠만한 일에는 눈썹하나 까딱 안하는  배포가 있었기에 말이다. 당대 영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나이라고 불리웠다는 크롬웰이 권력의 조력자로써 정치를 조율 해나가는 모습은 경이롭더라. 악역을 맡아야 할때와 연민을 가져야 할때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구분해내던 그의 모습은 현실 정치가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이상적인 정치가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매력적이었다. 인간미를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유연할 수 있는 사고를 가진다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최상의 위치에 올라서도 결코 자신의 출발점을 잊지 않고 살았던 사내로써, 헨리8세라는 카리스마와 변덕이 넘치는 왕 아래에서 그가 어떻게 책사로, 아버지로, 정치인으로 살아갔는가를 마치 드라마를 시청하는듯 생생하게 눈앞에서 보여주던데,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특히나 대화들이 찰지다. 이 작가가 16세기로 시간 여행을 해서 그들의 대화를 다 도청해서 소설을 만든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어떻게 이런 대화를 상상해내고, 토마스 크롬웰의 시선에서 바라봐지는 현실을 그의 성격에 투영해 모순없이 설명해 내는지, 가히 작가가 토마스 크롬웰에 빙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힐러리 맨틀이 쓴 소설이 아니라 토마스 크롬웰이 쓴 자서전이라고 해도 믿겠다. 물론 그가 이만한 필력이 있었겠는가 그게 문제지만서도... 아마도 다음 편은 앤이 처형된 뒤 4년후, 토마스 크롬웰의 몰락을 그려내지 않을까 싶은데, 것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이 매력적인 사내가 자신의 몰락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그 똑똑하던 사내가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잊고 살다보면 언젠가 또 후속편이 나와 주어서 나를 흥분하게 하겠지. 그날을 기다리면서...


추신1--이 책을 보니 어쩌면 앤 블린은 소시오패스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물론 앤 블린에 대한 관점은 역사가들 마다 다 달라서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알길이 없지만서도....하여간 최소한 철저한 내진 일방적인 피해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이해했다. 물론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녀가 청초하고 가냘픈 여인으로, 왕의 변심에 의해 목이 잘린 여인으로 기록되는 것이 더 흥미로울지 모르겠지만서도. 그게 약간은 현실성이 없단 말이지. 역사에 이런 소란을 일으킨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앤블린이 그저 일방적인 피해자였다는게 안 믿어지긴 하다.

추신2-앤 블린과 그의 오빠 조지의 근친상간이야기가 여기에 나온다. 맨처음 들었을때는 앤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나온 모함인 줄 알았는데, 당시에도 그런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그게 이상한 것도 아닌 것이, 당시는 귀족 자제들은 어린시절 다른 집에 보내져 양육되다가 커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현대의 의학이 밝혀낸 바로는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고, 그럼에도 우리가 근친상간을 벌이지 않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어렸을 적 함께 자라면서 무의식속에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커서 만난 이복 남매나 이종 사촌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때문이라고, 그걸 보면 커서 만난 앤과 조지의 근친상간이 당시 귀족들에게는 불경한 일이지만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 인간은 도대체 어디까지 현실적일 수 있는 것일까.

추신3.  새 아내를 들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 하나는 유폐 시켜 치욕속에 죽게 만들고, 나머지 하나는 목을 잘라 버린 헨리 8세.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 아니 덧붙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어느 방에 들어서건 간에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하던데, 정신과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케이스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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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드카프리오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서도, 그런 그가 그의 인생 연기를 보여줬다는 말에 새삼 관심이 생겨서 보게 된 영화다. 뉴스에 의하면 레오가 이보다 더 고생한 작품은 없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길래 도대체 어떻길래 했더니만, 정말로 고생도 이런 생고생이 없겠더라. 내내 감탄스러웠다. 레오처럼 곱상한 외모에 전세계적인 인기에 부에 사는데 부족함이 하나도 없을텐데, 그럼에도 쉬운 길을 마다하고 이렇게 힘든 역을 진지하게 하는걸 보면서, 레오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보게 됐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번에야말로 레오가 아카데미상을 드디어 거머쥐게 되지 않을까 추측을 하시던데, 진짜 내가 줄 수 있다면 하나 주고 싶을 정도로 레오의 고생은 엄청 났다. 그에게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묻고 싶어질 정도로. 영화를 찍으면서 한번쯤은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라고 후회한적이 없으시냐고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만한 생고생을 몸소 실감나게 보여주시는데, 객석에서 보다가 몸을 움츠리거나 깜짝 놀라거나 헉 소리를 지르거나 하던 것이 여러번. 도대체 보는 이로 하여금 질겁해할만한 장면들을 직접 찍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까 자못 궁금해졌다. 그들도 대체로 제정신인 사람들은 아닐 듯...

서두가 길었는데, 내용은 심플하다. 19세기 미국, 비버 가죽을 모으기 위해 인디언 구역이 들어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이 된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드카프리오 분)은 인디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 호크를 자신의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백인들의 손에 아내를 잃고, 간신히 아들 하나 건진 글래스의 마음을 알리없는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호크를 온전한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디언의 사나운 추적을 피해 산길에 오르게 된 글래스 일행중 피츠제랄드(톰 하디 분)는 편한 배를 버리고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한다는 말에 글래스에게 불만을 품는다. 정찰을 위해 먼저 나서던 글래스는 회색 곰의 습격을 받고, 목숨만 간단간당한 채로 발견되게 된다. 가야할 길이 구만리구만, 글래스의 상태가 심상찮은걸 본 대위는 부하 세명을 뒤에 두고 앞으로 가기로 한다. 뒤에 남은 사람중 하나인 피츠는 어차피 죽을거 내가 일찍 죽어주겠다며 입을 틀어막고, 이 장면을 본 아들 호크는 피츠를 막기 위해 저항을 한다. 호크와 업치락뒤치락하던 피츠는 그를 죽이고, 자신의 눈앞에서 아들이 살해되는 광경을 본 글래스는 분노로 어쩔 줄 모르지만 중상때문에 한마디로 할 수 없다. 호크를 죽인 피츠는 어차피 죽을 놈이라면서 글래스를 남겨두고 앞서간 일행을 따라가게 되는데...과연 글래스의 운명은?

간단하게 말해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담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 왜냐면 어찌보면 그게 다라서 다른 흥미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루하다. 예전에 <앙투라지>라는 미드에서 스타 배우 빈스가 출연한 영화가 모두의 큰 기대를 얻고 개봉을 했는데 다들 지루해서 경악을 하던 에피소드가 떠오르면서, 그 정도로 참담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레오의 작품 치고는 재미가 덜하긴 했다. 그러다보니 남는 것은 온갖 고생을 다하고 있는 레오의 연기. 그와 톰 하디의 연기력으로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던데 , 그것만큼은 대단하더라. 그래서 레오가 아카데미상을 탈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는 글쎄? 지 싶다. 원래 상이라는게 물론 연기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주기도 하지만, 배역 자체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약간의 감동이 있어야 되는게 아닌가? 말하자면 배역 자체가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 이 작품속에서의 글래스는 캐릭터가 평면적이다. 생명력과 가족애가 전부인.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간당대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염두에 둘 여력이 없는 자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글래스는 <장고>의 싸가지 남부 농장주 레오보다 덜 인상적이다. 심각하게 나쁜쪽이었지만, 매력만큼은 장고가 월등했다. 거친 자연을 상대로 어떻게 중상과 배신을 당한 한 인간이 살아남는가를 보여주던 요령피우지 않던 묵직한 영화이긴 했지만서도, 영화 자체로는 그다지 재밌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럼에도 만약 올해 레오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는다면 그의 몸사리지 않는 연기를 다들 인정해준 것이라고 생각하겠다. 올해 본 어떤 영화에서도 레오만큼 고생한 배우는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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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너무도 진지하게 연기하는 배우들 때문에 웃었던 작품. 하지만 내용 자체는 불쾌하고 심각하다.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하는 사회가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질문하던 작품으로, 강압적인 사회에 대한 반발심을 곧바로 고취하게 해주던 영화가 되겠다. 이분적인 사고만 가능한 경직된 사회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불합리한가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자유란 것의 소중함을 설파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사상의 자유이건 행동의 자유이건 간에. 더불어 이 영화속에서는 우리가 자랑해마지 않는 소위" 사랑" 이라는 것에 대한 냉소적인 풍자 역시 담고 있었는데, 나름 설득력이 있어서 섬뜩했다. 서로 공통분모가 있어야 짝이 될 수 있다면서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애를 쓰는 남녀들을 보면서, 아, 그런 사회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더라. 영화가 비록 현실 그자체는 아닐지라도, 현실을 어느정도는 반영한다는 점에서 아찔한 분석이긴 했다. 이걸 굳이 이 포스팅에 함게 쓰는건 , 따로 포스팅을 하고 싶지 않아서일 정도로, 내겐 그닥 인상이 좋지 않았던 작품. 기괴하지만 신선한 상상력이긴 했다. 궁금하시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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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0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에 대한 건 저도 읽은 지라 ㅡ
흥미롭더라고요.
마치 정부군과 반정부군 처럼
나뉘어서 한쪽은 사랑을 할 사람들
반대쪽은 사랑안할 사람들
둘 다 어길 시엔 치명적이고 극단적 방법으로
처벌이 있단 것 ㅡ
웃긴건 여기가 아닌 저기에선 하지말라는데도 찾아지는
아이러니 ㅡ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어 초조해지는
이쪽의 그 어이없음 ㅡ이랄까요...
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랑이 가능했는지
절실했는지 알겠더라면 ㅡ웃길까요.
양쪽 노선이 둘다 죽음을 놓고 사랑을 막고 찾는 거였음
얘긴 달랐겠죠..분명 ㅡ
그러니 ㅡ세상은 지금 ㅡ뭔가 너무 절실함이 없단 건지도
모를 ㅡ일 ㅡ무서운 ㅡ일이죠...그건 그것대로.

이네사 2016-01-05 13:57   좋아요 1 | URL
예, 말씀하신대로 그런 내용이었답니다.
<1984>의 나라라서 그런가 전체주의적인 사회를 두려워 하는 영화를 영국이 잘 만드는 듯 싶어요.
오히려 그런 사회에선 차마 그런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아이러니하더라구요.
왜 영국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싶어서요.

[그장소] 2016-01-05 21:0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바깥에서 보기때문에 그게 더 잘 보이는
걸 수도 있고 ...계속 환기가 필요하단 의지가 작용해서 (국가적으로?) 알게 모르게 모두 의식적으로 자주 서로 일깨우는 건 아닐까요.
영국은 아무래도 세계대전을 1,2차 모두 겪고 체감한 나라니만큼 ㅡㅎㅎㅎ
순 개인의 상상 일뿐 ...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말에 그래도 나는 호일 것이다라고 자신하면서 보게 된 영화. 워낙에 타란티노에게 적응이 되어 있기도 하고, 전작들의 폭력성이 아주 지나친데라고 끔찍해 하면서도 필요악이라고 해야 하나, 악을 응징한다는 면에서 통쾌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수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폭력은 폭력일뿐, 눈을 거슬리지 않을리 없다. 하여 타란티노의 잔인한 폭력성에 대해 차곡차곡 쌓여있던 내재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작품이 바로 이 영화다. 도를 넘어선 폭력이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똑바로 봐주기 힘들다.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불이었고, 이건 호불호를 따질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싶어 못마땅했다. 요즘은 워낙에 두리뭉실하게 말을 하는 경향이 두드러져서, 배려한답시고, 그리고 너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호불호라는 말을 쓰는가 본데, 호불호는 그래도 어느정도 작품성이 있는 영화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지, 이 영화는 거기까지 이를 정도는 못되는 듯해서 말이다. 그냥 별로다라고 하면 안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건데, 타란티노는 서부시대에나 어울릴만한 사람이다. 꼴리는대로 총질을 해대도 아무런 터치도 하지 못하던 시대, 사이코패스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면서 명성을 드높이던 시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명제가 그대로 통용되던 시대에 그의 정서가 딱이다. 어쩌면 타란티노는 정의를 가장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더라. 폭력을 이렇게나 좋아하시나 싶을 정도로 올곧게 폭력 취향적인 성향을 아낌없이 보여주시는데, 이쯤되면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그만 질리기 마련이다. 그의 악동같이 짖굳은 유머 감각,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것, 이야기꾼으로써의 현란한 재능만큼은 나도 부인하지 못하겠지만서도, 결국 모든 이야기를 폭력으로 끝맺는 버릇은 도무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무리좋게 포장을 하려 해도 이젠 선을 넘은 듯하다. 그저 타란티노는 이런 사람이구나, 라고 결론짓는게 옳을 듯해. 바로 그게 그니까...

영화 내용은 타란티노 답게 쌈박하게 시작한다. 이야기꾼으로써의 감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오하이오 깊은 산골, 눈보라 태풍이 몰려오는 긴박한 순간에 레드락 타운으로 달려가는 마차를 길거리에서 세우는 사람이 있다. 그는 유명한 흑인 현상금 사냥꾼으로 세 구의 시체와 함께 자신을 태워 달라고 부탁한다. 탐탁해 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그를 태우기로 결정하게 된 마차 손님은 역시나 유명한 현금 사냥꾼 <행맨>이었다. 그가 행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 죽건 살았건" 간에 같은 돈을 지급한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늘 현상범을 끌고와서 교수형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그가 마차를 타고 이 겨울 산길을 가게 된 것도 여자 현상범인 토마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왜 힘들게 살려서 데려가는냐는 흑인의 질문에 그것이 나의 방식이라고 쿨하게 답하는 행맨 . 그들을 태운 마차는 도중 신입 보안관이라고 자칭하는 자까지 픽업해서 미니의 양장점--일종의 산장 대피소--으로 달려가게 된다. 도착한 그곳에는 이미 늙은 장군과 사형집행인, 그리고 맥시코인과 이방인이 있었다. 미니 양장점에 주인인 미니가 없다는 사실에 흑인 현금 사냥꾼은 의심을 품지만 추리를 완성하기엔 단서들이 부족하다. 서로가 모두 낯선 이방인들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팽팽한 살기가 감도는 가운데, 독살 사건이 일어나자 분위기는 일순간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 누구도 이유없이 그곳에 오진 않았다는 문구가 설명하듯, 그들이 그곳에 모인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었는데, 과연 그 8명들의 운명은?

장점을 들라면 이야기에 생명력이 있다는 점과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적이라는 것에 있다. 사무엘 잭슨, 커트 러셀, 그리고 제니퍼 제이슨 리의 연기는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그외 배우들도 각자 자신의 배역을 잘 해준 듯하다. 신입 보안관 역의 월튼 고긴스는 본인의 인생 역을 만난 듯 자연스러운 남부 사투리 연기가 좋았다. 단점은 앞서 말했듯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타란티노의 전작들에 비해서 눈이 팍 떠지는 그런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장고의 크리스토프 왈츠나 레오나르도 드카프리오, 바스터즈의 브레드 피트, 펄프 픽션의 존트라볼타 같이 확 눈에 들어오는 매력을 지닌 배우들이 이 영화속에는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나저나 타란티노의 폭력성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던데, 그게 어떻게 제어가 안 되는 듯하다. 폭력의 중독성에 빠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누군가가 잔인한 폭력만이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말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게 귀에 들려올지는 알 수 없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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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년전, 공룡이 지구를 점령하고 있던 그때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비켜지나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는 시작합니다.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으니 그후로 쭉 지구는 공룡의 세상이 되었을 것인데 그렇다면, 공룡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겠는가라는 상상으로 말이죠. 간단히 말해 공룡이 현재 우리 인간과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지 않겠는가, 라고 제작진들은 가정을 합니다. 종에 따라 농사를 짓거나, 소몰이를 하거나, 약탈족이 되거나를 하고는 있지만 현생 인간이 하고 있는 것들을 다 하고 있다고 보면 되죠. 그에 비해 체격이 현저히 열등한 인간은 공룡에게 해충같은 존재가 되어 공룡이 열심히 모은 식량을 훔쳐가는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비유를 하자면 쥐나 고양이 같은 신세가 된 것이죠. 여기서 공룡과 인간이 충돌하는 지점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둘 사이에는 충돌만이 있었을까요? 이왕 엉뚱한 상상을 하는 김에 우리 한번 크게 나가보는건 어떨까요?

삼 형제중 가장 작은 아이로 태어난 알로는 농장을 하는 부모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공룡입니다. 그에게 유일한 걱정거리라면 외소한 외모만큼이나 겁이 많았다는 것이죠. 그는 자신이 한몫을 하는 공룡으로 성장하지 못할까 걱정이고, 그건 알로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답니다. 알로가 언제나 두려움을 껴안고 사는 아이로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 알로의 아빠는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던져줍니다. 곡식창고를 잘 지키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알로는 창고의 옥수수를 훔치는 인간 아이를 보고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려 보내줍니다. 이에 알로의 아빠는 대노해서 그의 뒤를 쫓아가게 되죠. 하필이면 그때 거대한 폭풍이 몰려와 인간을 쫓던 알로의 아빠는 강물에 빠져 실종되고 맙니다. 자신의 어이없는 실수로 아빠를 잃어버린 알로는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하여 다시 나타난 인간 아이에게 그가 분노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겠죠. 너 때문이야를 외치면서 인간아이의 뒤를 쫓던 알로는 강물에 빠지게 되고, 결국 길을 잃어 버리고 맙니다. 집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할지 감을 못잡는 알로 앞에 인간아이는 홀연히 나타나 도마뱀을 내려놓고 도망가는데요, 과연 그의 속셈은 무엇일까요?

시사회를 통해 보게 된 영화인데, 무엇보다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보게 되서 좋았던 영화입니다. 보통은 영화관에서 떠들거나 울거나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눈살을 찌프리기 마련인데요, 이 영화만큼은 오히려 그것이 공감대를 높여주더군요. 영화관이 아니라 집에서 가족들하고 월드컵 중계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알로의 아버지가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 갔을때는 한쪽에서 죽었나봐 하더니 다른 한쪽에선 흑흑흑 우는 소리가 났고, 알로와 스팟이 땅다람쥐와 노는 장면에서는 다들 왁자하게 한바탕 웃어 제끼더라구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악당 익룡에게 당하는 장면에서는 다들 흥분하고 난리가 났었지요. 장면장면마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상황을 설명하고 훈수를 두느라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오던데, 아이들 특유의 해석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내 안의 소리가 밖에서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참 나...아이들과 영화를 보는 것이 이렇게 재밌는데, 왜 어른들은 아이들을 영화관의 적처럼 생각하는 것일까 싶더라구요. 오히려 아이들이 그렇게 재밌어 하면서 집중해서 보니, 같이 보는 저도 덩달아 영화가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런면에서 아마 이 영화는 저 혼자 봤다면 재미가 덜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시선에서 보려니 한층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거든요.

해서 결론은 재밌습니다. 공룡이 인간처럼 살아가는 모습이나, 인간이 마치 야생 들짐승처럼 살아가는 모습도 의외라 흥미로웠고, 그 인간이 공룡의 애완 동물이 되어서 우정을 나누게 되는 과정도 설득력이 있었어요. 인간을 개처럼 그려놨던데, 얼추 그럴싸 하더라구요. 거기에 무엇보다 자연을 그려놓은 배경 그림이 압권이었어요. 반딧불이 숲이나 새를 쫓아가는 장면들, 그리고 강물을 그려놓은 것들은 어떻게 저걸 그려냈을까 싶을 정도로 정교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더군요. 영화의 설득력을 높이는데 한몫 하지 않았는가 합니다. 그외에 이 영화를 보면서 잊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요, 그건 바로 <주토피아>의 예고편이였어요. 왠만하면 예고편에 박장대소하지 않는 편인데, 주토피아의 예고편은 예외더군요. 교통국을 책임지고 있는 공무원 나무늘보라니, 도대체 그런 냉소적인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원...미국인들의 천부적인 풍자 감각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아서 크게 웃고 말았네요.  언제 상영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기다려지는 애니를 하나 만난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좋은 영화 한편을 보고 나오면서 기대되는 영화 한편에 눈도장을 찍고 나왔으니,  꽤 만족스런 영화관 나들이였지요? 하여 괜찮은 영화관 나들이를 찾으신다면 추천드려요. 특히나 영상미가 압권인 영화라서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전 더빙으로 봤는데, 자막판을 찾지 못하신다면 것도 나쁘지 않더을 것 같더군요. 아이들과 보기엔 더 낫더군요. 화면에 집중할 수 있고 해서...하니, 누구와 보실지를 감안하셔서 고르시면 되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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