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을 알콜중독자에 무능한 가장으로 살아온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향해 끊임없이 잔소리를 날려대는 엄마, 사이 좋은 부부라고 하기 힘든 둘을 부모로 둔 데이빗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깁니다. 아버지 우즈가 복권에 당첨이 되었다면서 그걸 받으러 직접 네브라스카까지 가겠다고 나선 것이죠. 소위 '행운의 편지' 같은 사기성 농후한 편지 한장에 당첨되었다고 좋아하는 우즈를 본 데이빗은 어이가 없습니다. 알콜중독자에 무능했던 것은 그렇다쳐도 그 나이에 되어서도 세상 물정을 그리 모른다는건 절망스런 일이니까요. 당연히 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반대합니다. 문젠 평생 남이 한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담는다고 해도 믿는 이 양반이 고집을 부려댄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를 네브라스카까지 태워다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확실해 보이자, 우즈는 걸어서라도 가겠다며 가출을 합니다. 결국 친절한 경찰관에 의해 고속도로에서 붙들려온 아버지를 본 데이빗의 마음은 착찹합니다. 딱히 잘해준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가 아버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아무리 황당한 소원이라고 한들, 늙은 아비가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는 걸 외면하기란 쉽지 않는 법이죠. 아버지의 굳은 결심이 도통 꺽일 것 같지 않자, 데이빗은 하는 수 없이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형과 어머니의 지청구를 뒤로 한 채 떠난 여행, 처음부터 불안하던 그들의 여정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요? 아버지가 당첨되었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는 백만 달러는 받을 수 있을까요? 삐걱대던 둘의 여정은 우즈가 다치는 바람에 목적지를 바꾸게 됩니다. 중간지인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게 된 것이죠. 고향에 가는걸 마뜩찮아 하던 우즈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자 자신이 복권에 당첨됐다고 떠들어 댑니다. 자신의 한마디가 어떤 상황을 몰고 올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채로요. 우즈가 타향살이 4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늙은이가 아니라 백만달러 상금을 손에 넣을 복권 당첨자라는 사실이 알려 지면서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현저하게 달라집니다. 영낙했음을 감출 길 없던 가난한 마을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그 소동을 겪으면서 데이빗은 아버지가 떠나온 고향이란 곳에 대해, 평화롭고 목가적으로만 보이는 그곳의 실체를 제대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데요....
올해 아카데미상 몇몇 부분에 후보로 올랐기에 호기심에 보게 된 영화다. 볼때는 그냥 괜찮네 하는 정도였는데, 보고 나서 오히려 몇몇 장면들이 생각나면서 되새김질을 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그러니까, 생각할 거릴 던져주고, 여운이 남는 그런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처음에 괜찮네 했던 것은 내가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보고난 다음에도 생각이 나는 것은 그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서서히 인정하게 되어서겠지. 얼핏 보면 노망난 노인네가 돈에 환장을 해서 사단이 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따지고 들어가보면 복잡한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던 영화였지 않는가 한다. 우린 상대를 얼마나 얄팍하게 재단하고 판단하는지, 그리고 상대에 따라서 우리가 얼마나 가변적으로 변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부모가 40여년전 등진 그들의 고향을 둘러 보면서,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부모의 진짜 모습을 서서히 포괄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데이빗의 심경 변화가 압권이다. 우드네 가족이 보는 것 만으로도 혀를 츳츳하고 차게 되는, 막장에 개판 일보 직전임에도 한 가족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용타 싶었는데, 그들의 사연을 쭉 들어보니 가족들의 이야기는 겉으로 드러난 것 외에 깊은 속내가 있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로구나를 깨닫게 되더라. 가족간의 끈끈한 정이란게 바로 그런게 아닐런지...한국에서나 등장할 법한 진한 가족애를 다룬 이야기가 미국 영화에서도 그려진 것이 이채롭다면 이채로웠던, 그것이 내겐 새삼스럽고 특이하게 느껴졌던 영화였다. 이런걸 보면 장소가 어디건 간에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그닥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아마도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면서 공감을 하는 것이겠지만서도...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적는다면...
1. 데이빗의 부모가 떠난 고향은 농사를 주로하는 시골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것은 미국의 시골과 한국의 시골 모습이 너무도 비슷해서였다.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느른하고 욕심 없어 보이지만, 한꺼풀 벗겨 놓고 보면 한없이 조야하고 뻔뻔하리만치 욕망에 충실하던 그들의 모습은 어찌나 닮았던지, 풍경만 다르고 사람들 사는 모습은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라. 시골은 아름답고, 시골 사람들은 순박하고 천진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를 보시길. 어쩜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진심으로 그들과 부딪힌 순간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리라. 시골은 야생 정글과 도시의 중간쯤 되는 곳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인지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 가면 문화적 충격에 휩싸이기 쉽상이다. 벌거벗은 욕망과 그걸 합리화하는 그들의 마인드를 이해하기란 도통 쉽지 않으니 말이다.
2. 예기치 않게 한국 지명이 자주 나온다. 나 애국심하고는 담 쌓은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외국 영화에서 한국 지명만 나오면 귀가 쫑긋하게 되더라. 이 영화속에서도 우즈는 한국전에 참전한 참전 용사로 , 그리고 우즈의 큰 아들은 기아의 차를 몰고 다니는걸로 나오는데, 뒷꽁무니에 기아라고 선명하게 로고가 찍힌 차가 나오는데 은근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는 것이 나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한국이라는 지명을 누가 말해준다는 것이 좋아서인지 모르겠지만서도, 하여간 뜬금없이 찬조출연해주시는 한국지명에 급 친근감이 느껴졌다는 ...
3. 평생 돈이라면 관심도 없던 양반이 왜 이제와서 난리냐고, 그렇게 돈이 좋았으면 진작에 관심을 좀 갖지 라면서 우즈의 아내는 그를 타박한다. 돈을 받으면 뭘 할 생각이냐는 데이빗의 질문에 아버지는 새 트럭을 사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을 흐린다. 하지만 정작 그가 돈을 받고 싶어하는 깊은 속내는 따로 있었으니, 데이빗 조차도 지고만 그의 속내...내가 왜 데이빗이 우즈를 버리지 못하는지, 그리고 왜 그가 우즈의 망상에 동참하게 되는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코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끈끈함 때문이 아닐런지...
4. 이 영화를 보면서 부부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정말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고, 단순히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해서 오랜 세월을 같이한 부부 사이만큼 복잡하게 얽힌 것도 없지 싶던데, 서로가 서로에게 악영향을 주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그나마 그들이 서로에게 최고의 파트너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하더라. 알콜중독자에 루저인 아버지와 입만 열었다하면 톡톡쏘는 독설로 귀를 막고 싶게 만드는 엄마, 서로에게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두 사람이 알고보면 서로의 구원자이기도 했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하던지...인간관계의 복잡 미묘함은 정말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것인 듯...
현실을 기반으로한 다분히 냉소적인 톤이 두드러진 가족 영화였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이 결국은 냉소적으로 비춰진다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아마도 그런 점에서 디즈니 식의 감동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하실지도...거기에 딱히 극적인 이야기 없이 전개되는 점도 이 영화를 그리 재밌다고 말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기도 하다. 하지만, 30년대 영화를 보는 듯한 흑백 화면에, 등장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는 주제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고, 못난 아비를 그래도 아버지라고 모시고 다니는 착한 데이빗의 변해가는 시선을 따라가는 것은 꽤 극적인 경험이기도 했다. 감동적인 여운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다소 진지한 영화를 원하신다면 보셔도 좋을 듯...유쾌하거나 명랑하진 않지만,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픈 진실 몇 가지를 직시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보고난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로구나 라는 것. 그것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부모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부모야말로 가장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들이 부모가 된 이후의 일이니 말이다. 한번쯤은 그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입장을 들여다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